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초승달
윤기환
창고 구석, 먼지 이불 덮고
제 몸 갉아먹으며 익어가는 것 하나 있다
한때는 팽팽한 지표면 긴장을 가르며
어둠의 뱃속 뒤집어 햇살을 심던 날카로운 앞니
단단한 지력을 견디느라
호미는 제 허리 구부려 대지의 곡선을 닮아갔다
날카롭던 날 끝이 뭉툭해진 것은
흙의 살점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지극한 배려였을지도
몸에 핀 붉은 녹
생의 뜨거웠던 노동이 흘린 마른 피다
어머니 마디 굵은 손가락이 머물던 자리에
시간이 슬쩍 얹어놓은 붉은 꽃술이다
흙 속 묻어둔 울음들 파내어
푸른 싹으로 길러내던 그 무딘 날로
이제는 제 몸 고요를 파내고 있다
굽은 등이 곧은 길을 만든다는 것을
녹슨 호미는 붉은 침묵으로 받아 적는다
한 생애 다 부려놓고
어두운 창고 구석 밝히고 있는
저물지 않는 붉은 초승달 하나
첫댓글 반갑고 고맙습니다
근데 글제목을 붉은 초승달이라고 변경해 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