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자신의 단점이나 실책은 잘 못 보면서
남의 단점이나 실책은 쉽게 알아채는 경향이 있다고들 이야기한다.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더러 ‘네 눈의 티를 빼내 주겠다.’ 하겠느냐?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꺼낼 수 있다. (루가의
복음서 6:42, 공동번역)
그리고 인간이 자연 선택에 의해 그런 식으로
설계되었다는 그럴 듯한 설명도 있다.
우정 시장이나 짝짓기 시장에서 장점은 많은
반면 단점은 적은 사람이 인기가 있다. 이 때 약간의 속임수가 통할 때도 있다. 자신의 장점은 널리 알리고 단점은 숨기면 자신의 인기가 높아질 수 있다. 또한
경쟁자의 단점은 널리 알리고 장점은 널리 알려지지 않게 한다면 경쟁자의 인기가 떨어질 수 있다. 경쟁자의
인기가 떨어지면 상대적으로 나의 인기가 올라간다.
만약 자신의 단점은 잘 못보고 남의 단점을
잘 보도록 설계되었다면 위에서 말한 식으로 정보를 왜곡하여 자신의 인기를 올릴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그런 식으로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얼핏 상당히 그럴 듯해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단점과 실책을 잘 못 보는
것이 도움만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단점을 잘 모른다면 단점을 고치기 힘들다. 단점을 고치기 힘들다면 더 매력 있는 사람이 되기 힘들다.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매력 있는 사람으로 통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진짜로 매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실책을 잘 알아채지 못한다면
똑 같은 실책을 범할 가능성이 크다. 때로는 그런 실책이 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은폐를 위해서도 자신의 단점과 실책을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무엇이 단점이고 실책인지 알아야 더 잘 은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일반적으로 자신의 단점이나 실책을
잘 못 보도록 설계되었을 것 같지는 않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그것은 정말로 바보 같은 설계다.
아마 인간은 자신의 단점이나 실책을 잘
알아채도록 설계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를 실책을 줄이고 단점을 은폐하는 데 사용하도록 설계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보와 티끌”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인정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단점이나 실책에 대한 정보를
이용하는 방식 또한 정교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의 단점이나 실책에 대한 정보를 행동 조절
모듈에서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반면 광고 모듈에서 그런 정보를 차단하도록 인간이 설계된 것 같다.
어떤 실책을 범했다고 하자. 인간은 그 실책 경험에 대한 정보를 잘 저장해 둔다. 그리고 똑
같은 일을 하려고 할 때 다시는 실책을 범하지 않도록 그 정보를 이용한다. 하지만 남들과 이야기할 때에는
그 정보에 의식적으로 접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무의식적으로 그 실책에 대한 정보를 이용해서
남들이 그 실책을 눈치챌 수 없도록 만들기도 할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실책에 대한 기억을 “다시는
실책을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이용하는지를 관찰하기는 매우 힘들다. 반면 인간이 남들
앞에서 떠들어대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적으로 깊이 파고들지 않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잘 보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단점이나 실책에 대한 정보를
어떤 식으로 파악해서 기억하고 이용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인간이 남들 앞에서 떠들어대는 것은 피상적으로 관찰하는 것을 넘어서는 연구가 필요하다.
아래 글도 읽어 보시오.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 – 자기상의
왜곡」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153
이덕하
2012-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