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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중독자"
[누가복음 10:25-28]
오늘은 곧바로 본문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인기 스타셨죠.
인기가 많으면 반대파도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들이 누굽니까?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이들 중에 율법에 대해
너무 잘 알던 율법 교사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같은 이야기가 기록된
다른 공관복음들을 보면
질문의 내용이 조금 다릅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큽니까?”
라고 묻습니다.
마가복음 12장에는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
라고 합니다.
모두 다른 질문이지만 요점은 하나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에 율법은
천국으로 가는 열쇠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칼같이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심지어 율법 외에 정해 놓은 규칙들도
엄청 많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율법 교사는 예수님이라면 영생을 얻을 만큼
가장 크고 첫째가 되는 계명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대답 대신
역질문을 하십니다.
“율법에 뭐라고 기록되었고,
너는 어떻게 읽느냐?”
왜 예수님은 그의 질문에
곧바로 답을 주지 않으셨을까요?
그는 지금 예수님을 시험하며
이야기했습니다.
시험한다는 것은 정해진
답이 있다는 말이죠.
예수님은 질문 속에
답이 있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율법 학자의 대답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본문 27절입니다.
누가복음 10: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지금 율법 교사의 뿌듯한 표정이 보이십니까?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중요한 요점을 콕 집어서 전달합니다.
한 마디로 줄이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셨던 분들은
이 말을 정말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맞습니다.
기독교의 핵심 교리는 바로 사랑이죠.
하나님도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동의하시죠?
그런데 왜 사랑하며 살지 않으십니까?
저는 오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중
‘하나님 사랑’에 초점을 두고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오늘 본문은 신명기 6장을 배경으로 합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 중에 신명기 6장 5절이
오늘 본문에 그대로 인용되었습니다.
우리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신명기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어떻게 사랑하라고요?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랍니다.
‘마음’은 중심을 말합니다.
중심을 드려서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뜻’은 헬라어로 ‘이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맹목적으로가 아니라
지혜와 지성을 다해 사랑하는 것입니다.
힘을 다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여기엔 육체적인 노력과 재산 등을 포함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전인격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사랑한다고 할 때
‘뜨겁게 사랑한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남녀가 만나서 서로 뜨겁게 사랑하면
어떻게 됩니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나요?
사랑이 점점 식어요.
같이 사는 게 그냥 익숙해 집니다.
예전엔 방귀도 못뀌던 사람이
갑자기 폭탄 터지는 소리를 냅니다.
이전엔 밥먹는 게 예뻐 보였는데,
지금은 그만 좀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신혼 때는 남편에게 “언제 와?”라고
수시로 전화하고 문자했는데,
지금은 밖에서 밥 먹고 들어오면 고맙죠.
점점 세월이 지나오면서
익숙해지는 게 문제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은
너무 익숙합니다.
저처럼 어린 시절부터
예수를 믿은 모태 신앙인들은
더 그렇습니다.
익숙함은 착각에 빠지게 만듭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해’라고 말입니다.
율법 교사는 당당한 태도로 대답했습니다.
아마 그 주변에 있던 종교 지도자들도
고개를 끄덕였을 겁니다.
“그래, 맞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율법의 최고 계명이지!”
그런데 예수님은 그의 당돌한 대답을 듣고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나요?
본문 28절을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그의 대답을 인정하십니다.
그리곤 뭐라고 하시죠?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행한다는 것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손과 발로 직접 뛰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명문대 합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고,
수업 시간에 집중하며,
남들이 놀 때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면 됩니다.
정말 쉽죠?
살 빼는 것도 마찬가지로 쉽습니다.
적게 먹고, 많이 운동하면 됩니다.
공부도, 다이어트도 어떻게 하는지 참 잘 압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살도 안 빠지고,
성적도 안 나왔던 걸까요?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똑같습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성경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진짜 행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영생을 얻지도 못했을뿐더러,
영안이 어두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 아닙니까?
우리는 어떤가요?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이 인용된 신명기 6장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한
행동 지침을 가르쳐 줍니다.
신명기 6:8, 9을 읽겠습니다.
신명기 6:8-9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한 마디로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라는 것입니다.
저희 부모님께 감사한 것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집은 작았지만 집안 곳곳에
성경 구절이 붙어 있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손 글씨를 예쁘게 잘 쓰시는데
성경 구절을 그렇게 적어서 붙여 놓으셨어요.
화장실 변기 앞에도 붙여 놓으셔서
힘이 들어갈 때마다 외쳤습니다.
하박국 3장 19절이었어요.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여러분들 말씀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오늘부터 우리 주변에 말씀을 붙여 놓으십시오.
지금은 별거 아닐 것 같지만
힘든 순간 붙여 놓은 말씀이
우리의 힘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됨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신명기 6장 12절입니다.
신명기 6:12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하루도 은혜 없이 살 수 없죠.
다윗이 그랬습니다.
그가 쓴 시편 18편 1절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의 인생이 평탄했기 때문에
사랑한 게 아니었습니다.
힘겹고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그때마다 주님이 힘이 되어주셨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보십시오.
담임목사님께서 기도 중에 응답을 받고
개척 하셨을 때 돈이 한 푼도 없으셨다고 해요.
그런데 어떤 집사님께서
상가를 무료로 빌려주셨어요.
이 어찌 은혜 아닙니까?
여러분이라면 그렇게 하실 수 있겠어요?
쉬운 선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코로나 시국에서도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지켜주셨습니다.
특별히 담임목사님의 췌장암을
완전히 회복시켜 주셨고,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십시오.
거친 풍파 속에서도
안전한 포구로 이끌어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 기억할 때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기억함으로
주님을 더 사랑하길 축복합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주님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특히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말씀하시죠.
그 중 에베소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 교회는 환경적으로
예수를 믿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순수하게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주님도 이들의 수고와 헌신을 보셨고
칭찬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한가지를 말씀하시죠.
“처음 사랑을 버린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봉사하고 전도해도,
처음 사랑을 버리면 주님께 책망을 받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예수님을 사랑하는
첫 마음을 여전히 갖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드리는
헌신과 예배를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날카로운 책망을 들어보십시오.
요한계시록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처음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회개하랍니다.
회개는 회복으로의 첫 걸음입니다.
이찬수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어떤 목회자가 성적으로
크게 범죄하여 지탄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먼저는
그 목사님이 안타까웠습니다.
어쩌다 저 지경이 되었나?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성령께서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다음은 너야.’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진짜 다음에 제가 그렇게 된다는 건가요?
그 목회자는 죄를 들킨 거고,
저는 안 들킨 죄가 훨씬 더 많다는 겁니다.”
여러분, 살이 갑자기 찌나요
아니면 어쩌다 보니 찐 겁니까?
어쩌다 보니 찐 거예요.
성적으로 범죄한 목사님이
처음부터 그러려고 목사 했겠습니까?
아닙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불타올랐을 거예요.
그런데 어느 순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떨어뜨렸던 겁니다.
빨리 깨닫고 다시 가서 주워야 했는데,
그걸 몰랐어요.
모른 채로 계속 살다가
어쩌다 보니 성범죄자가 된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 삶을 다시 돌아보십시오.
회개할 것은 없습니까?
진심으로 회개함으로 주님께 나아가면
미쁘시고 의로우신 주님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성령님께 도움 구하기’라고 생각합니다.
진리의 성령님은
언제나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분께
인생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운전면허증을 따려고
운전학원을 다닐 때입니다.
저는 20살이 넘으면
자연스레 운전을 잘 할 줄 알았습니다.
오락실에서 자동차 운전게임을
잘했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필기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혹시라도 떨어질까봐
조마조마하며 시험을 쳤죠.
감사하게 한 번에
필기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곧이어 운전 연수를 받았습니다.
제가 운전석에 탔고
옆자리에 인상 좋으신
조교 선생님이 타셨습니다.
떨린다고 이야기하자
부드러운 말투로 걱정말라며
저를 안심시켜 주셨습니다.
천천히 코스를 돌다가
“여기서 브레이크 밟으세요.”라고 하셨어요.
저도 모르게 꽉하고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았습니다.
그러니 몸이 앞뒤로 흔들렸죠.
조교님을 쳐다보니 당황한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걸 운전 연수 내내 반복했습니다.
그러니 나중엔
“브레이크! 브레이크!” 외치시던 기억이 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모두가 첫 번째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죠.
그래서 실수도 하고,
실패도 맛보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 주님은 다르세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은혜’입니다.
요셉의 인생을 보십시오.
형들에게 팔려 노예가 됩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총리에 앉히십니다.
그로 인해 그의 아버지를 비롯한 모든 가족이
기근의 때에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죠.
한나도 그랬습니다.
당시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면
저주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그녀의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역전 홈런을 치게 하십니다.
바로 사무엘의 탄생이었죠.
이렇듯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주님을 사랑함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날마다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자연스레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두려움이 물러갑니다.
사도행전 2장에
사도들과 제자들이 성령을 받습니다.
그러자 그토록 겁쟁이고 찌질했던 자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순교의 자리까지 나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이웃 사랑하는 자리까지 이끌어 가실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사랑의 주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을
보게 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중독’이란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중독이란 말을 찾아보니
영어로 ‘addiction’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의존’이란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중독은 ‘이거 없으면 안 돼’라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죠.
사람을 미치게 합니다.
그러다 보니 계속 그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술에 중독된 사람은 그것을 의존합니다.
힘들어서 술을 마시다가
나중엔 술이 없으면
밥도 먹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죠.
성 중독은 어떤가요?
처음에 호기심으로 포르노를 봤다가
나중엔 자기도 모르게 습관처럼 그 짓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중독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에 중독되면 죄에 빠집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이것들을 끊을 수 없습니다.
더욱 강력한 힘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일제가 나라를 강탈하여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시기에
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모진 고문과 핍박, 위협 속에서도
꿋꿋이 신앙을 지키셨습니다.
그가 남긴 시를 한 편 소개하고자 합니다.
<예수 중독자>
나 예수 중독자 되어야 하겠다.
술 중독자는 술로만 살다가
술로 인해 죽게 되는 것이고
아편 중독자는 아편으로 살다가
아편으로 인해 죽게 되나니
우리도 예수의 중독자 되어
예수로 살다가 예수로 죽자.
우리의 전 생활과 생명을
주님 위해 살면 주같이 부활된다.
주의 종이니
주만 위해 일하는 자 되고
내 일 되지 않게 하자.
바로 이 시는 사랑의 원자탄으로 알려진
손양원 목사님께서 쓰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감동되어
이웃 사랑까지 실천했습니다.
당시 한센병 환자(문둥병)들은
저주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을 이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러나 예수께 중독된 손목사님께
그들은 사랑해줘야 할 이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의 수많은 것들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순간
그런 것에 중독된 채로 살아가진 않습니까?
사탄은 오늘도 우리에게
하나님보다 세상 것을
더 사랑하도록 부추깁니다.
옛날엔 주님을 뜨겁게 사랑했는데,
그 사랑이 식은 분 계십니까?
오늘 우리를 괴롭히던 중독이 끊어지고
주를 향한 사랑이 불타오르길 축복합니다!
예수를 사랑하면 그분께 중독됩니다.
중독은 의존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만 의지하십시오.
어떤 거친 파도가 우릴 향해 오더라도
예수님만 의지하면 안전할 줄 믿습니다.
예수 중독자 되면 승리합니다.
모두 그런 은혜가 있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