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잠실야구장 노예’ 신태원씨, 일 시킨 고물상은 벌금 100만원, 친형은 기소도 안 돼… 노동청·검찰·법원은 ‘단순 임금체불 문제’로 장애인 착취 해석
그러나 지적장애인 신태원(62·가명)씨에게 잠실야구장은 감옥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는 2018년 3월 잠실야구장 서편 부지 적환장(주변 쓰레기를 모아두는 곳)에서 발견됐다. 적환장을 둘러싼 바리케이드도 없고, 어딘가 묶인 채 생활한 것도 아니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 굴레 속에 10년 넘게 방치된 채 죽어라 일만 했다. 언론은 그를 ‘잠실야구장 노예’라 이름 붙였다.
“잠실야구장은 화·수·목·금 6시30분부터, 토·일은 또 달라예.” 신씨는 지금도 불쑥 그때를 기억해냈다. 분노와 원망이 기습하듯 찾아오면 때때로 허공에 대고 육두문자를 내뱉는다. “경찰서 가서 (일을 시킨) 고물상 업주 집어넣어야 한다고 했어예. 그 새낀 벌 좀 받았을 깁니더.” 그러나 <한겨레21>이 확인한 현실은 신씨의 예상과 달랐다.
염전 노예, 타이어 노예, 원양어선 노예, 축사 노예… 수식어만 달리한 채 장애인 노동착취와 학대 사건이 매해 반복된다. 그중에서도 ‘잠실야구장 노예 사건’은 지적장애인 노동착취 사건의 전형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장애를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챙긴 고용주나 이를 방치한 채 각종 급여를 가로챈 가족은, 그러나 엄벌을 피해갔다. 수사기관이 이를 범죄나 인권침해로 보지 않고 단순 임금체불 문제로만 접근한 탓이다.
먹다 버린 피자 끝부분만 먹다 보니
2년 전, 그는 익명을 요청한 시민의 언론 제보로 잠실야구장 컨테이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학대 피해 장애인 쉼터를 거쳐 현재는 양천구에 전셋집을 얻어 ‘룸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다. 룸메이트 박은상(64·가명)씨는 2018년 4월 쉼터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염전 노예’로 불리던 또 다른 학대 피해 지적장애인이었다. “우리 집에 와서 염전 일을 도와주면 급여를 주겠다”는 염전주의 말을 듣고 7년 넘게 돈도 받지 않고 일했다. 2014년 전남 신안군의 섬 신의도에서 염전 노예 사건이 터지자, 염전주는 경찰 단속을 피해 박씨와 허위 혼인신고까지 했다. 박씨는 가까스로 구출됐지만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방구석에 앉아 혼잣말을 하거나 ‘다시 염전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했다. 적응과 자립을 돕는 주거지원서비스를 찾아 서울로 올라왔고 신씨를 만났다.
잠실야구장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일했는지 그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일해 17년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고, 2006년부터 12~13년 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고물상 업주와 근로계약서는 작성하지도 않았다. 대략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쓰레기로 가득 찬 회색 컨테이너에 살면서 야구를 보러 온 관중이 먹다 버린 음식물로 끼니를 때웠다.
고용노동부 서울동부고용노동지청 근로감독관 조사 결과 고물상 업주(55)는 하루 일당 3만원만 줄 때도 있었고, 월 70만원을 지급할 때도 있었다. 시급으로 따지면 3521~4285원인데, 이는 2015~2018년 당시 시간당 최저임금 5580~7530원에 크게 못 미치는 금액이다. 얼마 안 되는 돈조차 신씨는 손에 쥘 수 없었다. 친형 신정민(76·가명)씨가 1414만원이 든 급여 통장은 물론 기초생활보장급여와 장애인 수당 6889만원까지 관리했기 때문이다. 2018년 3월,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가 그를 응급구조한 당일에도 잠실야구장 근처에서 주운 곰팡이 핀 빵을 먹고 있었다. 먹고 마시며 환호성을 지르던 야구장 담장 너머로 참혹한 인권유린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국민일보>에 걸려온 이름을 알 수 없는 제보 전화 한 통이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의 응급구조로 이어지기 전까지 신씨는 존재하되 없는 사람처럼 취급됐다. 잠실야구장 적환장 부지를 관리하는 서울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 관계자는 “체육시설이 완전 개방돼 있는데다 야구가 보통 밤 10~11시에 끝나고 관중이 다 나가면 청소가 시작된다. 새벽에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다보니 신씨가 눈에 잘 띄지 않았을 수 있다”며 학대 사실을 알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첫댓글 소름끼친다. 서울한복판에서 노예처럼 살고 계셨다는 거잖아...
헐..
헐....
미쳤나봐 진짜 너무해 ㅡㅡ 잠실 야구장 쓰레기 얼마나많이 나오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많지 않은 돈이라도 자기 손에 쥐어주고 스스로 사용하게 해야지 하다못해 쾌적한 잠자리와 밥이라도 잘 줘야지ㅠㅠ 일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너무 속상하다
말도안돼..
와 저기 공무원들 사무실도 있잖아..근데 십년이 넘도록 아무도 몰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