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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소울드레서 (SoulDresser) 원문보기 글쓴이: 알고있었잖아
당연히 스포 있긔!
이 러브라인 귀결방향은 작가인 루이자 올콧에게 그리고 그녀가 독자들에게 바랐던 의도상으론
중요한 의미가 아니라고 판단되어 제목도 화끈하게 쓰려다 혹시나 싶어 애매하게 돌렸긔.
작은아씨들 영화가 개봉했긔.
저는 아직 안봤지만 비평 중 여성 예술가의 삶에 대한 언급이 있었긔.
그걸 보고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긔.
작은 아씨들은 루이자 메이 올콧의 딸, 작가, 여성으로서의 삶을 떼놓고 설명할 수 없는 글이기 때문이긔. 왜냐하면
애초에 작은 아씨들은 올콧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소설에 나오는 네 자매는 모두 올콧의 가족을 모델로 한 실존인물이긔.
메그의 모델은 첫째 언니인 애나긔.
소설 속 존 브룩과 이름이 같은 존 프렛과 결혼했긔.
사실 이 분 인생스포가 3부에 있고 나름 충격인데 적진 않겠긔
베스는 소설과 실제 인생이 가장 닮은 캐릭터긔.
셋째 여동생의 이름도 엘리자베스였고 그녀의 인생 또한...
베스와 같았긔.
에이미 역시 메이라는 루이자의 막내동생이긔.
미술을 공부했고 꽤 인정받던 화가였으며 유럽에서 공부했고
결혼도 유럽에서 했어요.
네, 작가인 루이자 올콧이 바로 <조>에요.
작은 아씨들의 실질적인 주인공이자, 작은아씨들 1부는
조가 쓴 자전적 소설이라는 설정이긔.
올콧이 쓴 자전적 소설 속 자전적 캐릭터의 자전적 소설....☆
그래서 조는 루이자의 많은 습성을 투영한 페르소나이며
동시에 루이자와 결정적으로 다른 길을 가게된
허구의 이상향입니다.
그리고 아주 극단적으로 압축하면
이게 바로 조와 로리가 맺어지지 않은 이유였어요.
사진은 없지만 로리에게도 모델이 있긔.
바로 루이자가 유럽에서 만나 한때 로맨스를 나눴다는
폴란드 청년 "Laddie"긔.
그러나 루이자는 생전 자신을 <부치 성향을 지닌 레즈비언>으로 정의했으며
죽기 전 그와의 로맨스를 일기에서 삭제했긔
어머니인 애비는 페미니스트이자 인권운동가, 사회활동가였긔.
소설 속에선 빈민 구제에 힘쓰는 온화하고 자애로운 부인처럼 묘사되지만
실제론 훨씬 강하고 다혈질에 활동적인 여성이었긔.
네 자매와 달리 부모님은 실존인물과 소설 캐릭터가 꽤 다른 편이지만
루이자는 조가 어머니를 숭배했듯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했고 책도 그녀에게 헌정했긔.
소설과 실제가 가장 다르며
루이자 올콧의 인생에 강렬한 영향을 미쳤던
아버지 에이모스 브론슨 올콧이긔.
소설 속 마치 목사는 독실하며 자상한 사람이지만
실제 그는 신성모독, 미치광이, 괴짜 소리를 들으며
파격적인 사회운동과 신념으로 평생을 팍팍하게 살았던
그러나 수많은 지식인 명사를 친구로 두었고
헨리 소로우(월든)에게 "시민불복종"의 영감을 주었으며
어쩌면 루이자에게 재능을 물려준 작가이자
현대 자유교육의 첫 삽을 뜬 교육자이고 철학가였긔.
경제적으로 무능했고 딸에게 엄격했으며 평생 실패를 거듭한 이상주의자이기도 했긔.
소설 속 마치 가는 부자였다 몰락한걸로 나오지만
현실 올콧가는 한번도 부유한적이 없었어요미...;;
그들은 모든 시도에 실패했고
거의 평생을 떠돌이로 살았긔.
30년간 약 20번 이사를 다녔다니까요.
그들에게 얼마나 "작은 아씨들"같은
작지만 아늑한 집이 절실했을지 상상가시죠?
그는 현대 기준으로 봐도 진보적인 사상가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루이자 올콧에게
"착한 딸, 규범적 여성"으로서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씌운 아버지긔.
딸들에게 가부장적 여성상을 강요했으며
특히 자유롭고 "드센" 루이자를 길들이려고 노력했긔.
그런 그가
<참된 스승은 제자들이 자신의 개인적 영향을 받지 않도록 방어한다>
는 명언을 남겼단게 아이러니하쥬?
루이자는 인생의 가장 큰 야망이 위대한 작가가 아닌 착한 딸이 되는 것이라고 했긔.
이 부분은 작은 아씨들과 루이자의 커리어에 대한 가장 큰 맹점이자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이 두고두고 아쉬워한 지점이긔.
에이드리안 리치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의 착실한 딸은 진정한 예술가가 될 수 없기" 때문이긔
왜냐고요?
여성참정권도 없고 코르셋과 보닛이 존재하던 시대
아버지가 딸들에게 원한 의무가 뭐였을까요?
작은 아씨들은
애초에 루이자가 자발적으로 쓴 소설이 아니라
<아버지를 돕기 위해> 쓴 소설이긔.
아버지는 자신의 에세이를 출판하고 싶어했지만
편집자는 루이자가 소녀들을 위한 소설을 써주길 바랐긔.
그래서 탄생한게 <작은 아씨들>이긔.
그 시절 소녀 소설은 일종의 서양 규방 문학이었긔.
착한 딸이 미래의 정숙한 부인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교훈으로 이끄는게 권장되는 가정문학이요.
어릴땐 작은 아씨들에서 봉봉, 라임, 드레스와 온실,
이웃집의 부자 할아버지를 음미했다면
커서 다시 보니 놀라울만큼 기독교 색채가 물씬한
건전 소설이더라~
하는 인상 받으신 분들 있다면 맞긔.
애초부터 그런 성격이기 때문이긔
그러나 필연적으로 결혼장려적인 성격을 띄어야했던
장르의 지침과 달리
루이자는 결혼, 특히 조혼에 대해 적대적일만큼
회의적이었는데요
작은 아씨들에서 조가 메그의 연애를 눈 부라리며 반대하고
심지어 언니가 청혼을 받아들이자
배신감에 울며 욕까지 하는 ㅋㅋㅋ 부분이 있죠.
네...루이자였읍니다........
그녀는
"사람이 겪는 비참한 상황의 절반은 불행한 결혼에서 비롯된다"고까지 했고
독신 여성들의 공동체도 진지하게 고민했긔.
현대에도 같은 논의가 진행중인걸 생각하면
놀랍도록 시대를 앞서갔고
또 놀랄만큼 우리의 시대는 느리게 변했쥬..?
여성 공동체를 작은 아씨들에서 실현했다면
결혼, 정확히 결혼한 여성 예술가의 삶에 대한 고민은
루이자의 생과 반대로 구현되었는데요.
그 언저리에 소설 속 로리와 결혼한 에이미,
그리고 실제 동생 메이가 있긔.
메이는 그녀에게 질투의 대상이자 예술적 동지였어요미.
메이는 언니들이 허드렛일로 생계를 꾸릴때
유일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던 딸이었으며
전형적인 막내 성격이었고
(소설 속 에이미처럼 다소 이기적이고 어리광 심했나보긔..ㅋㅋ)
루이자는 그것을 못마땅해했다고 하긔.
소설 속 에이미와 조도 종종 대립하고
서로의 기질을 이해 못했는데 비슷하쥬?
그러나 에이미는 또한 조와 영혼을 공유할 수 있는
예술가였긔.
더 끈끈한 자매애, 공감이 그녀들을 이어주었고
루이자는 평생 그녀를 지원했으며
메이는 죽을 때
자기 딸을 남편이 아닌 언니에게 맡겼긔.
메이의 결혼은 좀 떠들썩했는데요.
38살에 22살의 청년 어니스트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긔.
유일하게 축복해준 가족이 루이자였는데
그녀는 어니스트를 세련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미남으로 평했으며,
"다정한 친구"라고 칭했긔.
그녀는 소설 속 에이미를 로리와 결혼시킬때 메이가 어떤 결혼을 할지 예측했을까요?
혹은 로리같은 남자와 결혼하길 바라고 그렇게 쓴 걸까요?ㅎㅎ
루이자는 단순히 여동생의 결혼 자체만을 지지한게 아니긔.
여성은 사랑과 일 모두를 성취할 자격이 있다고 믿었긔.
그녀는 메이를 모델로 여성예술가가 나오는 성인소설을 썼는데요,
거기에서 이 견해를 밝히긔.
"남자가 그 두가지를 양립하고 성취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는데,
왜 여성의 삶은 남성만큼 충만하고 자유롭지 못한가?"
그럼
조는?
작은 아씨들이 4부까지 있는거 아시긔?
많은 분들이 어릴때 읽은 아버지가 돌아오고 메그가 청혼 받는 장면 뒤에
베스가 삐___
로리가 삐___
조가 삐___
하는 이야기가 더 있단걸 알고 충격받지만
사실 그 2부도 끝이 아니긔.
하지만 첫 완결본은
아버지가 가족 곁으로 돌아와
홈 스위트 홈~하는 장면에서 끝이었어요미
그런데 출판사에서
'이건 잘 팔릴 스멜이니 2부가 기대되는 한 챕터만 덧붙입시다'
라고 권해서
메그의 약혼이 추가된거긔.
당시 특성상 결혼을 장려하기도 했고
또 결혼이 자연스러운 수순이자 목표기도 했으니
소녀들은 메그의 결혼도 보고싶었겠죠?
하지만 더 보고싶은건 모다?
조와 로리의 결혼!!!!
로맨스!!
소녀들의 엄청나게 많고 열광적인 팬레터는
태반이
'작은 아씨들은 누구와 결혼하나요!!'
였긔.
루이자가 친구에게 쓴 편지를 인용하자면
"...조는 문학 독신 여성으로 남기고 싶었어.
하지만 수없이 많은 열광적인 아가씨들이 편지를 보내는 거야.
로리가 아니더라도 조를 누군가와는 반드시 결혼시켜 달라고 말이야.
이런 엄청난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조에게 재미있는 짝을 지어주었지.
분노의 병들이 내 머리 위로 날아들 거라 예상하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은근히 기대되기도 해..."
저 마지막 문장때문에 작가가 독자들에게 빡쳐서 일부러 엇나간 심술을 부렸다는 썰도 있는데
루이자는 처음부터 전혀 로리와 조를 이어줄 생각이 없었어요
사실 초판 로리는 지금보다 훨씬 왜소하고 수줍고 나약한 소년이었긔.
루이자는 출판사의 상업적인 요구들에 꽤 순순히 응한 작가인데요.
많이 수정된 부분 중 하나가 로리의 캐릭터에요.
많은 분들이 크리스찬 베일의 비주얼을 그리워하셨는데
사실 원래 설정에 더 가까운건 2019캐스트일것 같긔ㅋㅋ
작은 아씨들이 자전적 소설이고
(특히 조는 사소한 습관까지도 루이자 그 자체긔)
로리 또한 실존 모델이 있었으며
정작 루이자는 그와의 로맨스를 일기에서 통으로 지우고;;
스스로 난 예쁜 여자가 좋다, 남자는 사랑할수 없다고 주장한 행보를 보면
로리의 사랑은 시작부터 끝이 정해진 짝사랑이었을거라
추측할 수도 있겠긔.
그럼 대체 왜 "그 늙은 교수"랑 이어줬을까요...??
루이자 왜 그래Thㅓ??
굳이 젊고 미남인 로리와
정반대의 돈없는 늙남이랑 이어줄 필요가 있나...!!
그냥 지처럼 독신으로 살면 됐짜나...!!
화가 난다 화가 ㄴ ㅏ...
세상엔 수많은 현실과 이상이 있죠.
루이자의 이상은 크고 높고 진보적이었으며
그건 어느정도 그녀가 받고자란 교육에 의거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육의 주체이자 누구보다 이상주의자였던 아버지는
딸의 미덕에 대한 소네트를 짓고 루이자의 자의식과잉을 염려하는
사람이었긔.
모순이죠
"노처녀. 이게 미래의 나야. 펜을 배우자로 삼고 자식들 대신 글을 가족으로 삼아
앞으로 이십 년동안 약간의 명성을 얻겠지."
조의 대사는 루이자의 생각과 사상을 보여주긔.
종종 자조적이고 대개 신랄하며 갈수록 웅변적이긔.
"가난을 두려워 말아요. 난 오랫동안 가난을 겪어봐서 전혀 두렵지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행복도 알고있죠."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다 괜찮아요. 나도 내 의무를 다 해 일을 할 거예요.
나야말로 아무리 당신을 위한다고 해도 가족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고는
즐겁게 살 수 없으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는 가족밖에 없어!"
그녀의 가족은 가난하고 고단했지만 서로를 사랑했긔.
하지만 그래서 루이자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
딸로서의 의무에서 죽을때까지 벗어나지 못했긔ㅠㅠ
이런 환경과 아버지의 교육관,
시대상,
출판사와 독자가 요구하는 정서는
루이자에게 평생 결혼제도에 순응해 "건설적으로"살아가는
여성 표준규격의 삶에 대한 불편함,
일종의 죄책감을 유발했긔.
아버지는 평생의 그림자였고요.
공교롭게도 그들은 죽음마저 이틀 차로 앞서고 뒤따라
일생을 함께 했긔.
메이가 죽은 뒤 맡긴 조카도 키우고 있었고요.
루이자는 결국 죽을때까지 자유로울 수 없던 셈이긔.
그 반면 그녀의 반골기질,
어린 시절 감화된 페미니즘적 사고,
작가로서의 성향은
조처럼 자유롭고 열정적이며 거침없었긔.
루이자는 조와 마찬가지로 돈을 벌기위한 펄프픽션도 썼고
필명으로 쓴 성인소설도 상당히 성공했는데요.
이 소설은 작은 아씨들과 달리 배덕하고 정열적이며 화끈한 이야기라고 하네요미...
그녀는 이쪽이 솔직한 자기취향이란 식의 말을 했었고요...
이런 인생의 구속,
상충되고 이율배반적인 충돌이
루이자를 많은 부분 압박했고,
독자들은 조의 결혼을 원했으며
루이자는 조가 독립적으로 살길 원했긔.
그러나 이 시대에 여자가 어떻게 독립적으로 살져...?
루이자도 평생 부모님의 그늘에서 못 벗어났고
유일하게 독립할 수 있었던건 전쟁간호사로 일할때 뿐이었긔.
고전 소설들 보면 빅토리아 시대의 독신녀는 항상
젊어선 부모님이나 언니,
늙어선 조카를 데리고 살죠.
지금처럼 혼자 자유롭게 사는건 매우 힘든 일이었나보긔.
조를 독립시키려면 아이러니하게도 결혼밖에 없었긔.
그래서
사실 조의 상대는 나름 루이자의 고민과 이상이 반영되었다고
어떤 비평가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비평가들 또한 이 결합을 매우 싫어했어요.
1.로리와 안되서 실망
2.결혼으로 조의 야망이 모성적인 색을 띄며 작가 커리어는 축소
특히 조가 작가로서 갈고닦기보단
학교를 세워 소년들을 돌보는게 가부장제로의 회귀라고 보는 시선이 많았는데요.
이 부분에 대한 페미니즘적 논평은 여기선 안 할게요.
다만 전 일부 비평가들의 의견대로
루이자가 이런 선택을 한 배경엔
저러한 갈등과 부채감, 그리고 아버지가 있다고 생각하긔.
로즈의 계절이란 지경사 소녀소설 아시는 분?
전 커서 이게 루이자 올콧의 소설이란 걸 알고 정말 놀랐는데요.
고아가 된 로즈가 삼촌의 손에 이끌려
일곱명의 남자 사촌들과 함께 지내게된다는 이야기긔.
속편에선 그 사촌 중 2명의 구애를 받는데요.
사실 여기서 로즈의 선택 때문에 단순히 바에르 교수가 루이자의 취향ㅋㅋ인가...
하는 사람들도 많긔.
로즈가 선택하는 사촌도 조용하고 수수한 학자타입이거든요.
그리고 로즈가 거절한 사촌도,
조가 찬 로리도 약간 비슷하긔.
기본적으로 둘 다 예민하고 섬세한 도련님에
다분히 감정적인 이상주의자, 낭만주의자이고
순수하지만 치기어린 정열이 앞서는 타입이긔.
그리고 둘 다 뭔가 생활력 없어 보이는...st...ㅋ..
반면 로즈와 조가 선택한 남편은
차분하고 이성적이며 정열보단 존중을 보여주고요.
저는 루이자가 아버지에게 아주...질렸다고 생각하긔ㅋㅋㅋ
애정과 별개로요...
종종 아버지를 비꼬는 조크를 하기도 하고..
대놓고 명령에 거역하기도 하고..
그래서 루이자는 무능하거나 충동적인 이상주의자보다
건실하고 수수한 학자가 훨씬 안정적이라고 생각한 것 같긔.
그리고 거절당한 로즈의 사촌이나 로리나,
열렬히 사랑을 호소하지만
거기엔 남자로서의 사랑, 정염 뿐이긔.
아내로 맞이한 뒤 그녀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없긔.
낭만적이지만 믿음직하진 않죠.
루이자는 바에르에게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그 시대 독립적인 여성에게 가장 어울릴법한
온건한 성향을 부여했다고도 볼 수 있긔.
(현대의 관점에선 고리타분하고 지루해보이지만
그 시대엔 남편이 아내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고 일을 지지한다는것만으로도
아주 "관대"하고 파격적이었긔)
또 교수는 지적이었으며 조카들을 부양하는,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이었긔.
타협하의 최선이라고 볼 수 있겠긔ㅋㅋ
그러면서도 루이자는 바에르에게 아버지의 모습 또한 투영했다고 전 생각하긔...
조는 숙모의 유산으로 학교를 차리고 일종의 공동체를 꾸리는데
이건 그녀의 아버지가 갈망했으나 실패한 것의 실현이긔.
즉 어찌 보면,
엘렉트라 컴플렉스나 근친 이런 뒤틀린 시각 다 제거하고
매우 순수하고 근본적으로!!! 보면
조와 바에르는 부부라기보다
루이자와 아버지, 두 파트너의 이상적 결말...
일 수도 있긔.
현실에서 루이자는 결혼하지 않았고 아버지도 사상 실현에 실패했지만,
소설에선 조가 아버지와 바탕은 비슷하되 단점은 깎아낸 남자와 결혼해서
그 실패한 꿈을 이루는 거죠.
그런 의미에선 바에르 교수는 루이자에게 최선의 이상향 아니었을까요?
참고로 이건 정말 철저한 제 주관적 해석이에요미..
작은 아씨들에서
에이미의 결혼과 조의 결혼이 각각 보여주는건
(독신을 배제했을때)
여성 예술가가 그 시절 선택할 수 있던
최선의 선택지이라고 볼 수도 있겠긔.
그리고 또한 여성예술가로서 루이자의 좌절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긔.
에이미는 재능의 한계를 느끼고 순수한 예술가의 길을 포기하고,
조는 작가보다 교육자로서의 삶을 택하는데요.
이 시절 여성문학 작가들은 남성독자들에게 철저히 외면받았긔.
여성독자들이 열광하면 할수록 더 얕잡아보였죠.
루이자는 성향과 성공의 괴리, 상업적 타협에 대한 비판등으로
말년엔 많이 무기력해지고 우울했던 걸로 보이는데요.
에이미는 철저히 남성적인 성과로 이루어진 고전 예술의 벽앞에서 물러났고
조는 남자아이들을 키워 사회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어떤 패배에 가까운 타협도 느껴지긔.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평생 글을 썼던 자기 삶과 반대로,
자전적 소설에선 예술을 포기하고 결혼을 택했을때
단순히 '가지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었을지
상업적 타협과 순응이었을지
피로와 부채감이었을지
그녀의 심경이 뭐였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비평가들에게 작은 아씨들은 아주 다채로운 문학이고
페미니스트들에겐 흥미로운 문학이긔.
여성작가의 자유의지와 상상력이
장르 및 시대와 개인의 한계 안에서 치고박다 갇혀버린 글이기도 하며
역설적으로 그것이 페미니즘의 반증이 되는 소설이기도 하긔.
조는 기껏해야 20년간 명성을 얻겠지, 라고 자조했지만
이 소설은 백년도 넘게 생명력을 얻어
2019년에도 영화로 만들어졌긔.
아마 2099년에도 읽혀지겠죠.
영화에서 여성예술인으로서 조의 고민이
어떻게 그려졌을지 궁금하긔.
이 시대의 루이자 올콧들은
모두 자유롭길 바라긔
※잘못된 부분에 대한 지적도 얼마든지 자유롭게 부탁드리긔!
첫댓글 와흥미로워 시대상황이나 가족관계 생각하면 조의 선택이 이해가더라고 에이미로리도 그렇고
그러게..백년도 넘게 생명력을 얻어 2019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는게 울컥하네. 여성들이 앞으로 가야할 길이 얼마나 멀었는지 또 생각하게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