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의 구조입니다.
여호와의 언약(구약) / 여호와의 성취(신약) |
창1장~창36장(언약을 세우시는 여호와) / 창37장~에(언약을 성취하시는 여호와) |
인류의 시조와 언약 (창1:~11:) | 선민의 열조와 언약 (창12:~36:) | 자손언약 성취 섭리 (창37:~민30:) |
아담과 언약 수립 (1:~2:) | 언약 자손의 보호 (3:~11:) | 아브라함과의 언약 (12:~20;) | 이삭의 언약 계승 (21:~26:) | 야곱의 언약 계승 (27:~36:) | 언약자손의 번창 (창37:~출18:) |
언약 수립의 준비 (1:`~25)
언약 수립의 시행 (1:26~2:) | 아담 심판과 보호 (3:)
가인 심판과 보호 (4:~5:)
인류 심판과 언약 (6:~11:) | 가나안 땅 언약 (12:~14:)
자손 번창 언약 (15:~16:)
열국 통치 언약 (17:~20) | 언약 계승의 준비 (21:~23:)
언약 계승의 실현 (24:~26:) | 야곱이 받은 복과 언약 (27:~28:)
야곱의 복과 언약 성취 (29~36:) | 자손의 보호와 형통 (창37:~50:) |
언약자손들의 범죄 (37:~38:)
요셉과 형들의 화친 (39:~45:)
언약자손들의 형통 (46:~50:) |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먼저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1. 인간의 죄란 무엇이며 이 ‘죄’에 대한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주권자이신가?
2. 죄인들의 죄짐을 대신 지신 구속주는 언제 어떻게 준비되셨으며,
무엇으로 어떻게 확인되어서 죄인들이 믿게 되는 존재가 되시는가?
3. 성경에서 말씀하는 의인의 기준은 무엇인가?
4. 성경에서 말씀하는 영원한 나라는 어떤 나라이며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등입니다.
이와 같은 질문들을 머릿속에 간직하고서 공부를 출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창세기는,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으나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열어서 보여주심)하심의 서막으로 출발합니다.
하나님 자기 계시의 첫 번째가 창조 사역입니다. 창조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시공의 세계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창조 사역에서부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과 그의 영원한 나라 세우실 것을 언약하십니다. 창세기는 역사적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장~11장 인류의 역사 | 12장~ 선민 열조의 역사 |
1:~2: 하나님께서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언약수립 3:~11: 언약자손을 보호하심 |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며 다스리시는 내용인데, 그 중에서 1장부터 2장까지는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와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언약을 수립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아담에게 먼저 복을 주시면서 언약을 세우시고 그리고 주신 복과 언약의 실체인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메시야)를 보내어 성취하시므로 하나님 스스로가 언약을 이루시는 여호와가 되심을 성경으로 계시하십니다. 그러므로 언약대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복과 언약의 실체이며 중심이며 이로 인해 하나님이 하나님 스스로 영광을 취하십니다.
1장에서 2장까지의 의미분석 |
1장1절~1장25절 아담과의 언약수립 준비 | 1장26절~2장25절 아담과 언약 수립의 시행 |
1~ 8 하늘 위의 세계 창조 9~19 하늘 아래 세계 창조 20~25 각종 생물 세계 창조 | 1:26~2:3 3대 언약 수립 2:4~25 선악과 금식령 |
창세기 1장 1절에서 25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복을 주시며 세 가지 언약으로 나라 세우실 준비를 하시는 섭리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 여섯째 날에 지으셔서 그에게 세 가지 언약으로 나라를 세우실 준비를 하시려고 먼저 하늘 위의 세계를 비롯해서 하늘 아래 세계와 각종 생물의 세계를 만드시는 섭리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으로 하여금 정복하여 다스리게 하시려고 우주 만물을 먼저 만들어 놓으심으로 그와 언약 세우실 준비를 하시는 것입니다. 첫째 아담은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입니다(롬5:14 참조).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
그 가운데 1절부터 8절까지는 하늘 위의 세계 창조 내용인데 1절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언약을 수립하기 위해 먼저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내용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절)에서 ‘태초’는 영원에서 시간과 공간, 형체를 갖기 시작한 우주 기원의 시점입니다. 그리고‘창조’는,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을 말씀으로 시공의 세계에 드러내신 것이지 하나님께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만드신 시공의 세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고자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는, ‘태초’를 통해 시간 세계가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당시의 시간 개념은 현재의 시간 개념과는 다릅니다. 또한 ‘태초’ 당시의 ‘낮’과 ‘밤’도 현재의 해와 달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첫째 날에 창조된 빛과 어두움이 주관하였으므로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태초 이전의 하나님은 영원한 세계에서 영원 자존하시는 전능자로서 초월자 상태셨는데, 이러한 전능자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자신을 스스로 계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만물들을 만드시기 전에는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만이 스스로 존재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시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저자들을 통해 기록하게 하신 성경을 통하여 자신을 소개하셨고 알게 하시며 믿게 하신 것입니다.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인간이 계시된 성경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해당자는 오직 구별 선택하신 자기 백성입니다-여기에 각 시대마다 저자들을 사용하셨고 시대적 언어를 사용하여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하심】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뜻은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1장 16절에서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창조의 뜻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심‘이라고 증거합니다.
이어진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임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는 말씀은 창조 당시의 모습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처음 상태의 모습은 ‘혼돈’ ‘공허’ ‘흑암’입니다. 하지만 혼돈과 공허와 흑암 위에 하나님의 영이 덮혀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첫째 날에 하나님께서는 빛을 창조하시며 빛과 어두움으로 나누십니다. 즉 우주의 기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3절)에서 ‘빛’은 2절의 혼돈과 공허와 흑암 즉 어두움에서의 빛이요 구별입니다. 이때의 빛은 태양 빛과는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천하계에 속한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빛입니다. 이 빛은 하늘(궁창) 위, 즉 천상계의 빛으로서 세상의 빛으로 오실 메시야를 예표하는 빛입니다.
이 ‘빛’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6절에서 창세기 1장 3절의 ‘빛’을 소개하는데, 이는 장차 오셔서 우리에게 영원하고 생명의 빛되시는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언약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 요한은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고 하면서 빛되신 예수께서 어둔 세상에 오셨음을 증거하고 있으며 그리고 이어지는 요1:9절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참 빛’,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라고 소개합니다.
‘빛’은 어두움에서 드러나고 어두움에서 증거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와 함께 혼돈과 공허 그리고 혹암을 조성하시고 거기에 ‘빛’을 통하여 빛과 어두움으로 나누십니다(4절). 그리고 언약대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세상도 역시 어두움의 상태입니다. 이는, 죄로 인하여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상태에 있는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실 참 빛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에 대한 언약이며 예표와 그림자이고 모형입니다.
‘빛’이 아니면 어느 무엇도 볼 수가 없고 드러나지 않습니다. 볼 수 있고 드러난다는 것은 빛에 의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나 자신의 참된 모습, 즉 죄의 모습을 깨닫고 볼 수 있는 것은 ‘참 빛’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참 빛’이 아니고서는 세상의 어느 무엇도 나를 죄에서 건져주지 못하며 하나님 앞에서의 죄인 됨을 깨닫게 해주지도 못합니다. ‘참 빛’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참 빛’에 의해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 빛’으로 부름받은 자가 참된 복을 받은 자입니다. 빛으로 나아가는 자가 진정 지혜자입니다.
요환복음 9장에 예수께서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9:4~5)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세상의 빛이 되신 예수께서 일을 하실 수 있을 때를 ‘낮’이라 하고 예수께서 일을 하실 수 없을 때를 ‘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위 본문에서의 ‘낮’과 ‘밤’은, 태양과 달이 주관하는 천하계의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창조 첫째 날에 만들어진 천상계의 것과 같다는 말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창조 첫째날에 만드신 빛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면, 그 빛에 의하여 만들어진 낮과 밤도 그리스도와 무관하지 아니하다는 것을 밝히는 것입니다.
6절에서 8절은 둘째 날, 궁창인 하늘에서 아랫 물과 윗 물로 나누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덮고 있는 물을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어서 궁창과 같은 공간을 만드십니다. 그러니까 궁창을 중심으로 궁창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이 차원을 달리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6,7절). 그리고 이 궁창을 하나님께서는 ‘하늘’이라고 칭하십니다(8절).
여기서 ‘하늘’은 첫째 날의 ‘천’과는 차원이 다른 하늘입니다. 태초에 창조된 하늘은 위의 물 세계 위에 있는 하늘이지만 둘째 날에 창조된 하늘은 위의 물과 아래의 물 사이에 있는 하늘입니다. 이같은 사실을 시편 기자가 “하늘의 하늘도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찬양할지어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고 찬양한 내용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하늘 위의 세계인 천상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하늘 아래의 세계인 천하계만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눈으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