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전세 집이라는 말이 있다.
임대 기간이 다 되면 돌려줘야 한단다.
그런데 돌려줄 때는 하자 보수는 필수고..
몸이 무엇일까?
몸은 우리가 사는 집이고 지식이나 영혼도 건강한 몸 안에 있을 때 가치가 있다.
몸이 아프거나 무너지면, 별 소용이 없다.
왜?
집이 망가지면, 집은 짐이 되기 때문이다.
소설가 박완서 씨는 노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젊었을 적의 내 몸은 나하고 가장 친하고, 만만한 벗이더니, 나이 들면서 차차 내 몸은 나에게 삐치기 시작했고, 늘그막의 내 몸은 내가 한평생 모시고 길들여온, 나의 가장 무서운 상전이 되었다.”
몸만이 현재다.
생각은 과거와 미래를 왔다 갔다 한다.
하지만, 몸은 늙어 이 지경이다.
현재의 몸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래서 몸은 늘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데, 몸을 관리하지 않고 방치한 죄, 벌 받아 마땅하다.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가 2009년 만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故 장영희 교수의 책, <내가 살아보니까>는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1952년생인 그녀는 생후 1년 만에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소아 마비에 걸려서 평생 비 장애인들의 차별과 싸워야 했다.
입학 시험조차 볼 수 없었던 그녀는 여러 대학의 차별에 막혔다.
그녀를 위해 부친이신 故 장왕록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께서 던진 질문에, 서강대 영문학과 학과장 ‘브루닉 신부’는 이렇게 답변했다.
“무슨 그런 이상한 질문이 있습니까? 시험을 머리로 보는 것이지, 다리로 보나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 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마친 그녀에게, 국내 대학들은 다시 한번 박사 과정 입학 허가를 꺼렸다.
그녀는 결국 미국으로 건너가 1985년 뉴욕 주립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를 취득한다.
그리고 그 해 귀국한 그녀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24년 간 모교인 서강대학교의 영문 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시련은, 장애인으로 사는 생활에 그치지 않았다.
2001년에는 유방암, 2004년에는 척추 암이 그녀를 엄습했다.
굳은 의지로 이를 모두 이겨낸 그녀는, 2008년 다시 찾아온 간암은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2009년 5월 생을 마감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장영희 교수는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 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라는 믿음으로 투병의 와중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서 여러 권의 책을 냈다.
‘내가 살아보니까’라는 2009년 그녀가 병상에서 쓴 마지막 책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의 한 구절이다.
내가 살아보니까,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남을 쳐다볼 때는 부러워서 든, 불쌍해서 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 차원을 넘지 않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이,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더라.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평생이 걸린다는 말이더라.
이제 우리 나이면 진실로 소중한 게 무엇인지 마음 깊이 깨달아지는 나이다.
남은 시간 동안 서로 서로 보듬어 안아주고, 마음 깊이 위로하며 공감하며, 더불어 같이 지낼 수 있는 인간의 소중함을 깨우쳐 알 수 있는 나이다.
<진리는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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