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은 평생의 싸움입니다. 화요일 밤 리스본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2026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인종차별이란 곧 ‘모욕’인데 2026년인데도 여전히 축구장에서 흑인들을 공개적으로 모욕합니다. 사람들이 여전히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니시우스가 사실을 말했고, 음바페도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부족합니다. 의심은 계속되고, 사람들은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왜 두 선수의 말을 믿지 않는 걸까요? 흑인 남성의 말은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인가요? 이 사건은 인종차별의 역사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항상 똑같습니다. 당신이 피해자로서 어떤 행위를 고발하면, 의심받는 쪽은 가해자가 아니라 바로 우리입니다. 이는 폭력이나 성폭력의 피해를 본 여성들이 겪는 상황과도 똑같습니다. 피해자를 의심하려는 사고방식은 늘 존재해 왔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고발하는 일은 언제나 매우 어렵습니다. 이는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에서도 보였고, 인종차별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비니시우스는 상황을 고발했고, 주심은 그의 말을 들었고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태도며, 책임을 진 주심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경기장 전체가 당신을 원망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저 사람은 또 뭐가 불만이냐?’라고 말할 겁니다. 사회는 자기의 폭력성과 마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날 밤의 영상들을 보셨나요? 프레스티아니가 입을 가린 장면? 음바페의 반응?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나온 비니시우스와 음바페의 발언?
네, 저는 전부 봤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또다시 한 백인이 한 흑인을 원숭이라고 부르는 장면을 봤습니다. 단지 피부색을 이유로 언제든지 깎아내려질 수 있습니다. 음바페가 프레스티아니를 공개적으로 지적한 방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피해자라면, 나서야 합니다. 대응해야 합니다. 더 이상 숨지 말아야 합니다. 인종차별이나 폭력과는 타협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움은 이제 가해자의 몫이 되어야 합니다.
프레스티아니는 유니폼 속으로 얼굴을 가린 채 말을 했다고 보십니까?
인종차별은 언제나 가면을 쓰고 전진합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겁쟁이들이기 때문이죠. 그는 ‘사실이 아니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자신의 인종차별을 인정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의식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고, 그를 깎아내리고, 모욕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 순간, 그것은 더 강한 충동이었고, 그는 반드시 그를 ‘원숭이’라고 불러야만 했습니다.
조사가 열릴 예정이고, 프레스티아니는 최대 1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예상되는 징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징계를 판단하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그건 제 소관이 아니고, 기준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지적하고 싶은 것은 조사라는 것들은 거의 항상 같은 결론으로 끝납니다. ‘아니요, 그것은 진짜 인종차별 행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말하겠습니다. 인종차별과는 협상해서는 안 되고, 타협해서도 안 됩니다. 인종차별을 근절해야 할 위치에 있는 백인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정말로 그 일을 하고 있었다면, 우리는 2026년에도 여전히 같은 지점에 머물러 있지 않았을 겁니다.
인종차별을 근절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것은 아주 오래되고 뿌리 깊은 역사이기 때문이죠. 흑인들이 역사적으로 계속해서 깎아내려져 왔다면, 그 과정에서 백인들이 자주 만족감이나 쾌감을 얻어 왔기 때문입니다. 이는 무의식적인 것이지만, 사실입니다. 백인들은 대개 인종차별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그 감정을 이해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이 가하는 폭력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행위들이 2026년에도 여전히 계속되는 겁니다. 당신이 백인이라면, 그런 감수성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피해자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그 결과, 폭력의 무게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문제를 축소하게 됩니다.
당신은 무리뉴의 발언에 대해 꼭 말하고 싶다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그의 발언의 성격 자체가 우리가 ‘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무리뉴는 커리어가 매우 뛰어난 위대한 감독이고, 평생 수많은 흑인 선수와 함께 일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종차별 행위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만들고, 골 셀레브레이션에 대해 피해자(비니시우스)의 책임을 묻게 합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나요? 당신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비니시우스가 무엇을 해도 되는지,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결정하려 듭니까? 이 판단 속에는 우월감과 백인적 나르시시즘이 깔려 있습니다. 비니시우스가 겪은 인종차별은 그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피부색 때문입니다. 학교나 축구장에서 인종차별을 당하는 아이들이 그게 자기 행동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비니시우스와 아이들이 축구장에 다른 피부색을 갖고 나오기라도 해야 합니까? 무리뉴는 이것이 어쩌면 비니시우스의 잘못일 수 있다고 암시합니다. 즉, ‘자초했다’라는 식입니다. 이건 극도의 폭력입니다. 일부 백인들이 지닌 우월감은 그들이 피해자의 입장에 서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들에게는 더 많은 겸손이 필요합니다. 비니시우스는 미쳤고, 모욕을 지어내서 심판에게 달려갔다는 건가요? 음바페도 들었는데, 그럼 음바페도 미쳤다는 건가요? 흑인들이 미쳤다는 겁니까? 편집증적이고 이야기를 꾸며낸다는 건가요? 무리뉴는 비니시우스가 인종차별의 책임이 있다고 믿게 하려는 건 정말 한심해요. 이런 분석을 통해 그는 사소한 인간, 소인배가 되어버렸습니다. 무리뉴는 인종차별 행위를 한 인간으로서 분석하지 않고, 백인 남성의 시선으로 분석합니다.
백인 집단이 낙인찍고 손가락질하는 결과가 되지는 않을지 두렵지 않으신가요?
인종차별 문제는 무엇보다도 백인 사회가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프레스티아니가 비니시우스를 ‘원숭이’라고 부르며 그를 동물의 지위로 끌어내리려 했을까요? 그것은 그가 ‘난 백인, 난 인간. 넌 흑인, 넌 동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백인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이것이 용납될 수 없으며 반드시 끝나야 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모두가요. 그날이 와야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백인들은 폭력의 무게를 제대로 인식해야 합니다. ‘원숭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당신이 백인이어서 그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다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니 인종차별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세요. 그리고 그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훈계하려 들지 마세요. 그런 태도 자체가 당신의 우월감을 더 키울 뿐입니다. ‘비니시우스가 행동을 잘했더라면 피해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식으로 믿게 하려 하지 마세요.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제가 비니시우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고발하고, 맞서고, 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라면서 흑인이라면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하고,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주어진 조건에 순응해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비니시우스는 바로 그 생각과도 싸우고 있습니다.
선수로 뛰던 시절, 그러니까 1990년부터 2008년 사이에도 경기장에서 인종차별 행위가 지금만큼 자주 있었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비교해 본 적이 없어요. 어쨌든 인종차별은 언제나 너무 많았습니다. 어릴 때, TV에서 조제프-앙투안 벨(카메룬 대표팀 골키퍼)이 공개적으로 모욕당하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 늘 스스로 묻습니다. ‘이게 도대체 언제 끝날까?’ 하지만 달라진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백인 사회 안에서 인종차별적 행동에 충격을 받고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냥 참지 않으려 합니다. 이번 주 화요일, 리스본에서는 진전이 있었습니다. 경기장 안에서 사건을 넘어, 비니시우스와 음바페가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문제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음바페는 경기 중에도 해당 선수에게 맞대응했고, 그를 아무 일 없다는 듯 플레이하게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즉, 후속 대응이 있었다는 겁니다. 이런 대응은 예전 같았으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프레스티아니는 아르헨티나 선수인데,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인종차별 문제로 경기장에서 선을 넘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 나라의 역사를 다시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가 아르헨티나인이라고 해서 비니시우스를 ‘원숭이’라고 부를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왜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그를 모욕하고 싶었을까요? 그가 그런 말을 하게 만든 절대적인 우월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저는 백인들을 고발하거나 손가락질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변화가 일어나려면,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책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