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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장 7-12절. 바울이 드로아에서 유드고를 살려냄
7절.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On the first day of the week, when we were gathered together to break bread, Paul began talking to them, intending to leave the next day, and he prolonged his message until midnight.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Ἐν δὲ τῇ μιᾷ τῶν σαββάτων, συνηγμένων ἡμῶν κλάσαι ἄρτον
in then the first of the week, having come together we to break bread
‘모였더니’(συνηγμένω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come together) 다 함께 모인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떼려하여’(κλάσ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break) 다 함께 떡을 떼려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들에게 강론할새
ὁ Παῦλος διελέγετο αὐτοῖς,
the Paul was talking to them
직역하면 ‘바울이 그들에게 계속 강론했다’는 뜻입니다.
‘강론할새’(διελέγετο)는 미완료과거로서(was talking) 계속 강론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μέλλων ἐξιέναι τῇ ἐπαύριον,
being about to depart on the next day
‘떠나고자 하여’(μέλλων ἐξιέναι)에서 앞의 동사는 현재분사로서(being about) ‘--하고자 하여’란 뜻이고, 뒤의 동사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depart) 둘을 합하면 ‘떠나고자 하여’란 뜻입니다.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παρέτεινέν τε τὸν λόγον μέχρι μεσονυκτίου.
he was continuing then the talk until midnight
‘계속하매’(παρέτεινέν)는 미완료과거로서(he was continuing) 쉬지 않고 계속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바울의 일행이 모두 드로아에 함께 모였습니다.
즉 앞에 간 7명의 사람들과 뒤에 간 일행들이 함께 드로아 교회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드로아 교회는 바울이 에베소 전도를 마치고, 디도를 만나기 전에 전도하여 설립한 교회였습니다.
그때 바울이 드로아 전도할 때, 복음 전도의 문이 활짝 열렸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2: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그래서 드로아 교회가 설립되었는데, 드로아 교회는 역시 3층까지 건축되어있는 부자 성도의 큰 집이 교회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마치 예루살렘 교회가 마리아(마가의 어머니)의 집이 교회로 사용되고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당시에 마리아의 집은 120명의 성도가 한 번에 들어가서 기도할 수 있을 만큼 큰 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개척교회는 잘 믿고 부유한 성도의 큰 집에서 모여 교회를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미국 같은 곳에서는 별도의 교회당 건물을 가진 교회는 정말 대단한 교회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보통은 별도의 건물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2. 그 주간의 첫날에 떡을 때러 모였다는 것은 요즘 말로 주일날 성찬식을 거행하려고 모였다는 말입니다.
지금도 안식교 같은 곳에서는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고 있지만, 오늘 본문처럼 초대 교회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날(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면서 성찬식을 거행하고 예배드렸습니다.
원래 안식교는 화이트 부인이 토요일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계시를 주장하여 생긴 신비주의 집단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안식교의 잘못은 특히 시한부 종말론에 있습니다.
즉 1883년 10월 22일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발표했다가 안 오시니까, 계산을 잘못했다고 1년을 연장했습니다.
그래서 1884년 10월 22일 안식교 교인들이 뉴욕에 모여서 밤 12시를 기다렸습니다.
모두 찬송하고 소리 내어 기도하면서 열광하고 있는데, 옆 건물 옥상에 술 취한 남자가 올라가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러자 진짜 예수님이 재림한 줄 알고, 안식교인들이 미쳤습니다.
그래서 안식교의 시한부 종말론이 웃음거리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안식교는 자기들만 14만 4천에 들고 재림시에 들림받는다고 시한부 종말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유대교적인 율법을 고수하여 돼지고기 같은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처럼 토요일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려면,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소나 양 잡아서 제사드리면서 예배해야 구약식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안식교는 사이비 종교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주일날 떡을 떼었다>는 것은 성찬식을 거행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11절에서 <떡을 떼어 먹었다>는 것은 사랑의 애찬(Agape)을 나누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초대 교회는 성찬식도 거행하고 애찬식도 거행했지만, 애찬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제정하신 것이 아니라서, 점점 사라지고, 성찬식도 일 년에 몇 번 거행하는 쪽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지금도 어떤 교단에서는 모일 때마다 성찬식을 거행하는 곳도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주일날 교회에서 점심을 함께 나누는 것이 좋은 친교가 되며, 구역예배 시에 예배드리는 가정에서 다과로 대접하는 것도 좋은 교제가 됩니다.
일반인들도 함께 식사하는 것이 친교나 사업을 위해서 좋은 것처럼, 교회에서도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좋은 교제가 됩니다.
이처럼 함께 식사하면서, 교회 일에 대한 좋은 의논도 할 수 있습니다.
4. 바울은 오순절까지 예루살렘에 가려고 작정했기 때문에 이튿날 드로아를 떠나기 위해서 밤중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16절에 말씀한 대로 바울은 오순절까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 헌금을 전달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온 이방인 전도와 교회 설립을 보고하고 싶었습니다.
이처럼 바울과 드로아 교회 성도들은 그냥 음식 접대만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 공부를 했습니다.
이처럼 목회자를 잘 대접하는 것은 음식 대접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려는 것이 참 좋은 대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음식을 준비하는 마르다보다 말씀을 듣는 마리아가 대접을 더 잘했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런데 신학생들도 교수에게 음식 대접하면서 휴강하자고 하지, 음식 대접과 함께 말씀 공부하겠다고 잘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광주 동*교회 청년회는 음식 접대를 잘하면서도 성경 공부에 열심인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들이 지금은 대부분 장로님들 권사님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밤중까지 설교를 했고, 드로아 교인들도 불평하지 않고 밤중까지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분들입니다.
과거에 중국의 지하교회 성도들이 이처럼 말씀의 은혜를 사모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초대 교회 때는 사경회라고 해서 오전에 2시간, 오후에 2시간, 밤 집회 2시간 이렇게 사경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바쁘다는 이유로 성경 공부하는 사경회보다는 재미난 부흥회를 더 선호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은혜 생활을 하려면 <새벽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
새벽예배 때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듣고, 새벽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도 새벽예배로 성공했습니다.
8절.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 were many lamps in the upper room where we were gathered together.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ἦσαν δὲ λαμπάδες ἱκαναὶ ἐν τῷ ὑπερῴῳ
there were now lamps many in the upper room
직역하면 ‘윗 다락에 많은 등불들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있었다’(ἦσαν)는 미완료과거로서(there were) 많은 등불들이 계속 켜져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모인
οὗ ἦμεν συνηγμένοι.
where we were having assembled
직역하면 ‘우리가 모이고 있었던’이란 뜻입니다.
즉 앞의 동사(ἦμεν)는 미완료과거로서(we were) 계속 모여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뒤의 동사(συνηγμένοι)는 완료분사로서(having assembled) 이미 모여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데, 둘이 합쳐서 ‘계속 모여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1. 윗 다락이란 것은 오늘날 3층을 가리킵니다(9절- 3층에서 떨어지거늘).
이 3층에 등불을 많이 켰다는 것은 그만큼 모인 사람들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성경 공부를 하려면, 등불을 많이 켜고 밝아야 합니다.
이렇게 3층에 많은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집은 대단히 큰 집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원래 바울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만 해도 열댓 명이 되었을 것이고, 드로아 교인들까지 합치면 백여 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9절.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there was a young man named Eutychus sitting on the window sill, sinking into a deep sleep; and as Paul kept on talking, he was overcome by sleep and fell down from the third floor and was picked up dead.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 있다가
καθεζόμενος δέ τις νεανίας ὀνόματι Εὔτυχος ἐπὶ τῆς θυρίδος,
having sat then certain young man named Eutychus on the window
‘앉아 있다가’(καθεζόμενος)는 현재분사로서(having sat) 창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깊이 졸더니
καταφερόμενος ὕπνῳ βαθεῖ,
having been overpowered by sleep deep
직역하면 ‘깊은 졸음에 깊이 빠졌더니’란 뜻입니다.
‘졸더니’(καταφερόμενος)는 완료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overpowered) 점점 깊은 졸음에 빠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progressively to drop off into the deep sleep)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διαλεγομένου τοῦ Παύλου ἐπὶ πλεῖον,
as talking of the Paul on longer
직역하면 ‘바울이 더 오랫동안 강론하매’란 뜻입니다.
‘강론하매’(διαλεγομένου)는 현재분사로서(talking) 계속 강론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κατενεχθεὶς ἀπὸ τοῦ ὕπνου
having been overpowered by the sleep
직역하면 ‘졸음에 압도당하여’란 뜻입니다.
‘압도당하여’(κατενεχθεὶς)는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overpowered) 점점 졸다가 완전히 졸음에 빠져버린 상태를 가리킵니다.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ἔπεσεν ἀπὸ τοῦ τριστέγου κάτω
he fell from the third story down
‘떨어지거늘’(ἔπεσεν)은 부정과거로서(he fell) 땅으로 확 떨어져버린 모습을 가리킵니다.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καὶ ἤρθη νεκρός.
and he was picked up dead
원래 동사가 수동태이고, 뒤의 단어는 형용사인데, 한글 번역은 좋은 번역입니다.
‘일으켜보니’(ἤρ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he was picked up) 화다닥 일으켜본 모습을 가리킵니다.
1. 유드고라는 청년은 <다행>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젊은 청년으로서 남의 집 하인으로 일하는 일꾼이었습니다.
그래서 낮에 일을 많이 하느라고 몸이 피곤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피곤했기 때문에 졸지 않으려고 창문에 걸터앉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깥도 아니고 안쪽도 아닌 창문은 위험한 곳입니다.
즉 믿으려면 확실하게 믿든지 안 믿으려면 밖으로 나가든지 태도가 확실해야 합니다.
오히려 어정뜨기는 다른 교인들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드고가 창문에 걸터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으니, 다른 교인들에게도 집중력을 방해하고 바울 사도에게도 방해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졸리면 아예 밖에 나가서 세수를 하고 다시 들어와야 합니다.
그런데 유드고는 창문에 앉아서 졸다가 깊이 졸았습니다.
이 때 다른 참석자들이 유드고를 깨웠더라면 좋았을 것인데, 내버려 두었다가 유드고의 추락 사건으로 인해 성경 강해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듣다가 조는 사람이 있으면 옆 사람이 깨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졸음이 전염되어서 모두 설교를 못 듣고 끝나버리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옴을 볼수록 모이기에 힘쓰도록 서로 격려하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그리고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갈 때, 슬기로운 다섯 처녀같이 졸지 말고, 깨어 기도함으로 등불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1-13)
3. 유드고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3층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얼마나 충격적인 사건입니까?
여름 수련회 때 어린아이가 하나 죽으면, 교회가 쑥대밭이 되어버립니다.
이때 드로아 교회도 유드고 청년이 예배당에서 설교 듣다가 떨어져 죽었으니, 잘못하면 교회가 시험 들어서 문을 닫아야 할 정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핍박과 데모가 일어났는데, 유독 드로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만은 평안했습니다.
1차 전도 때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교인이 죽이려고 했고, 이고니온까지 쫓아와서 난동을 부렸고,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아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2차 전도 때는 빌립보에서 점쟁이 사업가들이 고소해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었고,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는 유대교인들이 죽이려고 해서 도망했고, 고린도에서는 유대교인들이 고소해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3차 전도 때는 에베소에서 아데미 우상 장사꾼들이 데모해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드로아에서는 이런 핍박이나 데모가 없이 복음 전도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고린도후서 2: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이처럼 드로아에서는 외부적인 핍박이나 데모가 없어서 평안했는데, 내부적으로 바울의 설교 때 유드고가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유드고가 다시 살아나지 않고 그대로 죽어버렸다면, 온 교회가 시험이 들어 문을 닫고 바울의 복음 전도도 중단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늘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외부적인 핍박은 성도들에게 깨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평안하기만 하면, 내부적으로 썩어서 스스로 무너지고 맙니다.
만일 우리 교회가 아무 문제가 없고 평안하기만 하면, 내부적으로 곪아서 자체적인 범죄로 무너져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재림하시기까지 늘 깨어 기도하시고, 서로 격려하여 모이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10절.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Paul went down and fell upon him, and after embracing him, he said, "Do not be troubled, for his life is in him.“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καταβὰς δὲ, ὁ Παῦλος ἐπέπεσεν αὐτῷ
having descended but, the Paul fell upon him
‘내려가서’(καταβὰ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descended) 바울이 재빨리 내려간 모습을 가리킵니다.
‘엎드려’(ἐπέπεσεν)는 부정과거로서(fell upon) 바울이 확 엎드린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καὶ συμπεριλαβὼν, εἶπεν
and having embraced, he said
직역하면 ‘안고 말했다’는 뜻입니다.
‘안고’(συμπεριλαβὼ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embraced) 확 끌어 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말하되’(εἶπεν)는 부정과거로서(he said) 단호하게 말한 모습을 가리킵니다.
떠들지 말라
Μὴ θορυβεῖσθε·
not be alarmed
여기 동사(θορυβεῖσθε)는 현재 명령형으로서(be alarmed), 원형(θορυβέω)은 ‘크게 당황하다, 두려워하다, 공황에 사로잡히다’(disturb greatly, terrify, strike with panic)는 뜻입니다.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ἡ γὰρ ψυχὴ αὐτοῦ ἐν αὐτῷ ἐστιν.
the for life of him in him is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의 생명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란 뜻입니다.
여기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 (is)
1. 바울이 설교할 때, 설교 듣던 사람이 죽었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런데 이 때 바울은 설교를 중단하고 내려가서 죽은 청년의 시신 위에 엎드려서 몸을 안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엘리사 선지자가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을 때, 그 시신 위에 엎드려서 눈에 눈을 대고, 입에 입을 대고, 손에 손을 댄 후에, 일곱 번 그렇게 한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죽은 사람의 몸 위에 엎드린 것은 자기의 생명을 죽은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간절한 모습입니다.
보통은 병자에게 안수 기도를 하지만, 이처럼 특별한 경우에는 죽은 사람의 몸에 엎드려서 생명을 전달하고 살려내기도 했습니다.
2. 바울이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고 한 말은 정말 바울이 영적인 안목이 열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 이*택 목사라는 분이 충청도 서산에서 집회를 하는데, 제주도에서 어떤 부인이 이 목사님을 만나려다가 못 만나고 병원에서 죽었답니다.
그런데 의사도 죽었다고 링거를 다 빼고, 심전도 기계도 다 멈추어서 다 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영안으로 보니까, 아직 살아있더랍니다.
그래서 병실이 떠나가라고 30분 정도 기도하니까, 죽었다던 분이 다시 살아났답니다.
이처럼 바울은 영적인 안목으로 유드고가 살아 있는 것을 보고, 기도하여 완전히 살려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죽었던 유드고를 살려낸 기적적인 사건입니다.
마치 베드로가 사도행전 9장 40절에서 죽었던 도르가를 살려낸 것과 같습니다.
11절.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he had gone back up and had broken the bread and eaten, he talked with them a long while until daybreak, and then left.
올라가
ἀναβὰς δὲ
having gone up then
‘올라가’(ἀναβὰ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gone up) 모두 다 올라간 사실을 가리킵니다.
떡을 떼어 먹고
καὶ κλάσας τὸν ἄρτον, καὶ γευσάμενος,
and having broken the bread, and having eaten
‘떼어’(κλάσας)는 부정과거 분사이고(having broken), ‘먹고’(γευσάμενος)도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eaten) 모두가 감동적인 마음으로 떡을 떼어 먹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ἐφ’ ἱκανόν τε ὁμιλήσας ἄχρι αὐγῆς,
for long and having talked until daybreak
‘이야기하고’(ὁμιλήσας)도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talked) 모두가 감동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것을 가리킵니다.
떠나니라.
οὕτως ἐξῆλθεν.
so he departed
여기 동사(ἐξῆ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he departed) 바울이 흔연히 떠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유드고가 살아난 후에 다시 3층에 올라가서 다시 떡을 때어 먹고, 날이 새도록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고, 또 교제했습니다.
성찬과 예배와 성경 공부와 애찬과 교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초대 교회의 모임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 광주 동*교회 청년회 모임도 그랬습니다.
사도행전 2장 43-47절에서 초대 예루살렘 교회도 집에 모여 함께 떡을 떼고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배하고, 기도에 힘쓰는 아름답고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꼬박 철야 집회를 했습니다.
성찬식도 거행하고, 말씀도 오랫동안 듣고, 죽었던 사람도 살아나고, 떡을 떼면서 오래도록 친교 하면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좋은 철야 집회의 모습입니다.
12절.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y took away the boy alive, and were greatly comforted.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ἤγαγον δὲ τὸν παῖδα ζῶντα,
they brought then the boy being alive
직역하면 ‘그들이 살아있는 그 소년을 데리고 가서’란 뜻입니다.
‘살아난’(ζῶντα)은 현재분사로서(being alive) ‘살아있는’이란 뜻입니다.
‘데리고 가서’(ἤγαγον)는 부정과거로서(they brought) 정답게 데리고 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καὶ παρεκλήθησαν οὐ μετρίως.
and were comforted not little
‘위로를 받았더라’(παρεκλή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ere comforted) 깊은 위로를 받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1. 3층에서 떨어져 죽었으면, 다시 살아났더라도 상당한 기간 동안 병원에 입원해있다든지, 적어도 며칠 동안 누워 있어야 할 것인데, 떨어지기 이전처럼 완전한 건강을 회복한 것이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드로아 교인들은 유드고 회생을 통해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나 가정이나 교회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함으로써 큰 위로를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드로아 교회의 아름다운 친교와 열성적인 성경 공부를 본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유드고가 다시 살아난 것과 같은 놀라운 은혜들을 생활 속에서 많이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