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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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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당 김포지역위의 브런치 모임에서의 대학 강의가 지난 4주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엄청나고 방대한 양의 공부를 해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강의를 하시는 분이 동서양의 철학, 역사, 문화, 언어까지 꿰뚫고 있는 분이라 단순히 '대학' 하나 공부한다는 생각만으로는 될 일이 아닙니다.
4주간동안 대학의 단 한 글자도 진도를 나가지 않았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당 현종 때 왜 한유가 '예기'의 한 편에 불과한 '대학'과 '중용'을 끄집어내게 되었는지, 그리고 주자가 왜 그 명맥을 이어받아 '대학'을 신흥사대부 양성을 위한 학문으로 선택하게 되었는지, 동양문명과 서양문명의 분류에 이르기까지 그 주변 상황을 모두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예기의 한편인 대학이 중심에 등장한 이유는 당 현종의 어지러운 치세로 인해 유학자 한유가 선왕지도(先王之道)-선왕은 문명을 만드는 사람들 즉 문/무/주공/우/탕을 이야기하며 일종의 고문운동이라 볼 수 있습니다-를 내세우며 문장의 중요성을 역설하기 시작합니다. 당은 율을 중시하는 시문학이 발달되는 시기였으므로 문장이 경시되는 때였습니다.
한유는 문장을 쓰는 이유를 선왕지도를 밝히는 출발이라 보았으며 이는 송나라로 연결됩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전개함에 있어 한유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기치로 삼고 대학을 내세우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운동의 출발점에는 불교가 있습니다. 양한시대에 들어온 불교가 결국 당나라를 망치고 있으며, 불교의 해탈은 곧 도덕으로부터의 해탈이라는 불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유학의 기본 틀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지요. 불교의 유입은 기존의 중국문명에 큰 충격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주어+동사개념이 불교를 통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중국어의 어순이 영어의 어순과 같은 것은 다 아시지요? 이것이 불교문명이 들어와 형성된 것은 아닙니다. 어순은 같지만 우리나라말처럼 주어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것이 우랄알타이어의 특징입니다.
굳이 주어를 강조하지 않아도 말이 통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도유러피언의 문화는 꼭 주어가 강조됩니다. 영어를 보면 주어를 쓰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의 철학도 주체가 신인가, 나인가에 대체적으로 맞추어져 있습니다.
주어+동사는 단순히 어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사고영역의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주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기 시작하면서 서양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도 함께 유입이 되는 것입니다.
여하튼 한유의 유학은 송나라의 주자에 와서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주자는 사서를 끄집어내어 집대성함으로써 이전의 불교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유교의 패러다임으로 바꾸게 됩니다. 이 사서운동이 동아시아 700년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를 신유학이라 부릅니다.
사실 우리가 보는 사서는 본래의 사서가 아닙니다. 주자가 쉽게 가르치기 위해 주석을 달아놓은 것이지요. 사서집주 혹은 주자집주라는 말이 더욱 맞습니다. 당, 송을 거쳐 나타난 신흥관료는 과거제도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과거제도에 대해 우리는 과거의 이야기라 별 생각 없이 지나가지만 당시는 굉장히 혁신적인 제도였습니다. 가문, 문벌, 재력 등등과 상관없이 공부 하나만 잘 해도 관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과거를 통해 형성된 신흥관료들에게 어떤 문제의식을 던져줄 것인가를 주자는 고민하게 되고 그 결과물로 사서를 내세우게 된 것입니다. 공자의 논어, 맹자의 맹자, 자사의 중용, 그리고 대학이 사자서가 됩니다.
특히 유교의 재건에 있어 대학만큼 매력적인 것이 없었습니다. 논어, 맹자, 중용의 내용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것이 대학입니다. 대학은 아무나 보는 책이 아닙니다. 대학은 지도자를 키우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Leadership training'인 셈이지요.
요즘 동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후에 영조가 된 연잉군이 7살에 대학을 줄줄 외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다들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이유가 대학이 어려운 책이어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내용 자체가 지도자로서의 덕목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그 부분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줄줄이 외워댈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요?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친민, 재지어지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이 문구에 대학의 깊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재명명덕은 개인적인 차원입니다. 재친민은 사회적인 차원입니다. 재지어지선은 궁극적인 선 곧 개인과 사회의 구분을 넘어선 이상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아, 주자는 재친민이라 하지 않고 재신민(在新民)이라 했답니다. 재친민과 재신민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재신민은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 속에 지도자의 위치가 있습니다. 새롭게 만들어주는 주체가 지도자가 되는 것이지요. 친민은 말 그대로 소통의 의미가 더욱 강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정부도 입만 열면 친서민이라 하나봅니다.
우리가 유교, 유학, 주자하면 전근대적이고 고리타분하다 떠올리는 것은 주자에 대해, 당시의 신유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자는 굉장히 혁신적인 사상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주체가 되고자 했고 그 주체들을 키우기 위해 사자서를 골라내고 그 사자서를 새로이 해석한 인물입니다. 그러한 주자의 입장에선 친민보다는 신민이 더욱 적당했으리라 보입니다. 백성들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깨어있게 하는 지도자의 덕목을 강조한 것이지요.
주자 유학의 가장 핵심은 '격물치지'에 있습니다. '물을 구체적으로 탐구해서 참다운 앎에 도달한다는 격물치지는 주자의 최대 관심사였으며, 사회윤리는 주관적이 아닌 객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주자의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주자의 격물은 요새말로 '과학'인 것입니다. 주자학의 제1원리가 '궁리(窮理)'이며 근세유학의 가장 포괄적이고 중요한 개념입니다. 궁리의 양대 측면이 격물과 치지입니다. 어떤 사물의 형태를 끊임없이 조사, 탐구, 검증하여 그 이치를 깨닫는다는 격물치지는 결국 이기론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여전히 고리타분한 유학과 주자가 되어있는 이유 역시 격물치지 때문입니다. 물론 주자가 그리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치통감으로 유명한 사마광이 그 주범(?)입니다. 사마광은 격물을 '物'을 막는다는 의미로 한정시켰습니다. 물욕으로부터 나를 지켜야한다, 부당한 유혹으로부터 방어해야한다는 도덕적인 의미로 제한되어 버린 것이지요. 과학적, 실증적인 부분이 빠져버림으로 격물치지는 지도자의 지침정도로 재미없어버렸지요.
물론 현재 우리나라의 지도층을 보면 이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니 주자의 격물치지야 꿈이라도 꿀 수 있겠습니까만은…….
결국 동아시아 700년을 지배한 유학은 역동적이고 실증적인 주자의 유학이기보다는 사마광의 좁은 '재명명덕'에 갇힌 유학이라 할 수 있겠네요. 도덕적인 부분이 지나치게 강조된…….
다음 월요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대학의 본문에 들어갑니다. 1,750여 글자에 불과한 대학이지만 그 깊이는 끝 간 데 없는 내용을 접한다는 기대에 마음이 한껏 부풀고 있습니다. 영어와 중국어로도 함께 공부해간다니 이러다 영어, 중국어까지 능통해질까봐 걱정(?)입니다.
강의내용은 여기 적은 내용보다 더욱 엄청납니다. 세계문명사와 철학사까지 함께 진행되니까요. 그래서 이해하고 따라가기 쉽진 않습니다. 하지만 전 시간 배운 부분 다음 시간 꼭 다시 짚어주는 강사 덕에 조금씩 어렴풋이 이해의 폭을 넓혀갑니다.
한문은 늘 먼 곳에 있다 생각했고 고전은 더더욱 멀다싶었는데 이러한 제게 불현듯 공자의 말씀 한마디가 가슴으로 떠오릅니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
이 말이 이리 가슴으로 느껴질 날이 올 줄 누가 알았을까요? 제 이 기쁨이 주변에도 전달되어 늘 익히고 배우며 궁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합니다. 아, 거기에 덧붙여야죠. '행동'하는 것의 중요성도요. |
첫댓글 맞습니다. 공부는 꾸준히 하고, 아는 것이 있으면 행에 옮기는 것이 진정한 시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