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상탄
늙고 병(病)든 몸을 주사(舟師)로 보내실새 을사(乙巳) 삼하(三夏)애 진동영(鎭東營)나려오니 관방중지(關防重地)예 병(病)이 깁다 안자실랴 일장검(一長劍) 비기 차고 병선(兵船)에 구테 올나, 여기진목(勵氣瞋目)하야 대마도(對馬島)을 구어보니 바람 조친 황운(黃雲)은 원근(遠近)에 사혀 잇고, 아득한 창파(滄波)난 긴 하날과 한빗칠쇠.
선상(船上)에 배회(徘徊)하며 고금(古今)을 사억(思憶)하고, 어리미친 회포(懷抱)애 헌원씨(軒轅氏)를 애다노라. 대양(大洋)이 망망(茫茫)하야 천지(天地)예 둘려시니, 진실로 배 아니면 풍파 만리(風波萬里) 밧긔, 어내 사이(四夷) 엿볼넌고 무삼 일 하려 하야 배 못기를 비롯한고 만세천추(萬世千秋)에 가업산 큰 폐(弊) 되야, 보천지하(普天地下)애 만민원(萬民怨) 길우나다. 어즈버 깨다라니 진시황(秦始皇)의 타시로다. 배 비록 잇다 하나 왜(倭)를 아니 삼기던들, 일본(日本) 대마도(對馬島)로 뷘 배 졀로 나올넌가 뉘 말을 미더 듯고, 동남동녀(童男童女)를 그대도록 드려다가 해중(海中) 모든 셤에 난당적(難當賊)을 기쳐 두고, 통분(痛憤)한 수욕(羞辱)이 화하(華夏)애 다 밋나다. 장생(長生) 불사약(不死藥)을 얼매나 어더 내여 만리 장성(萬里長城) 놉히 사고 몇 만년(萬年)을 사도떤고 남대로 죽어 가니 유익(有益)한 줄 모라로다. 어즈버 생각하니 서불(徐弗) 등(等)이 이심(已甚)하다. 인신(人臣)이 되야셔 망명(亡命)도 하난 것가 신선(神仙)을 못 보거든 수이나 도라오면, 주사(舟師)이 시럼은 전혀 업게 삼길럿다.
두어라, 기왕불구(旣往不咎)라 일너 무엇하로소니 속졀업산 시비(是非)를 후리쳐 더뎌 두쟈. 잠사각오(潛思覺悟)하니 내 뜻도 고집(固執)고야. 황제 작주거(黃帝 作舟車)난 왼 줄도 모라로다. 장한(張翰) 강동(江東)애 추풍(秋風)을 만나신들 편주(扁舟) 곳 아니 타면 천청 해활(天聽海闊)하다 어내 흥(興)이 졀로 나며, 삼공(三公)도 아니 밧골 제일강산(第一江山)애, 부평(浮萍)갓한 어부생애(漁父生涯)을 일엽주(一葉舟) 아니면, 어대 부쳐 단힐난고
일언 닐 보건댄, 배 삼긴 제도(制度)야 지묘(至妙)한 덧 하다마난, 엇디한 우리 물은 나난닷한 판옥선(板屋船)을 주야(晝夜)의 빗기 타고, 임풍 영월(臨風詠月)호대 흥(興)이 전혀 업난게오 석일(昔日) 선중(舟中)에 배반(杯盤)이 낭자(狼藉)터니, 금일(今日) 주중(舟中)에 대검장창(大劍長槍)뿐이로다 한 가지 배언마 가진 배 다라니, 기간(其間) 우락(憂樂)이 서로 갓지 못하도다.
시시(時時)로 멀이 드러 북신(北辰)을 바라보며, 상시(傷時) 노루(老淚)랄 천일방(天一方)의 디이나다. 오동방(吾東方) 문물(文物)이 한당송(漢唐宋)애 디랴마난, 국운(國運)이 불행(不幸)하야 해추(海醜) 흉모(兇謀)애 만고수(萬古羞)를 안고 이셔, 백분(百分)에 한 가지도 못 시셔 바려거든, 이 몸이 무상(無狀)한달 신자(臣子)ㅣ되야 이셔다가, 궁달(窮達)이 길이 달라 몬 뫼압고 늘거신달, 우국 단심(憂國丹心)이야 어내 각(刻)애 이즐넌고
강개(慷慨) 계운 장기(壯氣)난 노당익장(老當益壯) 하다마난, 됴고마난 이 몸이 병중(病中)애 드러시니, 설분 신원(雪憤伸寃)이 어려올 닷 하건마난, 그러나 사제갈(死諸葛)도 생중달(生仲達)을 멀리 좃고, 발 업산 손빈(孫臏)도 방연(龐涓)을 잡아거든, 하물며 이 몸은 수족(手足)이 가자 잇고 명맥(命脈)이 이어시니, 서절 구투(鼠竊拘偸)을 저그나 저흘소냐 비선(飛船)에 달려드러 선봉(先鋒)을 거치면, 구시월(九十月) 상풍(霜風)에 낙엽(落葉)가치 헤치리라. 칠종칠금(七縱七禽)을 우린달 못 할 것가
준피도이(蠢彼島夷)들아 수이 걸항(乞降) 하야사라. 항자불살(降者不殺)이니 너를 구태 섬멸(殲滅)하랴 오왕(吾王) 성덕(聖德)이 욕병생(欲幷生) 하시니라. 태평 천하(太平天下)애 요순(堯舜) 군민(君民) 되야 이셔, 일월광화(日月光華)난 조부조(朝復朝) 하얏거든, 전선(戰船) 타던 우리 몸도 어주(漁舟)에 창만(唱晩)하고 추월춘풍(秋月春風)에 놉히 베고 누어 이셔, 성대(聖代) 해불 양파(海不揚波)랄 다시 보려 하노라.
현대어 풀이
(임금께서) 늙고 병든 몸을 수군 통주사로 보내시므로, 을사년(선조 38년, 1605) 여름에 부산진에 내려오니, 국경의 요새지에서 병이 깊다고 앉아만 있겠는가? 한 자루 긴 칼을 비스듬히 차고 병선에 구태여(감히) 올라 기운을 떨치고 눈을 부릅떠 대마도를 굽어보니, 바람을 따라 이동하는 누런 구름은 멀리 또는 가까이에 쌓여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는 긴 하늘과 한 빛이로다.
배 위를 왔다 갔다 서성거리며 예와 오늘을 생각하며 어리석고 미친 듯한 마음에 헌원씨를 원망하노라. 넓은 바다가 아득하고 온 세상에 둘러싸여 있으니 진실로 배가 없었다면 풍파가 이는 바다 만 리 밖에서 어느 사방의 오랑캐가 (우리 나라를) 넘볼 것인가? 무슨 일을 하려고 배 만들기를 비롯(시작)하였던가? 오랜 세월에 무한한 큰 폐단이 되어, 온 세상 만백성의 원한을 조장한다. 아, 깨달으니 진시황의 탓이로다.
배가 비록 있다 하나 왜국을 만들지 않았던들, 일본 대마도로부터 빈 배가 저절로 나올 것인가? 누구 말을 믿어 듣고 사람들을 그토록 많이 들어가게 바다 가운데 모든 섬에 감당하기 어려운 도적을 남기어 두어서, 통분한 수치와 모욕이 중국에까지 미치게 하는구나. 장생불사한다는 약을 얼마나 얻어내어 만리장성 높이 쌓고 몇 만 년이나 살았던가? 진시황도 남과 같이 죽어가니, 유익한 줄을 모르겠다. 아, 돌이켜 생각하니 서불의 무리들이 매우 심하다. 신하가 되어서 남의 나라로 도망을 하는 것인가. 신선을 못만났거든 쉬 돌아왔더라면, 통주사인 나의 근심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두어라 이미 지난 일을 탓해서 무엇 하겠는가? 공연한 시비는 팽개쳐 던져두자. 곰곰히 생각하여 깨달으니 내 뜻도 지나친 고집이다. 황제가 배와 수레를 만든 것은 잘못이 아니다. 장한이 강동에서 가을 바람을 만났다고 해도, 만일 작은 배를 타지 않았다면, 하늘 맑고 바다 넓다 한들, 무슨 흥이 저절로 났을 것이며, 정승 자리와도 바꾸지 않을 경치 좋은 강산에 부평같이 물에 떠다니는 어부의 생활이 한 조각의 작은 배가 아니면 무엇에 의탁하여 다닐 것인가?
이런 일을 보면, 배를 만든 제도야 지극히 묘하지만, 어찌하여 우리 무리들은 나는 듯한 판옥선을 밤낮으로 비스듬히 타고, 풍월을 읊되 흥이 전혀 없는 것인가? 옛날(소동파가 적벽강 위에 띄운)배에는 술상이 어지럽게 흩어졌더니 오늘 우리가 탄 배에는 큰 칼과 긴 창 뿐이다. 같은 배이건만 가진 바가 다르니, 그 사이 근심과 즐거움이 서로 같지 못하다.
때때로 머리 들어 임금님 계신 곳을 바라보며, 때를 근심하는 늙은이의 눈물을 하늘 한 모퉁이에 떨어뜨린다. 우리 나라의 문물이 한나라․당나라․송나라에 뒤지랴마는, 나라의 운수가 불행하여 왜적들의 흉악한 꾀에 빠져 만고에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안고 있어, 백분의 일이라도 못 씻어 버렸거든, 이 몸이 변변하지 못하지만 신하 가 되어 있다가, 신하와 임금의 신분이 서로 달라, 못 모시고 늙은들 나라를 걱정하고 일편단심이야 어느 때라고 잊을 수 있겠는가? 강개를 이기지 못하는 씩씩한 기운은 늙을수록 더욱 장하다마는 조그마한 이 몸이 병중에 있어서, 분함을 씻고 가슴에 맺힌 원한을 푸는 것이 어려울 듯 하건마는, 그러나 죽은 제갈도 살아있는 중달을 멀리 쫓고, 발이 없는 손빈도 그 발을 자른 방연을 잡았는데, 하물며 이 몸은 손과 발이 갖추어 있고 목숨이 붙어 있으니 쥐나 개같은 도적(왜구)을 조금이라도 두려워 하겠느냐? 나는 듯이 빠른 배에 달려들어 선봉을 휘몰아치면, 구시월 서릿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헤치리라. 칠종칠금을 우린들 못할 것인가?
꾸물거리는 섬나라 오랑캐들아 빨리 항복하려무나. 항복하는 자는 죽이지 않으니 너희를 구태여 섬멸하겠는가? 나의 왕(선조) 선조의 성덕이 같이 살기를 원하시니라. 태평천하에 요순의 군민처럼 되어 해와 달의 빛에 아침이 거듭되거든, 전투 배에 타던 우리 몸도 고기잡이 배에서 늦도록 노래하고, 가을달 봄바람에 (베게를) 높이 베고 누어 있어, 성군 치하의태평 성대를 다시 보려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