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제 36,23-28; 마태 22,1-14
+ 오소서, 성령님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입니다. 영어로는 여왕을 뜻하는 ‘퀸’이라는 단어가 쓰였는데요, 임금의 어머니를 뜻하는 ‘모후’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20세기 초부터 성모님께 ‘모후’의 칭호가 주어져야 한다는 요청이 많았는데요, 1954년 비오 12세 교황님은 성모님께서 ‘모후’이심을 선언하였고, 5월 31일에 축일을 지내도록 하였습니다. 그 뒤 성모승천대축일 8일 뒤인 8월 22일로 기념일이 옮겨졌습니다.
1950년에 성모 승천 교의가 선포되고 4년 뒤에 성모님께서 모후이심이 선언된 것인데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희망에 목말라하던 신자들의 염원이 많이 반영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영국 여왕 같은 사람을 ‘퀸’이라 부르고, ‘허 마제스티’ 즉 ‘여왕 폐하’와 같은 극존칭을 쓰는데, 성모님께는 일반 사람에게와 같은 호칭을 쓴다는 것이, 신자들 마음에 무척 불편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 시대에 가장 큰 축제는 혼인 잔치였는데요, 혼인 잔치 때에는 생업을 중단하고 며칠씩 잔치가 계속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는 기쁨과 즐거움의 자리였기에,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혼인 잔치에 자주 비유하셨습니다.
혼인 잔치 때에는 손님을 두 차례에 걸쳐 초대하는 데요, 우선 손님들에게 이 초대에 응할 것인지를 일일이 묻습니다. 그렇게 해서 참석자 명단이 정해지면, 그 수에 맞게 잔칫상을 차린 다음, 혼인날이 되면, 초대에 응했던 사람들에게 다시 연락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나온 사람들은, 처음 초대받았을 때는 가겠다고 해 놓고는, 결혼식 날이 되자 갖가지 핑계를 대며 가지 않습니다.
아니 분명 오겠다고 해서 버스도 대절해 놓고 뷔페도 350인분을 맞춰 놓았는데 안 오면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게다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밭으로 가고 장사하러 가고, 그냥 일상적인 일을 하느라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초대를 한 사람이 이 나라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왕의 초대를 거절한 것도 모자라 왕이 보낸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습니다. 이 왕은 하느님이시고, 종들은 예언자들입니다. 초대에 응해 놓고도 가지 않은 이 사람들은, 처음 부르심을 받은 유다인들을 상징합니다.
임금은 진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립니다. 이 말씀에서 장차 기원후 70년, 로마 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전이 함락되고 도시가 불타게 될 것이 암시됩니다.
임금은 종들에게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라”고 말합니다. 이제 이방인들이 잔치에 초대됩니다.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옵니다. 악한 사람도 초대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쫓겨납니다.
이 혼인 예복은, 하느님 나라에 초대받은 후 그에 합당한 회개를 하고 열매를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복을 입지 않고 갔다가 쫓겨난 사람이 가장 황당한데요, 아무런 자격이 없는데도 초대를 받았다면, 최소한 옷이라도 깨끗이 입고 가야 합니다. 이 사람은 하느님의 초대를 거절한 것도 아니고 무시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사람처럼, 초대에 응한 것도 아니고, 거절한 것도 아닌 채로,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고 그저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유배로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모아들이시고, 그들을 정화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정화는 세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첫째 정결한 물을 뿌리시는 것입니다. 둘째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새 마음을 넣어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당신 영을 넣어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 단계의 정화는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는 세례 성사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고해 성사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복음에 나오는 혼인 예복의 의미가 더 명확해집니다. 우리 안에 넣어 주신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그 길을 가신 성모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프라 안젤리코, 성모님의 대관식, 1425-1450년 경
출처: File:Fra Angelico 082.jpg - Wikipedia
첫댓글 끌려오다시피 했는데, 예복이라니?
늘 이 복음은 저를 혼란케합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것은 쫒겨난 사람이 1명이라는 것이 큰 위안입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ㅋㅋ
언제나 성당에 단정하게 입고 오시니 합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