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山山山
地球엔
돋아난
山이 아름다웁다.
山은 한사코
높아서 아름다웁다.
山에는
아무 죄 없는 짐승과
에레나보다 어여쁜 꽃들이
모여서 살기에 더 아름다웁다.
언제나
나도 山이 되어 보나 하고
麒麟같이 목을 길게 늘이고 서서
멀리 바라보는
山
山
山 *
* 슬픈 구도
나와
하늘과
하늘 아래 푸른 산뿐이로다.
꽃 한 송이 피어 낼 지구도 없고
새 한 마리 울어 줄 지구도 없고
노루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
나와
밤과
무수한 별뿐이로다.
밀리고 흐르는 게 밤뿐이오,
흘러도 흘러도 검은 밤뿐이로다.
내 마음 둘 곳은 어느 밤 하늘 별이드뇨. *
* 발음(發音)
살아보니
地球는
몹시 좁은 고장이더군요
아무리
한 億萬年쯤
태양을 따라다녔기로서니
이렇게도 呼吸이 가쁠 수야 있습니까?
그래도 낡은 청춘을
숨가빠하는 地球에게 매달려 가면서
오늘은 가슴속으로 리듬이 없는
눈믈을 흘려도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여보!
안심하십시요
오는 봄엔
나도 저 나무랑 풀과 더불어
지줄대는 새같이
발음하겠습니다
* 映山紅
섧고도 사무친 일이사
어제 오늘 비롯한 건 아니어
하늘에 솟구쳐 사는
청산에도 비구름은 덮이던걸.....
대바람 소리 들으면서
은발이랑 날리면서
어린 손줄 안고 서서
영산홍을 바라본다
* 기우는 해
해는 기울고요ㅡ
울던 물새는 잠자코 있습니다.
탁탁 툭툭 흰 언덕에 가벼이
부딪치는
푸른 물결도 잔잔합니다.
해는 기울고요ㅡ
끝없는 바닷가에
해는 기울어집니다.
오! 내가 미술가(美術家)였다면
기우는 저 해를 어여쁘게 그릴 것을.
해는 기울고요ㅡ
밝힌 북새만을 남기고 갑니다.
다정한 친구끼리
이별하듯
말없이 시름없이
가버립니다. *
* 호조일성(好鳥一聲)
갓핀
청매(靑梅)
성근가지
일렁이는
향기에도
자칫
혈압이
오른다.
어디서
찾아든
볼이 하이얀
멧새
그 목청
진정
서럽도록
고아라.
봄 오자
산자락
흔들리는
아지랑이,
아지랑이 속에
청매에
멧새 오가듯
살고 싶어라.
어머니 기억 -어느 소년의
신석정
비오는 언덕길에 서서 그때 어머니를 부르던 나는 소년이었다.그 언덕길에서는 멀리 바다가 바라다보였다.빗발 속에 검푸른 바다는 무서운 바다였다.
''어머니'' 하고 부르는 소리는 이내 메아리로 되돌아와 내 귓전에서 파도처럼 부서졌다.아무리 불러도 어머니는 대답이 없고,내 지친 목소리는 해풍속에 묻혀 갔다.
층층나무 이파리에는 어린 청개구리가 비를 피하고 앉아서 이따금씩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나는 청개구리처럼 갑자기 외로웠었다.
쏴아...먼 바닷소리가 밀려오고,비는 자꾸만 내리고 있었다.언덕길을 내려오노라면 짙푸른 동백잎 사이로 바다가 흔들리고,우루루루 먼 천둥이 울었다.
자욱하니 흐린 눈망울에 산수유꽃이 들어왔다.산우유꽃 봉오리에서 노오란 꽃가루가 묻어 떨어지는 빗방울을 본 나는 그예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말았다
보리가 무두룩이 올라오는 언덕길에 비는 멋지 않았다.문득 청맥죽을 훌훌 마시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그것은 금산리란 마을에서 가파른 보릿고갤 넘던 내 소년시절의 일이었다.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신석정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 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 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녹색 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위에는
인제야 저녁 안개가 자욱이 내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 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욱 소리도 들려 오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기인 둑을 거쳐서 들려 오던
물결 소리도 차츰차츰 멀어 갑니다.
그것은 늦은 가을부터 우리 전원(田園)을 방문하는 까마귀들이
바람을 데리고 멀리 가 버린 까닭이겠습니다.
시방 어머니의 등에서는 어머니의 콧노래 섞인
자장가를 듣고 싶어하는 애기의 잠덧이 있습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인제야 저 숲 너머 하늘에
작은 별이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까?
신석정은 해방 직후 두 번 째 시집인 ‘슬픈 목가(1947)를 출간하면서 자신의 초기 시에서 보여 주었던 순정한 시정신과 이상향에 대한 추구에서 점차 벗어난다, ’어머니‘라는 모성의 상징에 기댔던 시적 자아의 가녀린 모습 대신 ’현실적인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고뇌가 드러난다. 이상향에 대한 시적 동경이 현실적 삶에 대한 인식으로 바뀌면서 신석정의 시는 ‘빙하’(1957)의 시대를 맞는다. 이 시집의 표제작인 빙하를 비롯하여 삼대, 귀향시초, 나무 등걸에 앉아서,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삶의 현실과 그 경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돋보인다. 한국 전쟁을 통해 확인된 전쟁의 폭력성과 그 비참한 현실을 놓고 시인은 인간의 존재와 그 가치를 되묻고 스스로의 삶을 통해 그 의미를 입증해 보이고자 한다.
(권영민의 한국현대문학사(1945-201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