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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바동가(Covadonga)
피코스 데 에우로파의 포테스(Potes)마을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꼬바동가가 위치하고 있다.
꼬바동가의 어원은 라틴어의 Cova Dominica에서 온 단어로 "성모님의 동굴(Cavern of the Lady)"의 의미라고 한다.
꼬바동가는 피코스 데 에우로파 국립공원에 속하는 지역으로서 스페인 역사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
-꼬바동가 가는 길-
**꼬바동가 가는 길은 꼬르디에라(Cordillera) 산맥으로 깊은 계곡과 첩첩 산중이다.
-점심을 들던 길가 식당(라 판디에야 : La pandiella) -
** 큰길 건너 단독주택 담에 붙어있는 문패와 이 식당 이름이 같아 마을 이름이 '판디에야' 인것 같다.
-꼬바동가 계곡의 종-
**꼬바동가 계곡 마루 바로 밑, 절벽에 낡은 종 하나가 있다. 보초가 근무할 수 있는 난간까지
만들어져 있고 문양도 없는 종의 모양으로 보아 조기 경보 신호용 종이었던것 같다.
이 지역이 난공 불락의 애로지형으로 전략적 요충지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성모 마리아 동굴 입구-
** 입구 왼편에는 1989년 8월 20~21일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을 방문하였다는 팻말과
입장시에 정숙해 달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 711년 무슬림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상륙하여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스페인 군대를 격파하고
이베리아 반도를 신속하게 점령하였는데, 패퇴한 스페인 군대는 북부 산악지대로 피신할 수 밖에
없었다. 718년, 이곳에 은신한 귀족 중에 펠라요(Pelayo)라는 이름의 지도자를
선출하여 9세기 동안 아랍 침공군에 맞서 투쟁을 벌이게 된다.
-촟불 봉헌-
** 722년 북아프리카의 아랍 수장은 이베리아 반도의 저항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군대를 보내 펠라요의 저항군을
분쇄하도록 지시하였다. 당시 기독교 병사들은 꼬바동가로 불리는 이 지역 산악 동굴에 주둔하고 있었다.
-수평 동굴 입구-
** 절벽과 평행하게 뚫린 동굴 중간에 직각의 수평 동굴의 입구가 계곡 마루를 감제 하고 있다.
이곳에 기독교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었다면 이수평 동굴은 방어와 접근하는 적을 공격 하기
위하여 인공적으로 굴착한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입구에는 세개의 십자가가 서있다.
-동굴 막장에 있는 작은 교회와 제대-
** 순례자들이 의자에 앉아 강론을 듣고 있다. 제대위에는 작은 성모상이 안치되어 있다.
왼편은 계곡 쪽으로 개방되어 있고 내려 갈 수 있는 계단이 설치 되어 있다.
- 동굴 막장 출구-
** 오른편의 계단으로 내려오면 절벽에 개방된 출입구가 올려다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 산악 동굴 지대로 피신한 펠라요는 동굴에서 감추어진 성모 마리아 상을 발견하였고
마리아 상 앞에서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를 바쳤다. 이 기도의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기독교도 병사들은
강력한 아랍 침공군을 격파하였으며 이 승리로 아랍의 북진은 멈추게 되고 피레네 산맥에 접한 북서쪽에
아스투리아 왕국이 독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굴 밑 천연 해자인 연못과 분수-
** 동굴 밑에는 바위에서 솟아 나는 물로 분수를 만들었고 고인물은 연못이 되어 있다.
동굴 밑에 있는 해자 구실을 하는 연못은 동굴 입구를 방어하기 위한 인공적인 구조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스페인은 아스투리아 왕국을 기반으로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수복하는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꼬바동가 대성당-
**대성당과 부속 건물들은 계곡 마루턱에 성벽과 같은 1층 석조건물 위에 건설 되었다.
무슬림과의 전투 이후에 지어진 건축물들이지만 요새의 역활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대성당과 부속건물-
-꼬바동가 전투의 지휘관 펠라요(Pelayo)-
** 이 동상은 바실리카 대성당 왼편에 서 있다.
**꼬바동가에서 이룩한 기독교도의 승리는 성모 마리아의 은총일찌는 모르겠지만 험준한 산악지형과
때마침 내린 폭우와 홍수는 저지대에 주둔하고 있던 이슬람 군대에게는 악몽이었을 것이고
경무장 기병의 기동과 포위 전술 위주의 이슬람 군대에게는 승산없는 전투였을 것이다.
여기서 이슬람 군대의 부사령관 슐레이만이 전사하고 많은 병력의 손실과 함께
퇴각하게 된다.
-대성당 내부-
**꼬바동가 전투에서 승리한 펠라요는 아스투리아의 왕으로 즉위하게 되고 가톨릭 왕 알퐁소 1세는
꼬바동가 성모님의 기적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수도원과 성당을 건축하도록 명한다.
최초의 소박한 성모 성당은 1901년 거대한 바실리카 성당으로 대체된다.
-바실리카 성모 성당 제대-
** 이 성당의 특이한 점은 제대 뒤에 세워 놓은 십자가의 그림자가
돔 천정에 드리우게 되도록 조명을 설치하였다는 것이다.
-산뜻한 유니폼으로 단장한 순례객들-
꼬바동가 호수(2 Lagos de Covadonga)
꼬바동가 호수는 바실리카 성모 성당에서 남쪽으로 약 30분정도 험준한 산길을 달려가야 한다.
두 개의 작은 산정 호수까지 대형 SUV차량이 택시투어(Taxi Tour)에 운용되고 있다.
--산정호수(Los Lagos)가는 길-
** 결론부터 말하자면 깊거나 거대한 화산 호수도 아니고 잦은 강우가 고인 작은 호수로 볼꺼리는
별로 없지만 가고 오는 풍경과 호수 주변으로 만들어 놓은 둘레길 하이킹을 위해 찾는 곳 같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구름이 가야할 길에 내려 앉아있어 주변 경관 구경도 하지 못했다..
-에르시나 호수(Lago La Ercina : 해발 1108 m )
**호수 주변 산 봉우리는 해발 1284 m 이다.
-안내 판-
** 둘레길 도로 망도(Red de Rutas de Senderismo)에는 두개의 호수와 둘레길이 표시되어 있다.
-에놀호수(Lago Enol : 1060 m )-
** 에놀 호수(지도의 왼편)에 도착하였을 때는 100 m 앞도 보이지 않다가 드디어 지척까지
보이지 않게 되어 서둘러 철수하였다. 무슬림의 군대가 패퇴한 이곳 기후 조건을 체험한 셈이다.
-편의 시설인 야전 테이불과 의자-
-편의점-
히혼(Gijon)
꼬바동가로부터 북쪽으로 180 km(1시간 30분)에 위치한 해안도시이다.
여행팀의 숙소로 들렸던 도시이다.
-히혼 시가지-
- 특이하게 생긴 전주의 가로등-
**그로테스크하게 보이는 나뭇가지 모양의 전주와 가지에 장착된 일체형 가로등이 특이하다.
일부 도롯가에만 설치되어 있다.
-벽화와 구조물이 있는 풍경-
아 꼬루냐(A Coru`na)
이베리아 반도 북쪽 해변의 가장 서쪽 끝에 위치한 항구 도시 아꼬루냐는 활기 넘치는 상업 중심지인 동시에
문화 중심지이며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시이기도 하다. 1588년 유명한 스페인의 무적 함대가 이곳에서
출항하였다. 이듬해 무적 함대를 격파한 영국의 드레이크가 이 도시를 점령하려 하였으나
"마리아 피타(Maria Pita)라는 여걸이 나타나 이를 저지한다. 시내 중심 광장에 그녀의
동상이 서 있다. 히혼으로 부터 서쪽으로 358 km 3시간 50분의 장거리 여행이다.
-아 꼬루냐(A Coru`na)가는길-
-어떤 축제를 즐기려는 많은 사람들이 부둣가에 몰려있다.
** 19~20세기 초에는 갈리시아의 가난한 주민들이 새로운 삶을 찾아 이곳에서
아메리카로 떠났다. 현재는 갈리시아의 주도로 부유한 도시가 되었다.
-헤라클레스의 탑(Torre de Hercules)-
** 아코루냐州 라코루냐의 중심에서 2.4 km 떨어진 반도에 위치한 로마 건축의 등대이다.
등대로 올라가는 경사로 앞에는 방패와 단검을 든 헤라클레스로 보이는 거대한 석상이 지키고 있다.
-여유있는 노점상(?)-
** 몇개의 작은 악세사리를 삼각대에 받쳐 놓고 책을 읽는 노점상(?) 주인은 아마도 여행자 일것이다.
-헤라클레스 탑-
**해발 120 m 의 언덕 위에 세워진 이 탑은 높이 59 m로 스페인에서 치피오나 등대(62m )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등대이다. 1788년 개축공사가 실시되었지만 AD 1세기에 로마인에 의해 건축되고 나서
약 1900년이 경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현역 등대로 이용되고 있는 전세계 유일의 등대이다.
-헤라클레스 탑의 전모-
** 2009년 6월 27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내부는 나선형 계단으로 올라가며
내부의 공간은 3층이며 모두 로마식의 건축 기술로 지어졌다. 맨 꼭대기의 등불 방
(lantern room)은 1804년에 지어졌다. 기단은 19세기에 증축되었고 지하실은
최초부터 건축된 고고학적 건축이며 후에 요새로 바뀌기도 했다.
-등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대서양 해변-
** 이곳을 지배하며 주민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거인 헤르욘(Geryon)에게 결투의 도전장을 던진 헤라클레스는
3일간의 싸움끝에 거인의 목을 베었으며 거인을 이 곳에 묻었다. 그의 삼촌은 그 자리에 등대를 짓기 시작했지만
완성한 것은 그의 조카였다. 그 후 헤라클레스는 등대 부근에 도시를 세우고 등대에는 꺼지지 않는 등불을
켜 놓고 원주민 처녀와 결혼하여 이곳을 떠났다 는 전설이 전해진다는 이야기가 홍보지에 실려있다.
-등대 아래 어떤 남자를 부르고 있는 여인-
-남쪽으로 보이는 만灣과 주변 풍경-
- 마리아 피타 광장(Plaza Maria Pita)-
** 광장 중앙에는 영국군의 침공을 저지한 여걸 마리아 피타(Maria Pita)의 동상이 서 있다.
-광장에 수 놓은 카페트-
** 풀과 꽃 그리고 채색된 가루로 꾸민 축제용 카페트 이다.
-유명하다는 문어 요리집-
** 문어 요리라는게 문어 다리 하나 가위로 썩뚝썩뚝 잘라서 삶은 감자와 버무려 내는, 특색 없는 맛이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인구 79,000명, 해발 260 m, 예수의 제자 성 야고보(Santiago)가 이곳에 묻힌것으로 믿어져,
이곳은 예루살렘, 로마와 더불어 중세 기독교의 3대 성지가 되었다. 성 유물을 친견하고
신앙심을 돈독케 하기 위하여 유럽 전역의 독실한 신자들이 산티아고 순례길로
몰려들었다. 야고보의 묘가있던 자리에는 웅장한 성당이 들어셨고 순례자들과
함께 막대한 자금이 몰려 들었고 그 덕분에 성당을 중심으로 웅장한
석조 도시가 건설되었다. 아 꼬루냐로부터 1시간 거리이다.
-문화의 도시(Cidade da Cultura) 가이아스(Gaias)-
** 산티아고를 둘러 싸고 있는 가이아스 산(Mount Gaias)의 한 언덕에 세워진
문화의 도시(Cidade da Cultura)는 갈리시아(Galicia)를 외부 세계에 알리고
혁신적인 문화 발전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두가지 색갈의 보도 블럭으로
포장되어 있는데 갈색의 보도는 성 야고보의 순례의 길을 뜻한다.
-초 현대적 감각의 건축물-
**미국의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이 설계한 이 문화도시는
시작으로 부터 현재 갈리시아의 아이콘으로 일어설 것이며 세계유산의 도시 산티아고와
성 야고보의 순례길과 소통함으로서 모든 관람객에게 전시회 연주회 포럼 워크 샆 존안자료
그리고 기업 정신과 문화 산업을 통하여 문화적 부(富)를 제공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옥외 전시물-
** 헌 책으로 만들어진 건물 높이 만한 거대한 구球형의 전시물이다.
- 도서관, 박물관, 자료실 기타 창조 문화 쎈터등 각종 시설을 수용한 건물들-
** 이 문화도시는 거대한 주차장을 포함해 수만 평방 미터의 대지위에 5개의 대형 건물이 들어서 있다.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가는 골목길-
**성 야고보는 갈리시아에서 전교한 후 팔레스타인에서 순교했고 이 후 그의 유해가 석관에 실려
이곳에 와 묻혔다. 그의 무덤은 814년 무렵 한 수도사가 "길잡이 별"을 따라가다 발견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라틴어로 "별의 땅 , Campo stellae"라는 뜻을 가진 캄포 스텔라 라는 지명도
이같은 사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골목 끝에 성당의 첨탑 일부가 보인다.
-산티아고 대성당-
**아스투리아 왕 알퐁소 2세가 이 신성한 유적에 성당을 세웠고
성지순례가 유럽에 보편화되기 시작한 11세기까지 수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대 성당은 도심 한 가운데에 이끼 덮힌 첨탑 및 조각상들과 함께 웅장한 위용으로 서 있다.
보수중인 대성당 전면은 가림막에 덮혀 있으나 가림막은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첨탑의 중층-
**대성당은 수세기 동안 조금씩 건축되어 가면서 로마네스크 양식과 바로크 양식, 고딕 양식의
아름다움을을 한데 간직한 건축물로 거듭났다.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전면은 원형 그대로 보존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입구 포르티코 데 글로리아를 보호하기 위하여 18세기에 새로 세운것이다.
-오부라도이로(Obradoiro)광장 풍경-
** 대성당 앞 광장의 이름이 오부라도이로(Obradoiro)이다.
-입구 위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광장 풍경-
** 광장에서 성당을 올려다 보는 관광객 중에는 여행팀의 멤버들이 섞여있고
가이드와 멤버 1명만 보이지 않는다. 모자를 쓴 사람은 90% 동양인이다.
-종착지 풍경-
-도전하는 젊은이-
** 이 청년은 파리에서 부터 3개월간 떨어진 신발을 테이프로 동여매 가며 도보로 이곳까지 왔다.
-내부장식-
-야곱 성인(산티아고: Santiago)의 은관(銀館)-
**야곱 성인의 관은 주 제단 뒤 철창으로 보호된 성소에 안치되어 있고 참배하는 순례자가 줄을서고 있다.
왼편 사진은 성소 앞쪽에서 보이는 부분으로 철창살이 "길잡이 별" 을 가려서 일부만 보인다.
성소 뒷쪽에서는 "길잡이 별"을 온전히 볼 수가 있다.
-내부장식-
-순례자들의 환호-
-대성당 광장에서 보는 석양-
** 때마침 짙은 구름이 뚫리고 푸른 하늘이 신비스럽게 열렸다.
-대성당 연회실(Hostal de dos reis Catolicos)-
**고위 성직자들이 묵으며 식사하던 성당 부속 호텔 (광장 북쪽)1층 연회실에서 여행팀은
만찬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사전에 인터넷 예약이 필요하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