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50이 넘었으니 아마 30년 전 쯤일 겁니다.
요즘 군의 사기도 그렇고 좀 이상하지만,
ROTC 10기로 소위로 임관해서 첫 부임지가 GOP라는 곳 즉 철책선 근무 소대장이 었구요.
제가 근무한 곳은 아마 백학, 사미천 부근이었던 것 같구요.
철책선 근무는 지금도 긴장을 해야겠지만 그 때는 훨씬 무시무시하고 힘들었지요.
그러나 외지고 위험한 만큼 소대장으로서 아주 재미도 있었지요.
소위라는 계급으로 장교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은 더 이상 없어요.
키큰 미군 병사들도 경례를 척척 붙이는 곳입니다.
그 중에 제가 백사를 잡은 이야기를 아니 백사를 아직도 못 보신 분을 위하여
그 귀한 것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소위 임관 첫 부임이 철책선 근무라 얼마나 겁을 먹고 긴장을 하였든지
신의 아들들을 부러워 하거나 신세한탄을 할 여유도 없었지요
6개월이 지나 다른 부대와 철책선 근무를 교대해주고
우리는 1년 정도 동안 철책선 근무기간 무디어진 전투기술을 정비하는
교육훈련에 열중했고,
그 가을 전방 날씨가
싸늘해진 어느 날 오후,
참나무 낙엽이 나딩구는 산에서 우리소대는 참호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며칠째 배낭을 지고 야외에서 야영을 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었지요.
가을 배추를 군 급식용 된장에 날것으로 먹으면 맛이 참 좋았지요.
그 날 오후 소대원과 같이 작업 중에
한 소대원이 뱀을 한 마리 잡아서
갖고 왔어요.
제가 뱀을 좋아하지도 않고
술에 담궈서 집에 갈때 갖고 가는 것도 아닌데
제가 특히 존경스러워서 갖고 온 것도 어니고
뱀을 보관할 용기가
소대장의 반합(항고 라고 불렀던 것 같네요)이 안성맞춤이라 생각한 이유이었던 거지요.
반합은 본디 야외에서 식사용기나 취사용.기구로 쓰이지만
소대장의 반합은 배낭에 항시 메달아 둔 채 식사용기로 쓰이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야외 취사를 할 때 전령이 배낭에서 반합을 풀었다, 다시 달았다 하기도 불편하고
하여튼 소대장님 반합에 이것 좀 보관 해 달라는 것이었어요.
나는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지
열심히 그리고 말없이 잘 근무하는 소대원들에게 해 줄 수있는 최소한의 요구를
거절할 만한 아무런 핑계가 없어
그렇게 하라 하고 배낭에 매달린 반합에 뱀을 넣는 것을 보고는 잊어버렸지요.
밤에는 배낭에 달린 모포를 풀어 잠을 자고
뱀이 든 반합을 베고 자기도 했지만 그 속에 뱀이 있다거나 뱀이 무섭거나 전혀 생각이 미치지 않았지요.
그 뱀이라는 게 그리 무섭게 생기지도 못하고
그 가을에 걸맞지 않게 꼭 금방 허물을 벗은 듯
척추뼈와 갈비뼈가 훤히 맑게, 어쩌면 멀겋게 속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신기하긴 하지만 별 관심을 가질만한 모양도 아니고,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병사들도 없었지요.
가을에 땅속에 들어갈 때에 꼭 허물을 벗은 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낮에는 진지작업과 밤에는 싸늘한 텐트 속에서의 작업 일정이 끝나고
부대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전령에게 뱀을 잡은 박 상병이 뱀을 달라 하였을 테고
반합을 열어 보니 며칠 동안 잊고 야외를 돌아다니는 동안
찬 항고 속에서 굶어 죽었을 테지요.
그래서 소각장에 갖다 버렸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이런데 관심이 없었고
이런 과정을 모르고 있었구요.
그리고 제가 첫 휴가를 가게 되었습니다.
고속도로와 고속버스가 막 개통되고 달리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동대문 옆에 동대문고속버스 터미널이 있었고
그 때 고속버스 한대에 3천만 원 정도 했어요.
제가 이 백사 때문에 지금도 기억합니다.
모 고속버스회사 소유주가 백사를 구할 수있다면
그 고속버스를 한대 준다는 이야기가 있었지요.
제가 서울로 휴가를 가는 방법이 그리 만만치 않았어요.
휴전선 부군의 백학이라는 곳에서 가까운 장현리에 있을 때니까 여기서 신산리 그리고 문산,
서울의 종로 3가.
지금도 그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을 겁니다.
종로 3가 시외버스 터미날이 있는 곳까지 오려면 검문도 4차례이상 당해야 하고
지금은 2시간이면 올 수있는 거리와 시간이지만
그 때는 비포장에다 연결 편이 쉽지 않아 8시간이상 걸리기도 했어요.
종로 3가에 내려 지하상가를 거쳐야 하는데 그 지하상가에는 많은 점포가 있었어요
그런데 저쪽 끝에서 "백사 요"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였어요.
그저 아무 생각없이 구경이나 해 볼까 하고 갔지요.
그 상가에는 인삼도 팔고 뱀을 술병에 넣어 진열한 것 등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몇 명인가 둘러서서 뱀 주인이 자랑하는 바로 그 뱀을 보고 있었지요.
저도 신기한 백사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미치고 팔짝 뛸- 일인지!
그 백사가 전에 나의 배낭 항고에 보관해 달라는 바로 그 뱀이 아니겠습니까
조끔 황당했고
한참 동안 나는 진정을 하고 난 후 정말이냐고 물었지요.
깨끗하게 소위 군복을 입은 장교가 정색을 하고 물으니
뱀 장사도 바싹 얼어서 긴장을 하고 대답합디다.
아니면 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서 이거나
그 놈의 백사라는 것이
바로 하얀 뱀이 아니라 멀겋게 생기고
바로 뼈가 멀겋게 보이는 그냥 금방 태어난 것 같이 생긴 뱀입디다.
바로 이게 고속버스 한대 값이 나가는 3,000만원 짜리 백사 라구요. 라는 주인의 이야기가
좀 멍했지요.
자, 휴가길이지만, 지금 어디로 가야하나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전화가 지금같이 편리했다면 전화를 했을지 모르겠네요, 근무부대로.
내 항고 속의 뱀 어떻게 했느냐고 소대원들에게 다구쳤을 지... 어떻게 행동했을 지 모르지만
일주일의 휴가를 재미없게 보내고 부대에 들어 가자마자 그 때 그 뱀의 행방을 알아 보았지요.
그리고 우리 소대원들은 무지, 백사를 못알아 뵌 죄때문에
요즘 돈 3억 원을 소각장에 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