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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1(일) 색다른 투어 cafe의 아침편지
마음 & 마음
토끼를 잡을 땐
귀를 잡아야 하고,
닭을 잡을 땐
날개를 잡아야 하고,
고양이를 잡을 땐
목덜미를 잡으면 되지만,
사람은
어디를 잡아야 하나요?
멱살을 잡히면 싸움이 나고,
손은 잡히면 뿌리 치지요.
그럼 어디를~?
마음을 잡으세요~~!!!
마음을 잡으면
평생 떠나지 않는 다네요.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마음을 잡도록 노력 하세요.
마음과 마음!!!
내 마음이
날카로운 칼이라면,
상대방은
철판으로 방어를 할 테고.
내 마음이
날아가는 화살이라면,
상대방은
방패로 응수 할 겁니다.
내 마음이
햇살처럼 부드러우면,
상대방은 가슴을 열고
햇볕을 쪼이겠지만.
내 마음이
시리도록 차가운 바람이라면,
상대방은 추워서 마음의 문을
꽁꽁 닫을 겁니다.
내 마음 쓰기에 따라
상대방은
마음을 조절하며.
내 마음의 온도에 따라
상대방도 온도를 맞춥니다.
내가 이웃으로
보내는 떡이 커야,
그 이웃도
떡을 담을 수 있는 접시를
큰 것으로 준비 하겠지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부족함을 채우며~
적지만,
내것을 드리는
마음을 가지고 나누는
하루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
- 좋은 글 중에서 -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
10월 31일(토) 시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른 아침 성당 직원회의가 있어서 용산으로 달려갔습니다. 이틀후에 개최되는 서울대교구 주최의 '위령의 날' 행사를 위해 최종 점검회의가 있기에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성당 성직자 묘지에 비치는 아침 햇살이 너무도 아름다워 스마트폰에 담아 보았습니다.
아침 회의는 9시에 시작되었는데, 지난 밤 회사에서 늦은 시각까지 작성한 '위령의 날 행사 의자 배치도'를 비롯한 행사 일정표에 대해 발표를 했는데, 특히 칼라 프린터로 예쁘게 프린팅 한 것이 먹혀 들어갔는지 이의를 제기하는 분이 한분도 없었습니다. 주임신부님께서는 지난 10월 20일 브뤼기에르 조선초대 교구장님 선종 180주년 행사를 무사히 잘 치룬 것에 만족하셨는지 아주 너그러우셨습니다. 하여 의외로 회의는 일찍 끝났습니다. 주임신부님께서는 아침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셨으나, 모처럼 10월 마지막 날을 의미있게 보내고 싶어서 약속이 있어서 죄송합니다.라고 양해를 구하곤, 친구와 함께 강화도 테마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동안 행사준비로 인한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오전 10시 30분, 쌩쌩거리면서 강변북로 일산을 경유하여 강화도로 진입해 낮 11시 30분경 강화대교를 건넜습니다. 한국 중세와 근대사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을 탐방하고자 우선 먼저 고려궁지부터 찾았습니다.
고려궁지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아주 큰 한옥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고려성지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성공회의 성당이었습니다. 이 성공회 강화 성당은 1900년 11월 15일에 준공된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소속 성당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지어진 한옥 성당입니다. 1981년에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재 111호로 지정되고, 강화군이 인천광역시에 편입 되면서 인천광역시 지방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01년 1월 4일에 성공회 강화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사적 424호로 지정되었다. 대한성공회 유지재단 등이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고 하는데, 한옥의 성공회 성당은 역시 한국기독교의 역사를 지닌 보물같은 문화재였습니다. 한창 내부 수리공사중이어서 그냥 수박 겉 핣기만 한 것이 아쉬었지요.
이어 성공회 성당 아래에 위치한 '한옥'을 찾았습니다. 바로 이곳은 그간 말로만 들었던 '강화도령 철종'이 은거했던 잠거인 '용흥궁'이었습니다. '조선의 제25대 왕 철종은 영조의 고손자이며, 사도세자의 증손자로서 정조대왕의 이복동생 은언군이 할아버지, 전계군이 아버지입니다. 증조할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은 익히 아는 바이고, 할아버지 은언군은 아들 상계군이 반역을 꾀했다 하여 강화에 유배되었다가 죽임을 당하니 이 때 은언군도 목숨을 잃었지요. 이후 철종(원범)의 아버지와 형(원경)은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사사되었고, 원범은 가족과 함께 14세 때 이 곳 강화로 유배되어 왔다.' 철종은 어린 나이부터 왕족이라는 굴레 때문에 부모와 형제 수많은 친족들이 죽음을 당하는 시련을 겪은 슬픈 운명을 타고난 청년이었습니다.
1963년 신영균 주연 최은희 조연의 영화 "강화도령"의 아래와 같은 영화 내용이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강화도에 사는 더벅머리 총각 원범(신영균)은 산속의 칡뿌리를 캐어 먹고 약수물을 떠 마시며 살아가는 평민 같은 인물이지만 실은 왕가의 혈통이다. 헌종이 승하하자 동네에서 홀대 받던 이 청년은 하루아침에 철종 임금으로 등극한다. 대왕대비와 제조상궁으로부터 궁중의 법도를 배워나가지만, 철종은 강화도에서의 삶과 그곳의 연인 복녀(최은희)를 잊지 못한다. 복녀를 궁으로 데려온 그는 억지로 혼인한 왕비는 뒷전으로 하고 복녀와 함께 궁 밖의 주막에서 흥겹게 시간을 보낸다. 이를 위기로 느낀 대왕대비는 복녀를 강화도로 추방하고, 이에 낙심한 철종은 아픈 몸에도 매일 같이 술을 마시며 몸을 혹사한다. 철종의 병이 깊어지자 왕비는 대왕대비에서 다시 복녀를 불러들일 것을 청한다.
1967년 정사를 바탕으로 풀어낸 신봉승의 역사소설『임금님의 첫사랑』제1권. 한국 TV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10년간 방영되었던 <조선왕조 500년>의 극작가 신봉승이 '강화도령' 철종을 재해석하였다. 더벅머리 나무꾼 총각으로 용상에 올라 강화섬과 첫사랑을 그리워하다 짧은 생애를 마친 조선의 25대 왕 철종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장김이라는 척족에 의해 임금의 자리에 오르지만 경륜과 학문이 부족해 허수아비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임금 철종. 순조 때부터 시작된 안동 김씨 일문의 세도정치 아래에서 철종이 해야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지요. 작가는 탁월한 식견과 드라마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역사의 행간을 찾아 철종의 생애를 그려내었습니다. 어릴 때 강화도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던 원범은 착한 양순을 만나 사랑에 눈뜨게 된다. 원범이 임금이 되어서도 강화섬과 양순을 그리워하자, 순원왕후의 윤허로 양순은 궁으로 불러들여지지만 중전을 맞이하면서 두 사람은 다시 헤어지게 됩니다. 한편 철종은 왕권을 세우려 하지만, 장김 일족의 세도가 왕명으로 뒤집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하는 그런 슬픈 내용입니다.
부모와 친족의 무참한 죽음 앞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왕가의 신분을 속이고 잠저에 숨어 농사일로 소일하던 그. 철종의 나이 19세 때(1849), 헌종이 후사 없이 급 서거하자 6촌 안에 드는 왕족이 하나도 없던 관계로 느닷없는 허수아비 왕위에 오른 그는 순원왕후를 비롯한 안동 김씨 세도가의 교묘한 막후정치 속에 가련한 희생물이 되고 말았던 그 비운의 그가 은둔하며 살았던 잠저 용흥궁은 지금도 곳곳에 허름했고, 단청 없이 소박한 기풍만이 고요한 정적 속에 깔려 있었습니다. 다닥 다닥 부변의 허름한 주택들에 포위된 채 웅크리고 있는 철종의 잠저 용흥궁을 바라보니 왠지 모를 인생의 무상함이 느껴졌습니다.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철저하게 변신하여 '농사꾼으로 일생을 살려고 했던 철종~!" 이곳에서 잠시 비운의 역사와 반역의 역사, 유배의 역사, 권력 앞에 농락당하는 인간의 죽음과 삶의 역사에 대해 다시금 아픈 생각을 해봅니다. 이어 고려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면서 고려궁지 앞 길목에 위치한 천주교 인천교구의 진무영 순교성지에 잠깐 들렸습니다.
강화읍 북문길 고려궁지 밑에는 천주교인천교구 천주교강화성당(진무영순교성지)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인천교구 강화 성당 구내에 있는 진무영 순교성지는 조선시대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지라고 합니다. 강화가 천주교와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기해박해(1839년)를 겪으면서였습니다. 그동안 천주교의 유입이 육로가 주 경로였지만 경비와 기찰이 심해지자 해로를 선택한 것이지요. 이로 인해 강화도와 황해도 연안의 뱃길이 매우 중요한 경로였습니다. 병인년(1866년)부터 시작한 박해로 강화도에서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으나 진무영에서 현재 알려진 순교자로는 1868년 5월 22일 서울 애오개 회장인 최인서(崔仁瑞, 요한), 장주기(張周基, 요셉, 1803~1866) 성인의 조카 장치선이며, 박순집(朴順集, 베드로, 1830~1911)의 형 박 서방, 조 서방 등도 이곳에서 순교한 곳입니다. 금번 우리 용산성당에 묻혀계신 조선 초대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님 선종 180주기 추모 및 현양 대미사를 하면서 조선교구 초기의 역사에 대해 조금 눈을 뜨게 되었는데, 이곳 강화도 진무영 순교성지를 방문하면서 뭔거 더 뜨거운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천교구 강화도 성당에서 불과 100m에는 오늘의 목적지인 고려궁지가 위치해 있었습니다. 이 강화도 고려궁지는 사적 제133호로 지정되었는데, 1232년 고려고종 19년에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하여 왕도를 강화로 옮긴후 1270년 원종 11년에 다시 개성으로 환도할때까지 39년 동안의 왕궁터입니다. 고려궁지의 건물로는 본궁인 연경궁, 북동쪽의 강안전, 성마루터 북쪽의 경령궁, 옥림리 자문고개 서쪽의 건덕전, 동쪽의 장년전, 뒤쪽에 만녕전, 그리고 태묘전각과 대관전 마지막으로 신격전까지 규모가 방대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현재는 모두 소실되어없어진 상태입니다. 현재는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외규장각, 강화동종 등이 복원되어있습니다만, 아직도 발굴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라 외규장각(外奎章閣)의 뒷편 발굴작업지는 출입을 제한하고 있어서 더 이상 관람이 불가는했습니다.
외규장각(外奎章閣)은 조선 정조 때 왕실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설치된 곳으로 특히 왕이 친히 열람하는 어람용 의궤를 보관하던 곳입니다. 어람용 의궤의 표지는 특별하게 비단을 사용하고, 종이는 고급 초주지(草住紙)를 사용하였으며, 해서체로 정성들여 글씨를 쓴 다음 붉은 선을 둘러 왕실의 위엄을 더하였지요. 병인양요 때에도 외규장각에 보관중이던 은괴 19상자와 함께 프랑스 군의 눈을 자극한 것도 채색비단 표지에 선명한 그림으로 장식된 어람용 의궤들이었습니다. 외규장각은 1782년 2월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도서관으로 왕립도서관인 규장각의 부속도서관 역할을 한 곳입니다. 외규장각 설치이후 왕실이나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를 비롯해 총 1000여권 이상의 서적을 보관 하였으나, 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대부분의 서적이 약탈되었더나 불에타서 소실되어 버렸습니다.
외규장각은 1781년 정조가 강화도에 설치하여 왕실 관계 서적 1,000여 종, 6,000권 가량을 보관했었으나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당시 프랑스군에 의해 국보급 문화재에 해당하는 외규장각 의궤를 포함한 일부 서적이 약탈되고 나머지는 소실됐습니다. 한편 1975년 서지학자 박병선 박사에 의해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외규장각 도서가 처음 발견된 후, 한국 정부는 이 도서들에 대한 반환을 추진해 왔습니다. 이후 1999년 한국과 프랑스 정부 간의 반환 협상이 시작되었고, 미테랑 전(前) 프랑스 대통령이 2001년까지 외규장각 고문서를 반환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지지부진했다. 그러다가 2010년 3월 한국 정부는 약탈도서에 대한 영구대여 방식을 프랑스 정부에 공식 요청하였고, 이에 대해 11월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이 5년 단위 갱신의 대여방식으로 반환에 합의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2011년 4월부터 약탈해 간 294권의 조선왕실 의궤를 포함한 전체 297권의 외규장각 도서가 4차례에 걸쳐 국내로 돌아오게 되었지요. 어떻든 이 귀중한 이 문화재는 1김영삼 정부 때에 프랑스 故 미테랑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시 외규장각 1권을 먼저 갖고 오면서 물꼬를 텄으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쳐 계속 협상을 하다가 이명박 정부 때인 G20 정상 회담시에 당시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는 서구열강들이 문화재를 대하는 방식과는 정 반대로 '보편적 세계 문화재가 아닌 한국의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환을 추진했었다. 반환 형식은 영구임대가 아닌 5년마다 자동갱신 임대입니다. 현재 외규장각의 도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중이랍니다.
강화도 고려궁지에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소중한 역사 탐방을 한 것은 개인적으로 큰 소득이었습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 고려궁지 뜰에서 밖으로 내다보니는 언덕에 깨끗한 음식점 간판이 눈에 띄어 입장했는데, 강화도 토속음식으로 입맛에 딱 맞는 또다른 별미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고려궁지 뒷편의 성벽길을 향했습니다.
이곳은 얼마전 출근길 차량에서 들었던 아침 라디오 프로에 '내고장 자랑' 방송시 청취했던 바로 강화도 북문의 둘레길이었기에 더욱 반갑기 그지 없었습니다. "진송루(鎭松樓)"는 외적의 침입을 막는 성의 루각이었고 그 누각의 좌우측은 성벽으로 쌓여있었습니다. 진송루 안으로 들어가면 산책로 길이 잘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산책로는 심도역사 문화 길의 제1코스로 강화 버스터미널, 동문, 성공회 강화성당, 용흥궁, 고려궁지, 북제관묘, 강화향고, 은수물, 북문, 북장대, 오읍약수, 연미정, 옥계방죽, 갑곶성지, 갑곶돈대에 이르는 총 18km로 소요시간 6시간의 둘레길이었습니다. 단풍이 곱게물든 오솔길, 지져귀는 산새소리, 청솔모와 다람쥐 천국, 해안에서 불어오는 살알이는 바람, 진한 소나무 향기 등 정말 환상적인 코스였으나 시간 관계상 아쉽게고 일부만 거닐다가 돌아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절친한 친구랑 아름다운 추억을 가득 담고 돌아온 아주 뜻깊은 하루였습니다.
- 오늘의 일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