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시편 9:9-14
제목: 여호와의 이름을 알고 의지합니다
● 기독교는 참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의지하며 믿는 신앙입니다.
시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Those who know your name)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시20: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하느님 야훼의 이름을 믿사옵니다) 잠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공동번역: 야훼의 이름은 튼튼한 성루)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안전한 피신처)을 얻느니라 |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하고 부르느냐는 우리의 신앙과 삶의 태도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야훼(Yahweh)’와 ‘여호와(Jehovah)’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동일한 이름입니다. 다만 발음과 표기 방식이 다른 겁니다. 구약성경에서 ‘여호와’라는 거룩한 이름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계시하여 보여주신 최고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을 계시하는 그 어떠한 새로운 이름도 이 위대한 성호보다 더해진 적이 없습니다. 여호와는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유일하고 참된 진짜 이름이며(출 15:3; 시 83:18; 호 12:5; 사 42:8), 이 이름은 피조물인 세상의 그 누구에게도 결코 부여되거나 사용된 적이 없는 오직 하나님만의 독특한 이름입니다. 성경에서 이 명칭의 축약된 형태인 ‘-야’는 특히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기 위한 이름이나 거룩한 찬사 표현과 결합하여, 우리가 잘 아는 ‘할렐루야’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한 독립적인 형태로 사용되기도 하고(출 15:2; 시 68:4; 89:8; 94:7, 12; 사 26:4; 38:11), 때로는 ‘여호와’ 본래의 이름과 중복 결합하여 그 찬양의 깊이를 더해 주기도 합니다(사 26:4). 성경을 보면 ‘주(아도나이) 여호와’라는 은혜로운 조합 역시 매우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예를 들어 겔 22:12). 특별히 이 ‘야훼’(여호와)라는 거룩한 이름이 ‘체바오트’라는 단어와 결합하게 될 때, 그 신학적 의미와 하나님의 신성한 위엄은 극대화되어 더욱 강력하게 강화됩니다(개역개정- 만군의 여호와; 삼상 1:3, 4, 11; 시 69:6; 80:4; 84:1; 84:8; 사 1:24; 암 9:5; 학 2:7-9). 그러나 사실 이 ‘체바오트’라는 표현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기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혹자는 이것을 단순히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나 피투성이의 군대로 해석하기도 하고, 혹은 대안적으로 전체 우주의 권세들과 피조 세계의 요소들을 포함하는 하늘의 수많은 별들과 연관 지어 설명하려 시도하기도 합니다(창 2:1; 시 103:21; 사 34:1-2에 호소). 하지만 이러한 단순한 물리적 군대로 해석하는 것은 그리 적절하지 않은데, 성경의 복잡하고 다양한 여러 정황 속에서 나타나는 용례들을 온전히 다 설명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리’(hosts, 개역성경에서는 ‘만군’으로 번역함)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보좌를 호위하는 거룩한 천사들로 간주했던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해석이 가장 최선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해석이야말로 성경 본문 곳곳에서 강력하고 지속적인 지지를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Lord of hosts)라는 이름은 천사적 존재들과 연관되어 성경 전체에 걸쳐 반복적으로 사용되었으며(삼상 4:4; 삼하 6:2; 사 37:16; 호 12:5-6; 시 80:1, 4-5; 89:5-8), 이 거룩한 천사들은 흔히 하나님의 높고 존귀한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 ‘무리’(host)의 형상으로 그려지곤 했습니다(왕상 22:12-13; 32:1-2; 수 5:14; 왕상 22:19; 욥 1:6; 시 68:17; 89:8; 103:21; 148:2; 사 6:2). 통상적으로 성경은 이 천사의 무리를 단수 형태의 집합체로 말하지만, 동시에 반복적으로 천사의 수많은 무리들(복수)에 대해서도 풍성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왕상 33:2; 신 33:2; 시 68:17; 148:2). 이것은 이 명칭이 내포하고 있는 본래의 의미와 매우 온전하게 들어맞습니다. 왜냐하면 이 거룩한 이름 속에는 세상적이고 호전적인 폭력성이나 파괴적인 전쟁에 대한 암시가 전혀 없으며(이러한 암시는 삼상 4:4, 17:45; 삼하 6:2에서도 결코 추론될 수 없습니다), 오직 언제 어디서나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만을 찬란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신 33:2; 왕상 22:19; 시 24:10; 사 6:2; 24:23; 슥 1:14; 14:16). 천사들은 하나님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δόξα, 독사)에 온전히 속한 존재들로서, 주님의 그 크신 영광을 높이고 온 천지에 확장하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합니다(마 25:31; 막 8:38; 살후 1:7).
● 성경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만군의 여호와(야훼 체바오트)’는 참된 위엄과 영광으로 충만하신, 영원한 왕 하나님의 장엄하고 거룩한 성호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여러 하나님의 이름 가운데 ‘엘로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을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자 보존자로 우리에게 제시해 줍니다. 그리고 ‘엘 샤다이’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능력의 주님으로서 만물과 자연으로 하여금 그분의 은혜로운 뜻에 기여하도록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나아가 ‘여호와’(야훼)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은혜 안에서 영원토록 신실하게 지키시고 머무시는 성실의 하나님이심을 묘사합니다. 그 중에서도 ‘여호와 사바옷(야훼 체바오트)’는 하나님을 당신의 영광이 충만한 가운데 계시는 존귀한 왕으로, 찬란하게 대열을 맞춘 수많은 천사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전능하신 이로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으로, 그분의 거룩한 성전에서 모든 피조물로부터 한없는 존경과 환호를 받으시는 최고의 통치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신약성경에 이르러서도 구약이 선포하던 이 모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과 속성들은 하나도 버려지지 않고 완벽하게 보존되었습니다. 구약의 ‘엘’과 ‘엘로힘’은 헬라어 ‘하나님’(θεός(테오스)으로 번역되었으며, ‘엘룐’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ὕψιστος θεός(흪시스토스 테오스- 막 5:7; 눅 1:32, 35, 76; 8:28; 행 7:48; 16:17; 히 7:1; 참조.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ἐν ὕψιστοις θεῷ, 엔 흪시스토이스 테오)로 아름답게 승화되어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혹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같이 역사 속에서 살아 숨쉬던 친밀한 명칭들도 신약성경으로 그대로 이어졌습니다(마 22:32; 막 12:26; 눅 1:68; 20:37; 행 3:13; 7:32, 46; 22:14; 24:14 등).
| 마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the God of the dead but of the living) 하시니 |
신약시대에 이르러 성도들은 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더욱 깊은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수식어들은 “나의”, “너의”, “우리의”, “너희의”라는 인격적이고 고백적인 소유격 표현으로 대체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참된 '하나님 아버지'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히 8:10; 계 7:12; 19:5; 21:3). 구약의 가장 거룩한 성호였던 ‘여호와’는 신약의 요한계시록 등에서 “알파와 오메가”,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 “시작과 끝”,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웅장한 표현들로 선포되었습니다(계1:4, 8, 11 [제네바성경], 17; 2:8; 21:6; 22:13). 그 외의 수많은 본문에서는 경외함으로 야훼를 직접 부르지 못하고 '아도나이'로 바꾸어 읽던 구약 70인역(LXX)의 경건한 전례를 따라 ‘주’(Κύριος, [κύρος, 능력]에서 유래)로 번역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여기서 ‘퀴리오스’(Κύριος)는 능하신 이, 만유의 주님, 절대적 소유자, 그리고 법적으로 최고 권한과 통치권을 행사하는 영원한 통치자를 의미합니다. 이는 권력을 단순히 실제로 행사하는 자를 가리키는 데스포테스(δεσπότης, 세상에서의 상전/주인)와도 구별되는 거룩한 칭호입니다). 이러한 ‘주’(主)라는 명칭은 신약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성부)와 성자 예수 그리스도 모두에게 풍성하게 적용되었습니다. 구약의 ‘야훼 엘로힘’과 ‘야훼 엘로힘 체바오트’의 조합 역시 ‘주 하나님’(눅1:16; 행7:37; 벧전3:15; 계1:8; 22:5)과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계4:8; 11:17; 15:3; 16:7; 21:22)라는 위엄 있는 찬양으로 재탄생합니다. 롬9:29와 약5:4 같은 말씀 속에서는 히브리어 ‘체바오트’가 번역되지 않은 음역 상태 그대로 남아 있어(NASB, KJV 등), 구약의 전통과 그 깊은 의미를 우리에게 되새겨 주고 있습니다.
● 이 묵상을 읽고 혹시 ‘여호와? 만군의 여호와? 너무나 당연하고 흔한 내용 아니냐?’고 의문할 분이 있을 수 있는데요. 만군, 여러 다수의 무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그림을 생각하시면 이 글의 논지가 잡힐 겁니다. 먼저는 천사들이고 다음은 성도들이지만, 만군(hosts)으로 무리를 지어 창조자 하나님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있다고 고백하는 천상의 잔치를 믿음으로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나와 하나님 사이의 개인적 관계를 넘어서 나 포함 모든 영적 존재들, 더 나아가 만물들(피조물) 모두가 자존자(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적합한 호칭이 ‘만군의 주(여호와 사바옷)’임을 믿음으로 체감하시기를 강권합니다.
시103:22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통치하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찬양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145:10 여호와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들이 주를 송축하리이다 시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계5: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
이 주일에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이름(여호와)을 온 마음을 다해 예배하며 그분의 높으신 이름을 높이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댓글 헤르만 바빙크의 야훼 체바오트를 읽고 풀어쓴 묵상입니다. 초신자는 본문만 읽으셔도 되고요. 여력이 되시는 분들은 아래 추가 설명을 읽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호크마 주석: 시편>
=====9:9
산상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스가브'(* )는 '높은 곳에 위치한 요새'를 의미한다. 이곳은 적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시편 전체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상징한다. 다윗은 본 구절의 내용을 노래함으로써 하나님의 양면성을 표현해 주었다. 즉, 악인에 대하여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재판장이 되시는 동시에 당신을 의지하는 겸손한 자에 대하여는 인자하신 보호자가 되신다는 양면적 진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9:10
주의 이름을 아는 자 - 이는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사는 자, 또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와 동행하는 자를 의미한다(Kraus). 왜냐하면 '알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야다'(* )는 체험적 지식을 가리키는 인간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가진 상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 '의지하다', '찾는다'는 말은 특별히 위기를 맞이했을 때 하나님 안에서 피난처를 찾는 믿음의 행위를 의미한다. 다윗은 사울 왕의 핍박하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았으며, 그러한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안전하신 보호를 체험하였다. 이러한 체험에 근거하여 그는 본 구절의 말을
담대하게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37:28). 그리고 특히 본 구절에 사용된 두 동사(의지하다, 찾다)는 앞에서 사용된 '알다'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9:11
백성 중에 -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모든 이방 나라들 중에'라는 말이다(Rawlinson, Kraus). 다윗은 하나님의 계시가 이스라엘 내에서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나라, 모든 백성들에게까지도 알려져야 한다고 믿은 것이 분명하다(18:49;66:4;72:11, 19).
선포할지어다 - 다윗은 3-10절에서 하나님을 찬송할 이유를 밝힌 후 자기의 동족들에게 하나님을 함께 찬송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9:12
피흘림을 심문하시는 이 - 피흘림 당한 자들을 위해 보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생명의 근원인 피를 취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보복하시는 것은 당연하다(창 4:10;9:5). 여기서 '심문하시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라쉬'(* )는 보통 '찾다'라는 뜻이지만, 생명을 취한 자들에게 사용되었을 경우, '보복하다' 또는 '생명을 취한 대가로 생명을 요구하다'라는 뜻을 가진다(TWOT).
저희를 기억하심이여 -
여기서 '저희'는 환난 때에 여호와를 의지하며 찾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악인에 대해서는 보수(報讐)하시나 겸손히 그를 의지하고 찾는 자들은 환난 중에 기억하셔서 구원하신다. 여기에 하나님의 양면성이 암시되어 있다.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 하시도다 - '가난한 자'란 문자 그대로 '가난한자'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은유적인 표현으로는 원수들에게 압제당하는 자, 고통당하는 자까지도 포함하는 말이다(Rawlinson, Kay).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9:13
찬송의 분위기에서 기도의 분위기로 바뀌는 전환점이다.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 다윗은 3-6절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 곧 원수들을 물리치게 하신 과거의 경험을 노래한 바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다윗은 이 당시 당연히 원수들의 압제에서 자유로운 몸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본 구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다윗이 과거의 경험으로 되돌아가 그때의 심정으로 이와 같이(13-20절) 기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Kraus). 하지만 그의 기도의 간절성으로 볼 때 본 기도는 현재의 고통에서 건져달라는 기도인 것으로
보인다(Calvin, Rawlinson). 즉, 다윗은 과거의 놀라온 체험으로 어느 정도 원수로부터 자유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껏 그를 위협하는 세력들이 그 주변에 잔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위기중에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망의 문 - 14절의 '시온의 문'과 대조되는 어구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도 섬길 수 없는 죽음(음부)의 세계를 의미한다(107:18;욥 38:17). 음부에 대해서는 6:5 주석을 참조하라.
=====9:14
딸 같은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 '딸 같은 시온'은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따라서 이 말은 '시온의 딸'로 번역되어야 자연스럽다. 일반적으로 '시온의 딸'은 예루살렘을 의미한다(Craigie, Rawlinson). 이렇게 볼 때 본절은 예루살렘에서 집회를 열고 주를 찬송하며 경배하겠다는 의미를 지닌다.
늘 좋은 설명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만군의 주 <영> Lord of Hosts; <히> 야웨 체바오트; <헬> 퀴리오스 사바오드
하나님의 명칭 가운데 하나. 하나님께서 만물의 창조자와 만군의 통치자가 되심을 나타내는 명칭이다(사 37:16 , 40: 26). 구약 삼상 1:3에 최초로 나오는 만군의 여호와는 하늘 보좌에 앉으시고(왕상 22:19) 언약궤 위 그룹 사이에 좌정하실 뿐 아니라(삼하 6:2), 또한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삼하 5: 10 시 46:7-11). 그리고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구속주 하나님 (삼상 17:45 ; 사 44:6으로서, 영광의 왕「시 24:10 이시요, 능하시고(시 89:8) 공평하시고 사5:16) 지혜로운 (사28:29)분이시다. 신약에서는 만군의 주라는 명칭으로 롬9:29과 약3:4에 2번 나온다. (->만군)
출처: <아가페 성경사전>
이 묵상의 논지와 질 연결되네요.
여호와 (<영> Yahweh)
언약의 하나님을 나타내는 칭호. 성경 기사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불이 붙은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와 대면했을 때 그 자신을 계시하여 주신 이름이다(출 3:14). (→하나님[God])
출처: <아가페 성경사전>
아멘 🙏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천이다 아멘22
신앙의 출발은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I AM)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여호와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
출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 한분만이 ‘스스로 있는 자’ 즉 여호와이십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한분 하나님이시고 한 본질이십니다. 그 한 본질의 이름이 여호와입니다. 위격은 3 위격들로 구분되지만 한분이신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신데, 예를 들어, 성자의 위격이신 예수님도 여호와의 이름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i Am 이 가장 확실한 뜻 같습니다.
초신자나 교리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하여 이와 관련하여 칼빈의 설명을 한 번 더 인용해 올립니다. 기독교강요의 내용입니다.
--------------------------------
믿음에서 비롯되는 기도도 그리스도께 드려지고 있다. 하나님께 무언가 드려야 할 것이 있다면 기도야말로 특별히 하나님의 위엄에 속하는 것이다. 선지자는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욜 2:32)라고 말씀하며, 또한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 18:10)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있으니, 결국 그가 여호와이신 것이 되는 것이다. ← 『기독교강요』, 1.13.13.
아멘!
욜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칼빈은『기독교강요』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고 그리스도가 여호와이신 것이라고 합니다. 신약교회의 성도들이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을 얻고(욜2:32) 안전함을 얻는 것(잠18:10)은 애3:55(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너무 어려워서 심히 깊은 구덩이에 빠졌을 때에조차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신앙은 구약교회와 신약교회 모두의 성도들이 행하는 절실하고 진실한 기도입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4절, 8절, 11절의 제네바 성경(Geneva Bible, 1560/1599) 및 KJV(King James Version, 1611) 영문 본문입니다.
Revelation 1:4
* Geneva Bible (1560):
> John to the seuen Churches which are in Asia, Grace be vnto you, and peace from him, Which is, and Which was, and Which is to come, and from the seuen spirits which are before his throne,
* KJV:
> John to the seven churches which are in Asia: Grace be unto you, and peace, from him which is, and which was, and which is to come; and from the seven Spirits which are before his throne;
Revelation 1:8
* Geneva Bible (1560):
> I am Alpha and Omega, the beginning and the ending, saith the Lord, Which is, and Which was, and Which is to come, euen the Almightie.
* KJV:
> I am Alpha and Omega, the beginning and the ending, saith the Lord, which is, and which was, and which is to come, the Almighty.
Revelation 1:11
* Geneva Bible (1560):
> Saying, I am Alpha and Omega, the first and the last: and that which thou seest, write in a booke, and send it vnto the seuen Churches which are in Asia, vnto Ephesus, and vnto Smyrna, and vnto Pergamos, and vnto Thyatira, and vnto Sardis, and
Philadelphia, and unto Laodicea.
제네바는 개혁주의가 킹제임스는 세대주의자가 많이 보는데 번역 결과는 의외로 비슷하네요.
@노베 공감합니다.
엘론? 엘룐?
구약성경의 히브리어 및 신약성경의 헬라어 용어를 한국어로 표기할 때 발생하는 차이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엘룐'이 원어(히브리어) 발음에 맞춘 올바른 표기이며, '엘론'은 한글 성경 번역 과정에서 일부 음역이 번안되거나 오해되어 쓰인 표기입니다.
히브리어 원어: 엘룐 (Elyon / עֶלְיוֹן)
* 뜻: '지극히 높으신 분', '최상의' (Most High)
* 하나님의 성호 조합: 보통 단독으로 쓰이거나 하나님을 뜻하는 '엘(El)'과 결합하여 '엘 엘룐(El Elyon,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 쓰입니다.
* 성경 구절 예시 (창세기 14:18):
>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엘 엘룐)의 제사장이었더라.
왜 '엘론'이라는 표기가 등장했을까?
1. 영어 및 라틴어 표기의 영향: 히브리어 '엘룐(Elyon)'이 영어권으로 넘어가면서 *Elion*, *Elyon* 등으로 표기되었고, 이를 한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엘론'으로 와전되어 쓰이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2. 성경 번역의 차이: 한국 성경(개역개정 등)에서는 이 단어를 음역(엘룐)하기보다 뜻을 풀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 번역했습니다. 신약성경(헬라어)에서도 이를 '흪시스토스 테오스(ὕψιστος θεός)'로 번역해 사용했습니다.
3. 다른 인명/지명과의 혼동: 성경에는 '엘론(Elon)'이라는 별개의 인물(창세기 26:34의 헷 족속 엘론, 사사기 12:11의 사사 엘론)이나 지명이 등장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호인 '엘룐(Elyon)'을 '엘론'으로 적으면 다른 단어와 혼동될 수 있습니다.
요약
하나님의 성호('지극히 높으신 하나님')를 뜻하는 표기는 '엘룐'이 정확합니다.
네, 잘 참고하고 공감합니다.
천사들은 하나님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δόξα, 독사)에 온전히 속한 존재들로서, 주님의 그 크신 영광을 높이고 온 천지에 확장하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합니다
천사들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δόξα, 독사)에 속하여 그분의 영광을 높이고 선포하는 대표적인 성경 구절들입니다.
* 마태복음 25:31 (인자의 영광과 천사들)
>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 마가복음 8:38 (아버지의 영광과 거룩한 천사들)
>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 데살로니가후서 1:7 (능력의 천사들과의 나타나심)
>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 요한계시록 7:11-12 (천사들의 영광 찬양)
>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서성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 이사야 6:3 (스랍 천사들의 영광 선포)
>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 누가복음 2:14 (기쁜 소식을 전하는 천군천사)
>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아멘!
하나님의 이름의 각 의미들을 세세히 풀어준 은혜로운 묵상입니다.
이름에는 고유한 뜻들이 있는데 그 의미를 알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이해할 수 있으니 매우 은혜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원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의지하며, 나아가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고, 의인들이 안전함을 얻게 되는 이름이라는 시편과 잠언의 말씀들이 능력을 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엘, 엘로힘(창조주) 여호와(구원자), 아도나이(주 여호와), 엘룐(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야훼 체바오트(만군의 여호와)와 같은 이름들이 신약에서 번역 계승되었다는 것에서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볼 수 있네요. 특히 만군의 여호와라는 의미는 수많은 천사들의 무리가 하나님을 둘러싸고 호위하고 있음을 나타낸다는 것에서 하나님의 위엄과 또한 우리들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악한 자들을 물리치실 때 적들이 얼마나 혼비백산하며 물러가겠는가를 상상하니 즐겁기까지 합니다. 큰 위엄과 영광 속에서 자신을 나타내시고 호령하시는 하나님, 모든 피조물을 무릎 꿇게 하시며, 모든 천사들과 성도들이 함께 찬송을 드리며 영광을 돌려드리는 광경을 상상하니 마음이 웅장해집니다. 할렐루야!!
깊고 풍성한 댓글에 매우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
하늘과 땅, 해와 달, 그리고 수많은 천사들과 모든 피조물이 함께 하나님을 높이는 장엄한 찬양이 가슴을 뜨겁게 울립니다.
우리를 만드시고 통치하시는 창주주의 그 크신 영광 앞에 오직 감사와 찬송을 올릴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오늘도 호흡이 있는 모든 순간마다 만물의 주인이신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을 목소리 높여 찬양하는 복된 날이 되길 소망합니다.
아멘!
개인과 하나님의 1대 1 관계를 넘어, 모든 천군 천사와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만군의 여호와(여호와 사바옷)'의 웅장한 영적 의미를 선명하게 깨닫게 해 주셔서 깊이 공감합니다.
하늘과 땅, 바다와 모든 호흡 있는 자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세세토록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천상의 예배를 믿음의 눈으로 그려보게 됩니다.
이번 주일, 온 우주의 주권자이신 만군의 여호와 이름 앞에 온 마음을 다해 예배하며 그 거룩하고 높으신 영광을 담대히 찬양하는 복된 날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