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망봉에서 바라본 한북정맥, 멀리 가운데는 운악산
江山 푸른 풀은
이제 밤 細雨요
산중에 새로 핀 꽃은
사흘 東風이라
아마도 春光이 正當其時하니
술 걸러 실어라
―― 『三家樂府』에 나오는 「春河自歌」라는 작자 미상의 시
▶ 산행일시 : 2023년 5월 13일(토), 맑음
▶ 산행인원 : 7명(악수, 버들, 메아리, 하운, 애산(愛山), 도자, 해마)
▶ 산행코스 : 이동, 생수공장 갈림길, 국망봉 대피소, 국망봉, 견치봉, 1,041m봉, 용수목
▶ 산행거리 : 도상거리 12.1km
▶ 산행시간 : 8시간 26분
▶ 갈 때 : 동서울터미널에서 사창리 가는 시외버스 타고 이동에서 내림
▶ 올 때 : 용수목에서 15-5번 버스 타고 가평터미널로 와서, 저녁 먹고 택시 타고 가평역에 와서,
전철 타고 상봉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6 : 50 – 동서울터미널
08 : 00 – 이동터미널, 산행시작(08 : 18)
08 : 55 – 생수공장 갈림길, 국망봉 입구
10 : 00 – 이정표(육백지점), 국망봉 정상 1.9km
10 : 47 – 국망봉대피소
11 : 32 – 국망봉(國望峯, △1,168.1m), 점심( ~ 12 : 50)
14 : 30 – 견치봉(犬齒峰, 개이빨산, 1,119m)
15 : 00 – ┫자 능선 분기봉, 1,041m봉
16 : 06 – 임도, 용수목 1.5km
16 : 17 – 계곡, 휴식( ~ 16 : 30)
16 : 44 – 용수목 버스종점, 산행종료
18 : 10 – 버스 출발
18 : 52 – 가평, 저녁( ~ 20 : 40)
21 : 53 – 상봉역
2. 국망봉 산행지도(1/50,000)
이동 택시부는 주말이면 아침부터 군인들 면회객을 실어 나르느라 무척 바쁘다. 우리를 태울 여유가 없다. 국망봉
들머리인 국망봉 등산안내도가 있는 생수공장 갈림길까지 걸어간다. 도로 2.5km거리다. 그렇지만 이 길이 싫지만
은 않다. 동네 고샅길을 걷다 보면 울밑에 심은 화초가 반기고, 그 너머 개 짖는 소리도 정겹다. 농로에서는 가리산
과 그 앞 신로봉 능선의 첨봉인 뭇 봉들이 가깝게 보여 저절로 손바닥에 땀이 괸다.
국망봉 등산안내도 있는 데서 등로를 찾느라 올 때마다 더듬거린다. 안내도 뒤쪽의 너른 공터는 사유지인지 철조망
을 치고 막았다. 그 오른쪽 풀숲에 소로가 보여 냉큼 들었으나 곧 뚱딴지 밭이 나오고 잡목과 덤불숲에 갇히고 만다.
허리 잔뜩 구부려 잡목 숲 헤치고 산기슭 쪽으로 가면 수로가 나오고 바로 등로다. 수로 따라 간다. 수로 넘어 계류
를 사방댐 둑으로 건너거나 계류 암반으로 내려 건너고 풀숲 헤치면 국망봉 자연휴양림 매표소를 통과하여 오는
잘난 길과 만난다.
이 길을 가려고 자연휴양림 매표소에 통과세로 일인당 2,000원을 내기란 좀 억울하다. 등로는 계곡 옆을 길게 돌다
산비탈 0.1km를 오르면 임도와 만나고 그 건너로 이정표가 계단 길 오름을 안내한다. 국망봉 정상 2.7km. 사람의
기억이란 묘하다. 여기를 올 때면 그 지겨운 길고 가파른 오르막에 비지땀을 쏟기에 다시는 이 길을 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그때를 까맣게 잊고 또 오곤 한다.
어쩌면 올 때마다 다른 산 다른 길이여서인지도 모른다. 시절이 다르고 시기와 일기가 다르고, 나 또한 생각도 근력
도 그때와 다르다. 이 길 말고도 이동에서 국망봉을 오르는 길은 크게 세 갈래 길이 더 있다. 신로봉 능선과 장암계
곡, 우리가 오른 등로 오른쪽 골짜기 건너 능선이다. 이 길이 가장 짧은 코스다. 우리는 세 피치로 오른다. 첫 번째
피치는 육백지점까지다. 장의자 놓인 쉼터다. 입산주 탁주 나눈다. 도자 님이 손수 담근 오디 명주다. 겨우(?) 2리터
를 가져왔는데 마시다 말았으니 입맛만 버렸다.
두 번째 피치는 국망봉대피소까지다. 암릉 길도 나오고 암릉 피해 사면을 돌기도 한다. 등로에서 살짝 벗어난 전망
트인 절벽에 다가간다. 미세먼지가 많이 끼였다. 오늘은 가리산 조망처다. 국망봉대피소는 빈 페트병이 널린 쓰레기
장이다. 산에 온다는 사람들이 여기다 쓰레기를 버릴 생각을 하다니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세 번째 피치가 가장 힘
든 험로다. 국망봉 정상 0.8km. 곧추선 오르막이다. 아마 국망봉을 오르는 모든 코스 중에서도 하이라이트 구간일
것이다.
이 구간 등로 옆에 애기송이풀 군락지가 있다. 작년 이맘때 처음 보고나서 알게 되었던 애기송이풀이다. 오늘 와서
보니 작년에 보던 곳 이외에도 근처에 더 있다. 애기송이풀(Pedicularis ishidoyana Koidz. & Ohwi)은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며 희귀식물(산림청)과 멸종위기야생생물Ⅱ급(환경부)으로 지정되어 있다. 오늘 국망봉을 온 이유 중
하나가 이 애기송이풀을 보기 위해서다. ‘송이풀’은 꽃대 끝에 달린 여러 개의 꽃이 한 덩어리를 이루어 피는 풀이란
뜻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는데, 그와 한 종류인 ‘애기송이풀’은 ‘애기’처럼 작고 귀엽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3. 자주달개비
4. 신로봉 전위봉
5. 가리산
6. 가리산과 신로봉 전위봉(오른쪽)
7. 신로봉 전위봉, 그 오른쪽 뒤로 신로봉이 보인다, 그 오른쪽 안부는 신로령
8. 가리산
9. 애기송이풀
애기송이풀의 내력에 대해서 더 얘기하자면,
“북한에서는 ‘애기송이풀’을 ‘천마송이풀’이란 국명을 정명으로 한다. ‘천마에 나는 송이풀’이란 뜻인데 ‘천마’는
송이풀의 기준표본 채집지인 경기도 개성의 천마산(天摩山)에서 따 온 것이다. 일본명은 보쿠엔시오가마(ボクエン
シオガマ)라 하고, 영문명은 ‘Radical-flower lousewort’라고 하는데 뿌리에서 곧바로 꽃이 생겨 나오는 송이풀의
한 종류란 뜻이다.”(한겨레:온, 이호균의 풀ㆍ꽃ㆍ나무이야기, 2020.8.10.)
일본명 보쿠엔시오가마(ボクエンシオガマ)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어렵다. 이를 분해하면 ‘보쿠(ボク, 僕)’는
‘나’ 또는 머슴, 하인이라는 뜻이 있고, ‘엔(エン, 艶)’은 ‘요염’을 뜻한다. 그리고 송이풀의 일본명은 시오가마기쿠
(シオガマギク, 塩竈菊, 염조국)이고, 나도송이풀은 고시오가마(コシオガマ, 小塩竈, 소염조)이다. ‘고(小)’는
‘작은’, ‘시오가마(塩竈)’는 현삼과 송이풀속 식물의 총칭(總稱)이다. 억지로 꿰맞추자면 ‘나도 요염한 송이풀’이란
뜻일까?
“일본 식물학자 이시도야 츠토무(石戶谷勉)는 1936년 5월 17일 경기도 개성의 천마산(天摩山)에서 애기송이풀을
처음으로 채집하여 일본에 보내고, 이 표본을 기준으로 1937년 쿄토대 식물학 교수 고이즈미 겐이치(小泉源一)와
그 제자인 오오이 지사부로(大井次三郎)가 “Pedicularis ishidoyana Koidz. & Ohwi”라는 학명으로 발표한다.”
“이리하여 한국 특산종 애기송이풀은 비로소 출생 신고되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된다. 속명 ‘Pedicularis’는 기생충
이[蝨]를 뜻하는 라틴어 'pediculus'에서 온 말이다. 옛날 유럽에서는 이 송이풀속의 일종인 'Pedicularis
palustris'가 무성한 곳에 가축을 방목하면 이가 많이 꼬인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종소명 ‘ishidoyana’는
‘이시도야의’라는 뜻인데 채집자 이시도야 츠토무(石戶谷勉)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붙인 것이다.”
(한겨레:온, 위의 글 계속)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애기송이풀 학명에 일본 식물학자 세 명이 이름을 올렸다. 우리는 강토만 일본에 강점당한 게
아니라 식물 한 포기 한 포기도 강점당했다. 강토는 그 이름을 되찾을 수 있지만 식물은 그 이름(학명)을 그네들이
작명한 대로 영속된다. 분한 노릇이다.
가파른 돌길을 핸드레일 꼭 붙들고도 땅에 코 박고 오른다. 마치 바위 슬랩을 오르는 것 같다. 국망봉은 봄이 아직
이르다. 작년에는 여기서 활짝 핀 큰앵초를 보기도 했다. 국망봉. 너른 공터에 따스한 햇살이 가득하다. 우리말고도
국망봉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많다. 일단 사방 둘러 일람한다. 미세먼지가 심하게 끼였다. 흐리하게나마 원경을
짐작한다. 그중 가경은 운악산까지 이어지는 한북정맥이다. 신록이 눈부시게 환하다.
국망봉 정상 표지석과 나란히 기념사진 찍는다. 오늘 처음 나오신 애산(愛山) 님도 함께 찍는다. 하운(夏雲) 님 친구
인 애산 님은 ‘산 사랑’이 각별하여 그렇게 별명을 지었다. 산행 대한 이력과 능력이 출중하여 앞으로 여러 사람
긴장하게 할 것 같다. 국망봉 정상을 약간 벗어난 그늘진 공터에 점심자리 편다. 근처에 백작약을 찾으러 갔다가
백작약은 찾지 못하고 곰취를 몇 잎 솎아왔다. 산상진미다. 훈제오리고기다. 대체 곰취 쌈에 맞지 않은 고기가 있기
나 한지 의문이다. 물론 맨밥 쌈도 맛있다.
자유산행이다. 견치봉에서 모이기로 한다. 카프의 맹장이었던 박영희(朴英熙, 1901~ ?)가 그랬다. “잃은 것은 예술
이요,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다”라고. 그런데 나중에 친일로 돌아선 것을 보면 그가 얻은 이데올로기도 변변찮았다.
내가 그 식이다. 잃은 것은 산이요, 얻은 것은 물욕이다. 옛날 생각하고 생사면을 누빈다. 능선 마루금을 걷다가 조
망 트일 바위를 만나면 당연히 올라 산천경개 바라볼 터인데, 당분간이지만 산나물에 욕심이 동하여 산을 잃는다.
그래도 참꽃마리(덩굴꽃마리인지도 모르겠다)와 당개지치를 본다. 당개지치는 지난 번 곰배령 가는 길 풀숲에서
처음 보고 알게 된 이후 자주 눈에 뜨인다. 그 이름 내력이 재미있다. 뿌리에 색소가 없어 염료로는 쓰이지 못해
‘개’지치이고(지치의 뿌리는 자주색 염료로 쓰인다)는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하여 ‘당(唐)’개지치라고 한다. 작년에
보았던 백작약은 아무데도 없다. 지쳤다. 다 그만 두고 박새 숲을 헤쳐 능선을 오른다.
12. 국망봉 정상에서 조망, 멀리 왼쪽은 운악산
신록이 눈부시다
13. 멀리 오른쪽은 복주산, 그 왼쪽 뒤로 대성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14. 가리산
15. 화악산
16. 국망봉 정상에서
18. 큰앵초
19. 국망봉 정상은 아직 봄이 이르다
20. 큰앵초
21. 참꽃마리
견치봉이 가깝다. 견치봉(개이빨산)이란 이름은 아마 주변의 봉봉이 개이빨처럼 날카로워서가 아닐까 한다. 희미한
인적 쫓아 살금살금 봉봉을 오른다. 국망봉 아래 봉봉의 봄 빛깔이 지금 이 시각(春光이 正當其時한) 가경이다.
진작 견치봉에 오른 일행이 ‘모든 게 다 해결되었으니 그만 돌아오라’고 외쳐 부른다. 철쭉 연분홍 꽃잎이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산길이다. 오붓하다. 이럴진대 소백산 철쭉이라고 이보다 더 대단할 것 같지 않다.
견치봉. 휴식한다. 가쁜 숨 고른다. 견치봉에서 왼쪽 능선은 용수목으로 가지만 우리는 더 간다. 방금 전에 생사면을
누비다가 하도 혼쭐이 나서 분위기 좋은 데가 보이지만 아서라 하고 그냥 지나친다. 얌전히 등로 따라 봉봉을 왼쪽
사면으로 돌아 넘는다. 1,041m봉. ┫자 능선 갈림이다. 왼쪽 능선은 견치봉에서나 민둥산(민드기봉)에서처럼 등로
가 뚜렷하지 않지만 용수목으로 간다. 우리는 처음 이 능선을 간다. 이 능선도 어엿한 지정탐방로다. 가파른 데는
핸드레일 밧줄을 설치했다.
쭉쭉 내린다. 철쭉꽃이 한창이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를 흥얼
거리면 내린다. 뒤에 오던 도자 님의 환성이 온 산을 울린다. 도자 님이 덕순이 할당을 했었다. 나더러는 4수를,
메아리 대장님에게는 5수 등. 그러나 여태 빈 눈이었다. 그랬던 도자 님이 접신을 한 것이다. 자기의 간절한 기도가
감응했다고 한다. 대물 2수를 포함하여 6수를 주더란다. 하늘 가린 숲길 걷는 발걸음이 한결 가뿐하다.
덕순이를 친견하고자 바위에 걸터앉아 휴식한다. 산새 한 마리가 우리 주위를 맴돈다. 우리가 먹을거리라도 내놓을
줄 아는 모양이다. 그러다 소나무 가지에 앉아 무어라 지저귄다. 한편, 김일로(金一路, 1911~1984)가 <춘 25>에서
읊은 시 그대로다.
소나무
가지 끝에
달랑
앉아
봄맞이 노래로
해지는 멧새
쭉쭉 내린다. 임도가 나온다. 임도 따라 왼쪽 산모퉁이로 가면 등로는 능선으로 이어진다. 계류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소리부터 시원하다. 이윽고 울창한 소나무 숲길 벗어나고 계곡이다. 배낭 벗어놓고 수대로 세면탁족한다.
서둘러 발을 물에 담갔으나 불과 몇 초를 견디지 못하고 빼기를 반복한다. 머리끝까지 얼얼하다. 전원주택 돌아내리
면 너른 도로다. 현종사를 들르지 않고 내린다. 산기슭에는 양풍의 펜션이 자리 잡았다.
용수목 버스종점. 주변은 펜션 촌이다. 가평 가는 버스는 18시 10분에 있다. 1시간 넘게 남았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산에서 더 오래 머물렀어야 했다. 버스 출발시간이 임박하자 손님들이 모여든다. 줄선다. 버스는 꽉 찬다. 버스는
택시처럼 달린다. 가평터미널에 내려 우리 단골음식점으로 간다. 주인아주머니가 반긴다. 저녁은 삼합(덕순주, 삼겹
살, 곰취)이다. 서울 가는 얼근한 엷은 졸음에 언뜻언뜻 떠올리는 산길이 그립다.
23. 견치봉 주변
24. 당개지치
26. 철쭉
27. 명지산, 그 오른쪽 뒤는 연인산
28. 왼쪽은 귀목봉, 오른쪽 멀리는 운악산
29. 하산 숲길
30. 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