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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친일어용시인 서정주 시비 철거한다 | ||||||||||||
정재현 의원 "친일잔재 청산 행정을 크게 환영합니다 3.1혁명 100주년 맞아 친일시인 서정주‧노천명 시비 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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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타임즈:양주승 대표기자
부천시 상동 '시와 꽃이 있는 거리'에 조성된 친일반민족 어용시인 미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와 <동천> 시비가 철거된다. 이와함께 친일시인 노천명, 주요한의 시비도 함께 철거된다. 부천시는 3.1혁명 100주년을 맞아 문학창의도시 부천에서 친일잔재인 친일문학을 청산하기 위해 사랑마을 청구아파트와 선경아파트 사잇길 및 선경‧벽산아파트와 석천공원 사잇길 '시와 꽃이 있는 거리'에 조성된 미당 서정주의 시(詩)<국화 옆에서>와 <동천>을 철거한다. 부천타임즈는 지난해 5월 28일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시비철거'를 보도한 이후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는 장덕천 부천시장에게 친일파 시비 철거를 촉구하는 민원을 제기해 철거가 결정됐다. 상동주민센터에서는 대리석 석재로 조성된 서정주의 <국화옆에서>를 지우고 나태주 시인의 <풀꽃>으로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목재판에 새긴 서정주의 <동천>은 정지용 시인의 <향수>로 교체하기로 했다. 석재판에 새긴 노천명의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와 주요한의 <샘물이 혼자서>는 이미 철거했다.
정재현 부천시의회 행정복지위원장은 "친일 잔재를 없애는 것은 민중에게 서러운 삶을 안긴 엉터리 지도자를 바로 잡는 것,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며 "장덕천 부천시장 등 부천시 집행부의 백주년에 걸맞는 친일잔재 청산 결단 행정을 크게 환영합니다. 그동안 노력해온 부천타임즈,민족문제연구소부천시지부의 노력에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시와 꽃이 있는 거리'는 지난 2008년부터 상동 주민자치위원회가 부천시 문화사업과 연계해 조성된데 이어 2013~2015년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혈세 1억원 이상이 투입되어 조성된 거리이다. '시와 꽃이 있는 거리'에는 친일 시인 ▲서정주의 '국화옆에서', '동천'을 비롯하여 ▲노천명의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와 ▲주요한의 <샘물이 혼자서>▲민족애국시인 한용운(나룻배와 시인)▲윤동주(서시)▲변영로(님이시여/눈)▲김춘수(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정지용(유리창1)▲도종환(흔들리며 피는 꽃)▲박목월(산이 날 에워싸고)▲정완영(봄이오는 소리)▲문상석(그만뒀다)▲유안진(멀리있기)▲정호승(수선화에게)▲김광섭(저녁에)▲김영랑(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천상병(귀천) 등의 시비가 설치되어 있다. 서정주는 1942년 다츠시로 시즈오(達城靜雄)로 창씨개명 한 이후 태평양전쟁을 성전(聖戰)으로 미화하일본군 종군기자로 사병의 군복을 입고 취재를 다니면서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동조해야한다는 글을 통해 일제에 협력했다. 서정주는「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1·13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있다. 친일시로 황군의 딸이 된 노천명(1911~1957)은 해방되기 직전인 1945년 2월 25일 시집 <창변>에는 아홉 편의 친일시를 실었는데 8월 15일 해방이 되자 이 시집에서 뒷부분의 친일시 부분만 뜯어내고 그대로 판매했다. 친일시인 주요한(1900~1979)은 연극인이자 시인인 주영섭의 형이다.1938년 11월 수양동우회사건 예심 보석 출소 기간중에 전향을 선언하고 조선신궁을 참배하고 같은해 12월 경성부민관 강당에서 열린 전향지 중심의 시국유지원탁회의에 참석해 "우리는 일본이 승리를 얻어야 하겠다는 입장에서 황군의 필승을 위한 총후의 적성에 전력을 바쳐야 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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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얼마전에 은평둘레길 이말산 구역에 서 있는 친일 시인 노천명의 시비 "감사"의
철거를 요청했던 사람으로서 이번에 부천시의 의미 있는 친일청산을 보면서 감사
하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차제에 저는 국무총리실과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공부와 서울시에 전국에 있는
친일문인들의 시와 기념비를 조사해서 3.1 혁명 100주년에 맞춰 모두 폐기하라고
국민신문고에 다시 청원의 민원을 올렸습니다.
3. 1 혁명 100주년은 이렇게 주변의 일제잔재청산에 그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앙일보에서 주관해 오던 서정주 문학상이 작년에는 시행을 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이제야 정신이 드는가 봅니다. 모두가 눈뜨고 지켜 봐야 할 것입니다.
사필귀정입니다.
살아서 친일로 부귀를 누리고
해방된 조국에서도 명예를 얻는다면...
민족의 혼을 지키며 변절하지 않고 고통받았던
저항 시인들에 비해서
너무 불공평하지 않나요?
일제 강점기에 많은 "능력자"들이 친일의 대열에 섰던 듯합니다.
그들의 작품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혼돈입니다.
작품과 인격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지만, 작품성을 어느 정도 인정해 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친일 문인들을 기리는 공적비는 절대 불가이지만요.
당시엔 누구라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강자에게 편승 할 것입니다.
더구나 문학 중의 상위 문학에 정치적 목적으로 잣대를 대는 일은
당장은 똑똑한 것 같지만 미래를 보아서는 미련한 짓이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