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임도"의 뜻을 한 번 생각해 보자
임도(林道) - 숲 속의 길. 임업(林業)을 위해 쓰이는 길. 임업경영과 산림을 보호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정한 구조와 규격을 갖추고 산림내 또는 산림에 연결하여 시설하는 차도와 그 부속 시설. “산 속에서 득도(得道)함”이 임도라고 우기는 일부의 세력도 있다.
더러는 임도의 부정적인 면을 지적하기도 한다. 임도가 자연을 해치고 경관을 동강내며 산사태 등 자연재해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땅 위에는 고속도로, 국도, 우마차로, 농로 등 다양한 길이 있고 공중에는 비행로, 물에서도 뱃길이 있는 것처럼 산 속에 산길이 있는 현상은 너무 당연하다. 즉 사람이 움직이는 모든 공간에는 길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임도는 각종 산림작업과 생산 활동의 근거가 되며 산림 혹은 주변 토지에서 생산된 물류를 신속하게 유통시키고, 사람들의 왕래와 여가활동을 편리하게 해준다. 산불이 났을 경우 임도는 방화대 역할을 하여 산불의 확산을 막아주기도 한다. 최근에는 산림 휴식공간과 산림레포츠로의 기능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임도에서 울트라마라톤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발견이었다! 나는 양양설악국제울트라마라톤에 참가를 신청하고 손꼽아 대회일을 기다리면서 다음과 같이 유치환의 시구절을 표절하기도 했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깃발)
아아 누구던가
힘들고 멀더라도 밤새 달리기를 마다 않는 소망을
맨처음 임도에 올려놓을 음모를 꾸민 그는 (표절)
아아, 그러나 이번에 다녀온 양양 임도는 이러한 내 임도에 관한 소박한 정의를 무너뜨렸다. 그것은 임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해병대에서나 있을 법한 서바이벌 격투장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양양울트라마라톤에 출사표를 던진 것으로 보통인간의 대열에서 약간 비껴난 비보통인들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이, 아니면 여기에 모든 것이 걸려있는 것처럼 물웅덩이와 팥죽같은 진창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나는 부끄러웠다.
내가 이들과 함께 공유하려고 했던 산림과 숲길은 이러한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어둠이 짙게 내린 고요한 숲. 감히 숲에 들어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숲의 속살. 달이 어두운 만큼 더 빛나는 별들. 물소리, 바람소리. 오늘을 작정하고 모인 울트라 동지들의 거친 호흡소리. 난데없는 발자국 소리에 놀라 잠이 깨어 푸드득거리는 새소리. 이런 것들을 느끼고 싶었고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난장판이라니!
임도는 임도다와야 한다. 이런 난장판의 빌미를 제공한 임도는 반성하라 반성하라
임도는 턱없이 낮은 비용으로 건설되기 때문에 비가 조금만 와도 이렇게 엉망이 됩니다. 나름대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만 여러 조건들이 너무 불리합니다.... 이런 변명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동부지방산림관리청을 비롯한 전국의 산림공무원, 임업인들을 대신하여 임도답지 못한 임도로 인해 곤란을 겪게 한 점에 대해 사과를 드린다. 레옹 니가 왜? 하고 반문할 것 같아 덧붙인다. 나도 대한민국 산림공무원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전체 코스 중 80%가 임도로 되어있다는 양양울트라에 내가 굳이 참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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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 그쳤고 어둠도 어느덧 걷혔다. 여느 대회 같으면 아침 태양이 후미 주자들을 괴롭힐 시간이지만 흐린 하늘이 오히려 고맙다.
80km 표지판을 보고 반사적으로 시간을 확인하였다. 아침 8시 20분. 남은 시간 3시간 40분, 남은 거리 20km..... 보통 때 같으면 충분할 시간이지만 이번은 아무래도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75km 지점부터 여기까지 꾸준히 움직인다고 했는데도 5km에 46분이 걸렸다.
이제 다리가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오른쪽 다리. 출발 때부터 약간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이렇게 물고 늘어질 줄은 몰랐다. 우리 집 아이들도 언제부터 내 말을 잘 듣지 아니하더니 이제 내 몸에 달려있는 손발마저 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한다. “움직여”라고 나는 지시하지만 두 어 발짝 나가다 말고 더 진행하기를 거부한다. 오히려 두 발은 CPU라고 할 수 있는 내 머리에 거꾸로 침투하여 잠시 동안에 내가 달리기를 그만 두어야 할 이유를 200가지쯤 만들어 낸다. 저항이 거세다. 알았다. 자식 이기는 부모 있더냐, 그래 니가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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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다리가 깁스를 한 것처럼 뻣뻣하다. 출근해서도 걸음이 부자연스러워 가급적 움직이지 않고 자리만 지킨다. 부상은 아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괜찮아질 것이다. 이 참에 김진섭씨의 “병에 대하여” 쓴 글을 회상한다. “병”이란 말 대신에 “몸살”이라는 단어를 바꾸어 놓고 내 앞으로의 마라톤 향발을 진단해 본다.
..... (전략)
병은 실로 한 심방자와도 같으니, 그는 대체 나로부터 무엇을 요구하려는 것일까? 또 병은 한 여행과도 같으니 대체 나는 어디로 향발하여야 될 것일까? 또 병은 무엇을 경고하려는 한 친구와도 같으니 그는 말하는 것이다. '주의를 해야 되네. 이러한 곳에 자네의 결함이 있는 것이니 잘 좀 생각하고 반성해야만 된단 말일세.' 라고 우정 찾아와서 병우에게 이 같은 충고를 하며 또 여행의 길로 나서게 하는 한 친구의 정의를 우리는 물리쳐야 될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그의 심방을 진심으로 감사하여야 될 것이니, 우리는 다만 여장을 준비하고 조용히 길을 떠나기만 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지가 어디며 거리가 어느 정도이며, 또 방향이 어느 쪽인가를 모르는 아득한 꿈길의 출발임은 두말할 것이 없으니, 우리는 알지 못하는 인도자의 뒤만 따를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다.
사람은 병이 무엇인가를 안다. 그리하여 이 병에 대한 인식, 그 속에 실로 건강시에는 예상하지 못하였던 비극적 생존은 누워 있다. 병이 침입자의 인상을 주며 병자를 문득 습격할 때 모든 근친자의 동정이 또한 무력한 것이니 병실의 문이 닫쳐지는 순간 병자의 고독과 적막을 위무할 방법이라고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 고립적이요, 독자적인 영원한 격투와 고민 속에서 그가 어렴풋이 보는 것은 이 곳에 두 방문자 있음이니, 하나는 본능이란 자이요, 다른 하나는 정신이란 자이다. 이 순간에 무엇을 하자고 본능과 정신, 이 양자는 문득 각성하여 나를 심방한 것일까? 본능과 정신, 이 양자는 말하자면 병자에 대하여 의사 이상의 역할을 하는 자이니, 그들은 상호 제휴하여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에게 중대한 발언을 하여야 되는 것이요, 병자의 치유를 위하여 일치 협력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본능은 육체를 치유하여야만 되는 것이요, 정신은 영혼을 병으로부터 구출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참된 건강이란 진실로 육체적 건강을 말하는 동시에 영혼도 역시 건강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후략)
첫댓글 글 내용이 상당히 낭만적이네....
그말은? 몸은 파김치 마음은 정원을 거니는,,,
레옹아 고생했다. 주최측에서 대회를 위해서 길을 잘 닦아 놓았던 것이 화를 불렀는가 보다. 언덕에서는 미끄러저 뒤로 밀리고 내리막에서는 발을 어디에다 놓아야 할지 망설여 지고 - 진짜 서바이벌의 진수가 아니겠니. 몸조리 잘해라
오잉!!!동시에 오릴뻔 했네....몸 괜찮아?
작년 임도가 너무 험악하고 돌덤이가 너무 많고 푹푹 페인 곳이 많아 일주일 전에 흙으로 작업을 했던게 비가내리니오히려 난장판이 되어 뛰는 주자들이 고생 많았었지 옹아 울트라 뛰는곳이면 조용히 나타나는 너가 대단해 몸 잘 추스리길.....
꽃님아, 오랫만이다. 잘있지?
리치도 맹 훈련 한다는 소식 들었어 훈련의 결실이 있길 빈다
누굴까? 참 매력적인 글이네.다음이란 단어도 있잖니?
멋진 표현으로 멋진 글을 쓸만큼 핸섬보이더라 ... 깜장아~ 이제는~ 니 이름만 봐도 웃음이 나온다,.
후기 읽는 재미를 가슴속 듬뿍 안겨주고...고생한 몸과 마음 쾌히 추스리시게...^*^
'달이 어두운만큼 더 빛나는 별들, 감히 숲에 들어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숲의 속살.....' 참으로 아름다운 한편의 시가 되어 다가오네. 잘읽었다. 맘의 여유가 느껴진다.
고생 많았구나 울트라함 해볼라 했드만 치워야겠다..
모두 다 힘들었다고 하던데.... 고생 많았다.
이렇게 멋있는 글을 쓰다니~~ 빨리 회복하길......
준수한 모습만큼이나 멋지게 글쓰는구나. 만나서 반가웠다. 나두 숲에 관심이 많다.
울트라 후기 말고 다른 글들도 볼 수 있음 좋겠다.
좋은글 잘 읽었다. 아마 임도의 정의는 자네가 생각했던 그런 모습이어야 한다는데 나역시 공감하는부분이다.. 그런데 현실ㅇ ㅣ좀 아쉽지...^^ 고생했어... 뒷풀ㅇ ㅣ함께 하려했는데... 연락이 안되더라.. 몸 조리 잘 하길..
후기가 참말로 울트라급인뎅... 아깝다. 이담에 나도 한번 양양 임도 산책해 볼꺼나? 몸조리 잘하고 다음을 기약해라.
에궁 거의 다와서 포기했구나. 푹쉬고 빨리 회복해라. 담에는 뒤풀이에서도 함보자
몸 고생에 마음 고생까지 두 배로 했구나. 수고했다.
일보 전진을 위해 이보 후퇴 했다는 마음으로 잘 선택했다.모든 마라톤 시합 이란게 오늘만 하구 때려 치우는게 아니기 때문에 다음 대회땐 발전되어 가는 네 모습을 기대 하여 본다.아즉 본적없다만 래옹 친구 힘내고 빠른 회복 빈다.
레옹 만나서 반가웠고 이렇게 멋진 후기만큼 자연을 보는 너의 탁트인 가슴이 참으로 부럽다 몸조리 잘하고 다음에 또 주로 에서 즐겁게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