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과 기독교 신앙
빌 4:4~5
1. 3.1 만세운동의 시작
1)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29명은 서울의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갖고 자진 신고하여 체포되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파고다공원에서는 경신학교 출신인 주일학교 교사 정재용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시위를 벌이기 시작했고, 평양, 진남포, 안주, 선천, 의주, 원산 등 전국 9개 지역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다.
2) 특히 기독교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웠는데, 평양에서는 선우혁이 서울의 이승훈, 양전백 등을 찾아가 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한 뒤 평양, 선천, 정주 등의 서북지역 기독교세력을 중심으로 조직화작업에 들어갔으며, 서울에서는 황성기독교청년회의 박희도와 세브란스병원 제약주임 이갑성 등이 전문학교 학생대표들과 독립운동 방안을 논의하였다.
3) 이후 두 운동세력은 이승훈의 제의에 따라 천도교 등과 연합하였고, 불교계 인사들도 참여하면서 연합은 확대되었고, 독립선언서에는 기독교 16명, 천도교 15명, 불교 2명이 서명하였다.
2.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들
1)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유여대 목사는 서울 선언식에 불참한 대신 평북 의주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이끌었는데, 김창건 목사, 김이순 전도사 등의 교역자들과 함께 지역주민 7~8백여 명을 모아 직접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었다.
2) 3월 12일 김백원 목사(안동교회), 차상진 목사(승동교회) 등 12명은 서울 서린동 영흥관에 모여 조선총독 하세가와에게 보낼 장서를 작성하고, 종로 보신각 앞에서 군중이 보는 가운데 낭독했다.
3) 평양에서는 김선두 목사(장로교 총회장)가 이일영, 김이제, 강규찬 목사,정일선 전도사 등과 함께 평양 6개 교회를 연합하여 숭덕학교 운동장에서 만세시위를 벌였으나 그는 현장에서 구속돼 1년 6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4) 경북지역에선 3월 8일 대구 장날에 노회장 장재순 목사, 서기 이만집 목사 등이 시위를 벌였는데, 교인들과 계성학교 학생들 7~8백여 명이 장터에서 준비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눠주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5) 강화에서는 평신도에 의해 만세운동이 벌어졌는데, 은 세공업자인 유봉진을 비롯한 기독인들이 1만 명이 모여 3월 18일 강화읍 장날에 시위를 벌였다.
6) 전북 이리(현 익산시)에서는 당시 노회장이던 최대진 목사와 문용기 장로 등이 남전교회에서 거사를 모의한 후 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을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문용기 장로가 일경에게 항거하다 체포돼 일경의 칼에 쓰러졌다.
3. 3.1 만세운동과 교회의 핍박
1) 3월 3일 평남 강서 사천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사천교회와 원장교회 교인들)이 일어났으나 일제의 총격으로 43명이 사망하고 20여명에게 중상을 입었고, 3월 4일 정주에서는 학살 방화사건이 일어났으며, 서울에서는 기독인들을 체포하여 교회로 끌고 가서 십자가에 묶고 죽였다. 4월 15일 수원 제암리교회에서는 일본군에 의하여 제암리의 성인 남자 30여명이 교회에 갇힌 채 불에 타 희생당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2) 장로교에서는 3.1 운동으로 사망한 교인이 52명, 체포된 교인이 3804명인 것으로 집계되었고, 감리교에서도 교역자 160여명이 투옥되었으며, 일본 헌병대의 조사 결과 목사를 포함한 교역자 244명이 체포돼 그 수가 천도교나 불교의 두 배에 달했으며, 특히 여성 구금자 471명 중 309명이 기독인이었다.
3) 1920년대 일제가 만든 비밀 문건 속에 “이 민족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단체가 있다면 그것은 조선의 교회이다”라는 정보 분석 보고가 있다고 한다.
4. 3.1 만세운동과 기독교 신앙
1) 3.1 만세운동은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이뤄졌고, 의주와 평양에서는 목사에 의해 진행되었으며, 311개 지역 가운데 78개 지역에서 기독인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기독교와 천도교가 공동으로 주도한 곳도 42개 지역에 달한다.
2) 만세시위 때도 기독인들은 ‘독립단 통고문’을 뿌리면서 매일 3시에 기도하고 주일은 금식하며, 월요일 이사야 10장, 화요일 예레미야 12장, 수요일 신명기 28장, 목요일 야고보서 5장, 금요일 이사야 59장, 토요일 로마서 8장을 읽으라고 권면하였는데, 사 10장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시리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 렘 12장은 유다가 멸망한 배경, 신 28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에게 침략을 받아 고통을 받게 되리라는 예언을 담고 있으며, 약 5장은 고난당하는 기독인에게 기도로 인내할 것을 권면하며, 사 59장은 회개한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실 것이라는 내용이며, 로마서 8장은 장차 받을 은혜에 관한 내용이다.
3) “3.1운동을 주도한 기독교인의 민족의식 성격은 정의, 자유, 평화에 기반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확대라는 기독교 신앙과 자주, 평등, 해방을 목표로 한 독립국가, 민족자주의 건설이라는 민족적 양심의 접점에 있었다.”(이만열 명예교수, 숙명여대)
5. 이 말씀을 대하는 오늘의 성도들로서
1) 지난 역사 속에서 민족의 고난과 아픔을 짊어지고 앞장서 걸어가면서도 민족에 소망을 주었던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2) 외부적 위기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신앙의 자세는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도 필요하며, 미래에도 요구되는 신앙의 자세이다. 현실적 위기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고 함께 이 위기 속에 있는 이 시대에 참 소망의 빛을 비추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