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영화로 태어나 영화로 살아온 ‘60년 한국영화사’… 전 세대의 마음을 아울렀던 공감각적 보편성, 그 ‘만다라’적(曼多羅的) 삶 속으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재능을 한 점의 빛으로 모은 이를 가리켜 천재라 했다. 그래서일까? 아역시절 ‘천재소년’이라는 별칭을 가졌던 배우 안성기(63)의 눈동자에는 60년 한국영화사의 빛과 그림자가 오롯이 담겨 있다.
안성기는 ‘원조 국민배우’이자 한국영화사를 관통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지난 60년간 산업화와 민주화의 흐름을 거치며 80년대 <바람 불어 좋은 날> <만다라> <고래사냥> <겨울 나그네> <기쁜 우리 젊은 날>, 90년대 <하얀 전쟁> <인정사정 볼 것 없다>, 2000년대 <취화선> <부러진 화살> 등의 작품을 통해 시대와 호흡해왔다.
이국적인 외모에 가장 한국적 감성을 담은 그의 눈동자에는 뾰족이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대중으로 하여금 공감케 하는 힘이 있었다. 동심(童心)과 비장함의 공존은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고집스러운 아이 같은 지식인의 시선으로, 영화 <화장>에서는 위선과 선의 아슬아슬한 교차점으로 분화되기에 충분했다. 이를 두고 이명세 영화감독은 “‘비범한 평범’은 안성기를 위한 수식어”라고 평하기도 했다.
최근 그는 ‘영원한 현역’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으로 돌아왔다. 김훈 작가의 소설 <화장>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중년의 번민을 화장이란 단어가 갖는 이중성을 빌어 서사적으로 드러냈다. 산 사람의 얼굴을 꾸미는 ‘화장(化粧)’과 시체를 태워 삶의 종말을 상징하는 ‘화장(火葬)’의 교차점을 과연 그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죽어가는 아내와 새로운 여자 사이에서
극중에서 안성기(오상무 역)는 중병에 걸린 아내를 간병하는 헌신적인 남편이지만 남몰래 젊은 부하직원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시들어버린 아내의 육체와 하나가 될 때에도 젊은 그 여자의 싱싱한 피부와 고운 살결을 욕망한다. 삶으로 표방되는 젊은 여직원과 아내라는 이름의 죽음, 이렇듯 생사(生死)의 치열한 대치점에 놓인 오상무를 두고 그는 “생과 사는 반복된다. 때문에 삶의 순환을 표현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영화 <화장>에서 쉽지 않은 역할을 맡았더군요
“아주 어려웠어요. 촬영이 끝난 시간에도 가라앉은 분위기가 쭉 연결되는 느낌이었어요. 오죽하면 다음 부터는 코미디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했을 정도로.(웃음) 그동안 사람 좋은 느낌의 캐릭터를 많이 했었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맡은 인물은 심리적으로 아주 복잡해요. 죽어가는 아내를 간병하는데 부하 직원에 대한 새로운 사랑이 싹트죠. 사회적으로는 회사 임원으로서의 중책을 맡고 있고 신체적으로는 전립선비대증으로 고통받고 있어요. 자칫 잘못하면 심리의 선을 놓칠 수 있는 만큼 그걸 깨지지 않게 유지하느라 힘들었어요.”
소설 <화장>을 이미 예전에 읽었다고 들었어요.
“김훈 작가의 글이야 정말 수려하기 때문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다만 워낙 문학적 완성도가 높으니 영화화하기가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소설 <화장>의 작가 김훈은 영화 <화장> 제작발표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상무라는 인물은 세속적인 일상성에 찌든 자다. 그러면서도 젊고 아름다운 여자의 생명력을 목도하고 충동을 일으키는 미적 열망이 있다. 이 극단적인 양면을 배우 안성기 씨께서 연기해주셔야 하는데, ‘안성기 씨 큰일났구나’하는 생각이 든다.”(웃음)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 감정을 촬영장 밖에서도 이어가는 편인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촬영과 현실을 왔다갔다하면서 감정조절을 잘하는 편인데 이 영화에선 그게 힘들었어요.”
주인공을 어떻게 이해했나요?
“중년의 표상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런저런 악조건에서도… 그럼에도 생을 살아가는.”
아내는 죽어가는데 남편은 새로운 욕망을 꿈꿔요. 중년 부부가 이 영화를 보면 다투지 않을까요?(웃음)
“결국은 남편이 아내의 소중함을 뒤늦게 느끼잖아요. 여직원에 대한 욕망도 오직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거라… 그 정도는 용서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웃음)
일종의 남성 심리를 까발리는 게 아닐까요? 겉으로는 점잖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욕망하는?
“안 되는데. 그런 시선으로 보면 이상한 영화가 되는데.”(웃음)
투병 중인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 마음속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며 오열할 때 마음 아팠다는 관객이 많았어요.
“오상무는 아내와 젊은 여직원으로 표방되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있는 상황이에요. 여직원을 삶의 향기라 한다면 의도적으로 그 향을 찾으러 가는 게 아니라 잠시 그 향에 취하게 된 것. 그 정도가 아닌가 싶어요.”
천재소년, 다시 영화를 꿈꾸다
최근 인터넷에서 ‘안성기, 격정의 베드신’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고 바로 클릭을 해봤는데.(웃음)
“낚시에 걸렸군요.”(웃음)
이 영화에서 베드신이 주는 의미가 크다고 들었어요. 어떤 마음으로 연기하셨어요?
“거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그래서 어색할 수 있는 부부의 사랑행위에요. 남편은 발기촉진제를 먹고 둘 다 윗옷을 벗지 않아요. 여기서 윗옷을 그대로 걸친 건 이런 상황과 잘 맞았다고 생각해요. 다른 감정 없이 서로 합한다는 행위적 핵심을 표현했어야 하니까요. 하여튼 열심히 찍었어요.”(웃음)
오상무의 번민이 드러내고자 했던 건 욕망일까요?
“욕망보다는 아픔이겠지요. 아내에게 최선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눈에 들어오는 새 여자, 거기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한 중년 남성의 본성에 초점을 맞추면 말 그대로 욕망이 전부일 거예요. 하지만 그간 간병 과정에서 너무 힘든 나머지 피폐해졌던 소중한 감정들이 아내의 죽음 후 재발견되잖아요. 그제야 깨닫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가?’ 오상무의 행복은 힘들더라도 아내와 함께 살았던 삶에 있었다고 생각해요.”
상당히 어려 보이지만 벌써 연기경력만 60년이에요.(웃음) 아역 시절 별명이 ‘천재소년’이었어요?
“어렸을 때는 경력에서 제외해야 할 것 같아요. 시키는 대로 하고 어떻게 연기했는지도 모르겠고. ‘천재 소년’도 어릴 때의 일이지, 그 천재성을 이젠 어떻게든 보여줘야 하는데.”(웃음)
여전히 자신의 연기에 대해 고민을 하나요?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해요. 매사가 그렇지만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잖아요. 배우로서 선택이라 함은 감정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인데. 촬영하면서 매분 매초 감정의 교란이 일어나죠. 내가 제대로 선택한 건가 하는 끊임없는 고민.”
충무로에서 멜로물을 잘 안 찍는 배우로 유명한데요.
“아역배우 은퇴하고 70년도 후반 무렵 다시 영화를 시작했어요. 당시 시대적 상황은 어둡고 좋지 않았어요. 그런데 정작 영화는 문예, 반공물이 대부분이었죠. 시대와 호흡하지 않았다고 할까요? 배우가 공부 안 하는 사람으로 약간 무시받는 분위기이기도 했고요. 배우도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멜로물보다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사회적 영화에 주로 출연했어요. 마침 80년대에서 90년대 중반 민주화 전까지는 저항 정신을 담은 영화들이 많았어요.”
실제로 그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1981년), <꼬방동네 사람들>(1982년), <고래사냥>(1984년), <남부군>(1990년), <베를린리포트>(1991년), <태백산맥>(1994년) 등 리얼리즘을 띈 문제작들에 주로 출연했다. 이를 두고 일본작가 무라야마 도시오는 안성기의 행보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안성기는 언제나 연기를 통한 시대참여 정신을 잊지 않았다. 그가 스스로 선택한 작품 대부분이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연기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적은 없었나요?
“군 제대 후 대기업 입사를 하려다가 실패했어요. 내가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없었던 거라. 그런데 성인이 돼서 다시 배우를 시작하려니 막막했어요. 내가 할 수 있을까? 의문도 들고, 그러다 이장호 감독의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을 만났어요. 이 작품을 계기로 재도약 할 수 있었어요.”
국민배우의 고요하고 빈틈없는 일상(日常)
영화 <화장>의 오상무가 중년의 표상이라면 안성기는 올바름의 표상이라는 말이 늘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실제로 스크린 밖에서 이 국민배우의 삶은 고요하고 빈틈이 없다. 선후배의 경조사에 빠짐없이 나타나며 사소한 교통법규를 지키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사적인 취미생활을 살펴보면 사소한 빈틈이 발견되지 않을까? 애창곡은 조덕배의 <꿈에>, 취미는 당구란다. 그마저도 모범적인 플레이만 한다니 ‘그런’ 삶, 지루하진 않을까?
모범과 안성기는 한 묶음 같아요. 커피도 본인이 30년간 광고한 맥O만 마신다면서요.
“요즘은 아라비카OO도 마셔요.”(웃음)
무슨 재미로 사세요?
“연기하는 게 정말 즐거워요. 새로운 이야기가 끊임없이 펼쳐지잖아요. 그래서 늘 기대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전할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에요.”
경조사를 빠짐없이 챙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경조사는 삶의 일부에요. 회상과 추억의 시간이기도 하죠. 거기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면 다시 생과 사가 묘하게 연결되는 느낌을 받아요. 모든 게 결국은 삶의 순환인 거죠.”
철저한 자기관리로도 유명하세요. 특히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운동했다면서요? 복근도 있다던데.(웃음)
“복근이라면 복근인데 거의 녹아버린 초콜릿 같아요.(웃음) 어떤 역을 맡을지 모르기 때문에 평소 체력을 단련해 놓아야 해요. 그래서 운동하는 게 습관이 된 거지, 그게 특별히 절제라고 생각지는 않아요.”
영화 <화장>에서 오상무는 전립선비대증을 앓아 늘 종아리에 소변주머니를 차고 다닌다. 이 영화를 본 배우 강수연은 “극중에서 안성기가 소변주머니에서 소변을 빼려고 바지를 걷어 올릴 때 근육이 하도 단단해 보여서, 칼이라도 빼는 줄 알았다”고 우스갯 소리를 던졌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떻게 푸세요?
“스트레스를 담고 있으면 나만 손해에요. 그냥 물 흐르듯이 두면 돼요. 그러면 저절로 풀리는 편이에요.”
사실 감정이 저절로 풀리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잖아요 .
“재미없는 말로 들리겠지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좋게 생각해주면 되어요. 내 기분 편하자고 하는 건데 따지고 보면 어려울 것도 없어요.”
국민배우보다 영화배우 호칭이 더 좋아
혹시 주사 같은 건 없으세요? 도무지 허점을 찾아볼 수가 없어서요.
“미안해요. 주사도 없는 편인 것 같은데.(웃음) 좀 취하면 바로 자는 게 습관이에요. 술을 엄청 즐기진 않지만 술자리에서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표정을 바라보는 게 참 좋아요.”
삶의 곳곳에 모범, 절제와 같은 습관이 밴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렇게 보이나요? 음, 아마 종교의 영향도 있을 거예요. 천주교 신자다 보니 무의식적인 노력이 있지 않았을까요?”
배우로서 삶의 여러 단면에 대해 한번 즈음 고민했을것 같아요. 죽음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세요?
“죽음은 다시 말해 삶이기도 해요. 아름다운 삶이 아름다운 죽음으로 이어진다, 난 그렇게 생각해요. 죽을 때는 빈손으로 떠나죠. 때문에 살면서 사사로운 일에 집착을 말아야 하는데 생각보다 그게 쉽지 않아요. 욕심을 버리는 삶은 곧 아름다운 삶이자 죽음이 아닐까요?”
좋은 배우가 되려면 욕심이 많아야 할 거 같은데요?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게 배우는 오직 연기에만 욕심을 부려야 해요. 연기 외적인 것에는 욕심이 없어야 하고요. 인기나 명예를 좇다 보면 좋은 연기를 할 수가 없어요.”
젊음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요.
“젊음, 채워 나가야 할 시간이잖아요. 생각만 해도 가슴 뛰고 부러운 일이에요. 하지만 만일 마법의 램프가 생긴다 해도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아무리 무언가를 얇게 썰어도 반드시 양면이 존재하듯이 젊음도 그래요. 행복하지만 삶 안을 채워야 한다는 게 굉장히 힘든 일들이잖아요. 늦었더라도 현재의 행복에 집중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앞으로 언제까지 배우를 하고 싶은지요?
“물처럼 흘러가고 싶어요. 관객이 원할 때까지 열심히 하다가 더 이상 그분들의 부름이 없다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게 맞다고 봐요.”
국민배우라는 타이틀이 부담되지는 않으세요?
“예전에는 부담됐는데 지금은 익숙해져서.(웃음) 그래도 영화배우 안성기라고 불리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이제는 ‘국민배우’가 안성기 씨의 성(?) 같아요.
“하하.(웃음) 평생 영화배우만 했어요. 하면서 느낀게 ‘관객에게는 예우를 다하고 싶다.’ 스크린 밖에서의 모습은 비록 볼품없겠지만 그래도 영화에서 드러나는 매력을 일상생활에서도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그게 배우의 삶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국민배우의 정의는 무엇일까? 단순히 가장 유명한 배우를 일컫는 호칭일까? 일본작가 무라야마 도시오는 “국민배우는 상처받고 고된 삶 속에서 항상 자신들과 함께 있어준 배우에게 경의를 표하는 호칭”이라고 말했다.
요즘 새롭게 관심이 가는 분야는 없는지요?
“영화요.(웃음) 그냥 난 한결같은 것 같아요. 좋은 영화를 해서 관객들이 좋은 감동을 받는 것, 그 이상은 없는 것 같아요. 제 관심은 오로지 영화예요."
악역 반드시 할 필요는 없어
안성기는 영화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선배로 알려졌다. 영화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는 후배 배우들이 가장 일하고 싶은 동료이기도 하다. 영화 <화장>에서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내 역을 맡은 배우 김호정은 극중 삭발 장면을 두고 안성기에 대해 고마움을 나타냈다.
“안성기 선배가 촬영 내내 정말 배려를 많이 해줬다. 삭발 장면이 가장 힘들었는데 머리를 다 밀고 난 순간 안성기 선배가 내게 ‘이제 머리를 다 밀었으니 이 순간부터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순간이라 생각하면 된다’고 말해줬다. 그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요.
“돌아보면 분명 청춘인데 일은 안 풀리고 앞날이 막막할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손 놓고 있으면 시간낭비만 하고 꿈은 더 멀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언젠간 그 시간이 약이 될 거란 믿음을 갖고 배우로서 준비하고 있으면 세월이 반드시 보상해줄 거예요.”
영화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선배라고 들었어요. 평소 후배들을 어떻게 대하시나요?
“내 나이가 많긴 한가 봐요. 세월 참 빨라요. 어떤 현장을 가도 내 나이가 제일 많더라고요. 아, 임권택 감독님과 일할 때는 그래도 젊은 축에 속하네요.(웃음) 후배들과는 나이차와 관계없이 편하게 지내려고 노력해요. 이 이야긴 많이 했는데, 예전에 배우 이준기와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함께 일한 적 있어요. 그런데 글쎄 준기가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거예요. ‘내 앞에선 겁먹지 말고 떳떳이 피우라’고 했는데, 얘가 너무 편했는지 내 면전 앞에서 피우더라고.(웃음) 속으로는 잠깐 ‘이놈 봐라’ 하면서도 내심 기뻤어요.”
후배들이 안성기 씨에게 연기 외적으로도 바라는 게 많을 것 같아요.
“영화에 관한 건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해왔어요. 최근에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아서 단편 영화 지원하고, 아시아국제단편영화제에서도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어요. 굿다운로더 캠페인도 5년간 했었지요.”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품 선정 과정에서 서병수 부산시장의 개입 논란이 있어서요. 부집행위원장으로서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요?
“우선 부집행위원장은 타이틀에 불과해요. 영화제 기간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고 독려하는 것 정도죠. 부산국제영화제 역시 부산에서 열리고, 부산에서 지원을 많이 하기 때문에 부산이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는 거예요. 이 영화제의 사실상 의미는 ‘대한민국국제영화제’라고 생각해요. 부산시에서도 그것에 대한 배려를 해주면 좋겠어요. 영화 상영에 대한 판단은 국민이 해주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는데, 아끼는 작품이 있다면요?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이 기억에 남아요. 안 봤으면 꼭 보세요.”
관객은 어떤 작품을 원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영화가 단단하고 좋으면 대중이 외면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배우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나이가 들어도 새로울 수 있어요. 새로운 역할과 이야기에 흠뻑 빠질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60년간 안 해본 역할이 없는 것 같아요. 다음 작품에서 악역을 맡아보는 건 어떠세요?
“할리우드를 보면 나이 든 배우들이 사악한 역을 많이 하던데, 난 안 하고 싶어요. 그것보다는 감동, 즐거움을 주는 역할을 더 하고 싶어요. 한때 악역을 안 하면 연기에 제약이 있을 거라 고민한 적도 있지만 요즘엔 내려놓았어요. 악역을 반드시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어떤 꿈이 있나요?
“좋은 영화를 하는 게 꿈이에요. 환갑이 넘었는데 다른 일을 찾아볼 수도 없고.(웃음)”
“삶은 축복이에요.”
영화를 통해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삶은 축복이라는 것. 언제나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앞으로 무슨 역을 맡고 싶은지요?
“막연하지만 진짜 따뜻하면서 눈물 나도록 감동적인 영화를 찍고 싶어요.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순화되면서 감동을 받고. ‘아 삶이 참 축복이구나’ 하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영화.”
관객에게는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글쎄. 그런 생각은 잘 안 해봤어요. 왜냐하면 기억이라는 것이 그렇게 긴 게 아니잖아요. 한 세대가 지나면 잊히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그저 열심히 살고 싶어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영화를 통해서 좋은 시간, 행복한 시간을 느끼는 정도만 함께하고 가면 좋은 거지. 그 다음까지 기억해달라는 건 무리일 거 같아요.”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한 안성기는 지난 60년간 영화 안에서 살아왔다. 이제 진정한 황혼을 향해 달리는 열차에 올라선 그는 “나의 전부는 영화”라 말한다.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는 “나의 전부는 사랑”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가 아끼는 이 영화의 메시지처럼 황혼으로 접어든 60년 베테랑 국민배우에게 영화는 곧 사랑이자 축복임을 알 수 있었다.
글 김포그니 월간중앙 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
안성기는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 후 60년간 영화 안에서만 살아온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다. 안성기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좋은 영화를 하는 게 앞으로의 꿈”이라고 말했다.
안성기는 ‘원조 국민배우’이자 한국영화사를 관통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지난 60년간 산업화와 민주화의 흐름을 거치며 80년대 <바람 불어 좋은 날> <만다라> <고래사냥> <겨울 나그네> <기쁜 우리 젊은 날>, 90년대 <하얀 전쟁> <인정사정 볼 것 없다>, 2000년대 <취화선> <부러진 화살> 등의 작품을 통해 시대와 호흡해왔다.
이국적인 외모에 가장 한국적 감성을 담은 그의 눈동자에는 뾰족이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대중으로 하여금 공감케 하는 힘이 있었다. 동심(童心)과 비장함의 공존은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고집스러운 아이 같은 지식인의 시선으로, 영화 <화장>에서는 위선과 선의 아슬아슬한 교차점으로 분화되기에 충분했다. 이를 두고 이명세 영화감독은 “‘비범한 평범’은 안성기를 위한 수식어”라고 평하기도 했다.
최근 그는 ‘영원한 현역’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으로 돌아왔다. 김훈 작가의 소설 <화장>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중년의 번민을 화장이란 단어가 갖는 이중성을 빌어 서사적으로 드러냈다. 산 사람의 얼굴을 꾸미는 ‘화장(化粧)’과 시체를 태워 삶의 종말을 상징하는 ‘화장(火葬)’의 교차점을 과연 그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죽어가는 아내와 새로운 여자 사이에서
영화 <화장>의 한 장면. 주인공 오상무는 중병에 걸린 아내를 간병하는 헌신적인 남편이지만 남몰래 젊은 부하직원을 마음속에 품는다.
극중에서 안성기(오상무 역)는 중병에 걸린 아내를 간병하는 헌신적인 남편이지만 남몰래 젊은 부하직원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시들어버린 아내의 육체와 하나가 될 때에도 젊은 그 여자의 싱싱한 피부와 고운 살결을 욕망한다. 삶으로 표방되는 젊은 여직원과 아내라는 이름의 죽음, 이렇듯 생사(生死)의 치열한 대치점에 놓인 오상무를 두고 그는 “생과 사는 반복된다. 때문에 삶의 순환을 표현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영화 <화장>에서 쉽지 않은 역할을 맡았더군요
“아주 어려웠어요. 촬영이 끝난 시간에도 가라앉은 분위기가 쭉 연결되는 느낌이었어요. 오죽하면 다음 부터는 코미디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했을 정도로.(웃음) 그동안 사람 좋은 느낌의 캐릭터를 많이 했었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맡은 인물은 심리적으로 아주 복잡해요. 죽어가는 아내를 간병하는데 부하 직원에 대한 새로운 사랑이 싹트죠. 사회적으로는 회사 임원으로서의 중책을 맡고 있고 신체적으로는 전립선비대증으로 고통받고 있어요. 자칫 잘못하면 심리의 선을 놓칠 수 있는 만큼 그걸 깨지지 않게 유지하느라 힘들었어요.”
소설 <화장>을 이미 예전에 읽었다고 들었어요.
“김훈 작가의 글이야 정말 수려하기 때문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다만 워낙 문학적 완성도가 높으니 영화화하기가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소설 <화장>의 작가 김훈은 영화 <화장> 제작발표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상무라는 인물은 세속적인 일상성에 찌든 자다. 그러면서도 젊고 아름다운 여자의 생명력을 목도하고 충동을 일으키는 미적 열망이 있다. 이 극단적인 양면을 배우 안성기 씨께서 연기해주셔야 하는데, ‘안성기 씨 큰일났구나’하는 생각이 든다.”(웃음)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 감정을 촬영장 밖에서도 이어가는 편인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촬영과 현실을 왔다갔다하면서 감정조절을 잘하는 편인데 이 영화에선 그게 힘들었어요.”
주인공을 어떻게 이해했나요?
“중년의 표상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런저런 악조건에서도… 그럼에도 생을 살아가는.”
아내는 죽어가는데 남편은 새로운 욕망을 꿈꿔요. 중년 부부가 이 영화를 보면 다투지 않을까요?(웃음)
“결국은 남편이 아내의 소중함을 뒤늦게 느끼잖아요. 여직원에 대한 욕망도 오직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거라… 그 정도는 용서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웃음)
일종의 남성 심리를 까발리는 게 아닐까요? 겉으로는 점잖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욕망하는?
“안 되는데. 그런 시선으로 보면 이상한 영화가 되는데.”(웃음)
투병 중인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 마음속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며 오열할 때 마음 아팠다는 관객이 많았어요.
“오상무는 아내와 젊은 여직원으로 표방되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있는 상황이에요. 여직원을 삶의 향기라 한다면 의도적으로 그 향을 찾으러 가는 게 아니라 잠시 그 향에 취하게 된 것. 그 정도가 아닌가 싶어요.”
천재소년, 다시 영화를 꿈꾸다
대소변을 못 가리는 아내를 간병하는 오상무의 모습. 아내(김호정 분)는 여자로서 수치심과 남편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오열하고 만다.
최근 인터넷에서 ‘안성기, 격정의 베드신’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고 바로 클릭을 해봤는데.(웃음)
“낚시에 걸렸군요.”(웃음)
이 영화에서 베드신이 주는 의미가 크다고 들었어요. 어떤 마음으로 연기하셨어요?
“거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그래서 어색할 수 있는 부부의 사랑행위에요. 남편은 발기촉진제를 먹고 둘 다 윗옷을 벗지 않아요. 여기서 윗옷을 그대로 걸친 건 이런 상황과 잘 맞았다고 생각해요. 다른 감정 없이 서로 합한다는 행위적 핵심을 표현했어야 하니까요. 하여튼 열심히 찍었어요.”(웃음)
오상무의 번민이 드러내고자 했던 건 욕망일까요?
“욕망보다는 아픔이겠지요. 아내에게 최선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눈에 들어오는 새 여자, 거기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한 중년 남성의 본성에 초점을 맞추면 말 그대로 욕망이 전부일 거예요. 하지만 그간 간병 과정에서 너무 힘든 나머지 피폐해졌던 소중한 감정들이 아내의 죽음 후 재발견되잖아요. 그제야 깨닫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가?’ 오상무의 행복은 힘들더라도 아내와 함께 살았던 삶에 있었다고 생각해요.”
상당히 어려 보이지만 벌써 연기경력만 60년이에요.(웃음) 아역 시절 별명이 ‘천재소년’이었어요?
“어렸을 때는 경력에서 제외해야 할 것 같아요. 시키는 대로 하고 어떻게 연기했는지도 모르겠고. ‘천재 소년’도 어릴 때의 일이지, 그 천재성을 이젠 어떻게든 보여줘야 하는데.”(웃음)
여전히 자신의 연기에 대해 고민을 하나요?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해요. 매사가 그렇지만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잖아요. 배우로서 선택이라 함은 감정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인데. 촬영하면서 매분 매초 감정의 교란이 일어나죠. 내가 제대로 선택한 건가 하는 끊임없는 고민.”
충무로에서 멜로물을 잘 안 찍는 배우로 유명한데요.
“아역배우 은퇴하고 70년도 후반 무렵 다시 영화를 시작했어요. 당시 시대적 상황은 어둡고 좋지 않았어요. 그런데 정작 영화는 문예, 반공물이 대부분이었죠. 시대와 호흡하지 않았다고 할까요? 배우가 공부 안 하는 사람으로 약간 무시받는 분위기이기도 했고요. 배우도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멜로물보다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사회적 영화에 주로 출연했어요. 마침 80년대에서 90년대 중반 민주화 전까지는 저항 정신을 담은 영화들이 많았어요.”
실제로 그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1981년), <꼬방동네 사람들>(1982년), <고래사냥>(1984년), <남부군>(1990년), <베를린리포트>(1991년), <태백산맥>(1994년) 등 리얼리즘을 띈 문제작들에 주로 출연했다. 이를 두고 일본작가 무라야마 도시오는 안성기의 행보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안성기는 언제나 연기를 통한 시대참여 정신을 잊지 않았다. 그가 스스로 선택한 작품 대부분이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연기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적은 없었나요?
“군 제대 후 대기업 입사를 하려다가 실패했어요. 내가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없었던 거라. 그런데 성인이 돼서 다시 배우를 시작하려니 막막했어요. 내가 할 수 있을까? 의문도 들고, 그러다 이장호 감독의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을 만났어요. 이 작품을 계기로 재도약 할 수 있었어요.”
국민배우의 고요하고 빈틈없는 일상(日常)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의 한 장면. 한 여자를 향한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통해 삶의 진수(眞髓)를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안성기는 이 영화를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 중 하나로 꼽았다.
영화 <화장>의 오상무가 중년의 표상이라면 안성기는 올바름의 표상이라는 말이 늘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실제로 스크린 밖에서 이 국민배우의 삶은 고요하고 빈틈이 없다. 선후배의 경조사에 빠짐없이 나타나며 사소한 교통법규를 지키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사적인 취미생활을 살펴보면 사소한 빈틈이 발견되지 않을까? 애창곡은 조덕배의 <꿈에>, 취미는 당구란다. 그마저도 모범적인 플레이만 한다니 ‘그런’ 삶, 지루하진 않을까?
모범과 안성기는 한 묶음 같아요. 커피도 본인이 30년간 광고한 맥O만 마신다면서요.
“요즘은 아라비카OO도 마셔요.”(웃음)
무슨 재미로 사세요?
“연기하는 게 정말 즐거워요. 새로운 이야기가 끊임없이 펼쳐지잖아요. 그래서 늘 기대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전할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에요.”
경조사를 빠짐없이 챙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경조사는 삶의 일부에요. 회상과 추억의 시간이기도 하죠. 거기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면 다시 생과 사가 묘하게 연결되는 느낌을 받아요. 모든 게 결국은 삶의 순환인 거죠.”
철저한 자기관리로도 유명하세요. 특히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운동했다면서요? 복근도 있다던데.(웃음)
“복근이라면 복근인데 거의 녹아버린 초콜릿 같아요.(웃음) 어떤 역을 맡을지 모르기 때문에 평소 체력을 단련해 놓아야 해요. 그래서 운동하는 게 습관이 된 거지, 그게 특별히 절제라고 생각지는 않아요.”
영화 <화장>에서 오상무는 전립선비대증을 앓아 늘 종아리에 소변주머니를 차고 다닌다. 이 영화를 본 배우 강수연은 “극중에서 안성기가 소변주머니에서 소변을 빼려고 바지를 걷어 올릴 때 근육이 하도 단단해 보여서, 칼이라도 빼는 줄 알았다”고 우스갯 소리를 던졌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떻게 푸세요?
“스트레스를 담고 있으면 나만 손해에요. 그냥 물 흐르듯이 두면 돼요. 그러면 저절로 풀리는 편이에요.”
사실 감정이 저절로 풀리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잖아요 .
“재미없는 말로 들리겠지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좋게 생각해주면 되어요. 내 기분 편하자고 하는 건데 따지고 보면 어려울 것도 없어요.”
국민배우보다 영화배우 호칭이 더 좋아
영화 <화장>의 한 장면. 그는 이 작품에서 ‘중년의 표상’을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안성기는 “연기하면서 매분매초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혹시 주사 같은 건 없으세요? 도무지 허점을 찾아볼 수가 없어서요.
“미안해요. 주사도 없는 편인 것 같은데.(웃음) 좀 취하면 바로 자는 게 습관이에요. 술을 엄청 즐기진 않지만 술자리에서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표정을 바라보는 게 참 좋아요.”
삶의 곳곳에 모범, 절제와 같은 습관이 밴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렇게 보이나요? 음, 아마 종교의 영향도 있을 거예요. 천주교 신자다 보니 무의식적인 노력이 있지 않았을까요?”
배우로서 삶의 여러 단면에 대해 한번 즈음 고민했을것 같아요. 죽음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세요?
“죽음은 다시 말해 삶이기도 해요. 아름다운 삶이 아름다운 죽음으로 이어진다, 난 그렇게 생각해요. 죽을 때는 빈손으로 떠나죠. 때문에 살면서 사사로운 일에 집착을 말아야 하는데 생각보다 그게 쉽지 않아요. 욕심을 버리는 삶은 곧 아름다운 삶이자 죽음이 아닐까요?”
좋은 배우가 되려면 욕심이 많아야 할 거 같은데요?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게 배우는 오직 연기에만 욕심을 부려야 해요. 연기 외적인 것에는 욕심이 없어야 하고요. 인기나 명예를 좇다 보면 좋은 연기를 할 수가 없어요.”
젊음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요.
“젊음, 채워 나가야 할 시간이잖아요. 생각만 해도 가슴 뛰고 부러운 일이에요. 하지만 만일 마법의 램프가 생긴다 해도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아무리 무언가를 얇게 썰어도 반드시 양면이 존재하듯이 젊음도 그래요. 행복하지만 삶 안을 채워야 한다는 게 굉장히 힘든 일들이잖아요. 늦었더라도 현재의 행복에 집중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앞으로 언제까지 배우를 하고 싶은지요?
“물처럼 흘러가고 싶어요. 관객이 원할 때까지 열심히 하다가 더 이상 그분들의 부름이 없다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게 맞다고 봐요.”
국민배우라는 타이틀이 부담되지는 않으세요?
“예전에는 부담됐는데 지금은 익숙해져서.(웃음) 그래도 영화배우 안성기라고 불리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이제는 ‘국민배우’가 안성기 씨의 성(?) 같아요.
“하하.(웃음) 평생 영화배우만 했어요. 하면서 느낀게 ‘관객에게는 예우를 다하고 싶다.’ 스크린 밖에서의 모습은 비록 볼품없겠지만 그래도 영화에서 드러나는 매력을 일상생활에서도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그게 배우의 삶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국민배우의 정의는 무엇일까? 단순히 가장 유명한 배우를 일컫는 호칭일까? 일본작가 무라야마 도시오는 “국민배우는 상처받고 고된 삶 속에서 항상 자신들과 함께 있어준 배우에게 경의를 표하는 호칭”이라고 말했다.
요즘 새롭게 관심이 가는 분야는 없는지요?
“영화요.(웃음) 그냥 난 한결같은 것 같아요. 좋은 영화를 해서 관객들이 좋은 감동을 받는 것, 그 이상은 없는 것 같아요. 제 관심은 오로지 영화예요."
악역 반드시 할 필요는 없어
안성기와 ‘영원한 현역’ 임권택 감독의 인연은 깊다. 1964년 <십자매 선생>을 시작으로 <만다라> <안개마을> <태백산맥> <축제> <취화선>, 최근 <화장>까지 총 7편의 작품을 함께했다.
안성기는 영화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선배로 알려졌다. 영화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는 후배 배우들이 가장 일하고 싶은 동료이기도 하다. 영화 <화장>에서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내 역을 맡은 배우 김호정은 극중 삭발 장면을 두고 안성기에 대해 고마움을 나타냈다.
“안성기 선배가 촬영 내내 정말 배려를 많이 해줬다. 삭발 장면이 가장 힘들었는데 머리를 다 밀고 난 순간 안성기 선배가 내게 ‘이제 머리를 다 밀었으니 이 순간부터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순간이라 생각하면 된다’고 말해줬다. 그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요.
“돌아보면 분명 청춘인데 일은 안 풀리고 앞날이 막막할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손 놓고 있으면 시간낭비만 하고 꿈은 더 멀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언젠간 그 시간이 약이 될 거란 믿음을 갖고 배우로서 준비하고 있으면 세월이 반드시 보상해줄 거예요.”
영화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선배라고 들었어요. 평소 후배들을 어떻게 대하시나요?
“내 나이가 많긴 한가 봐요. 세월 참 빨라요. 어떤 현장을 가도 내 나이가 제일 많더라고요. 아, 임권택 감독님과 일할 때는 그래도 젊은 축에 속하네요.(웃음) 후배들과는 나이차와 관계없이 편하게 지내려고 노력해요. 이 이야긴 많이 했는데, 예전에 배우 이준기와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함께 일한 적 있어요. 그런데 글쎄 준기가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거예요. ‘내 앞에선 겁먹지 말고 떳떳이 피우라’고 했는데, 얘가 너무 편했는지 내 면전 앞에서 피우더라고.(웃음) 속으로는 잠깐 ‘이놈 봐라’ 하면서도 내심 기뻤어요.”
후배들이 안성기 씨에게 연기 외적으로도 바라는 게 많을 것 같아요.
“영화에 관한 건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해왔어요. 최근에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아서 단편 영화 지원하고, 아시아국제단편영화제에서도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어요. 굿다운로더 캠페인도 5년간 했었지요.”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품 선정 과정에서 서병수 부산시장의 개입 논란이 있어서요. 부집행위원장으로서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요?
“우선 부집행위원장은 타이틀에 불과해요. 영화제 기간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고 독려하는 것 정도죠. 부산국제영화제 역시 부산에서 열리고, 부산에서 지원을 많이 하기 때문에 부산이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는 거예요. 이 영화제의 사실상 의미는 ‘대한민국국제영화제’라고 생각해요. 부산시에서도 그것에 대한 배려를 해주면 좋겠어요. 영화 상영에 대한 판단은 국민이 해주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는데, 아끼는 작품이 있다면요?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이 기억에 남아요. 안 봤으면 꼭 보세요.”
관객은 어떤 작품을 원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영화가 단단하고 좋으면 대중이 외면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배우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나이가 들어도 새로울 수 있어요. 새로운 역할과 이야기에 흠뻑 빠질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60년간 안 해본 역할이 없는 것 같아요. 다음 작품에서 악역을 맡아보는 건 어떠세요?
“할리우드를 보면 나이 든 배우들이 사악한 역을 많이 하던데, 난 안 하고 싶어요. 그것보다는 감동, 즐거움을 주는 역할을 더 하고 싶어요. 한때 악역을 안 하면 연기에 제약이 있을 거라 고민한 적도 있지만 요즘엔 내려놓았어요. 악역을 반드시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어떤 꿈이 있나요?
“좋은 영화를 하는 게 꿈이에요. 환갑이 넘었는데 다른 일을 찾아볼 수도 없고.(웃음)”
“삶은 축복이에요.”
안성기는 후배 배우들에게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언젠간 그 시간이 약이 될 거란 믿음을 갖고 배우로서 준비하고 있으면, 세월이 반드시 보상해줄 것”이라고 조언했다
“삶은 축복이라는 것. 언제나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앞으로 무슨 역을 맡고 싶은지요?
“막연하지만 진짜 따뜻하면서 눈물 나도록 감동적인 영화를 찍고 싶어요.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순화되면서 감동을 받고. ‘아 삶이 참 축복이구나’ 하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영화.”
관객에게는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글쎄. 그런 생각은 잘 안 해봤어요. 왜냐하면 기억이라는 것이 그렇게 긴 게 아니잖아요. 한 세대가 지나면 잊히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그저 열심히 살고 싶어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영화를 통해서 좋은 시간, 행복한 시간을 느끼는 정도만 함께하고 가면 좋은 거지. 그 다음까지 기억해달라는 건 무리일 거 같아요.”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한 안성기는 지난 60년간 영화 안에서 살아왔다. 이제 진정한 황혼을 향해 달리는 열차에 올라선 그는 “나의 전부는 영화”라 말한다.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는 “나의 전부는 사랑”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가 아끼는 이 영화의 메시지처럼 황혼으로 접어든 60년 베테랑 국민배우에게 영화는 곧 사랑이자 축복임을 알 수 있었다.
글 김포그니 월간중앙 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