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의 세계사-27】
19세기만 하더라도 서구에서 인삼은 오늘날보다 훨씬 자주 접할 수 있었던 주제였다.
쿠바 독립전쟁(1895~1898)이 일어나자 세계 시장은 담뱃값 급등을 예고했다.
어떤 신문은 담배의 대체제로 건강에 해롭지 않은 일종의 금연초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향기롭고 몸에 좋은 인삼’으로 만들면 좋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이처럼 전혀 뜻밖의 뉴스거리에서도 인삼이 꾸준하게 거론되었다.
그런데 일상에서 소소하게 펼쳐진 인삼 관련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분명한 흐름이 포착된다.
그것은 ‘유비(類比)analogy와 배척'으로 나눌 수 있는데,인삼을 자신들의 문화 속으로 포섭하는 유비보다는 배척하려는 경향이 훨씬 강했다.
인삼이 처음 유럽에 들어왔을 때 유럽인들은 이 낯선 식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매우 혼란스러웠다.
인류학과 역사학은 한 집단이 다른 문화와 충돌할 때 나타나는 반응을 흔히 ’유비‘와 ’대립화‘라는 두 범주로 풀이해왔다.
여기서 유비란 他者를 자신 또는 자신의 이웃에 동화시키기 위해 문화적 거리를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십자군이 무슬림 전사 살라딘을 마치 유럽의 기사처럼 인식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는 인식의 대상이 인식 주체의 반영물로 취급되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런 인식체계 속에서 대상은 스스로의 본질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주체의 상상력 속에서 재탄생된 어떤 것이 된다.
인삼을 접한 유럽인의 첫 번째 반응은 유비였다.
인삼을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던 식물과 비슷한 것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것이다.
17세기 유럽에서는 인삼을 맨드레이크의 일종으로 본 사람이 많았다.
인삼과 맨드레이크를 유비하는 사례들은 20세기 말까지도 찾아볼 수 있다.
1978년 미국에서 생물학 교사들을 대상으로 출판된 학술지에서조차 인삼과 맨드레이크를 비교 대상으로 나란히 다루었다.
두 식물의 뿌리가 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 미스터리한 성격을 지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중국에서도 인삼이 서양의 맨드레이크와 비슷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송나라 때 이미 맨드레이크가 알려져 있었는데, 이는 서양에서 인삼을 인식하게 된 시점보다 훨씬 앞서는 것이다.
인삼이 맨드레이크와 비슷하다는 인식은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심지어 동서양에서 공히 나타났던 것이다.
이처럼 두 식물의 공통점을 찾아 나란히 비교하는 일은 인식 주체가 자신에게 익숙한 인식의 틀 속으로 끌어들이는 일종의 문화적 태도였다.
설혜심의 저서 '인삼의 세계사'에서 인용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