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역사박물관 전시실은 수원의 지명 및 문화의 변천사와 근대수원의 발전사 전시관이다. 수원의 자연환경, 선사시대부터 삼국,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의 수원지역에서 발굴된 유물 수천여 점과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의 수원, 근대수원 100년을 함께 전시해 근대 수원의 발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수원의 자연환경
수원은 한반도의 중심지인 경기 남부에 위치하며, 거대한 광교산의 산세와 수원천의 맑은 물, 안성평야로 이어지는 넓은 곡창지대가 있는 살기 좋은 도시다. 북동 서쪽 외곽으로는 광교산맥이 둘러져있으며 남쪽으로는 평야로 연결되는 분지다.
광교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광교산, 수원천으로 이어져 수원시내를 흘러 황구지천에서 합류하여 안성천을 거쳐 서해로 흘러간다. 수원(水原)은 물고을로 서해를 아우르는 군사적 요충지이다. 고구려의 매홀(買忽) 신라의 수성(水城), 고려의 수주(水州) 등은 모두 '물고을'을 의미한다.
고려 태조 왕건이 남쪽을 정벌항 때 수성군의 김진과 최승규 등의 호조세력이 귀순하여 공을 세워 수성군을 수주로 승격시켰다. 수주는 1018년 (현종 9년) 지방제도가 정비되면서 영역이 확장되어 1271(현종 12년)년 수원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1310년(충신왕 2년)에 수원부가 되었다.
조선시대의 수원
1789년(정조 13) 정조는 경기도 평택 매봉산에 묻힌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읍치가 있던 화산으로 이장했다., 이에 수원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겨 농상(農商) 업 진흥을 위해 시전을 설치하고 저수지를 만들어 둔전(屯田)을 경영함으로써 자급자족 신도시를 만들고자 하였다.
더욱이 화성(華城)을 건설하고 화성유수부를 설치함으로써 수원은 한양(서울) 남쪽의 대 도회지가 되었다. 화성 건설은 정조의 아버지에 대한 효심과 백성과 더불어 함께하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을 실천하고자 한 군주의 꿈이 담겨있다
수원부사 조심태는 1789년 (정조 13년) 수원부사로 임명되어 현륭원(현 융건릉) 조성, 수원부 읍치 이전 등 중요한 과업을 맡았던 정조의 충신이었다. 사도세자의 무덤 이전이 결정되었을 때 수원부사로 임명된 조심태는 이후 수원화성 성역에도 감동당상(監童堂上)이라는 직책을 맡고, 수원 유수와 정용영 대장 등을 역임했다.
근대사의 수원
수원은 전국 6대로(六大路) 중 해남로(제주로) 주요 교통로로 위치하고 있다. 1795년 시흥, 안양을 거쳐 수원으로 오는 수원대로 가 열리면서 수원은 임금이 찾아오는 도시가 되었고 1번 국도와 경부선 철도가 이 길을 따라 개설되었다.
근대 수원은 1905년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대 도회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3,1 운동이 가장 치열하게 일어난 곳이 수원이었고, 6,25 전쟁으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중요한 도시였다. 1967년 경기도청이 서울에서 수원으로 이전하면서 경기도의 수도로 거듭났다.
현재의 수원은 정조의 유산인 수원화성이 1997년 12월 6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찬란한 역사의 도시, 문화의 도시, 관광의 도시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이 찾는 국제관광의 도시로 거듭났다.
e수원뉴스 차봉규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