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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delssohn, Piano Concerto No.1 in G minor, Op. 25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제1번 Felix Mendelssohn 1809-1847 The Radio Philharmonic Orchestra led by David Robertson and British virtuoso pianist Stephen Hough play Mendelssohn's 'Piano Concerto No. 1' during The Sunday Morning Concert of Sunday the 17th of November 2019. 멘델스존의 정식 이름은 야콥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Jak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이다. 19세기 고전주의의 마지막과 낭만주의의 시작을 잇는 가교로 평가받는 그는 탄생 200주년을 맞은 지금까지도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작곡가다. 유명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하여 제목으로도 시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 지중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교향곡 4번 ‘이탈리아’, 몰아치는 폭풍을 수채화 톤으로 담아낸 <핑갈의 동굴> 서곡과 천재성으로 가득 차 있는 <한 여름 밤의 꿈> 서곡과 ‘결혼 행진곡’, 따스한 온기가 충만해 있는 가곡 ‘노래의 날개 위에’ 등 멘델스존이 남긴 아름다운 멜로디는 앞으로도 우리의 귓가를 맴돌며 영원한 생명력을 가질 것이 분명하다. 유명한 멜로디와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내용, 풍부한 상상력과 재기 넘치는 유머로 두 세기를 넘어 음악 대중들을 매료시켜 온 멘델스존의 음악은 그 위상이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고, 10대에 이미 거장으로 숭배 받았으며, 요절한 이후에는 전설로 평가받았던 작곡가였던 만큼 모차르트에 비견할 수 있을 만한 유일무이한 신동이었다. 천재적인 관현악법, 세련된 낭만주의 신사 사춘기 무렵에 이미 천사로부터 엿들은 선율을 옮겨놓은 듯한 음악을 작곡했던 멘델스존은 20세기 초반 명지휘자들과 명작곡가들로부터 거의 신적인 존재로 대접받았다. 지휘자 펠릭스 바인가르트너가 저서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에서 멘델스존에게 보낸 찬사를 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2세 천재소년 멘델스존의 모습. 음악 외에도 승마를 비롯한 모든 스포츠, 언어, 역사, 수학, 천문학, 건축,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멘델스존은 동일한 천재성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멘델스존의 핵심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해로 흐르는 강도 근원지가 있듯이, 그의 넘쳐나는 천재성에도 분명 출발점이 존재한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바흐를 재발견한 지휘자 역할도 분명 무시할 수 없겠지만, 피아니스트이자 피아노 음악 작곡가로서의 멘델스존의 가치는 지금까지도 덜 조명 받고 있다. 물론 누이인 파니 멘델스존이 펠릭스보다 피아니스트로서 좀 더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의 최초의 음악적 스승은 풍부한 음악가적 기질을 가지고 있었던 어머니였다. 이후 7살 때부터 파리로 옮겨오면서 베토벤이 선호했던 피아니스트 마리 비고(Marie Bigot)로부터 레슨을 받았다. 이후 베를린으로 돌아온 뒤 각 분야의 탁월한 스승들로부터 작곡, 화성, 바이올린, 그리스어, 피아노를 배워 나갔다. 1818년 10월 28일, 9살의 멘델스존은 피아니스트로서 최초 공개 연주회를 가졌고 1819년에는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이후 1821년 작곡가 카를 마리아 폰 베버와의 만남과 바이마르에서 괴테와의 만남을 가진 멘델스존은 일종의 내적 성숙을 경험할 수 있었고, 자신의 집에서 열었던 일요음악회에서 보다 풍부한 감수성과 정교해진 테크닉으로 교향곡과 모테트, 피아노 작품, 가곡 등을 작곡, 연주, 지휘하며 독일 내의 모든 예술가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멘델스존은 이 무렵부터 자신의 악기였던 피아노를 위해 많은 수의 협주곡을 작곡했지만, 이러한 사실조차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베토벤의 것과 견줄 수 있을 만큼 자주 연주되고 널리 사랑받은 작품으로 자리 잡았지만, 유독 그의 피아노 협주곡들은 멘델스존의 신격화가 극도에 달했던 20세기 초반에도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이는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탁월한 기법과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이들 협주곡에 멘델스존의 음악정신이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주 레퍼토리는 물론 레코딩에서도 환영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1번 협주곡과 2번 협주곡은 서로 상이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1번은 봄날의 꿈처럼 포근하면서도 유쾌한 작품이라면, 2번은 다소 어둡고 사색적이며 내면으로 침잠하는 듯한 작품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와 같이 음악적으로 성숙한 걸작을 생산한 1844년 이후, 즉 생의 마지막 시기에 피아노 협주곡을 다시 한 번 썼다면 과연 얼마나 훌륭한 걸작이 탄생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20대의 멘델스존이 작곡한 두 곡의 피아노 협주곡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 형식적 완성도는 이미 완벽하기에 분명 발전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는 모습이 아쉽기만 하다. 여기서 유추해본다면, 그의 피아노 협주곡이 이토록 존재감이 없었던 것은 아직 성숙하지 않은 낯설은 완벽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Mendelssohn - Piano Concerto No. 1 in G minor, Op. 25 Jean - Yves Thibaudet Gewandhausorchestrer Leipzig Herbert Blomstedt 1번 협주곡은 멘델스존의 여러 협주곡 가운데 가장 먼저 출판된 작품으로 화려한 기교와 낭만적 열기를 충분히 갖춘 전형적인 낭만주의 협주곡이다. 1830년 이탈리아를 여행할 당시 이 작품을 쓰고자 마음먹었는데, 당시 교향곡 <종교개혁>을 발표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두는 바람에 즉시 작곡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해를 넘겨 1831년 10월에야 전곡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초연은 그 해 10월 17일 멘델스존의 연주와 지휘로 뮌헨에서 이루어졌다. 이 곡은 당시 젊은 여류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높이고 있던 델피네 톤 샤우로트에게 헌정되었는데, 그녀에 대한 로맨틱한 여운만이 숨어 있을 뿐 명확한 사랑의 증거는 확인할 수 없다. 모차르트의 E플랫 장조 협주곡 K271이나 베토벤의 4, 5번 협주곡처럼 피아노가 가장 먼저 노래를 부르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2중 제시(double exposition)를 따르지 않고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동일하게 주제를 연주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 그리고 3악장이 연속해서 연주되며 1악장 주제가 3악장에서 다시 제시된다는 것, 카덴차 부분을 과감히 생략했다는 것 등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1Mov.Molto allegro con fuoco 2Mov.Andante 3mov. Presto Hamelin plays Mendelssohn - Piano Concerto No. 1 Audio + Sheet music 작성 : 무지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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