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만지기
김리윤
깨끗한 물을 뜬다
우리는 기도를 맡은 여자들이었다
우리가 우리로 사는 동안 누구는 지문이 다 닳았다고, 누구는 무릎이 양초처럼 만질만질해졌다고, 누구는 눈꺼풀이 온몸처럼 무거워졌다고 했다 이제는 죽은 이가 먹고 남긴 것으로 차린 상이 익숙하다고, 산 입에 넣을 밥을 짓는 일이, 걷거나 달리는 일이, 움직이는 신체가 어색하다고
시간이 움직인다 무한한 시간 시간의 무한한 움직임 무한한 기적 무한한 분노 무한한 절망 무한한 폭력 무한한 태어남…… 무한한 것들 중 우리가 가진 것을 떠올려보았지
우리에게 주어진 재료들 우리 우리의 우리 됨
초가삼간 다 태워버릴 불을 원하는 마음 불타는 방에 앉아 잘 타는구나, 하는 것 그것이 적당한 기도로 보이는 것 이런 마음을 뭘 아느냐고 물어볼까
무릎을 더욱 꿇어볼까 종아리가 허벅지를 파고들도록 더 깨끗한 물을 구해볼까 뜬 물을 더럽히지 않는 움직임을 달라고 해볼까
다른 곳을 원한 적 없었다고 난 자리에서 먹고 자고 난 자리를 파헤치고 뒤집고 구덩이를 파고 산을 만들고 약속을 하고 약속을 깨부수고 이곳의 구덩이 속에서, 산 위에서 부서진 약속들 위에 무릎을 꿇고 무릎이 눌어붙도록 난 자리에서 죽도록 기도를 맡아 해왔다고
새집에 가면 신당부터 만드는 친구들 기도를 수치로 여기지 않는 친구들아
기도는 어떻게 우리의 것이 되었나 기록 바깥에 있는 사람들 영원을 믿으며 영원이 되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귀신이 밤새 쫓아다니는 꿈이라면 그걸 악몽이라고 할 수 있겠니? 사랑하는 귀신이 천장에 붙어 밤새 너를 지켜보고 있다면 지켜주고 있다면 살아서 기도하고 죽어서 너를 지키는 약속이라면
약속해 깨끗하기로 이름난 물을 뜨러 갔지 수면이 온 세상의 부스러기를 온갖 잡스러운 날씨를, 불순물을 끌어들이고 있었지 두 걸음만 떼면 온갖 것들이 둥둥 떠 있었지
너무 깨끗한 물이었지 그보다 깨끗할 수는 그보다 잘 보여줄 수는 없었지 더럽고 징그러운 것
조야한 신당들 신을 닮은 행락객들 지나
지문 하나 찍히지 않은 아주 깨끗한 물 한 사발 떠왔지
―계간 《문학동네》 2022년 겨울호 ---------------------- 김리윤 / 1987년 부산 출생. 국민대 회화과 전공. 2019년 《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에 「애도 캠프」외 4편으로 시 당선(김지연). 시집 『투명도 혼합 공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