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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외도
1)뿌라나 깟사빠-도덕부정
16.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묻자 뿌라나 깟사빠는 제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자기 손으로 직접 행하고 명령하여 행하게 하고 남의 손 등을 자르고 자르게 하고 막대기로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고 재물을 뺏는 등으로 슬프게 하고 다른 이들에게 시켜서 슬퍼하게 하고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고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문을 부수어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주거침입을 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날카로운 원반을 가진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하나의 고기 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강가 강의 북쪽 기슭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보시하고 자신을 길들이고 제어하고 바른 말을 하더라도 공덕이 없으며 공덕이 생기지도 않습니다.‘라고“
<부처의 법안에서 발췌>--우연발생론자인 푸라나 카사파富蘭那迦葉,不蘭迦葉, Purana Kassapa의 사상은 한마디로 도덕 부정론자이다. 노예출신.. 그의 사상은 선악(善惡)의 구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멋대로 정의한 것이며 실제로 선악(善惡)이란 없는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살생이나 도둑질이나 사음 등의 악행(惡行)을 저질러도 그것이 인간들이 임의로 정의한 개념이기 때문에 실제로 악행(惡行)을 범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보시와 방생 같은 선행(善行)을 행한다 해도 역시 그것은 인간의 관념이 낳은 것이지 절대적인 선행(善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그의 견해는 자연히 업(業)이란 없는 것이며 업(業)에 대한 응보(應報)도 없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불교를 비롯해서 정통적인 종교에서 인정한 업보(業報) 사상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길흉화복은 푸라나는 그것이 인과(因果)나 운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우연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주장했다.
(2)막칼리 고살라-윤회를 통한 청정 <디가니까야 제2권 사문과경 중에서>
19.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묻자 막칼리 고살라는 제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됩니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됩니다. 자신의 행위도 남의 행위도 인간의 행위도 없습니다.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습니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천성의 틀에 짜여서 여섯 종류의 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습니다.
그런데 대왕이여, 백사십만가지의 주요한 모태가 있고, 그리고 다시 육천육백 가지 모태가 있습니다. 오백 가지의 없이 있고, 다섯가지, 세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있습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습니다. 여섯가지 종(종)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습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의 티끌의 요소가 있고, 일곱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가지 신, 일곱가지 인간, 일곱 가지 유령, 일곱가지 호수, 일곱가지 큰 융기물, 7백가지 작은 융기물, 일곱가지 갈라진 틈, 7백가지 작은 갈라진 틈, 일곱가지 중요한 꿈, 7백가지 사소한 꿈이 있습니다. 그리고 8백4십만의 대겁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치달리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끝을 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나 서계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서는 아무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습니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치달리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끝을 냅니다.”
<붓다의 품안에서 발췌>-- 마칼리 고살라[末伽梨拘梨子,末伽利瞿舍利 Makkhali Gosala]:무인무연론자, 유물론자 . 숙명론(宿命論)자인 막칼리는 불교에서 말하는 이른바 사명외도(邪命外道)의 개조(開祖)이다. 아지비카(Ajivika)라는 교단의 교조이기도 한 막칼리는 육사외도 가운데 자이나교와 유사한 교설을 펼쳤는데 교세에 있어서도 자이나교의 니간타 나타풋타 다음가는 유력한 종교지도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교설은 후에 자이나교에 흡수 통합되기도 했다. 막칼리는 일체의 구성요소로서 12원소설을 주장하고 있니다.
그 12개의 원소 가운데는 영혼도 포함되는데 인간의 영혼도 하나의 원소로 파악했던 극단적인 유물론자이다. 또 막칼리 고살라는 인간 운명에 대해서 극단적인 결정론을 주장한다.
생사(生死) 윤회(輪廻)하는 것은 불교의 경우에는 모두 인과(因果) 업보(業報)에 의한 것으로 보지만 막칼리 고살라는 아무런 원인도 없고 또 어떤 결과도 초래하지 않는다고 하는 무인(無因) 무연(無緣)론을 펼친다. 인간의 의지작용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며,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을 통해서 해탈(解脫)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본다. 모든 인간은 8백 40만 겁을 윤회하는 동안 고(苦)가 저절로 없어져서 스스로 해탈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처럼 막칼리는 인간이 자기 운명을 개척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한다. 그래서 막칼리 고살라는 의지(意志)의 작용을 부정한 최초의 사상가로 손꼽히고 있다.
(3)아지따 께사깜발리-사후 단멸론 <디가니까야 제2권 사문과경 중에서>
22.“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묻자 아지따 께사깜발리는 제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보시한 것도 없고 제사지낸 것도 없고 헌공한 것도 없습니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열매도 과보도 없습니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습니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습니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내는 바른 도를 구족한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임종하면 땅은 땅의 몸으로 들어가고 돌아가고 , 물은 물의 몸으로 들어가고 돌아가고, 불은 불의 몸으로 들어가고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몸으로 들어가고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건너갑니다. 관을 다섯 번째로 한 네사람이 이 시체를 메고 갑니다. 송덕문은 화장터까지만 읊어질 뿐입니다. 뼈다귀는 잿빛으로 변하고 헌공은 재로 끝날 뿐입니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교설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자들의 교설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멸절할 뿐이라서 죽고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습니다.’라고.”
<붓다의 품안에서 발췌>-- 유물론자인 아지타 케사캄발라[阿耆多翅舍欽婆羅, Ajita Kesakambalin]:는 단멸(斷滅)론자이자 유물론(唯物論)자이다. 불교와 같이 물질적 구성의 최소 단위를 지, 수, 화, 풍(地水火風)의 사대로 보았다. 그는 이 사대(四大)만이 참된 실재이며 독립 상주(常住)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삶은 지수화풍의 사대원소가 결합한 것이며 죽음이라는 것은 이 사대원소가 각기 자기 자리로 흩어지는 것이므로 무(無)로 돌아간다고 보았다. 즉 사후(死後) 세계나 영혼 같은 것은 완전히 부정했다. 그러므로 현세도 없고 미래세도 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윤회(輪廻)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선악(善惡)에 대한 과보(果報)도 없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도덕은 부정되는 것이며. 이 현세의 삶이 최초이자 최후이므로 인간은 그저 즐기고 살아야 한다는 쾌락주의자이자 철저한 유물론자였다. 이러한 철학 사조를 인도철학에서는 순세파(順世派, Carvaka)라고 한다.
(3)아지따 께사깜발리-사후 단멸론 <디가니까야 제2권 사문과경 중에서>
22.“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묻자 아지따 께사깜발리는 제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보시한 것도 없고 제사지낸 것도 없고 헌공한 것도 없습니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열매도 과보도 없습니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습니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습니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내는 바른 도를 구족한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임종하면 땅은 땅의 몸으로 들어가고 돌아가고 , 물은 물의 몸으로 들어가고 돌아가고, 불은 불의 몸으로 들어가고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몸으로 들어가고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건너갑니다. 관을 다섯 번째로 한 네사람이 이 시체를 메고 갑니다. 송덕문은 화장터까지만 읊어질 뿐입니다. 뼈다귀는 잿빛으로 변하고 헌공은 재로 끝날 뿐입니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교설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자들의 교설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멸절할 뿐이라서 죽고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습니다.’라고.”
<붓다의 품안에서 발췌>-- 유물론자인 아지타 케사캄발라[阿耆多翅舍欽婆羅, Ajita Kesakambalin]:는 단멸(斷滅)론자이자 유물론(唯物論)자이다. 불교와 같이 물질적 구성의 최소 단위를 지, 수, 화, 풍(地水火風)의 사대로 보았다. 그는 이 사대(四大)만이 참된 실재이며 독립 상주(常住)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삶은 지수화풍의 사대원소가 결합한 것이며 죽음이라는 것은 이 사대원소가 각기 자기 자리로 흩어지는 것이므로 무(無)로 돌아간다고 보았다. 즉 사후(死後) 세계나 영혼 같은 것은 완전히 부정했다. 그러므로 현세도 없고 미래세도 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윤회(輪廻)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선악(善惡)에 대한 과보(果報)도 없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도덕은 부정되는 것이며. 이 현세의 삶이 최초이자 최후이므로 인간은 그저 즐기고 살아야 한다는 쾌락주의자이자 철저한 유물론자였다. 이러한 철학 사조를 인도철학에서는 순세파(順世派, Carvaka)라고 한다.
(4)빠꾸다 까짜야나-결정론 <디가니까야 제2권 사문과 경 중에서>
25.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묻자 빠꾸다 깟짜야나는 제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일곱가지 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습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합니다. 무엇이 일곱인가요? 땅의 몸, 물의 몸, 바람의 몸, 즐거움, 괴로움, 그리고 일곱 번째로 영혼입니다. 이들 일곱가지 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진 것에 속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자가 없으며,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 있습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서로서로에게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 둘 모두도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습니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자른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칼이 이 일곱가지 몸들의 가운데로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5)(니간타 나따뿟따-네가지 제어로 단속함 <디가니까야 제2권 사문과 경 중에서>
28.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묻자 니간타 나따뿟따는 제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니간타는 네 가지 제어로 단속합니다. 대왕이여, 니간타는 어떻게 네 가지 제어로 단속할 까요? 대왕이여, 여기 니간타는 모든 찬물을 금하고, 모든 악을 금하고, 모든 악을 철저하게 금하여 모든 악을 제거하고, 모든 악을 금하여 해탈을 얻습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니간타는 네 가지 제어로 단속합니다. 대왕이여, 이를 일러 니간타 나빠뿟따는 자아에 도달했고 자아에 계합했고, 자아에 머문다고 합니다.’라고”
<부처의 법안에서 발췌>---니간타 나타풋타[尼간咤若提子, Nigantha Nataputta]:
자이나교의 교주이다. 자이나교는 당시 불교와 함께 흥성했던 종교이다. 니간타 나타풋타는 깨달음을 얻은 뒤 '위대한 영웅'이라는 뜻의 마하비라(Mahavira)로 불려졌으며 자이나교의 교주로서 자이나교를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니간타 나타풋타는 산자야의 회의론을 극복하기 위해 상대주의(相對主義)적 인식론(認識論)을 수립하고 여기에 입각해서 이원적(二元的) 우주론을 제시한다 자이나교에서는 영혼(Jiva, 命)은 물질(Pudgala)의 업(業)에 속박되어서 현실과 같은 비참한 상태에 빠졌다고 파악한다. 그러므로 순결한 영혼인 지바를 끈적끈적한 물질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데 그 방법을 고행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자이나교에서는 극심한 고행이 행해졌습니다. 심지어 고행을 하다가 죽게되면 성자로까지 추앙받았다고 한다
이들의 종교생활은 불살생(不殺生), 불도(不盜), 불음(不淫)과 같은 철저한 계율을 지키는 한편 철저한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실천했습니다. 그들은 살생을 엄격히 금했기 때문에 농사마저 짓지 않는다. 농사를 짓다보면 작은 곤충들을 죽이기도하기 때문에 이들은 주로 상업에 종사한다. 실제로 이들로 인해서 인도의 상업이 발달했다는 학설도 있다.
유명한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는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무소유를 철저히 실천하다 보니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알몸으로 고행을 하기도 했는데 이들을 나형외도(裸形外道)라고 불렀습니다. 후대에 와서는 흰옷을 입어도 된다는 백의파가 나타나기도 했다.
(6)산자야 벨랏티뿟따-애매모호함 <디가니까야 제2권 사문과 경 중에서>
31.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묻자 산자야 벨랏티뿟따는 제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①만일 당신이 ’저 세상이 있소 ?“라고 내게 묻고 내가 ‘저 세상은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저 세상은 있다.’고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②만일 당신이 ‘저 세상은 없소?’라고...
③만일 당신이 ‘저 세상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오?’라고...
④만일 당신이 ‘저 세상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오?“
⑤만일 당신이 ‘저 세상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오?“라고
⑥만일 당신이 만일 당신이 ‘화생은 있소?라고...
⑦만일 당신이 ‘화생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오?’라고...
⑧만일 당신이 ‘화생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오?’라고...
⑨...만일 당신이 ‘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과 과보는 있소?’라고...
⑩만일 당신이‘잘 지은 업고 잘못 지은 업의 결실과 과보는 없소?’라고...
⑪만일 당신이 ‘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과 과보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오?’라고...
⑫만일 당신이 ‘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과 과보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오?’라고...
⑬만일 당신이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하오?’라고...
⑭만일 당신이 ‘여래는 사후에는 존재하지 않소?’라고...
⑮만일 당신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오?’라고...
⑯만일 당신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오?’라고 내게 묻고 내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습니다.‘라고.“
<부처의 법안에서발췌>-- 산자야 벨라티풋타[刪耶毘羅子, 散若夷毘羅梨沸, Sanjaya Belattiputta]:회의론자
산자야는 인식의 객관적인 타당성이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편 회의론(懷疑論)자이다. 진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서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의 대표적인 사상가이기도 한다. 그래서 산자야는 인도 철학사 가운데 최초의 회의론자로 불려지고 있다.
그는 사후의 존재나 선악(善惡)의 과보(果報)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대답을 회피했는데 그의 이런 논법을 '뱀장어처럼 미끄러워 잡기 어려운 논의'라고 불렀다. 아무튼 이처럼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해서 확정적인 지식을 주지 않으므로 그는 불가지론(不可知論)자로 불려진다. 그래서 그는 인도 철학사상 처음으로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해 어떤 일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판단중지(epokhe)의 사상가라고 보고 있다.
이 산자야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아주 깊은 관계가 있다. 산자야의 문하에는 두 명의 뛰어난 제자가 있었는데 바로 그 유명한 부처님의 10 대제자 가운데 사리불과 목건련이다. 이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는 250명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했다.
산자야는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서 그만 피를 토하며 죽었다한다.
<디가니까야 사문과경, 붓다의 법안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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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