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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론에 대한 연구보고서 / 제94회(2009) 총회
1. 삼신론
삼위 하나님의 본질의 통일성(단일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AD550 아스쿠나게스(Johannes Askunages)와
필리포네스(Johannes Philipones)를 중심으로 한 단성론자들에 의해 주도된 이론이다. “그리스도의 본성은
신성과 인성이 혼합된 단일 본성이며 삼위일체안에는 세가지 신적 본질(ousiai)이 있다”는 주장이다.
로스켈리누스(Roscellinus 1050-1128)는 “세 위격은 하나의 의지와 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여 삼위일체의
통일성을 유지하려 하였으나 세 위격이 분리되는 세 하나님의 의미를 더 강조함으로 삼신론에 빠짐으로 제4차
라테란공의회(1214)에서 정죄되었다.
안톤 군테(Anton Gunthe 1783-1863)는 “고대 다신론적 종교의 삼신-스토아적 ‘로고스’(Logos)와 신플라톤적
‘누스’(Nous,이성) 및 절대자의 자기현시에 있어서의 삼중적인 운동”을 주장한 헤겔(Hegel)의 범신론적인 주장에
반대하여 “그리스도의 본질은 삼중적이며 지각을 통해서 서로 끌어 당기는 세 본질이 형식상 통일을 이룬다”고
주장하였다. 군테의 주장은 1857년 교황 피우스9세에 의해 정죄되었다.
그런데 유의해야 할 점은 비록 삼위일체를 반대하여 정죄된 사람들의 동일한 주장은 “이 교리가 유일신론을 희생하여
삼신론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전혀 다른 인간자아의 형상에서 비롯된 신적 인격성에 대한 잘못된
개념에서 발전된다는 점이다. 즉 신성이 정의상 인격이어야 한다는 것과 삼위는 각각의 인격을 소유한 개별적
존재이며 각각의 신성을 소유한 것으로 삼신이 된다는 주장이다. 삼위를 분리적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대하여 기포드(Gifford 1918)는 “삼위를 하나님의 인격보다는 하나님 속에 존재하는 인격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세 위격을 한 인격으로 보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나 그러나 세 위격을 한 인격이라고 보기 보다는
세 위격이 모두 인격을 가진 존재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노력은 삼신론이나 다신론을 배격하고 이교세계와는 다른 기독교의 가장 귀한 유일신앙, 하나님의 단일성을
보존하려는데 있었다.
분명한 것은 성경의 계시는 일차적이며 최상의 것으로서 고대 세계의 다신론과 실제적인 무신론에 반대하여 전체에
걸쳐 유일신앙, 곧 하나님의 유일성의 진리를 제시하고 있다.
2. C목사의 삼위일체주장 비판
C목사의 삼위일체 신관을 분석하기 위해 그가 위트니스 리측(지방교회)과 지상논쟁을 벌였던 내용(월간 교회와 신앙,
96년12월호-2001년11월호)을 참고로 한다.
3. 문제의 발단
C목사는 지방교회의 삼위일체 주장을 비판하면서 교회와 신앙 96년 12월호 136쪽에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위트니스 리는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으로 세 인격이 한 영안에 있는 삼일 하나님이 되었다고
하는 말이 그렇다. 그는 비록 인격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셋’이라는 말을 쓰고 있으나 영을 말할 때는 ‘한’ 영안에
삼일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약이나 신약이나 아버지 하나님도 ‘한’ 영시요 성령님도 ‘한’ 영이신데
어떻게 이 둘이 하나라고 하는가?” 그러므로 “위트니스 리가 ‘한’ 영의 하나님을 주장하고 있는 점이 바로 양태론적
삼위일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대해 지방교회측이 “ ‘영’은 하나님의 본질을 가리키는 말로서 C목사의 주장대로 하면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님은
두 본질을 가진 존재가 됨으로 이는 정통신앙에 위배될 뿐 아니라 이단적인 것임으로 반드시 수정되어야 한다”(교회와
신앙 97년3월호)고 비판하자 C목사는 교회와 신앙 97년 6월호에서 “‘하나님은 세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이라는
주장은 이단적인 것으로 ‘하나님은 하나의 영이 아닌 세 영들의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였다.”
이에대해 지방교회측은 C목사는 “세 위격의 하나님의 한 본질(영)”을 부인하는 삼신론자이다“(교회와 신앙 97년
7월호)라고 비판하자 교회와 신앙 97년 8월호에 ”위트니스 리가 ‘한’ 영이란 말을 하나님의 본질에 대하여 한
말이라면...이 말이 맞다”고 마지못해 인정하고 “그러나 위트니스 리는 ‘한’영이란 말을 본질에 대한 말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다시 비판하였다.
4. C목사 주장의 문제점
상기와 같은 양측의 논쟁에서 서두에 밝힌 것처럼 위트니스 리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C목사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위트니스 리측의 주장은 분명 양태론적 주장임으로 더 이상 비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C목사의 주장의 문제점만 살펴보려고 한다.
“만일 한 영이란 말이 본질의 단일성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맞다고 할 수 있으나”
C목사는 분명 하나님을 영이라고 할 때에는 본질의 단일성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더구나
이종성박사의 글을 인용하면서 야훼 하나님은 영적본질을 가진 분임을 인정하고 있다.
“이종성교수는 하나님을 영이라고 하면서 ....”영은 삼위일체 신의 존재 형식을 의미한다....신은 처음부터
그 존재방식에 두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삼위일체라는 형식이요 다른 하나는 영적 존재라는 것이다.
야훼신이 영적 본질을 가지고 있었기에....“(교회와 신앙 2001.11월호)
또 이종성교수는 자신의 글(상게서 P141 상단)에서 “그러나 삼위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영 이시라는 말이다”고
강조함으로 하나님을 영으로 표현할 때 영은 하나님의 본질의 단일성을 가리키는 뜻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C목사는 “필자는 삼위 하나님의 상호내재를 부정하지 않으며 본질의 단일성을 믿고 인격의 구별성을 믿는다”
(교회와 신앙 97년11월호)고 하였다.
그렇다면 “성부(하나님)도 한 인격으로서 영이시요 성자도 한 인격으로서 영이시요 성령도 한 인격으로 영 이시다.
그러나 세 영이 아니라 한 영 이시다”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C목사는 “성부도 한 인격으로서 한 영이시요 성자도 한 인격으로서 한 영이시요 성령도 한 인격으로서
한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영의 하나님이 아니라) 세 영들의 하나님이다”라고 주장한다(교회와 신앙 96.
12월호)
C목사는 자신의 이와같은 주장이 삼신론에 해당한다는 공격을 받자 [교회와 신앙 97년8월호]에서는 “필자가 각각
한 영이라고 한 말은 셋에 속한 부분으로서 한 말이다. 즉 아버지 하나님도 한 인격으로서 영 이시요 아들
하나님도 한 인격으로서 영 이시요(물론 아들 하나님만은 육을 취하셨지만) 성령님도 한 인격으로서 영
이시다는 말이다”라고 처음 주장인 삼위가 “ 한 영이시다” 라고 교묘히 말을 바꾸어 96년 12월호에서 주장한
내용에서 <한-하나>라는 말을 빼 버렸다. 이것은 그의 첫 주장이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세 영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한 영의 하나님임을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 “각각 한 영이라고 한 말은 셋에 속한 부분으로서 한 말이다”고 주장한 것도 문제가 된다. “성부의 영, 성자의 영,
성령이 셋(삼위)에 속한 부분이다”라는 주장은 삼위일체론에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삼위가 셋에 속한 부분이라는
표현은 삼위 하나님은 셋이 합하여 온전한 하나가 되며 성삼위 각위가 독자적으로 온전하지 못하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C목사는 위트니스 리의 삼위일체론을 비판하는 글에서 “윗트니스 리는 비록 인격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셋’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영을 말할 때에는 ‘한 영안에 있는 삼일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약이나 신약이나
아버지 하나님도 한 영이시오 성령님도 한 영이신데 어떻게 이 둘이 하나라고 하는가?”(교회와 신앙 96년 12월
136쪽)C목사의 주장은 하나님 아버지도 한 영이시고 성령도 한 영으로서 하나님은 두 본질(영)을 가진 분으로
‘이 둘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자신이 주장한 하나님은 ‘한 영이 아니라 세 영들이며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앞서 언급한 “영을 하나님의 본질을 나타내는 말이라면
맞다” “필자는 하나님의 상호내재를 부정하지 않으며 본질의 단일성을 믿는다”는 자신의 주장을 뒤 엎는 것으로
그의 주장은 삼위 하나님은 영이 각각 다른 본질을 지닌 세 하나님이라는 뜻이 되고 만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히 그는 “성부도 한 인격으로서 한 영이시요 성자도 한 인격으로서 한 영이시요 성령도 한 인격으로서
한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 영들의 하나님이시다”라고 주장 하였다. 그의 주장에서 인격과 영은 동질이다.
그러므로 인격=영이다. 인격은 페르소나(persona)를 번역한 말이다. 그러므로 영도 페르소나이다.
그러므로 C목사의 주장은 ‘(하나님은)세 (영)페르소나라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삼신론이 된다는 것이냐?’는
주장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하나님을 영이시다’라고 할 때 이것은 하나님의 본질(본성)을 나타내는 극히 제한적 용어이다.
그러므로 C목사 자신도 “삼위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영이시다”라고 인정하였다. 이렇게 볼 때 영은 페르소나가 아니라
숩스탄티아(substantia)- 곧 본질(본성)을 나타내는 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C목사의 주장대로 옮기면 “성부도
한 페르소나로 한 숩스탄티아 이시며 성자도 한 페르소나로 한 숩스탄티아 이시고 성령도 한 페르소나로
한 숩스탄티아 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 숩스탄티아(본질) 이다”
C목사는 분명 각각의 본질을 가진 ‘세 영들의 하나님’, 곧 세 분 하나님을 주장하고 있으므로 그의 주장은 삼신론으로
충분히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삼위일체론에서 ‘페르소나’를 ‘영’으로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신론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다’라고 할 때는
언제나 영은 하나님의 속성-곧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혹 ‘영’이란 단어를 한 하나님 안에서 인격의 개체를 표현하는
의미로 쓸 수 있으나 그러나 삼위 하나님을 세 영들의 하나님으로 표현하는 것은 삼위일체론에서는 적절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한 인격으로 한 영이요 아들 하나님도 한 인격으로 한 영시며 성령 하나님도 한 인격으로
한 영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 영들의 하나님이다”라는 주장은 삼신론의 근거가 될 수 있으며 이것은
결국 세 하나님이 되어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아다나시우스 신조와 상충된다.
C목사가 이렇게 무리가 따르는 주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지방교회측을 비판 하면서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하나님의 경륜,p16)이라는 지방
교회측의 주장이 양태론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의 세 인격이 하나의 영안에 속할 수 없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도 한 영이요 성령님도 한 영이신데 어떻게 이 둘이 하나라고 하는가 반문하며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영이 아닌 세 영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와 신앙 96.12월호).
지방교회측에서 “ ‘영’은 하나님의 본질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본질(영)이 아닌 하나의 본질(영)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C목사의 주장은 삼신론이다“라고 공격하자 C목사는 “영이 하나님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면
(지방교회측의 주장)이 맞다. 그러나 한 인격으로서 성부 하나님도 한 영이시오 한 인격으로서 성자 하나님도
한 영이시오 성령도 한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 영들의 하나님이다“라고 분명히 ‘영’을 하나님의 본질을
나타내는 말로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을 세 영들의 하나님’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유는 한 지방교회측의 삼위일체론이 양태론임을 단죄하기 위해서로 보인다. 굳이 이런 주장을
하지 않아도 지방교회측의 신관은 양태론이다.
C목사는 자신의 주장이 삼신론이라고 비판을 받자 ‘자신은 한 본질에 세 인격이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하나님은 한 분인가, 세분인가?’라는 주제아래 “칼빈도 하나님이 한분 이심도
강조하였지만 세 분 이심도 말하였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분 하나님 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아버지가 아니시고 성령은 아들이 아니시다. 세 분은 독특한 특성에 의해 구분된다”(2001. 11월호)고 주장하며 칼빈도
세 분 하나님을 주장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C목사는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분’이란 말은 ‘페르소나’란 말을 변역한 것으로 이것은 우리가 ‘위(격)’으로 번역하여
사용하는 말이다. C목사는 “‘분’ 이란 말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칼빈의 기독교강요 원문에는
한국 말의 ’분‘이란 개념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칼빈도 하나님이... 세 분 이심도 말했다“고 앞뒤가 맞지않는 주장을
하는 이유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C목사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한국교회나 세계교회가 자칫 삼신론적 의미로 받아들여질 위험성이
있으므로 사용하지 않는 ‘세 분’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치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C목사는 ‘아다나시우스 신조의 “성부도 신이고 성자도 신이고 성령도 신이다. 그러나 신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는 의미는 “본질의 단일성을 주장하는 것임을 명확히 알 수가 있다”라고 하였다(2001.1월호 p.144) 이 글은
성삼위 하나님의 본질의 단일성을 인정한 말이다.
교회가 정통교리로 인정하는 아다시우스 신조는 하나님(신)을 본질적으로 한 분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C목사는
아다나시우스 신조의 본질의 단일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신을 셋(세 영들)’으로 주장하는 이율배반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C목사의 주장대로 한다면 ‘성부도 신이고 성자도 신이고 성령도 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 신들의
하나님이다’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분명 아다나시우스 신조는 “한 신만 존재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 C목사는 자신의 주장을 변명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복수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지고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고 하였다. C목사는 하나님을 복수 신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근거로 “창1:26에
하나님을 ‘우리’라는 복수로 기록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물론 이 성경구절은
하나님을 ‘우리’라는 복수로 표현하고 있다(우리는 1인칭 명사). 그러나 하나님이 여러분이기 때문에 ‘우리’라는
표현을 한 것이 아니다. 계시적 해석(본인이 여기서 해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경신학적
측면에서 가능한 해석일 뿐 성경 기록의 본래적 문학적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으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우리’라는 표현은 ‘히브리인들은 장엄한 것을 나타낼 때 흔히 복수형을
사용함으로 강세를 나타내는 히브리 문학적 표현이다’(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을 나타내는 복수명사-예,
엘로힘-를 하나님들이라고 부르고 있지 않다)
즉 하나님을 ‘우리’라는 1인칭 명사로 표현한 것은 복수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장엄하심과
강하심을 나타내는 히브리 문학적 표현인 것이다.
벌코프는 “엘로힘이나 (하나님에 대한) 복수적 표현들은 하나님안에 있는 인격적 복수성(plurality)을 지적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삼위일체의 증거로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벌코프 2권 신론 p154)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마치 이 성경구절이 하나님을 복수로 표현할 수 있는 근거인양 왜곡하여 인용하고 있는 것은 C목사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C목사가 위트니스 리의 삼위일체론을 비판하면서 주장한 “하나님은 한 영의 하나님이 아니라
세 영들의 하나님이다”라는 주장은 영이 하나님의 본질을 의미하는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을 세 영들의
하나님”으로 주장하는 것은 삼신론적 주장으로 충분히 인식될 수가 있다.
C목사는 자기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면 ‘통합측 교단의 위트니스 리에 대한 정죄가 잘못되었다고 해야 한다’
고 주장하였다(2001.11호 p144). 이것은 위트니스 리를 이단으로 정죄할 때 총회에 보고한 보고서가
C목사 자신의 글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위트니스 리를 이단성이 있다고 결정한 본 교단의 결정은 결코 삼위일체론 한 가지에
국한된 것이 아니므로 자기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면 위트니스 리의 이단정죄가 잘못 되었다고 해야한다는 주장은
자신의 주장이 곧 정통이요 이단정죄의 잣대라고 말하는 것으로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5. 성령론에 대한 문제점
C목사의 문제점은 삼위일체론만이 아니다. 그는 성령론에서도 성경의 가르침과 또 우리 교단의 신조와 신앙
고백과는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이제 그가 주장하는 성령론의 문제점을 논해보자.
C목사는 교회와 신앙 97년9월호 p142-144에 윤 모목사의 계시론을 비판하는 글에서,
윤 모목사의 ‘성경계시는 사도시대에 끝이 났으나 하나님의 이적은 지속되고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면서 “계시가
사도시대로 끝났다고 한다면 이적도 역시 끝났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윤 모목사가) 너무나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C목사의 주장은 세대주의적 근본주의자들 중 극히 일부가 주장하는 기적종료이론으로 ‘성령의 사역은 내적사역과
외적사역으로 구분되며 성경이 완성되기전에는 이 두가지 사역이 병행되었지만 성경이 완성된 이후에는 성령의
내적사역만 계속된다’는 이론이다.
이와같은 주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성령의 능력과 은사와 이적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부정하는 비성경적
주장이며 웨스터민스터 요리문답 제31장 성령에 대하여 제4항과 1986년에 채택된 본교단 신앙고백서 제4장 성령
제4항과 제5항에 명시된 ‘성령의 사역과 은사’를 부정하는 것으로 본교단의 신앙과 결의에 위배되는 주장이다.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바, 성령의 은사는 대부분 인간의 이성과 능력을 초월한 기적적인 것들이며 이러한 성령의
은사는 ‘믿고 구원받은 자들의 봉사를 위해 주신 선물로 신자들에게 다양하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적이 끝났다고 하면” 성령의 특수은사도 종결되었다고 해야한다. 그러나 분명히 성령의 특수은사는 지금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C목사의 주장은 일부 신학자들의 이론을 성경보다 우위에 두고 성경을
부정하는 이단적 주장이라 아니 할 수 없다.
C목사 스스로 교회와 신앙 2001년9월호, p144에서 “물론 기사와 이적을 본질적으로 부정하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상주의자가 되어 이단에 빠질 위험성이
더 커집니다”라고 기적을 부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하는 잘못된 것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C목사가 말하고 있는 “기사와 이적을 본질적으로 부정하면 문제가 된다”는 의미는 ‘성경에 나타난 기사와
이적을 부정하면 문제가 된다’는 것으로 여겨지며 다른면으로 해석하면 성경계시가 완성되기 전에는 (복음을
효과적으로 증거하기 위하여) 기사와 이적이 많이 나타났으나 성경계시가 완성된 후에는 실제적으로 이적도
끝이났다는 본래적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분명히 C목사는 “이단이란 말은...교리적인 면에서 규정하는 말”(교회와 신앙 97년6월호)이라고 스스로 정의를
내려 놓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필자(C목사)는 이단비판이나 규정을 ...교리로만 한다는 식의 말은 주장한
적이 없다”(교회와 신앙 2001년8월호.p144)고 말하고 있다. 우선 C목사의 거짓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단이란 교리적인 면에서 규정하는 말”이라고 해놓고 “그런 식의 주장(을)한 적이 없다”고 말을 바꾸고 있다.
그의 주장대로 교리적인 면에서 이탈되거나 잘못될 때 이단이 된다. “이적과 기사를 부정하는 것은 성경을
부정하는 것이요 나아가 성령의 외적사역-은사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것은 본교단의
신앙고백이자 교리를 부정하는 것으로 성령론에서 명백하게 잘 못된 것이다. 한가지 더 첨언하면 기적종료이론은
학자들의 학문적 주장일 뿐 교리나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C목사는 성경의 증거나 교단이 정한 신앙고백
(이것은 또 하나의 교리적 측면이 강하다)보다 일부 학자들의 그릇된 주장을 더 신봉하는 비성경적인 신앙의
소유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6. 결 론
(1) 삼위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영 이시다. 영은 페르소나(위격)가 아닌 숩스탄티아(본질)을 나타내는 말이다.
삼위일체론에서 페르소나를 영으로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신론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다’라고 할 때는
언제나 영은 하나님의 속성, 곧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혹 영이란 단어를 한 하나님 안에서 인격적 개체를 표현하는 의미로 사용할 수도 있으나 그러나 ‘삼위
하나님을 세 영들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삼신론으로 지적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성부 하나님도 한 인격으로 한 영시요 아들 하나님도 한 인격으로 한 영이시며 성령 하나님도
한 인격으로 한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 영들의 하나님이시다’라는 주장은 결국 하나님은
세 하나님이 되어 삼신론의 근거가 되며 모든 기독교회가 믿고 고백하는 아다나시우스 신조와 상충된다.
(2) “성부의 영, 성자의 영, 성령이 각각 하나라고 한 것은 셋에 속한 부분”이라는 주장은 하나님을 삼등분하여 성부,
성자,성령을 각기 1/3로 분리시킴으로 성삼위가 하나의 신적 본질안에 서로 구별되며 나뉘거나 혼합되지 않고
상호 종속됨이 없이 온전하신 개별적 실재를 손상시키고 삼위가 하나가 될 때만이 완전한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온전하신 삼위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3) ‘영’이 하나님의 본질,곧 성부,성자,성령이 하나의 영이심을 의미하는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구약이나 신약이나 아버지 하나님도 한 영이시요 성령님도 한 영이신데 이떻게 이 둘이 하나라고 하는가?”하는
주장은 하나님의 영과 성령은 각기 다른 영이라는 뜻으로 성부의 영과 성령의 하나되심을 부정하고 성부의 영과
성령이 각각 다른 영이라고 주장함으로 이신론, 혹은 삼신론의 오류에 빠지고 있다.
(4) “성경의 완성과 함께 성령의 모든 은사나 이적도 함께 끝났다”고 보는 기적종료이론은 근본주의 성향의 일부
개혁파들이 성령론에서 이런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성령의 능력과 이적을 부정하는 것은 신적능력의 자유함을
특정기간에만 한정시키는 것으로 이와같은 주장은 비성경적일 뿐 아니라 웨스터민스터 요리문답 제 31조,성령에
대하여 제 4 항과 우리 교단의 신앙고백 제 4 장 성령,4항 및 5항에 명시된 성령의 사역과 은사를 부정하는 주장이다.
성령의 역사와 이적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활동으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성령은 다양한 은사를 그의 성도들에게
주심으로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 장로교의 신앙고백이며 교리이다. 기적종료 주장은
비성경적이며 신학적으로 오류이다.
(5) 상기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신앙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 표현이 적절치 못한 것으로 사료되며 또 연구결과가
나올 경우 해 노회로 보내주기를 노회가 청원하였으므로 해 노회로 하여금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함이 옳은 것으로
여겨진다.
원출처: http://www.pck.or.kr/PckCommunity/NoticeView.asp?TC_Board=19538&ArticleId=60&page=6&Depth=
첫댓글 하루님, 약속드린 예장통합교단의 최삼경목사님 삼신론 연구보고서 전문입니다.
원출처는 예장통합교단 홈페이지입니다.
위 자료는 통합교단 이대위 전문위원을 역임하신 허호익 교수님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그리고 위 연구보고서에서 C 목사라고 표기된 것이 최삼경 목사님을 가리킨다는 것은
아시지요? 교회와 신앙지를 통해 소위 지방교회측과 공개토론 한분은 최삼경 목사님이 유일합니다.
이 보고서 발표시 최목사님 이름을 빼고 C목사라고 하게 된 그 과정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5번 글은...그야말로 최목사님의 그동안의 공로를 감안한 최대한의 예우적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문제가 된 세영들의 하나님..이런 식의 삼신론 주장을 철회하고 사과하는 선에서
이 문제를 매듭짓자는 의미이지, 그런 이단적인 주장은 그대로 고수한 채 반성문 비슷한
신앙고백서를 써 내고 매듭짓자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최목사님이 그 후로 자신의 이단적인 세 영들의 하나님 주장 철회하시거나 그 부분에 대해 사과하신 적
한번도 없으시지요? 한기총이 마지막으로 이런 부분을 시정할 기회를 드렸지만 답변을 거부하고
대신에 자신이 옳고 억울하다는 식의 기자회견 하셨지요?
그래서 삼신론 이
입니다. 최삼경 목사님...이런 분을 계속 두둔하고 계신다면 하루님 역시
이단옹호자라는 정죄아래 놓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앞에서 심판받는다고 생각을 하신다면 이런삶은 사시지 않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