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히 뜨오르는 그리운 이름
작곡가 박춘석, 우리 대중가요를 빛낸 위대한 작곡가이셨지요
본명은 박의병이며
대중가요 작곡가. 춘석은 그의 아명이라고 합니다.
193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해방 전 고무공장을 운영하던
유복한 집안의 8남매중 다섯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고 합니다
경기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피아노 전공)에 입학했다가 1학년 중퇴하고,
신흥대학(지금의 경희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습니다.
1994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16년간 투병하다
2010년 사망했습니다. 2010년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작곡가로서 입지를 굳힌 작품은
1956년에 발표한 「비 내리는 호남선」입니다.
1966년에는 10년가량 전속으로 있던 오아시스레코드를 떠나
경쟁사인 지구레코드로 옮겼는데,
이때부터 이른바 ‘박춘석 사단’이 형성되기 시작해
작곡가로서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가수 이미자ㆍ남진ㆍ문주란ㆍ하춘화 등으로 대표되는
박춘석 사단의 활동에 따라, 재즈 피아노 연주로 시작된
박춘석의 음악 활동 영역은 「섬마을 선생님」이나
「가슴 아프게」 등 트로트로까지 대폭 확장되었습니다.
음악의 다양성과 예술성 면에서 당대 다른 어떤 대중가요
작곡가보다도 뛰어났으며, 패티김이 부른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같은 곡은
박춘석 음악의 폭과 깊이를 확인시켜 준
작품으로 꼽힙니다.
🙏
첫댓글 차마두님~
박춘석 백영호 길옥윤
정말 당대의 국보급 작곡가 들이지요
오늘 박춘석 작곡가의 그림을 보니
정말 그 시절이 떠 오릅니다
글 그림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시인님 그렇습니다
유멍하신 작곡가님이 셨는데
참 그립군요
감사합니다^^
그렇군요......박춘석님이라......ㅎ
훌륭했던 작곡가이신데
총각으로 살다가 가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어렵던 시절에 우리네 한국인들의 정서를 달래주는 명곡들 많이 만들어내셨지요.
차마두 선배님 덕분에 박춘석 작곡가님을 상기하고 갑니다. ^^
그래요 참 기억에 남는 좋은 곡을
너무 많이 남기시고 뛰어난 가수들을
배출 하신분이시지요
감사합니다^^
이미자 초기엔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콤비의 노래가 많았는데 이후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이 주를 이루었지요. 언제나 뒤로 빗은 머리에 색안경을 썼어요. 지금도 박춘석 악단의 경음악을 자주 듣습니다. 힛트곡은 열거할 수도 없이 많지요. 여러 가수 중 이미자가 곡을 제일 많이 받았습니다. 수백곡을 받았을겁니다.
그래요 이미자 박춘석으로 대표
되는 곡들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운 그시절이군요
감사합니다^^
어쩜 저리도 박춘석 작곡가의 모습을 똑같이 재현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안경이며 옆 머리까지.
칭찬 감사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라 알고보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시절 그 노래들이 다 좋았습니다.
사람들도 순수했고요.
몇년전 이미자쇼 갔었는데 자기 노래 부르다 가사를 까먹어서 다시 불렀다는.... ㅋㅋ
그럴 수 도 있지요 전에 최희준도 노래
부르다 가사를 까먹어서 음악만 흘러
보내다가 끝에가서 기억나서 끝만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지요
감사합니다^^
이미자. 남진. 패티김 등 한시대를 풍미한 가수들이 작곡을 가치있게 해주었다지요.근데 총각으로 생을 마감하셨군요. 그런일이,,
그래요 너무 오랜세월 병마와
싸우다 가신 것 같습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감사합니다^^
박춘석 작곡가
TV에 비쳐진 작곡가의 모습은
뽀마드(후일엔 젤을 발랐겠죠ᆢㅎ) 를 발라
머리를 옆으로 가지런히 빗어넘기고
검은 뿔테에 안경을 ᆢ!!
가수들이 그로인해 유명인들이 되었죠ᆢ!!
차마두님
연예인 기자같아요ᆢㅎ
그러신가요
고맙습니다
연예인들은 나름의 특징이 있어야
관중이 오래 기억하지요
박춘석 작곡가님도 남다른 개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힘들었어도 그리운 게 과거인 것 같습니다.
한창 때는 모두 영원할 것 같은데 그 누구도
세월을 이길 수가 없는가 봅니다.
가요계의 한 페이지 잘 읽었습니다.
그러시지요
세월에 어디 장사 있나요
누구나 세월앞에 지난날을
그리워 하지요
감사합니다^^
박춘석 사단이라할 정도로 대단한
가수들의 집합체 ᆢ 한시대를 풍미
했지요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