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인한 증상, 삶의 질 크게 떨어뜨려(시사저널=노진섭 의학전문기자)
숫자 9(구)는 귀와 발음이 비슷하고 귀 모양과도 유사해 대한이비인후과학회는 1962년부터 매년 9월9일을 귀의 날로 지정했다. 일반인은 귀 건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귀 때문에 발생하는 증상이 의외로 많으며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대표적인 귀 이상 증상은 어지럼이다. 2010~15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21%가 최근 1년간 어지럼과 균형 이상을 경험할 정도로 어지럼은 흔하다. 사람이 어지럼을 느끼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감각계 또는 중추신경계) 문제 때문이다. 즉 귀 또는 뇌에 특정 질환이 생겼을 때 어지럼이 발생한다.
ⓒ시사저널 박은숙이따금 어지럼을 느끼면 흔히 뇌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뇌 문제로 발생하는 어지럼은 전체 어지럼 가운데 10% 미만이다. 뇌 이상 때문에 어지럼이 생기면 다른 증상(의식 손실이나 복시 등)이 동반된다. 이런 경우는 즉시 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단순한 어지럼의 90%는 귀 문제다. 특히 귓속(내이) 전정기관(평형기관)의 문제가 전체 어지럼의 약 40%를 차지한다. 3개 반고리관과 2개 이석기관으로 구성된 전정기관은 우리 몸의 평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 전정기관에 이석증, 메니에르병, 전정신경염이 생겼을 때 어지럼이 발생한다. 이석증은 어지럼의 가장 흔한 원인인데, 어지럼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4명 중 1명은 이석증 때문이다. 이석증은 이석기관에 있어야 할 이석이라는 물질이 원래 위치에서 떨어져 나와 반고리관으로 흘러들어간 경우에 발생한다. 눕거나 돌아누울 때 이석이 반고리관 내에서 움직이면서 우리는 어지럼을 느낀다. 반고리관에 있는 이석을 본래의 위치로 되돌려주는 물리치료(이석정복술)로 이석증 대부분은 치료된다. 다만 3개 반고리관 중 어떤 반고리관에 이석이 있는지에 따라 치료법이 다르므로 귀 전문의의 진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다음으로 흔한 어지럼 원인은 메니에르병이다. 이는 달팽이관과 전정기관을 채우고 있는 물질(내림프액)이 과다하게 많아지는 질환이다. 청력 저하(주로 저음을 잘 듣지 못함), 어지럼, 이명 등의 증상이 20분에서 길게는 12시간 동안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생활습관 교정과 약물치료를 병행하면 메니에르병의 약 80%는 치료된다. 약물치료와 함께 스트레스·염분·술·흡연·카페인을 줄이는 생활습관 교정으로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 나머지 20%는 고막 내부에 약물을 넣거나 수술을 해 치료한다. 다음으로 흔한 원인은 전정신경에 염증이 발생한 전정신경염이다. 전정기관과 신경의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므로 갑작스러운 어지럼이 수일간 지속된다. 전정신경염의 원인은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염증 등으로 추정된다. 자칫 만성적 균형 이상이 생길 수 있어 항어지럼약물로 증상을 완화한 다음 전정재활치료를 통해 만성화를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성현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이러한 대표적 전정 질환 이외에도 어지럼을 유발하는 질환은 매우 다양하고 질환별 치료법도 다르므로 귀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시사저널 박정훈귀·침샘의 종양·염증도 안면마비와 관련 귀 문제로 생기는 또 다른 대표적인 증상은 안면마비다. 입이 돌아가거나, 얼굴에 주름이 잡히지 않거나, 한쪽 눈이 감기지 않거나, 음식이나 물을 마시면 입 밖으로 새거나, 청각이나 미각에 이상이 생기는 증상이 나타난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안면마비 환자가 매년 10만 명 안팎 발생하는데 90%는 귀 주변에 생긴 질환과 관련이 있다. 10%는 선천성 등 다른 원인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안면마비 클리닉을 이비인후과 내에 두는 이유다. 이런 안면마비 증상을 유발하는 가장 흔한 귀 질환은 벨마비다. 흔히 구안와사라고 부르는 벨마비는 헤르페스 바이러스 감염 등으로 귀 안에 있는 안면신경에 염증이나 부종이 생겨 발생한다. 그다음은 대상포진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람세이헌트증후군이다. 이런 질환들은 바이러스가 신경에 잠복해 있다가 신체 면역이 떨어질 때 증상을 드러낸다. 귀 주변을 포함한 머리 외상(머리뼈 골절과 함께 안면신경 손상) 그리고 귀나 침샘의 종양(안면신경 압박)이나 염증(중이염 합병증)도 안면마비와 관련이 있다. 조양선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안면신경은 귀와 관련된 영역이며, 각 시기에 필요한 치료법이 명확하게 존재한다"고 말했다. 벨마비와 람세이헌트증후군에 의한 안면마비는 고농도 스테로이드 투여가 핵심 치료법이다. 심하지 않은 벨마비는 고농도 스테로이드 치료로 90% 완치된다. 귀 전문의 집단인 대한이과학회는 다른 치료법(침·항바이러스제·수술·물리치료·고농도 산소요법)은 효과가 없거나 있더라도 검증이 미흡하다고 설명한다.
'3일 내 스테로이드 투여' 치료가 핵심 고농도 스테로이드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타이밍이다. 고농도 스테로이드를 증상 발생 3일(72시간) 이내에 투여해야 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합병증에 시달릴 수 있다. 대표적인 합병증은 연합운동이다. 연합운동이란 얼굴 한 부위를 움직일 때 의도하지도 않은 다른 안면부 근육이 같이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식사할 때 눈이 감기거나 눈과 이마를 움직일 때 입이 저절로 움직인다. 더 심하면 안면신경에 변성이 진행되고 결국 영구적인 안면장애로 남는다. 귀 주변의 질환(만성 중이염·청신경 종양·안면 신경초종·이하선 종양 등)에 의한 안면마비는 평소 아무런 증상이 없다가 갑자기 또는 서서히 나타난다. 자칫 벨마비로 오인해 부적절한 치료를 받는 경우가 흔하므로 안면마비 초기에 귀 전문의로부터 정확한 원인 질환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종대 순천향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2000년 연구에서 고농도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벨마비 환자의 88%가 완치된 결과가 나왔다. 2002년 연구에서는 벨마비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했을 때 71%가 회복됐다. 즉 벨마비 초기에 고농도 스테로이드로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안면마비 증상이 생긴 후 72시간 이내에 치료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한방 치료나 마사지를 받으면서 이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43%나 된다"고 지적했다. 만약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거나 치료받았는데도 잘 회복되지 않았다면 안면 재활치료가 필요하다. 안면 재활치료는 오그라든 안면 근육을 완화하고 연합운동(눈과 입이 같이 움직임)을 풀어준다. 안면신경의 손상이 심해 안면 재활치료로도 호전이 안 될 경우에는 수술(안면 재건술)을 고려할 수 있다. 여승근 경희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안면마비 원인의 절반을 차지하는 벨마비는 치료하면 80~90% 완치된다. 나머지 절반의 원인은 귀 주변의 대상포진, 감염, 외상, 종양 등이다. 람세이헌트증후군도 치료하면 3명 중 2명은 완치된다. 주로 소아에서 발생하는 중이염도 심하면 안면마비로 이어지는데, 초기에 수술(감압술)로 치료한다. 교통사고나 낙상 등 외상에 의한 안면마비 가운데 귀 주변 머리뼈(측두골) 골절이 있으면 6~7%는 완전 마비가 오므로 즉시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명은 불치병이 아니다 2022년 8월 세계적인 학술지(JAMA 신경학)에 따르면 전 세계 성인 중 14.4% 이상이 이명을 경험한다. 국내 이명 유병률은 약 20%다. 이명은 외부의 소리 자극이 없는데도 소리가 들린다고 느끼는 상태다. 이명은 우울감과 불안감을 유발하고 수면을 방해하는 등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그러나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명은 불치병이라고 여겼다. 2000년대 이후 이명 치료에 대한 연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해 이명은 완치되는 증상으로 인식이 전환됐다. 이명 증상을 늘 느낀다면 병원 치료가 필요하다. 이명이 있으나 느끼지 못하는 사람 또는 적응돼 불편하지 않은 사람은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 물론 원인 질환을 찾아 치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명은 유형별로 치료 방법이 다르다. 타자기 이명(드르륵 소리)은 청각신경이 주변 혈관과 접촉하면서 타자기 소리나 팝콘 튀기는 소리를 느끼는 증상이다. 신경의 흥분성을 낮추는 약물로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근경련성 이명(딱딱 소리)은 입 주변 또는 귓속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수축할 때 발생한다. 행동치료, 약물치료, 보톡스 주입, 수술 등으로 경련이 발생한 근육을 치료하면 완치된다. 박동성 이명(맥박 소리)은 귀 주변 혈관이나 머릿속 혈관에 구조적 이상이 생긴 경우 나타난다. 또 환자 전신에 변화(빈혈·갑상선기능항진증 등)가 있을 때도 발생한다. 이를 약물이나 수술로 치료하면 완치할 수 있다. 송재진 분당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대부분의 이명은 일정 수준의 난청을 동반한다. 난청의 원인을 파악해 보청기가 필요한지 수술이 필요한지를 가려야 한다. 따라서 이비인후과 전문의의 진단이 필수다. 침이나 뜸 등 과학적 근거가 없는 방법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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