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월매(臘月梅)를 찾아서
양력으로 해가 바뀌어 정월 초이틀은 음력으로 섣달 열하루였다. 새해 달력을 펼쳐 넘기면서 가족 생일과 기념일을 살펴봤다. 올해는 음력은 2월이 두 번 든 윤달 윤년이라 설날은 당겨져 양력으로 대한 무렵이었다. 음력으로 섣달을 한자어로 납월(臘月)이라 한다. 납향(臘享)은 섣달그믐날에 한 해 동안 지은 농사 형편과 그 밖의 일들에 대해서 여러 신에게 알리는 제사를 이른다.
주변 식생의 초본이 한겨울에 꽃을 피운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볕이 바른 논두렁에 자주색으로 피는 광대나물꽃이 그렇다. 엷은 하늘색으로 피는 봄까치꽃도 한겨울에 볼 수 있다. 목본에서도 늦가을이나 겨울에 꽃을 몇 송이 피우기도 했다. 개나리나 철쭉이 철을 잊고 피운 꽃을 봤다. 일부 꽃눈은 사람이 차를 타고 가다가 깜박 졸다가 잠에서 깨듯 계절감을 잊고 꽃을 피웠다.
음력 섣달, 즉 납월에 피는 매화를 납월매(臘月梅)라고 한다. 매화는 뭐니 뭐니 해도 목본에서 가장 일찍 피는 꽃이다. 삼월 초중순이면 섬진강 건너 청매실 농원이나 낙동강 강변 원동 순매원으로는 매화를 구경하려는 상춘객이 넘쳤다. 그렇지만 매화는 그곳 그때보다 일찍 피기 시작한다. 통도사 자장매는 이월 하순 우수에 꽃을 피웠다. 선암사 무우전 앞 홍매화도 마찬가지였다.
제주도 사정은 잘 몰라도 뭍에서 매화를 가장 일찍 피우는 곳은 부산 기장이었다. 기장은 해운대와 송정을 지난 경상도 동해남부다. 기장 연안은 겨울이면 오끼나와에서 올라오는 쿠로시오 난류가 대한해협을 통과하면서 좀체 영하권으로 내려가질 않는 곳이다. 여름은 멸치 어군이 형성되어 돌고래가 흔히 출몰하고 겨울에는 양식은 물론 갯바위에 붙어 자라는 미역이 많이 난다.
기장 군청 주변 녹지 공원이나 윤선도 유배지 죽성마을 일대는 1월 하순 대한 무렵부터 매화가 피었다. 아마 그곳이 우리나라에서 매화가 가장 일찍 피는 듯했다. 내가 사는 생활권에서도 그해 겨울의 추위에 따라 다르긴 했으나 대한에서 입춘 절기 사이 매화가 피기 시작한다. 어제 다녀온 진동 다구에서 산모롱이를 돌아가는 도만마을 해안 찻길 아래 두 그루 매화도 일찍 피었다.
창원에서는 동읍 자여와 가까운 김해 진영 서천마을 단감농원 탱자나무 울타리의 매화도 일찍 피었다. 며칠 전 만난 문우는 세밑에 가족들과 우곡 저수지 둘레길을 걸으면서 폰 카메라에 담아온 매화 꽃망울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도 그곳에서 일찍 피던 매화를 본 적이 몇 차례 있었다. 서천마을은 우곡저수지 수문에서 흘러내린 개울을 경계로 김해와 창원으로 나누어지는 곳이다.
정월 초이틀 월요일 점심나절 도심을 벗어나 동읍 자여로 가는 7번 마을버스를 탔다.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를 지난 주공 아파트단지 앞에서 내렸다. 자여 들판을 지난 낮은 동산으로 올라 작년 봄에 새롭게 꾸민 청주 송 씨 시조 묘역을 둘러봤다. 청주 송 씨는 진영과 이웃인 진례 토박이 성씨로 임진왜란 의병이나 구한말 독립군으로 활약한 지역에서 명문가로 알려져 있다.
정병산 꼭뒤 우곡사에서 흘러온 물을 가둔 저수지를 우곡저수지, 또는 단계저수지라 한다. 단계는 저수지 둑 아랫마을로 개울 바깥은 외단계로 창원이고, 개울 안쪽은 내단계로 김해 진영이다. 내단계는 서천마을이라고도 부르는데 단감과수원 울타리에 내가 봐둔 꽃이 일찍 피던 매실나무가 있었다. 그런데 작년에 마을 주차장을 만들면서 매실나무는 베어져 없어지고 말았더랬다.
저수지 둑으로 오르니 최근 개설된 둘레길이 나왔다. 일전 만난 문우가 보여준 매화 망울은 그 둘레길 단감농원 매실나무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생태계 천이는 어쩔 수 없겠지만 장소를 옮겨 저수지 안쪽 과수원에서 현상을 유지하고 있음에 마음이 놓였다. 몽글몽글한 매화 꽃망울이 꽃잎을 펼치는 즈음이었다. 어둠이 짙으면 새벽은 가까워지고 겨울이 깊으면 봄은 멀지 않으리. 22.01.02
첫댓글 납월매.
느린 걸음으로 제자리를 찾아
오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