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수원지방법원에선 검찰과 이화영 사이에 사활을 건 승부가 이어지고 있다.
쌍방울그룹의 대북사업 편의 제공을 그 대가로 보는 뇌물 혐의 재판에서 이화영은 선방해야 이재명은 물론 진영 구석구석을 겨누는 검찰의 칼 끝을 저지할 수 있고, 검찰은 이화영의 방어선을 허물어야 이재명을 향한 수사의 명분을 강화할 수 있다.
이화영 측의 유일한 전략은 “쌍방울과 경기도의 대북사업은 무관하다”는 전면 모르쇠다.
승부의 열기가 고조될수록 재판에서 ‘2019년 5월12일 중국 단둥에서 생긴 일’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날은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구속 기소)가 북한의 대남 민간 경제협력을 담당하는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와 각종 개발사업 우선권을 확보한다는 합의(업무협약)를 체결한 날이다. 이화영도 같은 시기 단둥에서 북측 인사들을 만났다.
이화영과 북측 인사들이 지난 2019년 5월12일 중국 단둥에서 협력방안 회의를 갖고 있다. 2019년 5월 국외출장보고서 발췌
단둥 첫 날, 북한식당에 모인 김성태·이화영
김성태를 비롯한 쌍방울그룹 주요 임원들은 2019년 5월10일부터 중국 단둥에 머물렀다.
첫 날 저녁 장소는 ‘평양고려식당’. 2018년 12월 29일에도 김성혜 조선아태평화위원회(조선아태위)·박철 전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참사관과 왔던 곳이다.
이 날 식사 자리엔 이화영과 경기도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김성태 무리가 먼저 식사를 하고 있었고 이화영 무리가 합류했다.
당시 결제를 했던 쌍방울 관계자는 “고려식당에서 식사할 때 이화영이 왔다 갔기 때문에 법인카드 사용 목록에 ‘L VIP 외’라고 적었고 총 6090위안(110여만원)을 썼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다음 날 김성태는 김영철 조선아태위 위원장의 친서를 받았다. 그리고 임직원들을 한 공간에 모은 뒤 이를 공개했다. “위기를 잘 돌파해줘 고맙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서 꼭 한번 봤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친서 공개 자리에 이화영도 초대했다.
김영철의 친서와 민경련 합의는 이미 전달된 김성태의 500만달러의 약효였다. 김성태는 직원들을 동원해 2019년 1월 200만달러, 4월 300만달러를 각각 중국 선양과 마카오에서 송명철 조선아태위 부실장에게 건네면서 김성혜 전 조선아태위 실장과 이화영 간 약속을 대신 지켰다고 믿었다.
합의서 체결식 당일인 2019년 5월12일 김성태는 방용철 쌍방울그룹 부회장, 배상윤 KH그룹 회장, 양선길 당시 나노스 대표이사(현 쌍방울그룹 회장)와 함께 박명철 민경련 부회장과 송명철 조선아태위 부실장을 맞이했다.
쌍방울그룹과 민경련은 ▶지하자원 개발 ▶관광지 및 도시개발 ▶물류유통 ▶자연에네르기 조성 ▶철도건설 ▶농축수산 협력 등 6개 사업 분야에 대한 협력에 합의했다.
합의서 체결 후 연회도 이어졌다. 김성태는 박명철·송명철에게 “경기도도 함께 참여해서 함께 갈 것”이라며 건배를 제의했다고 한다. 김성태의 최측근이자 쌍방울그룹 핵심 임원 박모씨는 이날 합의에 대해 “당장 북한에 가서 사업을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고, 사업 약정 기간이 50년이기 때문에 회장님이 스마트팜 대납 비용으로 500만달러를 대신 지급한 뒤에 보험 들듯 합의서를 받아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태 (전 쌍방울 그룹 회장). 쌍방울 홈페이지
쌍방울-북한 MOU 맺을 때 경기도 기업 북한 진출 논의
이화영의 중국 출장 일정은 5월10일~13일 3박4일이었다. 첫날 오후 늦게 단둥에 도착해 김성태와 저녁식사를 했고 다음날부터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 송명철 부실장, 이홍룡 민경련 과장과 세 차례 회의했다. 오전엔 안 회장과 사전회의를, 오후엔 송 부실장·이 과장과 북측과의 교류협력사업을 논의하는 식이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전 아태협 본부장 A씨가 검찰에 제출한 메모엔 경기도와 북한의 주요 논의사항이 적혀있다. ‘고찰단’ ‘남포지역 중소기업 견학, 현장방문’ ‘관광 분야’ 등 경기지사 방북을 전제한 표현들이 남겨져 있다.
메모의 키워드들은 이화영이 경기도에 제출한 국외출장보고서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보고서 내 ‘회의 결과 요약본’ 1번 항목에는 ‘이재명 방북 추진: 북한 관광 또는 기업고찰단과 같이 방북’이라고 씌여 있다.
보고서에는 도내(국내) 중소기업의 북한 진출 협조를 요청한다는 내용도 있다. 북측에서 원하는 품목을 제시하면 적절한 기업을 선정해 진출을 돕는단 내용이다. 북측이 경기도의 남포항 및 산업단지 개발에 찬성했다고도 적혀 있다.
검찰은 보고서에 ‘쌍방울’은 빠져있지만 같은 날 단둥에서 북측과 맺은 ‘5·12 합의’에 따라 각종 사업 우선권을 얻은 쌍방울그룹을 상정한 내용이라고 보고 있다.
경기도와 북측의 단둥 회의에선 두 달 뒤 필리핀에서 열리는 제2차 아태평화국제대회에 대한 기본계획도 수립됐다. 1차 대회 초청 기관이 아니었던 민경련을 포함, 북측 인사 7명을 초청하기로 했다. 경색된 남북 관계를 지방정부 차원의 민간 경제교류협력을 통해 풀어보자는 명분으로 기획된 행사였다. 이 때 세운 계획대로 2차 대회엔 김성태의 5·12 합의 상대였던 박명철 북한 민경련 부회장이 참석했다.
이화영과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 송명철 북한 조선아태평화위원회(조선아태위) 부실장 등이 2019년 5월11~13일 중국 단둥에서 진행한 경기도와 북한 간 협력방안 회의 배석자의 메모.
검찰, 쌍방울·경기도 5월 단둥 출장에 초점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 김영남)가 지난 22일 이화영을 김성태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공범으로 추가 기소한 것도 ‘2019년 5월 12일 단둥에서 생긴 일과 긴밀히 관련돼 있다.
김성태와 이화영은 북측과 따로 또 같이 릴레이 회동을 했다. 그 결과 추출된 공통 분모들이 경기도와 쌍방울 내부 문건에 각각 남아 있다. 이 과정에 외회밀반출을 통한 대북송금의 공모가 포함됐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경기도의 문건에는 ‘쌍방울’이라는 단어가, 쌍방울의 문건에는 ‘이재명’ 또는 ‘이화영’이라는 단어가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이화영의 모르쇠를 고집할 수 있는 것도, 김성태가 “형님이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것도 여기서 비롯되는 문제다.
김성태가 경기도 대신 스마트팜 비용 500만달러를 완납한 대가로 김영철의 친서를 받고 북측과 경제협력 합의를 체결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화영은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단둥에서 북측과 접촉했을 뿐 이재명 방북 시도 등 경기도의 대북 사업은 쌍방울그룹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도 “민간 기업의 비리를 이재명과 연계하려 짜맞추기 기소를 했다”며 이화영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