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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9일 전남 완도에서 차량이 인양돼 발견된 일가족 시신.
아직 정밀부검 결과가 남아 있긴 하지만 그간의 블랙박스 영상 공개와 수면제 검출 등의 정황으로 보아 부모의 극단적 선택으로 보기 충분한 듯합니다.
정말 그 과정에서 숨지게 된 딸에게 참 안타까운 마음이고요.
이제 여러 매체를 통해 동반자살이라는 말은 써서는 안 될 말이며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로 대체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취지를 아래 유튜브 방송을 통해 처음 접했습니다. 2020년 9월말, 당시 (코로나 시국 첫) 추석을 앞두고 특집 형식으로 마련됐던 시간이었는데 가장 가슴을 아리게 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영상 중 앞부분 잡담이 많아서 11분 53초 지점부터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동영상을 소화하기 힘드시다면 아래 제가 글로 정리한 내용으로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사건 내용
2011년 12월 30일,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여우고개 6부 능선 계곡에서 한 등산객이 심하게 찌그러진 차와 또 그 주변에서 두 명의 유골을 발견합니다.
차량은 진청색 누비라였고 유골은 10대 초반 두 소녀의 사체들이었습니다.
여느 큰 고갯길이 그렇듯이 구불구불 내려오는 길의 낭떠러지에서 차량이 추락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그 두 사체는 차량 추락 후 튕겨져 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신고를 접한 경찰은 사체를 수습 후 국과수에 조사를 의뢰합니다. 신원 파악에 들어간 후 두 아이는 각각 13세, 10세 연령의 여자아이들, 자매라는 정보가 나왔습니다.
또한 차량 소유주는 자매의 아버지 이씨(46세)로 확인됐습니다.
때문에 이씨의 집으로 갔고 그 주소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 동구에 위치했습니다. 하지만 자매의 부모는 그곳에 없었습니다.
정확히는 이씨 누나의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누나는 동생 가족이 모두 집을 나간 후 유서를 편지로 보냈다는 말을 전합니다.
내용은 “우리 가족 다 같이 죽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내용을 접한 즉시 이씨의 매형이 경찰서에 가족 가출 신고도 했었습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부모가 자매를 살해한 후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여 전국에 지명수배를 걸었습니다.
좀처럼 행방 단서가 잡히지 않던 그 부부는 사건 발생으로부터 2년 2개월, 시신 발견으로부터 1년 4개월 후인 2013년 4월 10일 부산의 한 농장에서 검거됐습니다.
그렇다면 사건의 그날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학교에서 교우관계도 좋고 성적도 중상위권 이상에 착하고 책임감 있는 아이라는 주변인의 말도 나왔던 딸을 덩그러니 골짜기에 두고 간 부모는 누구일까?
남편 이씨는 2년제 전문대의 컴퓨터 관련 학과 졸업 후 용산 전자 상가에서 컴퓨터 쪽 일을 하다 전세금 포함 전 재산을 털어 지인들과 사업을 시작했었습니다.
하지만 사업은 와장창 실패했습니다. 결국 돈을 모두 날린 이씨는 누나 집에서 월세를 내며 살게 됐습니다. 대신 그런 상황 속에서도 가리지 않고 일을 하며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합니다.
한편 아내 정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유명 아동학습지 회사에서 일을 했다 합니다. 그리고 고양시 한 지점에서 영업팀장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팀장까지 오르는 동안 학습지 판매 실적을 올리기 위해 편법을 사용했고 이것이 수렁이 됐습니다. 즉 학습지를 팔면 받은 현금으로 다시 자신이 학습지를 사는 돌려막기 형식이었습니다.
이 방법으로 정씨는 소속 지점의 1년 전체 매출액 6억 원 중 혼자서 4억5천만 원을 올렸다고 합니다. 70만에서 100만 원가량의 한 질을 팔면 13%의 소득이 떨어지는 시스템이었고 정씨는 이런 돌려막기를 이용해 실적을 부풀렸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 소유가 된 학습지들을 다른 유통경로를 통해 판매하다 적발됐습니다. 때문에 정씨는 팀장에서 평사원으로 강등됐습니다.
결정적으로 정씨의 월급을 본부장이 관리하게 됐습니다. 즉 정씨에게는 월급 중 50만 원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그간 정씨가 벌인 손해액을 채웠습니다. 회사에 지게 된 채무액은 1억3천만 원가량.
여기에 고소를 통한 벌금도 1천만 원에 달했습니다. 남편은 일용직으로 빠지게 된 상황에서 지인의 카드까지 빌려 쓰면서 4인 가족의 경제적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게 됐습니다.
이에 결국 아내 정씨는 “이렇게 사느니 다 같이 죽는 게 낫겠다.” 말합니다.
당시 남편 이씨는 말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내 정씨가 워낙 완강해 설득을 포기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누나한테 월세도 못 내는 형편에 큰딸 중학교 입학 때 교복 살 돈도 없는데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말 등으로 도리어 남편을 설득한 겁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2011년 2월 14일 04시에 이 가족은 누나 가족 몰래 집에서 나옵니다. 바람 쐬고 온다는 메모만 남긴 채로.
앞서 언급 된 누비라 승용차에 탄 네 가족은 경기도 포천시 백운계곡 쪽으로 향합니다.
참고로 일산동구청에서 포천 백운계곡까지는 98.5km이며 차량으로 카카오맵 네비로 1시간32분 소요, 택시비 89,200원이 나오는 제법 먼 거리입니다.
백운계곡 주변의 민박집에 도착해 머뭅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밖에서 놀게 한 후 부부는 주차장의 차 안에서 유서를 씁니다.
그런데 사실 누나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남편은 차타고 바람이나 쐬며 아내를 누그러뜨리자는 심산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통 설득은 통하지 않았고 결국 남편도 같이 죽자고 했으며 차라리 애들도 같이 죽자고 했다 합니다.
부부는 각자 유서를 썼습니다. 남편은 매형에게, 아내는 남편의 누나, 즉 형님에게 써서 보냅니다.
아내의 편지 내용입니다: “처음으로 형님이라고 불러보네요. 잠시 후 저희들의 손으로 아이들의 목을 졸라야 합니다. 이런 부모가 또 있을까요.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모든 사람에게 더 큰 피해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남편의 편지 내용입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남아서 천덕꾸러기가 될 것 같아서 데려갑니다. 불쌍한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죽을 각오로 잘 살아보려고 했는데 현실은 너무 무섭습니다.”
편지를 보낸 2월 15일 밤, 부부는 미리 준비한 번개탄을 냄비에 담아 태워 민박집 방의 출입문 앞에 놓고 잠듭니다.
그런데 쿵 소리가 나며 부부는 잠에서 깹니다. 둘째 딸이 화장실이 급해 나가다가 발이 걸려 냄비를 뒤집었습니다. 1차 시도 실패.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음날 16일 11시 가족이 함께 아침 겸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아내는 아이들에게 충격적인 말을 전합니다.
“엄마가 일을 하면서 빚을 많이 졌어. 그래서 너무너무 힘든데, 여기 왜 왔냐면 우리 죽으러 온 거야. 근데 얘들아 너네가 원하면 보육원에 보낼게. 그러면 나중에 친척들이 데리러 올 거야.”
이에 큰딸은 막 울면서 ‘나도 따라 죽을 거야’라고 했다 합니다. 그리고 작은딸은 울기만 했다고.
이는 추후 재판 과정에서 아이들의 동의를 얻었다며 진술한 내용입니다.
그 후 가족은 포천시 영북면의 산정호수 주변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마트에서 막걸리와 소주 각 2병씩, 그리고 번개탄 3장을 구입합니다.
그리고 밤이 돼 17일 02시, 호수 근처 공터의 차 안 뒷좌석에는 울다 지쳐 잠든 딸들이 있었고 부부는 번개탄을 태우고 잠들려 합니다.
하지만 04시경, 딸들이 신음소리를 내며 깨자 앞좌석에 있던 남편이 뒤로 넘어가 딸들의 목을 졸랐고 아내는 아이들의 발목을 잡아 남편을 도왔습니다.
이 시점에서 사망한 딸들. 한 명은 뒷좌석 시트 위에, 다른 한 명은 뒷좌석 쪽 바닥에 눕혀 놓고 부부는 한 시간 동안 인근을 배회합니다.
그러다 결국 맨 처음 언급한 여우고개 낭떠러지를 발견합니다. 이에 70m 낭떠러지로 추락한 차.
하지만 결국 부부는 죽지 않았습니다. 본능적으로 안전벨트를 착용했다는 부부.
게다가 차가 70m 낭떠러지를 곧이곧대로 떨어지지 않고 절벽 20m 높이쯤 지점의 소나무에 걸려 덜렁거리다가 다시 내려왔습니다.
결국 3차 시도까지 이르렀음에도 부부는 살아남았습니다.
시도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주변 소나무에 목을 메달아 봤지만 가지가 부러져 4차 시도도 실패. 그리고 남편 이씨가 아내 정씨의 머리를 돌로 찍고 자신의 머리를 찍어 의식을 잃었지만 또 몇 시간 후 깨어나 5차 시도 실패.
결국 옷을 벗고 뻗어 동사하기로 결심하고 추위 속에 기절했지만 다시 깨어나며 6차 시도도 실패.
이에 자신들은 죽을 운명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합니다.
“그래 우리 살아보자”하며 주섬주섬 다시 옷을 입은 후 현장을 걸어 나옵니다.
그리고 산정호수 인근 화장실이나 빈 컨테이너 안에서 기거하다 3월 1일 의정부로 버스를 타고 나와 지인들로부터 돈을 빌린 후 동상 치료에 들어갑니다.
여기까지 거쳤음에도 추운 계곡 속에 누워 있는 딸들을 수습할 시도는 없었던 듯합니다.
이후 이들은 PC방에서 일자리 검색 후 강원도 강릉-주문진, 그리고 충북 진천(오이농장) 등으로 이동하며 돈벌이와 숙식을 해결합니다. 그리고 이동한 충남 보령에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모텔에서만 전전하다 경북 상주(버섯농장), 청도(염색공장), 밀양(펜션)으로 이동하는 등 노골적인 도주 행보를 보입니다.
그리고 다시 경남 마산, 전남 여수, 충남 논산, 전남 해남 등을 거치며 한적한 시골 농장 등을 단기간 치고 빠지는 식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러다 부산의 한 농장에서 1년 6개월 정도 장기간 일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벌이도 월 220만에 달할 정도로 안정적이었던 편.
그런데 이 시점 중요지명피의자 종합공개수배에 이 부부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이를 본 주민이 경찰에 신고, 결국 2013년 4월 10일 검거됩니다.
그리고 4월 12일, 살인,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됩니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의 인정에 호소할 계산인지 이 부부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합니다.
검찰은 ‘미래가 기대되는 아이들이 겪었을 고통, 살해 후에 1년간 시신 방치, 이런 것으로 보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다.’라며 징역 20년을 구형합니다.
공판 동안 시종일관 울었던 이 부부를 보며 7명의 배심원은 어떤 결론을 냈을까요.
남편: 10년 3명, 5년 3명, 7년 1명.
아내: 15년 3명, 10년 3명, 12년 1명.
더 적극적이었던 아내에게 배심원들이 더 많은 형량을 요구했지만 결국 직접 손으로 딸들의 목숨을 앗아낸 사람은 남편이라는 것을 고려했는지 재판부는 각자 동일하게 10년을 선고합니다.
판결문: 부모라고 할지라도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해야지 자식을 먼저 보내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이 나는 이해가 안 된다. 피고인들은 자녀에게 선택권을 주었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질문을 한 것이 아이들로서는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항소를 신청했지만 원심 확정.
어쨌든 형을 꽉 채워 살아도 이제 내년 2023년이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첫댓글 두딸 죽이고도 10년..그나마도 중간에 살아야하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니;;
사건의뢰 애청자로써 정말 분노한 사건입니다 ㅠㅠ 개만도 못한 년놈들 감옥에서 자살했으면 좋겠네요 그토록 원하던 죽음인데
네 저도 구독자로서 정말 기억에 남는 사건이었어요. 모든 사건 영상들 중 마음 아프기가 손 꼽힐 정도였습니다.
어이가 없네요 ... ㅡㅡ
그때는 왜 배심원들이 형량을 낮게 봤을까요
지금 국민 감정으로보면 이해가 안가네요......
읽다가 화가...
어떻게 저 어린 딸들을 못졸라 죽일 생각을 했을까요 아이고...
아우… 읽다가 다 못읽겠어요 저럴수있나요 진짜 아이들이 ㅠㅠ
사람을 둘이나 죽였는데 10년??? 이게 법 맞나요???
“그래 우리 살아보자”
이런 미친...-_-
아 괜히 읽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