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기 잘못 택했나봐”… 라면보다 더 난감한 고급 라면
[비즈톡톡] 서민식품 대명사 라면...정부 한 마디에 주가 급락
12년 전 비슷한 상황에서 고급 라면 신라면 블랙은 국내생산 중단
고전 중인 하림의 더미식 장인라면도 신라면 블랙 전철 밟을지 눈길
연지연 기자
입력 2023.06.20 06:00
“라면이 라면이지, 산해진미 넣는다고 보양식이 되겠어?”
일반 라면보다 가격이 비싼 대신 맛과 품질이 좋다는 고급 라면이 또 한번 난감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지난 18일 “지난해 9~10월 (라면가격을)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으로 내렸다”며 “기업들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라면 값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입니다.
장관 발언이 나오자마자 라면회사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19일 삼양라면과 불닭볶음면으로 유명한 삼양식품(108,300원 ▲ 2,900 2.75%)은 전날보다 8900원(7.79%) 하락한 10만5400원에 장을 마쳤습니다.
신라면으로 유명한 농심(413,000원 ▲ 1,500 0.36%)은 6.05% 하락한 41만1500원에, 진라면을 만드는 오뚜기(427,000원 ▼ 1,500 -0.35%)는 2.94% 내린 42만8500원에 거래를 마감했습니다.
2011년 출시 4개월 만에 국내 생산을 중단했던 신라면 블랙.
2011년 출시 4개월 만에 국내 생산을 중단했던 신라면 블랙.
이는 12년 전인 2011년 당시 분위기와도 비슷합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서민 물가 급등을 이유로 서민식품의 대명사격인 라면가격 인하를 도모한 적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식품업체들은 라면가격을 20~50원 가량 내렸습니다.
하지만 사실 당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식품업체들이 야심차게 내놨던 고급 라면입니다. 일반 라면은 2011년 정부 압박에 가격을 내렸다가 시간이 좀 지나자 슬그머니 다시 가격을 올렸지만, 고급 라면의 경우 국내 시장에서 아예 생산이 중단되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농심의 ‘신라면 블랙’입니다. 2011년 4월 농심은 ‘우골보양식사’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신라면 블랙을 출시했습니다. 라면값은 개당 1600원으로 기존 신라면 가격 대비 2.3배나 됐습니다.
당시 평가는 좋지 못했습니다. 일반 라면보다야 깊고 구수한 맛이 나지만 우골분말스프를 추가하고 건더기가 조금 늘어난 것으로 보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과대광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일반 라면값을 올리려는 꼼수라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고급 라면 출시로 라면에 대한 가격 저항선을 없애고 서민 라면 값도 올려 객단가를 상향하려는 전략이라는 뜻입니다.
신라면 블랙은 사회 분위기에 소비자 외면까지 겹치면서 출시 4개월만에 결국 국내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해외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자 2012년 9월 1년2개월만에 생산을 재개했지만 시기를 잘못 타고난 탓에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던 셈입니다.
“신라면 블랙은 4월 출시 첫 달에 90억원 매출을 올렸지만 이후 60억원, 30억원, 20억원으로 매달 매출이 떨어졌습니다. 8월부터는 가격을 150원 내렸는데도 매출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생산 중단을 결정합니다.”(생산 중단 당시 농심 관계자)
지난 2021년 하림(3,300원 ▼ 25 -0.75%)이 야심차게 내놓은 ‘더미식 장인라면’은 당시 신라면 블랙과 두 가지 면에서 같습니다.
먼저 기대만큼 소비자 호응을 이끌어 내지 못했고, 물가 상승에 대한 부담이 커진 시기라는 점입니다.
지난 2021년 ‘더미식 장인라면’을 소개하는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하림 제공
지난 2021년 ‘더미식 장인라면’을 소개하는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하림 제공
시장조사업체 닐슨아이큐코리아에 따르면 하림의 더미식 장인라면은 지난해 라면 매출 상위 20위에 들지 못했습니다. 식품업계에선 더미식 장인라면의 실제 점유율을 1% 미만으로 보고 있습니다.
더미식 장인라면의 한 봉지 가격은 2200원. 신라면이나 진라면의 가격 대비 2~3배 됩니다. 더미식의 부진 등을 이유로 하림산업의 영업손실은 지난해 867억원을 기록했습니다.
그래픽 = 손민균
그래픽 = 손민균
하지만 하림그룹은 더미식 브랜드를 포기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이미 라면사업을 위해 전북 익산에 하림푸드 콤플렉스를 지으면서 5200억원이나 투자했고 무엇보다 이 사업에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 회장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라면을 직접 끓이면서 “7년전 쯤 막내 딸이 시중에 파는 라면을 먹은 후 아토피 증상을 겪었다. 그때부터 인공 조미료를 뺀 건강한 라면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제품 개발 배경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안타깝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통상 출시 이후 단기간에 시장 점유율이 어느 정도 나오지 않으면 단종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시대적인 분위기 탓에 라면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려줄 고급 라면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식품 애호가들 사이에선 아쉬운 점입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라면이라는 음식은 밥 하기 싫을 때, 한 끼 적당히 넘길 때 먹는 것으로 그 자체로 고급화된 이미지를 가져가기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는 “간편식도 맛과 품질을 고급화하겠다는 공략법은 니치마켓을 공략한다는 점에서 유효할 수 있지만 시기마저 좋지 않아 신라면 블랙과 같은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인플레이션 시대에 서민 음식 라면보다 더 위치가 애매해진 고급 라면. 앞으로 펼쳐질 가시밭길을 무사히 헤쳐나가길 기대해 봅니다.
연지연 기자
연지연 기자
오늘의 핫뉴스
“또 시기 잘못 택했나봐”… 라면보다 더 난감한 고급 라면
13년 전 생산중단 악몽 되풀이? 고급라면 최대 위기
유통 많이 본 뉴스
“또 시기 잘못 택했나봐”… 라면보다 더 난감한 고급 라면
“또 시기 잘못 택했나봐”… 라면보다 더 난감한 고급 라면
스노우폭스 日에 8000억 매각...김승호 회장의 ‘돈 버는 5대 방식’
스노우폭스 日에 8000억 매각...김승호 회장의 ‘돈 버는 5대 방식’
‘그로서리 1번지’ 목표 세운 롯데마트·슈퍼… ‘원팀 사원증’ 만든 강성현 대표
‘그로서리 1번지’ 목표 세운 롯데마트·슈퍼… ‘원팀 사원증’ 만든 강성현 대표
100자평10도움말삭제기준
100자평을 입력해주세요.
최신순찬성순반대순
유관식
2023.06.20 08:54:07
핑게거리만 있으면 값올렸다가 내릴 충분한 이유가 있어도 내릴생각을 안하니 물가당국이라도 팔비틀어야하지 않겠나~!!!
답글작성
26
1
김병기
2023.06.20 07:12:32
고급라면이 어디있나?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은 대동소이한데....
답글작성
25
0
김준영
2023.06.20 08:03:15
라면을 최초로 발명한 회사 "니씬" 이 미국서 생산하는 탑 라면을 개당 약 300-400원 정도에 판다. 라면 봉투 뒷면을 보면 창시자 모모후쿠 안도의 철학글이 써있는데... 이회사는 인류를 위해서 (굶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익을 거의 안내며 값도 싸게 책정도 했지만 라면 스프 가루도 인공 조미료가 아닌 자연 조미료라 한다. 물론 다른 브랜드 이름으로 비싼 라면도 만들어 팔지만. 최소한의 인류에 이바지 하는 라면 회사다. 한국도 삼양 회사가 60년대때 이 회사로 부터 노 하우를 전수받았었다. 아 또 이회사는 최고로 저렴한 라면도 만들지만 최고로 비싼 라면도 만들었었다. 라면 개당 10만불.... 우주 정거장 으로 갔던 라면들 이다.
답글작성
14
0
김명환
2023.06.20 07:40:34
라면값 적정가는 개당140그램에 500원 수준이 맞다. 그 정도 가격아니면 사지마라. 그러면 자연 스럽게 가격 내려간다.
답글작성
10
0
김수연
2023.06.20 09:23:55
이자식들이 한번 오르면 내릴 줄 몰라. 도둑세끼들... 라면 많이먹으면 머리카락 빠진다고 옛부터 전해내려온 말들 기억하고 특히 우지파동 알쥐?? 공업용 우지를 라면에 사용한거... 그러고는 라면업자 이자식들이 해명이라고 내놓은 것이 인체에는 무해하다나??
답글작성
4
0
이규택
2023.06.20 08:52:48
*플러스 이춘* 짜장라면, 개당500원에 맛만 좋더라.
답글작성
4
0
김승주
2023.06.20 09:25:27
우리나라 제품들이 원유가 오르면 무지하게 4치에 걸쳐서 제품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원유가가 많이 내렸는데 절대로 내리지 않내요. 그만큼 기업은 이익을 극대화하고 소비자는 손실을 뭐라 말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라면이 거의 대중적이며, 가격 올리기 전의 원유 가격이 많이 내린 상황이면 내려야지요. 어찌 기업들이 양심이 없는지 모르겠네요. 윤대통령님 제조업체의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주세요
답글작성
3
0
서창우
2023.06.20 09:05:31
오를 땐 원자재 핑계 원자재 가격 하락해도 안 내리는 물가. 기업이 탐욕에 빠져 시장 논리대로 가격을 안 내리면 정부가 나서는 건 옳은 일.
답글작성
3
0
조형준
2023.06.20 10:01:18
특정 상품 가격을 내리라고 대 놓고 압력을 주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자유시장경제가 아닌 문재인과 비슷한 사회주의 경제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격입니다
답글작성
2
2
최정철
2023.06.20 10:48:25
1+1 행사하면 항상 구입하는 라면. 홍콩 에그누들 느낌의 면발이 국내 톱 수준. 비싼 가격 받으려면, 닭고기 회사 답게 건조 닭고기 큼지막하게 넣었으면 좋았지 싶다.
답글작성
0
0
당신이 관심 있을 만한 콘텐츠
최수종♥하희라, '박보검 닮은꼴' 아들 공개..누가봐도 배우 DNA - 조선비즈
카이스트박사 24년 연구끝에 개발한 '면역력 끝판왕' 화제!
5000원씩 로또사는 사람은 "이것" 확인해라!
‘6조원대 철근 담합’ 현대제철 벌금 2억원…법인·임직원 모두 유죄 - 조선비즈
이디야커피, 산리오캐릭터즈 협업 신제품 출시 - 조선비즈
로또 매주 구매한다면 '이것' 필수 확인할것
Recommended by
많이 본 뉴스
1
“또 시기 잘못 택했나봐”… 라면보다 더 난감한 고급 라면
2
‘중소형 OLED’ 세계 1위 삼성 점유율 50%대로 추락… 중국 기업 약진에 입지 흔들
3
테슬라發 원통형 배터리 열풍… 韓도 공격적 증설
4
[르포] 입소문 무성했던 개포자이 상가, 1층부터 ‘텅텅’… “배후수요도 옛말”
5
[단독] ‘청담동 한강뷰’ 부지도 공매로… 줄줄이 쓰러지는 고급주택 사업장
6
해외 수주 1위, 삼전 잘 오르는데 왜?... 반대로 가는 삼성물산 주가
7
[포기하는 2030]② 대기업 신입보다 적은 中企 부장 월급… 황금티켓 집착사회 낳았다
8
[檢 과학수사 리포트]② 삼성디스플레이 등에 칼 꽂은 ‘25년 동반자’, 도면까지 파헤친 수사에 범행 발각
9
“조민 포르쉐 탄다” 가세연 1심 무죄…김세의 “8월 전 기소해서 감옥 보내길”
10
尹정부서 국가경쟁력 한 단계 내려가… 말레이시아보다 낮은 28위
연예 많이 본 뉴스
1
송중기, '♥케이티' 고향 로마에서 아빠됐다…아들 사진 공개
송중기, '♥케이티' 고향 로마에서 아빠됐다…아들 사진 공개
2
'향년 40세' 故 경동호, 2주기…뇌사 장기기증→모친도 별세
'향년 40세' 故 경동호, 2주기…뇌사 장기기증→모친도 별세
3
홍승범♥권영경, "관계 중 장인이 들어와" 섹스리스 부부 갈등 폭발→비뇨기과行 ('결혼지옥') [종합]
홍승범♥권영경, "관계 중 장인이 들어와" 섹스리스 부부 갈등 폭발→비뇨기과行 ('결혼지옥') [종합]
4
"가여워라" 오은영, 경찰.제작진 투입→난관까지 올라간 금쪽이 '눈물' [어저께TV]
"가여워라" 오은영, 경찰.제작진 투입→난관까지 올라간 금쪽이 '눈물' [어저께TV]
5
권순우 경기 직관한 유빈…♥ 사실 티내고 있었다[민경훈의 줌인]
권순우 경기 직관한 유빈…♥ 사실 티내고 있었다[민경훈의 줌인]
6
박혜경 "임창정과 관련된 모든 것을 사실대로 밝히려 합니다" (전문)
박혜경 "임창정과 관련된 모든 것을 사실대로 밝히려 합니다" (전문)
7
‘트렌스젠더 모델’ 최한빛, 결혼 소감 “행복하게 잘 살게요”
‘트렌스젠더 모델’ 최한빛, 결혼 소감 “행복하게 잘 살게요”
8
니쥬, 첫 단독 투어로 33만 관객 동원…'日 대세 걸그룹'의 존재감
니쥬, 첫 단독 투어로 33만 관객 동원…'日 대세 걸그룹'의 존재감
9
‘작은 거인’ 보아, 베트남 무대 후 ‘카리스마 작렬’..인형 비주얼은 덤
‘작은 거인’ 보아, 베트남 무대 후 ‘카리스마 작렬’..인형 비주얼은 덤
10
권상우♥손태영, 이렇게 애틋할수가..떨어져 있어도 늘 '함께'ing
권상우♥손태영, 이렇게 애틋할수가..떨어져 있어도 늘 '함께'ing
개인정보처리방침
앱설치(Andro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