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7~8)
11월입니다. 이때가 되면 시원하게 느껴지던 바람이 몸을 떨게 하는 찬바람으로 바뀝니다.
두툼한 외투가 거리를 누비기 시작하는 것도 이때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껏 받으며 찬란한
아름다움을 뽐내던 단풍은 짧은 인생을 끝내고 낙엽이 되어 마지막 하강으로 평생을 마감합니다.
마음이 스산해지는 때입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11월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1월에는 설날이 있고, 2월에는 봄방학이
있고, 3월에는 3.1절이 있고, 4월에는 식목일이 있고, 5월에는 신나는 어린이날이 있고, 6월에는
현충일이 있고, 7월에는 제헌절이 있는 데다가 여름방학과 함께 여름성경학교가 있으니 가장
좋았습니다. 8월에는 여전히 방학이고 9월에는 추석이 있고,
10월에는 국군의 날과 개천절이 있어서 좋았고, 12월은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성탄절이 있으니
멋진 달이었습니다. 그런데 11월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대학생 때쯤으로 기억합니다. 언젠가 이런 말을 했더니 한 친구가 자신은 11월이 가장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농촌에서 자라서 농사를 알았습니다. 9월부터 시작한 추수가 11월이면 거의
다 끝납니다. 고단한 농사가 끝나고, 농한기로 접어들어 모처럼 휴식을 할 때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한 해 농사를 결산하는 때이니, 일 년 중 가장 풍성했다고 합니다. 또 아무 부담 없이
성탄절 맞을 준비를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고 신났던 때가 11월이었다고 했습니다.
왜 나는 친구가 느끼는 11월의 기쁨을 모를까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친구는 씨를 뿌려 가꾸는
수고를 알고, 저는 도시에 살아서 그것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씨를 뿌린 사람은 11월의
기쁨을 압니다. 그러나 뿌리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때 하나 배웠습니다. 무의미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시간을 보람 있는 멋진 시간으로 바꾸는
비결은 씨를 심는 것입니다. 씨를 심은 사람은 추수 때까지 설렘으로 살 것입니다. 또 열매를
거둘 때가 되면 매일매일 명절이 될 것입니다. 좋은 시간을 기다리지 말고, 좋은 시간을 만들어
가야함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 좋은 시간이 될 수도 있고, 괴로운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씨를 심은 사람에게는 11월이 추수의 기쁨을 만끽하는 달이 될 테니 좋은 달, 좋은
시간이 될 겁니다.
씨를 뿌린 사람만 누리는 11월의 기쁨
봄부터 심고 가꾼 수고로 풍성한 수확
육신 아닌 성령 위해 심어야 영생 얻어
좋은 걸 많이 심어 추수할 것 넘치길
지혜로운 성도는 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 중에는 유난히 씨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겨자씨 비유 씨 뿌리는(네 가지 땅에) 사람의 비유, 가라지 비유 등이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파종에 관한 말씀을 많이 하신 이유는 당시 사람들 삶의 반영이기도 하고, 우리가
심는 자로 살길 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좋은 씨를 뿌리길 원합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내가 길을
가면서 꽃씨를 뿌리면 지나간 길에 많은 꽃이 핀다. 또 꽃이 피면 열매도 맺힐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나가는 길에 혹 좋지 못한 씨를 뿌리면 잡초가 날 뿐이다. 그러니까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좋은 씨를 많이 뿌리라”
한경직 목사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갈라디아서 6장 7~8절의 말씀을 염두에 두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다양한 영역에 선한
씨앗을 많이 뿌리셨고, 지금도 곳곳에서 그 열매가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열매를 거두는 데도
매우 바쁩니다.
이런 의미에서 추수감사주일이 11월에 있는 것은 절묘합니다. 자연의 흐름을 보면 11월에 추수
하게 되니, 감사주일이 11월에 있는 게 당연합니다. 달리 말하면 누군가 봄부터 심었기 때문에
추수감사가 가능합니다. 심지 않았다면 11월이 되어도 추수감사는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추수감사주일은 봄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알게 됩니다.
미리 시작하는 감사절은 제가 모셨던 목사님에게 배운 바 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추수감사절
헌금을 그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드리셨습니다. 어려운 목사님 형편에 어떻게 그렇게 하시는지
여쭈었더니, 1월부터 열 달 동안 준비하신다고 했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은 일찍 준비하는 사람,
일찍부터 심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절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도 추수감사주일이 있는
11월이 되었습니다.
- 김운성 목사님, 영락교회 발간 월간 ‘만남’ 24년 11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