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이 지난 2019년 강원도 홍천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있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 캡처.
고(故) 전두환 손자 전우원의 '전두환 일가 비자금' 폭로가 전씨의 마약 투약 사건으로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전두환이 납부하지 않은 추징금을 국고로 환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여전하다.
앞서 1997년 전두환은 내란죄, 뇌물수수 등으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과 함께 2205억원의 추징금이 확정됐다.
하지만 전두환은 2021년 11월 추징금을 다 내지 않은 채 사망했다.
검찰에 따르면 현재까지 추징된 금액은 약 1283억원으로, 922억원이 더 남았다. 현재 경기 오산시 임야에 대한 공매대금 55억원이 행정소송 중으로, 검찰이 최종 승소하면 이를 추징할 수 있다.
재산이 없어 못 낸다는 전두환과 숨은 재산을 찾고 있는 검찰 간의 공방은 20년 넘게 이어졌다. 재산 추징 등에 관한 전두환의 태도나 발언은 종종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2019년 강원도 한 골프장에서 "추징금은 언제 낼 거냐"고 묻는 정의당 관계자에게 "네가 대신 좀 내주라"고 답하기도 했다.
전두환 손자 전우원이 공개한 전씨 가족 사진. 사진 전씨 인스타그램
일각에서 기대하는 대로 손자 전씨의 '검은 돈' 의혹 폭로가 전두환의 미납 추징금을 환수하는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제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출처 모를 검은 돈을 사용해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손자의 주장처럼 전두환 일가가 비자금을 조성·은닉한 게 사실이더라도 전두환이 사망한 이상 이젠 처벌하기 어렵다고 했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미납 추징금 집행은 당사자가 사망하면 절차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나온 대법원 판결이 실제로 그랬다. 당시 대법원은 전두환의 며느리 이윤혜씨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별채 압류 처분에 반발해 검찰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소송은 검찰이 이겼지만 실제 압류는 이뤄지지 않았다. 전두환이 이미 사망한 뒤였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판결 당시 "몰수나 추징을 비롯한 재산형 등의 집행은 재판을 받은 자에 대해서 하는 것이 원칙인 만큼 재판을 받은 자가 사망한 경우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집행할 수 없다"며 "따라서 전두환이 사망한 뒤로는 원고(이씨)를 상대로 해서도 추징 집행을 계속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당사자가 숨져도 재산을 추징할 수 있게 하는 일명 '전두환 추징 3법'(공무원범죄몰수법, 형사소송법, 형법 개정안)이 2020년 국회에 발의됐지만 법 개정까지 이르지 못했다.
유기홍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했던 이 개정안은 제3자가 범인으로부터 불법재산 등을 상속 또는 증여하는 경우에도 몰수·추징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범인이 사망해 검찰이 공소 제기를 할 수 없는 상황에도 요건을 갖춘다면 법원이 범죄행위에 제공됐거나 그 대가로 취득한 물건 등의 몰수만 선고하는 '독립몰수제'가 담겨있다.
독립몰수제는 미국과 독일, 호주 등에서 현재 시행 중이다.
하지만 이처럼 관련 법이 개정된다 하더라도 이젠 특례 조항을 넣지 않는 한 이미 숨진 전두환에게 소급 적용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헌법·형법과도 충돌 가능성이 높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해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행위로 소추되지 않는다"(제13조 1항)고 규정한다. 형법 1조 1항은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 시의 법률에 따른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편 검찰은 손자 전씨가 제기한 의혹에 대해 수사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언론 보도를 통해 나온 전두환 손자의 발언을 살펴보고 있다"며 "범죄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보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