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 기적을 품다
최 화 웅
나는 두 손녀를 두었다. 친손녀 리아(Leah)로 2011년 11월 9일 미국 산티아고에서 태어나 호주 퍼스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며 착하고 반듯하게 자라고 있다. 화목한 가정에서 적극적으로 현지인들과 격이 없이 어울려 능동적으로 환경에 적응하며 친구들을 폭 넓게 사귄다. 외손녀 유나는 딸이 결혼한 지 10년 만인 2018년 6월 21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유나는 3.43kg으로 태어난 뒤 병원에서 매월 체크하는 신체발육상태가 표준치의 97~99%에 달하는 키와 몸무게를 마크할 만큼 건강하다. 두 손녀는 나의 양 날개다. 그 날개로 균형을 잡고 창공을 마음껏 날 수 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리아는 토끼띠로 영특하고 유나는 황금강아지 띠로 귀엽기 그지없다. 좋은 일이 있거나 기분이 좋은 날이면 손녀들의 도움이겠거니 생각한다. 그럴 때면 더 없이 고맙다. 외손녀 유나가 태어난 뒤로는 우리 부부는 매일같이 이른 저녁을 먹은 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찾아가서 밤 열 시 가까이 함께 지낸다. 유나가 생후 5개월에 접어들면서 눈을 맞추고 옹알이를 하며 뒤집기를 하고 앉을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일상에 기적이 이어졌다. 지난해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리아의 방에 들여놓을 침대와 책걸상, 책꽂이 등 살림을 선물하고 유아에게는 백일을 맞아 전동모빌과 포트리반 의자를 선물했다.
유나에게도 돌을 맞을 때쯤 세계 여행을 위한 적금을 들려고 한다. 생후 9개월에 접어든 유나는 “손”하면 손을 내밀고 만날 때마다 “만세”하면서 두 팔을 들어 보였더니 삼일절 100주년을 앞두고 만세를 함께 부를 만큼 자랐다. 유나는 먹성이 좋고 잘 잔다. 엄마가 책을 읽어주면 옆에서 책장을 넘기며 곧잘 흥얼거리기도 한다. 잠든 유나의 얼굴은 점점 천사를 닮아가는 것 같다. 귀 기울이면 간신이 들릴 만큼 조용조용한 숨소리가 집안의 고요와 평화를 지배한다. 티 없이 맑은 얼굴로 잠든 유나의 모습은 이 세상의 모든 시비와 갈등을 잠재운다. 눈과 배꼽에 생체시계가 달린 듯 유나는 잘 놀다가도 배가 고프거나 잠이 오면 마구 울고 트집을 부리며 보챈다. 유나가 싸이렌을 불기 시작하면 주위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관심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에 찰 만큼 먹고 단잠을 자고 나면 마냥 웃는 얼굴에 즐겁다. 이유식을 하고부터는 젖살이 빠지면서 몸매의 균형도 잡히고 행동이 민첩해졌다. 손녀들과 어울릴 때면 슬며시 방정환 선생님의〈어린이 예찬〉이 떠올린다. “어린이가 잠을 잔다. 내 무릎 앞에 편안히 누워서 낮잠을 달게 자고 있다. 볕 좋은 첫여름 조용한 오후다.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을 모두 모아서, 그 중 고요한 곳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4월에는 그리운 리아가 다니러온다. 해마다 한 번씩 만나서 한 달을 같이 지낸다. 꿈같은 세월을 몇 달째 손꼽아 기다리다 공항으로 마중을 나갈 때면 부러울 게 없다. 나는 손녀 리아가 첫돌을 맞았을 때 대학생이 되면 세계 여행에 들 경비를 적금으로 마련하고 리아가 올 때마다 돌아가는 길에 할아버지의 정성을 모은 저금통을 전한다. 이번에는 리아가 할아버지와 함께 피아노 독주회를 가고 싶다고 청했다. 부산과 가까운 김해, 창원 등지의 연주회 일정울 흔쾌히 살피는 중이고 시립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내가 자주 드나드는 서점도 함께 가볼 생각이다. 유나는 지하철 2호선 광안역 부근의 아파트에 살고 나는 거기로부터 한 정거장 떨어진 금련산역 인근에 산다. 유나 집까지는 2km 남짓한 거리로 이면도로를 따라 걸으면 10분이면 족하다. 가는 길은 주택을 헐고 아파트와 원룸을 짓기 시작하면서 골목길이 넓어졌다 좁아지기를 거듭하며 이가 빠진 듯 들쑥날쑥 이어진다. 어린이 놀이터와 호암경로당을 지나 주택가로 들어서면 아파트 담장을 사이에 둔 주택의 담장 너머로 대추나무가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말을 건다. 그 길을 걸으며 아내에게 몇 차례 “대추나무에 새잎이 돋으면 유나가 걷겠지”라고 말을 걸었다. 대추나무 잎이 돋고 나면 겨드랑이에서 아주 작고 날카로운 가시와 두세 개의 황색꽃을 피운다. 꽃 뒤에 숨은 가시는 꽃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골목길 위쪽 집에서 자라는 한 그루 대추나무는 아직도 꼭대기에 대추를 달고 겨울 텃새들을 보살핀다. 아래 주택의 대추나무 두 그루는 앙상한 가지로 봄을 기다리며 아직 겨울잠에 빠져 있다. 유나를 보러 오가는 길의 대추나무는 시멘트로 덮인 비좁은 마당 한 구석에 뿌리를 내리고 블록담에 기대선 채 거미줄처럼 성가신 전선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대추나무와 만나고 헤어지는 골목길의 대화는 오늘을 살아가는 일상이다. 대추나무의 잎은 대기만성이다. 다른 나무들이 꽃이 피우거나 새잎이 돋은 뒤에야 눈을 비비고 깨어난다. 대추나무는 잎이 늦게 돋기에 ‘양반나무’라는 별명을 가졌다. 오늘도 대추나무는 궁금한 게 많다. 가지 끝 우듬지에 물이 올랐는지 새잎을 만들려고 준비를 하는지 궁금하다. 기다리는 마음에 안달 나게 할 뿐 아직 기척이 없다. 대추나무가 살고 있는 골목길을 오가며 손녀들 생각을 하는 나는 행복하다. 대추나무에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유나는 오늘 저녁에도 나를 붙들고 가뿐하게 일어서며 다리에 힘을 올려 걸을 준비에 열심이다. 삼월의 첫 휴일을 맞아 고려제강 옛 수영공장을 리모델링한 종합문화공간 F1963으로 나들이를 가서 왕대밭과 정원을 산책했다. 그리고 국제 갤러리와 중고서점 예스24을 둘러보고 테라로사에서 커피를 마시며 천정에 매단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말에 시선을 빼앗겼다.
대추는 생활 속의 감초다. 그만큼 우리네 생활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대추나무는 잎보다 열매가 크고 탐스럽다. 대추는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결혼식 폐백 때면 시부모들이 신부의 치마에 잘 익은 대추를 던져주며 다산과 득남을 기원하는 마음을 전한다. 제사 때는 반드시 대추를 제상에 올린다. 붉은 씨앗을 한 개 가진 대추야말로 조상을 향한 후손들의 일편단심이라고 여겼나보다. 대추나무가 귀신을 쫓는다는 속설로 제사가 있는 집안에는 대추나무를 심지 않는다고 했다. 조상귀신의 길을 막아서지 않으려고 대추나무를 집안에 심지 않으면서도 제상에는 빠뜨리지 않고 대추를 올려야 하는 이중성이 흥미롭다. 대추나무는 잎이 늦게 돋는다. 다른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새잎이 나온 뒤에야 비로소 잎이 돋는다. 잎이 늦어도 열매는 충실히 맺고 몸이 야무지고 단단하다. 그래서 예부터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야무지고 단단하며 틀림없는 사람을 가리켜 ‘대추방망이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대추나무는 회양목처럼 조직이 단단하여 예부터 도장을 새기는데 널리 쓰였다. 하물며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일품으로 여긴다. 대추나무가 벼락이라는 천벌을 받고도 타지 않는 몸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오래 쓰면서 면죄부를 받는다고 믿었나보다. 젊은 날 스위스를 다녀온 지인으로부터 벼락 맞은 나무 조각을 선물로 받은 적은 있어도 대추나무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심보는 이해하기 어렵기만 하다.
첫댓글 국장님 손녀를 기다리는 그리움이 얼마나 크신지 느껴집니다.
어릴적 고향에 대문 옆에 대추나무 한 그루씩 있었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건강관리 잘 하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