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02.月. 비다, 비란 말이다
07월01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2.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세계 최대의 다우지역多雨地域으로 손꼽히는 인도 메갈라야주州의 체라푼지 마을은 1972년 그 유명한 아삼주州에서 분리되었는데, 연강수량 12,345mm 기록할 만큼 비가 많이 오는 곳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연강수량의 열 배 이상이 쏟아지는 비라 직접 그 비를 맞아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궁금하기도 합니다만 체라푼지 마을은 해발고도 1,390m의 실롱고원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니 일단 배수는 잘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본의 강수량 또한 만만치 않아 우리나라와는 많이 차이가 납니다. 1987년에 가보았던 큐우슈우九州의 기리시마霧島 국립공원에서 만난 비도 지명地名이 헛되지 않도록 몇날 며칠 동안 꿈쩍도 하지 않던 짙은 안개와 함께 줄기찼고, 2009년에 가보았던 돗토리현鳥取縣의 다이센大山 트레킹에서 만난 비도 대단했습니다. 특히 다이센大山의 비는 강풍과 함께 쏟아지는 빗방울이 커서 그랬든지 비로 얻어맞는 듯 목덜미와 어깨가 아팠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서울에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비가 본때 있게 두어 차례 쏟아졌습니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일기 변화는 잠시도 쉬지 않고 변화무쌍한 자연 현상의 순환을 향해 일정한 규칙을 따라가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요일도 일정한 규칙에 따라 순환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옵니다. 지난 일요일에 절에 가서 대비주 기도에 동참을 하고는 역시 고북에서는 참선參禪이나 기도祈禱야! 하는 느낌이 들어서 이번 일요일에도 일요법회에 참석을 하고 기도를 하려고 했습니다.. 했습니다.. 그런데 일요일에 갑자기 행사가 있게 되어 서울보살님이 차를 가지고 가게 되자 그렇다면 지난번처럼 나 홀로 대표가 되어 버스를 타고 절에 가야지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 늦은 밤부터 장맛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밤중에 하얗게 빛나는 장맛비를 쳐다보면서 일요일에 절에 가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허공에 걸려있는 하얗게 빛나는 장맛비’ 라고하면 떠오르는 선연鮮然한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82년이라고 생각하는 7월이었습니다. 아직 장마가 끝나지 않아 덥고 습기 찬 공기가 눅눅하게 사방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기예보에서 오늘 밤이나 내일 새벽부터 많은 장맛비가 또 내릴 터이니 축대 위나 낮은 지역에서는 수해를 방지하도록 조심해달라는 자상한 요청까지 해주었습니다. 그 일기예보를 듣자 그 전주前週 주말에 친구와 낚시 겸 물놀이를 다녀왔던 화순 근처의 어느 커다란 저수지가 생각났습니다. 주변의 숲이 울창하고 풍경이 매우 아름다워서 언젠가 또 와보자고 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연락을 했더니 마침 그 친구는 일이 있어서 함께 가지는 못할 듯하니 낚시도구와 캠핑 장비를 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장비를 주렁주렁 챙겨들고 혼자서 가보기로 했습니다. 이른 점심을 먹고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시외버스를 타고 화순 읍내에서 내린 뒤 다시 군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기억이 가리키는 장소에서 내려 다시 한참을 걸어들어 갔더니 그 저수지가 보였습니다. 집에서 출발했을 때는 햇살이 쨍쨍하던 날씨가 일기예보와 부합을 하려는지 점차 짙은 구름이 하늘에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저수지 지리에도 서툴고, 캠핑이나 낚시에도 서툰 나는 지난번 친구와 함께 왔던 그 자리를 찾아 먼저 텐트를 설치하고 낚싯대를 가지런히 저수지 방향으로 드리워놓자 배가 슬슬 고파왔습니다. 그래서 버너를 작동시키고 항고에 라면을 두 개 끓여서 저녁을 먹고 났더니 벌써 사방이 어둠해져왔습니다. 지난번 친구와 함께 왔을 때는 피서를 겸한 캠핑과 낚시를 즐기러온 사람들이 꽤 여러 군데 텐트나 천막을 치고 밤샘을 하면서 노는 것을 보았는데 오늘은 장맛비 예보 탓인지 주변을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야 어찌됐든 물과 숲과 비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고요와 한적마저 내 시간과 공간 안에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친 그릇과 항고를 씻어 배낭에 넣어두고 이제부터 낚시를 한번 해볼까하며 낚싯대 앞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아참, 주변이 어두워져오니 카바이트 전등인 칸델라를 켜야 했습니다. 깡통처럼 생긴 통에 카바이트 덩어리를 넣고 물을 부어주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기체가 발생하는데 여기에 불을 붙이면 불꽃이 일어나 밝게 빛납니다. 이런저런 준비가 되면 통에 반사경이 달린 뚜껑을 닫고 난 뒤 불을 붙여 불빛이 앞쪽으로 향하게 해서 비추면 생각보다 밝기도 좋을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어서 카바이트 칸델라는 밤낚시의 필수품이었습니다. 폴대를 땅에 박고 폴대에 우산대를 묶어 파라솔처럼 우산을 펼쳐놓은 뒤 칸델라 설치까지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한밤의 침묵沈默과 적요寂寥를 즐기면서 이렇게 공기가 무거울 때 잉어나 대짜가 올라온다고 하던 어깨너머 말들을 상기하면서 수면위로 밝게 빛나는 찌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약속이나 한 듯이 그 시각부터 먼 하늘의 낮게 우르렁거리는 뇌성雷聲소리와 함께 굵직한 빗방울이 저수지 수면위로 툭.. 툭.. 투둑.. 투두둑.. 떨어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이제 세상은 완전히 무겁도록 어두워져 칸델라 불빛이 비추는 각도안의 수면에 수많은 파열들이 생겨나면서 냄비 안에서 끓고 있는 미음처럼 저수지 표면이 후드드.. 후드드.. 터트려지고 있었습니다. ’허공에 걸려있는 하얗게 빛나는 장맛비‘는 이윽고 하늘에 늘어뜨린 베일처럼 주위사방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마치 하얀 베일로 둘러싸놓은 거대한 천막 안에 내가 들어앉아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스와아아하~ 스와아아하~ 하는 빗소리와 사방을 감싼 채 하얗게 빛나는 베일과 팥죽 끓듯이 소란을 일으키는 저수지 수면의 들끓음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나를 저수지너머 자욱한 회색과 먹구름의 나라로 이끌어주었습니다. 그렇게 두어 시간 쏟아지던 장맛비가 잠시 소강상태를 이루다 갑자기 먹구름들이 이리저리 흩어지더니 둥근 달이 밤하늘 한가운데 두렷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달빛 아래 빛나던 고요한 세상은 어쩌면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짐승 같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이제 환상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밤을 새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온몸이 젖어있어서 옷을 갈아입으려고 텐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배낭을 열어 꺼낸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이내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잠시 누웠다가 다시 비가 주춤해지는 사이에 이번에는 노란 비옷까지 위에 걸친 채 낚싯대 앞으로 가서 앉았습니다. 아무리 초보자라고해도 이런 장맛비 속에서 낚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애당초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비와 빗줄기와 빗소리를 듣고 즐길 뿐이었습니다. 새벽에 한 번 더 라면을 끓여먹고 수면위로 희부연 기운이 솟아날 때까지 낚싯대 앞에 움츠리고 앉아서 흔적 한 올 남기지 않는 부연 달빛 같은 빗줄기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가 겪어보았던 최고의 우중풍경雨中風景이었고, 최상의 비 구경이었을 것입니다. 새벽부터는 저수지 수면위로 물안개가 자욱하게 솟아나와 저수지 가장자리와 주변의 숲 어름까지 긴 파도처럼 밀물져 들어왔습니다. 하얀 장맛비와 더 하얀 안개의 세상에는 나밖에는 없는 듯했습니다.
장맛비가 기력이 소진한 듯 잠시 멈춰선 사이에 구름 틈새로 해가 얼굴을 내밀 듯 말 듯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텐트와 배낭을 정리하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무릎과 어깨가 뿌뜨뜨 경직되어있는 탓인지 내가 밤새 고장 난 로봇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엿샤.. 엿샤.. 힘을 내가면서 체조를 하고 몸을 여기저기 주물러가면서 풀어주었습니다. 다시 장맛비가 쏟아지기 전에 장비와 짐 정리를 마치고 우중풍경雨中風景 속에서 밖으로 나가야했습니다. 어제 오후 풍경으로 들어올 때도 혼자였던 것처럼 배낭을 어깨에 메고 풍경을 헤치면서 나갈 때도 혼자였습니다. 다시 힘을 응축凝縮시킨 장맛비가 호우豪雨로 쏟아지는 이른 일요일 아침에 숲이나 들판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푸르고 드센 잡초가 무성하고 짱돌이 여기저기 튀어나와 거칠어지고 허름한 도로가에 서서 한 시간여를 기다려 군내버스를 타고 화순 읍내로 나가 터미널을 기웃거리다가 시외버스를 시간 맞춰 타고는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나고 보니 시외버스터미널에 와있었습니다. 손으로 두 눈을 부비면서 약간 머쓱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배낭과 짐을 챙겨들고 시외버스터미널을 나와 집을 향해 일부러 천천히 걸어보았습니다. 온몸 마디마디의 뼈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서로 친밀감을 표시했습니다. 그렇지만 걸을수록 조금씩 조금씩 몸이 풀어졌습니다. 집에 돌아와 양치질만 하고는 그대로 다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창 너머로 비의 서정抒情을 구경하는 것과 빗속에 몸을 담그고 풍경風景이 되는 것은 조금 다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풍경風景이 되었던 기억이라면 힘써 노력하는 기억記憶이었고, 풍경風景 안으로의 추억이라면 몸소 만들어낸 추억追憶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