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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회복 찬양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의 말씀은 시편 51편에서 일부만 했는데 우리 찬양을 통해서 같이 거의 전부를 다 들은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지난 두 주 전에 우리 재직 세미나가 있었어요. 그때 우리 상한 감정 버리기라는 책을 소개했었습니다. 저자 도은미 목사님이라는 분은 자라면서 상처를 엄청나게 받은 신분인데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그 상처를 극복을 하고 그리고 자신의 경험과 그리고 가정 사역을 토대로 쓴 책이 이 책입니다. 네 우리도 듣고 생각해 보아야 할 참 좋은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에 소개를 했어요.
한 가지만 소개하자면 저자는 우리 교회의 일반 상식하고 다르게 이 상한 감정이라는 것을 이상한 감정이라는 것을 죄의 시스템 떠나야 할 탈출해야 할 죄의 시스템으로 보고 또 작별해야 할 나쁜 언어 체계로 본다는 거예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상한 감정에 대한 상식하고 조금 다르죠. 그래서 우리 편에서 보면 상한 감정이라고 다 버릴 것은 아니에요. 이해하고 보살피고 돌봐야 하는 상한 감정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저자의 말대로 버리고 떠나야 할 사랑한 감정 아니면 상한 감정의 부분도 분명히 있어요. 그래서 오늘 설교를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켜야 할지 알아보고 우리가 같이 저만 아니라 여러분 모두도 이 상한 감정을 넘어서 건강하고 선한 마음을 구하는 길로 함께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상한 감정 상한 마음 중요한 주제예요. 사실 성경에는 상한 감정이라는 말이 안 나와요. 없어요. 상한은 있지만 감정은 없습니다. 이제 그래서 상한 마음은 많이 등장해요. 그중에 대표적인 곳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이 본문이 속한 시편 51편 여기에는 1절부터 19절까지 있는데 시작하는 맨 앞에 이런 표제가 붙어 있어요.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라는 표시가 있어요.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다 아는 이름이죠.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밧세바라는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다윗이 그것을 보았지요. 그의 눈에 너무너무 아름답게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그가 곧 밧세바가 자기를 위해서 또 나라를 위해서 싸우는 충신 우리아라는 것을 알아낸 다음에도 밧세바를 자기에게 데려오게 해서 그리고 그와 함께 동침을 했다고 되어 있죠.
그리고 나중에 밧세바가 잉태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 큰 일을 범하죠. 더 큰 죄를 범하죠. 이스라엘을 위해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 충신 우리아를 결국은 죽게 하고 밧세바는 자기의 아내로 맞아드립니다.
그때 이제 나타난 나단이 바로 선지자라는 거예요. 선지자 나단이 다윗에게 와서 다윗이 범한 죄를 알게 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알려줍니다.
들은 다윗이 어떻게 했습니까? 왕인데 왕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습니다.
이 사건을 바라볼 수 있는 여러 관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윗만이 아니고 밧세바의 관점에서도 바라볼 수 있는 것인데, 시편 51편은 다윗이 어떻게 회개했는지 그의 말이 기록되어 있는 거죠.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시편 51편입니다. 간단하게 하나씩 보자면 세 부분으로 볼 수 있는데 1절부터 9절, 10절부터 13절, 그리고 오늘 14절부터 19절 하나님이요 하나님을 부르는 이 소리에 맞춰서 우리가 세개로 볼 수 있어요.
첫 번째로 다윗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철저히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자신의 죄를 지워달라고 씻어달라고 깨끗하게 제어하여 달라고 강구합니다.
두 번째로 다윗 아내, 그 아내, 깨끗한 마음을 창조해 달라고 더러운 것은 다 지워서 없애버리시고 그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자기가 피 흘린 자에서 구원해 달라고 건져달라고 간구하죠. 자기만 살겠다는 뜻이 아니고 용서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의를 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을 전파하겠다는 뜻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17절 말씀을 우리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오늘의 주제 말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러분의 마음에도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시작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라.
네 오늘의 예배, 오늘날의 예배도 그렇습니다. 예배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예배가 있어요. 그리고 그 차이를 가르는 중요한 것은 여기서 말하는 상한 심령,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예배하는 자들이 상한 심령으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오실 때 기뻐하시고 정말로 하나님께서 오늘 찬양했듯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이 됩니다.
그렇다면 상한 심령 상한 마음 이건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리가 물을 수가 있어요. 성경을 기준으로 보면 상한 마음에 대해서 우리가 네 가지를 말할 수가 있습니다. 상한 감정이라기보다는 상한 마음에 대해서 네 가지를 말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지금 오늘의 본문이 담고 있는 우뭇 담겨 있는 시편 51편에서 말하는 마음이에요. 이 마음은 잘 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 상한 마음이 아닙니다. 이 상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상하게 하시는 마음이고 그리고 회개로 이어지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상하고 통회하는 말 영어로 말하면 브로큰 됐지만 컨트라이트 하는 마음이에요.
그냥 상한 마음이 아니고 깨진 마음이 아니고 깨지고 그리고 통회하는 회개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에요. 여기서 상함은 회개하고 연결이 됩니다. 다윗이 경험한 바와 같이 죄를 자각함으로 상해요. 그리고 심판의 말씀으로 깨지요. 그리고 하나님만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낮은 자세로의 마음이에요. 그런 마음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마음이고 결국 고치시고 새롭게 해 주실 마음이에요.
성경적으로 말하면 복음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큰 죄를 범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고쳐주시는 마음이라는 거예요.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성경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다윗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바이니까 우리가 잘 기억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는 다른 사람이 상하게 하는 마음이 있어요. 시편 38편에서 여기도 역시 다윗의 시편이라고 하는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피곤하고 취미 상하였다. 마음이 불안하여 시는 하나이다. 몸도 상할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마음도 상했는데 아주 심이 상해서 울부짖을 정도로 사자가 아파서 울부짖는 것처럼 울부짖는 것처럼 상했다.
왜 그렇게 상했을까요? 19에서 27절에 있는 말씀으로 답을 하면 그를 부당하게 미워하는 원수들이 많습니다. 미워하는 원수들이 많고, 그다음에 자기가 선을 따른다고 해서 자기를 대적하는 악한 무리가 많기 때문이에요. 그들로부터 오는 경격으로 몸이 상하고 마음이 상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세상에서도 나의 죄가 아니라 남의 잘못으로 악을 행함이 아니라 선을 행함으로 의를 행함으로써 당하는 얻게 되는 상처가 있습니다. 이 마음도 하나님이 아시고 치유해 주실 마음이에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마음이 기도로 나아가야지, 그다음에 이어지는 세 번째 종류의 마음으로 바뀌면 안 된다는 겁니다. 세 번째 종류의 마음은 뭐냐면 마귀가 이용해서 범죄하게 하는 죄 짓게 하는 상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대적한 사람들이 보여준 마음이고, 그리고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전한 말씀에 부정적으로 반응한 자들의 마음이에요.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이 길게 설교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한 말이 그런데 그 말을 다 했을 때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했냐 기록하기를 그의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더라 마음에 찔려 이를 가는데 그 이어서 어떻게 해요? 돌을 들어서 그를 치는 거죠. 마음이 상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했습니까? 그로 인해서 화가 났고 그리고 이를 갈고 그리고 스데반을 친 겁니다. 이 마음은 첫 번째와 같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상한 마음이에요. 그러나 회개하거나 기도하는 자리로 이어지지 않았고 범죄로 이어졌다는 면에서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지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화가 나는 마음이라고 우리가 이해를 할 수가 있는 거예요.
앞에서 상함은 회개 앞에서 상함은 기도 이렇게 연결되는데 여기서 상함은 어떻게 해요? 분노 범죄로 이어진다 하는 것이에요. 그런 면에서 세 번째 상한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이거는 성경에 나타난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중요한 겁니다. 네 번째 상한 마음은 자신이 주인 된 삶에서 죄의 역사로 나타나는 마음이에요. 그러니까 좋은 말을 들어도 말 한마디의 표정 하나에 내 기분이 나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스타일이 아니다 화가 난다 그런 것으로 마음이 상하는 것이에요. 높은 자리에 앉아 있거나 그동안 받은 상처가 너무 많아서 작은 것에도 아주 작은 것에도 상처를 받는 마음이죠. 이 마음은 사실은 브로큰보다는 로튼이라고 말하는 게 맞습니다. 사 둘 다 우리 말로 상한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브로큰도 로튼도 근데 이게 너무너무 오래돼서 로튼이 된 그런 마음 상태로 이런 마음은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세상에 정말로 많은 종류의 상한 마음이에요.
성도의 삶에도 우리의 삶에도 가정에도 깊이 들어와 있고 교회 안에서도 많이 보이는 마음이에요. 그래서 잘 알아야 돼요. 지금까지 상한 마음을 우리가 네 종류로 구별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좀 긍정적으로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좀 부정적으로 본 것이에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회개와 기도로 이어지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마음은 점점 사라지고 분노와 범죄로 이어지는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점점 늘어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회복의 역사는 줄어들고 미움과 갈등과 싸움이 늘어나는 거죠.
무엇이 문제일까요? 상한 마음 자체는 문제가 아니에요. 앞에서 말한 모든 네 종류의 이 상한 마음 자체는 문제예요. 상한 감정도 그렇습니다. 타인과 함께 지내다 보면 부딪히기도 하고 마음이 상할 수도 있어요. 찔리기도 하고 아플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반복하자면 마귀와 죄라는 거예요.
다윗이 밧세바를 상하게 한 것은 무엇입니까? 죄의 역사죠. 그리고 상한 마음을 이용해서 서로 미워하게 하고 서로 싸우게 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까? 아니죠. 마귀의 역사이죠. 하나님의 역사는 오히려 미워하고 적대하는 관계를 깨뜨리고 서로 화목하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하시려고 할 때 그것도 어려워서 상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어요. 왜냐하면 이해와 용서라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과 잘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그것을 그것을 잘 알아요. 그것을 잘 아는 마귀가 그것을 방해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죄가 계속 다스리기 원하는 거죠.
오늘 말씀이 이 주제가 되는 이 상한 마음 상한 감정과 연결을 해서 말하자면 상감이 상감 노릇하게 한다는 겁니다. 이 상감 노릇하는 것이 마귀가 원하느냐 이게 무슨 말이냐 좀 설명이 필요할 거예요. 한국어에 상감이라는 말이 있어요. 몇 가지 뜻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하차 일의 슬퍼하고 마음이 상하는 아니면 그렇게 상하는 마음을 가리키는 뜻이에요. 삼감하며 첫 번째 뜻은 또 하나의 뜻은 뭐냐 하면 좀 더 잘 알려진 것인데 임금을 높여 부르는 말이 삼감입니다. 상감이 상감 노릇을 한다 하면 뭐냐 하면 상한 감정이 왕 노릇 한다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온갖 문제가 발생을 하는 겁니다.
이 세상에 많은 문제들이 있는데 그 배경을 가만히 보면 상한 감정들이 있어요. 화나고 상처난 감정들이 있어요. 그리고 그 뒤를 넘어서 보면 그것을 통해서 역사하는 마귀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잘 알아야 하는데 우리의 인생 가정 교회에서는 이런 일이 없어야 됩니다. 상감이 상감 노릇하는 일이 마귀가 상감을 이용해서 역사하는 일이 없어야 어떤 경우라도 마음이 상할 때 마귀가 역사하지 못하게 해야 해요. 마귀가 역사하면 상처받고 그리고 또 상처 주고 다시 또 상처받고 또 상처 주는 이 악순환이 반복이 됩니다.
여러분이 맺는 모든 관계를 생각을 해보세요. 마귀가 역사하는 곳에는 항상 상처와 상처의 부딪침이 계속 있어요.
그런 그렇다면 우리가 이 마음이 상할 때 마귀가 역사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적어도 다음 네 가지는 우리가 여러분이 잘 기억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로 상한 마음을 잘 이해를 해야 돼요. 이건 자기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상한 마음을 쉽게 정지하면 안 됩니다. 내게는 지극히 아주 사소하게 보이는 것이 마음이 상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큰 것일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상한 감정이 나게나 남에게 찾아올 때는 조심하고 잘 이해를 할 수 있어야 해야 돼요.
두 번째로 상한 마음이 다스림의 자리에 앉아 왕 노릇은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어떤 관계에서도 다 그렇습니다. 이 상한 마음이 다스림의 자리에 있을 것은 아닙니다. 치유와 이해와 위로의 대상은 될 수 있지만 그런 것이 왕 노릇하면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셋째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잘못했을 경우에도 그렇고 남이 잘못했을 경우에도 그렇고 상한 마음이 발생하면 그렇게 해야 돼요. 그것이 상처의 악순환을 끊는 첩경이 됩니다. 기도하기 때문에 마귀의 길로 안 가고 기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말씀을 귀엽고 가까이하고 찬송을 할 수가 있어요. 말씀의 내용이 있죠. 말씀의 말씀이 있고 찬송의 가사가 있죠. 이런 것들이 마귀의 언어를 물리치는 하늘의 언어, 성령의 언어가 됩니다.
오늘 말씀에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재산은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요. 주께서는 상하고 통해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아니하십니다. 요 한 절만이라도 마음에 새기고 있으면 도움이 되겠죠.
또 오늘 찬양한 것처럼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입니다 라고 우리가 말할 수가 있어요.
언어가 바뀌는 거죠. 사탄이 사랑 감정에게 주려고 하는 그 언어를 이길 수 있는 하늘의 언어가 우리가 읽는 말씀, 우리가 하는 찬양 담겨 있어요.
또 우리 올해의 표어를 여러분의 퓨어라고 하는 거 마음에 새겼죠. 그거를 말로 할 수 있다. 힘들 때 마음이 상할 때 어떻게 해요? 이름을 부르면서 너는 하나님을 기뻐하라,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라, 너는 하나님을 바라고 선포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에게 들어오려고 하는 그 사탄의 언어를 이기고 하늘의 언어를 받아서 그것으로 우리의 상한 마음, 상한 감정까지도 다스릴 수가 있는 것이에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의 체질도 바뀌어요. 우리의 마음 파행도 바뀔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요? 아주 작은 것에도 상처를 받는 마음이 아무리 큰 것이라도 상처를 받지 않는 마음으로 바뀔 수가 있어요. 돌같이 굳어진 마음이라는 뜻에서 그런 것이 아니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서 그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그의 옆구리는 창으로 찔렸습니다. 이 세상에서 정말로 가장 많은 영광을 받으셔야 되는데 가장 큰 상처를 받으셨죠? 하지만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도 주님의 마음을 쫓아서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 살처럼 부드럽지만 아무리 큰 찔림에도 상처를 받지 않으신 그 예수님의 마음을 구하고 또 얻는 귀한 하나님의 복된 자녀가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중요한 주제예요. 지난주에는 하나님의 자녀, 마귀의 자녀, 오늘은 상한 마음 이거는 1년에 많이 하지 않는 주제였는데 우리한테 중요한 주제라는 걸 압니다. 여러분 상한 감정, 상한 마음 이 부분에 있어서 오늘 들을 말씀 잘 새기고 잘 다스릴 수 있는 정말로 아름다운 복된 주의 자녀가 다 되기를 바랍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