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창세기(1 - 3장) 묵상
1.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태초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지금 우리가 보고 누리고 살고 있는 이 우주 공간은
원래부터 스스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졌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붙잡고 믿는 신앙의 큰 기둥 세 가지는
첫째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신앙,
둘째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신앙,
셋째 성령의 역사를 믿고 의지하는 신앙이다.
이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없고
기독인의 신앙에 있어서 이 세가지는 필수적인 핵심교리이다.
모세오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는
우리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게 해준다.
엘로힘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씀을 선포하셨고
만물이 그 말씀하신대로 순종하여 존재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창조되어진 것들을 보시고 흡족해 하셨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표현은 일곱 번 나온다.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완전함을 뜻한다.
얼마나 창조된 것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으면
일곱 번을 반복해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기록하셨겠는가?
문제는 이 아름답고 장엄한 삼라만상과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들이
하나님이 금지한 선악과를 인류의 시조가 따먹고 범죄한 후
더 이상 보기에 좋은 존재가 되지 못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추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추방시키시고
가시와 엉겅퀴가 괴롭히는 땅에서
땀흘려 노동하며 겨우 생존하게 하셨고
시간이 흐르면 늙어 죽음의 길로 가게 하셨다.
우리는 새 해가 되면 항상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실상은 죽음을 향해 한걸음 더 다가섰다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타락 이후 그나마 한가닥 희망이 있다면
하나님이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셨다는 성경의 기록이다.
가죽옷을 만들려면 짐승이 희생당하고 피흘리고 죽어야 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인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게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죄인들인 우리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신 것이다.
그 옷을 입으면 죄인들의 죄가 감추어지고 의롭다고 칭해진다.
그것이 믿는 신자들에게 입혀진 하나님의 가죽옷의 효과이다.
그것은 순전히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린
죽음의 피 때문에 가능케 된 일이다.
이제 하나님은 오늘 나의 모습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일곱 번 말씀하시고 싶어 하심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지으신 별이나 꽃들을 보시고도 좋아하셨는데
왜 그리스도의 보혈의 비싼 값으로 사서 의의옷을 입고
하나님을 섬기는 나와 그대를 보시고 좋아하시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나를 내 모습 그대로 보시지 않으시고
꼭 예수 십자가의 선그라스를 끼시고 나를 보신다.
나를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심히 흥분하시며 즐거워 하신다.
마치 우리가 손자, 손녀를 보고 넘넘 좋아하듯이...
24년도의 새 해 아침...
나의 자아상을 십자가 복음 안에서 긍정적으로 확립해야 한다.
주님의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은 우
리를 너무나 예뻐하시며 사랑하신다.
독생자를 희생하신 큰 사랑이시다.
그 사랑 때문에 올 해도 우리는 살아갈 소망이 있다.
할렐루야. 아멘.
2. 창1:6~8에 나오는 궁창의 의미
창세기 1장에 나오는 궁창은 창공을 말한다.
궁창 아래의 물은 지구의 바다를 가리키고
궁창 위의 물은 대류권의 구름과 수증기를 말한다.
궁창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라키아 인데
이 단어는 우상을 완전히 둘러싼
얇은 금박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사40;19).
이것은 궁창이 지구를 완전히 둘러싼다는 것을 암시하며
지구를 둥글게 이해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궁창은 이처럼 지구를 감싸고 있으며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살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 역사는 체계적이며 섬세하고 예술적이다.
그것은 마치 화가가 밑그림을 먼저 스케치하고
그 위에 색을 덧입혀 멋진 작품을 완성하는 것과 흡사하다.
주님의 창조 기사를 읽노라면 다음과 같은 노래가 절로 나온다.
“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의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아멘”
3. 여호와의 동산 에덴
에덴은 `즐거움, 기쁨`이라는 뜻으로
죄를 짓기 전의 아담과 하와가 살았던 장소이다.
하나님은 에덴에 동산을 만드시고 사람을 거주하게 하셨는데
그 동산은 아름답고 풍요하며 먹을 음식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동산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있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허용하셨지만 선악과는 엄격하게 금하셨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령 죽으리라 경고하셨다.
하지만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그걸 따먹어도 결코 죽지 않으리라고 새빨간 거짓말을 한 것이다.
우리 인간의 시조는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하고
사탄의 거짓말을 받아들여 선악과를 따 먹으므로
그 아름다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것이 실낙원이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우리에게 다시 낙원의 소망을 주셨다.
이것이 복락원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누릴 복락원의 축복을 이렇게 예언하셨다.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사51:3) 아멘.
- 꿀송이 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남아공 노록수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