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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와 우리 민족의 풍습]
우리 인민은 고대시기부터 여러가지 부채를 아름답고 편리하게 만들어 리용하여왔다.
처음에는 《부치는 채》로 불리우던것이 점차 부채라는 말로 변화되였다.
고려이전시기에는 대체로 버드나무껍질과 부들을 비롯한 나무껍질과 풀로 엮은것 또는 날짐승의 깃과 털로 만든 둥근 모양의 부채가 널리 리용되였다.후백제왕 견훤이 고려왕 왕건의 즉위를 축하하여 보낸 부채 역시 공작새의 꼬리털로 만든 둥근 부채였다.
부채는 그후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천과 종이, 참대, 김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부채의 종류에는 크게 둥근 부채와 접이부채가 있었다.
둥근 부채는 부채면이 둥글고 거기에 손으로 쥘수 있는 자루가 달려있으며 접이부채는 여러대의 가는 살을 한데 묶어 접었다폈다 할수 있게 되여있다.
접이부채는 가늘게 쪼갠 참대오리로 만든 부채살을 펼치면 해살모양을 이루도록 밑부분을 한데 묶고 여기에 천, 종이, 김 등을 붙여 만들었는데 장식과 꾸밈이 매우 정교하였다.접이부채의 면에는 아름다운 산천과 실실이 휘늘어진 수양버들, 소담한 꽃송이들과 나비 등을 채색그림으로 생동하게 묘사하였다.
그리고 고양나무를 비롯한 나무와 비취옥, 호박을 비롯한 보석들로 매미, 오리, 가지, 고추, 매화, 국화 등을 형상한 장식물을 매달아 부채의 공예적가치를 돋구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의 부채는 고려시기에 예술적가치와 정교한 제작솜씨로 하여 다른 나라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특히 접이부채는 중국 송나라에 퍼져 그 나라 사람들속에서 널리 애용되였다.송나라 사람들은 고려의 접이부채를 펼치면 너비가 한자나마 되고 접으면 크기가 두손가락만 하게 된다고 하면서 고려사람들의 부채만드는 재간과 솜씨를 《하늘의 재주》라고 찬양하였다.
지난날 사람들은 더위가 시작되는 음력 5월초가 되면 부채를 만들어 마을사람들과 친구들사이에 서로 주고받군 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는 음력 11월이 되면 새해 달력도 이렇게 만들어 나누어주었는데 이것을 《하선동력》(여름에는 부채, 겨울에는 달력)이라고 하였다.
이밖에 부채는 더위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만이 아니라 의례용이나 장식용으로도 쓰이였다.혼례때 신랑의 얼굴가리개로 쓰이는 부채, 보기 좋은 그림이나 멋진 시구절을 써넣은 집안장식품으로 보관해두는 부채 같은것이 그러한것이였다.
림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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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건국과 그 력사적의의]
올해는 우리 민족의 첫 통일국가였던 고려의 건국 1 100돐이 되는 해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고려는 우리 나라의 통일국가였습니다.》
고려는 10세기초에 고구려와 같은 강대한 나라를 재건하고 국토통일을 지향하며 봉건통치배들의 폭정을 하루빨리 끝장내려는 인민들의 열망을 반영하여 세워졌다.
901년 왕으로 된 궁예가 나라이름을 《후고구려》(후에 마진, 태봉국이라고 함)라고 한것은 당시 인민들속에서 고구려와 같은 강대한 나라를 세우려는 지향이 강렬해졌다는것을 알수 있다.
이 시기 통일에 대한 열망도 매우 높았다.
이미 통일에 대한 민족의 지향과 요구를 반영하여 고구려는 삼국통일을 거의 완성단계에 올려세웠으며 그 열기는 고려시기에 더욱 고조되였다.태봉국말년에 궁예의 반대파들이 왕건이 앞으로 국토를 통일할 인물이라고 암시하는 《도참설》들을 널리 퍼뜨린 사실은 그 일단을 보여준다.
태봉국안에서 궁예의 폭정은 극도에 달하였다.궁예의 강권과 전횡, 권모술수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탄압과 학살은 인민들의 분노와 반항심을 분출시켰으며 이와 같은 현상은 지배층에까지 퍼져갔다.
이러한 사회력사적배경속에서 918년 왕건은 측근자들과 함께 정변을 일으켰다.왕건은 여러 장수들과 함께 왕궁으로 쳐들어갔는데 수도와 그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합세하였으며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 높았다.
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란 궁예는 《왕건이 벌써 승리를 얻었는데 내 일은 다 글렀다.》고 하면서 왕궁을 버리고 도망쳤다.
왕건은 왕위에 오른 후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나라이름을 《고려》라고 하고 수도를 개경(개성)으로 정하였다.
고려는 1392년까지 수백년동안 존재하였다.
고려의 건국은 우리 나라 력사에서 커다란 사변적의의를 가진다.
우선 고려의 건국으로 고구려를 계승한 우리 민족의 정통국가가 출현하게 되였다.
고구려는 고조선의 계승국으로서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천년강국으로 자랑높았던 나라였다.고구려는 민족의 지향인 삼국통일을 다그쳐 5세기말~6세기초에 방대한 령토를 차지함으로써 민족의 통일적발전을 위한 투쟁에서 결정적역할을 놀았다.
고구려이후 우리 민족의 정통국가는 발해로 이어졌으며 그 정통성은 10세기초에 세워진 고려에 의해 확고히 계승되게 되였다.
왕건이 고구려의 옛 남부지방에서 고구려유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속에 나라를 세웠으며 국호도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고려라고 한것은 그 계승국으로서의 면모를 뚜렷이 보여주었다.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였다는것은 고려장군 서희와 외래침략군의 우두머리와의 담판내용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그때 서희는 고려야말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이며 나라이름을 고려라고 한것은 그때문이라고 강조하면서 적들의 부당한 요구를 일축해버렸다.
이것은 당시 고려사람들이 자기 나라가 고구려의 계승국이라는것을 명백히 인식하고 그것을 떳떳한 자랑으로 여기고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결국 고구려의 계승국인 고려의 건국으로 우리 민족국가의 정통성은 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지게 되였다.
또한 고려의 건국으로 우리 나라의 첫 통일국가형성과 민족의 통일적발전의 중요한 계기가 마련되게 되였다.
고려는 고구려의 통일정책을 계승하여 국토통일을 일관성있게 밀고나갔다.
이것은 고려가 동족의 나라들을 하나로 통합하려던 고구려의 지향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는것을 확증하여준다.
고려는 고구려의 통일지향을 이어받았을뿐아니라 국토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였다.포섭정책으로 주변의 봉건세력들을 복속시키고 서경(평양)을 중심기지로 꾸려 북방진출을 다그쳐나갔다.그리고 926년 발해가 멸망하자 동족의 나라인 고려로 찾아오는 수많은 유민들을 적극 받아들이였다.
한편 고려는 후기신라를 포섭하고 후백제를 군사적으로 제압하였으며 마침내 936년 국토통일을 이룩하였다.
고려에 의한 국토통일로 민족의 통일적발전이 이룩되게 되였다.
고려에 의한 국토통일이 이루어짐으로써 우리 인민은 민족의 단합된 힘과 지혜로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고 경제와 문화를 높은 수준에서 발전시킬수 있었다.이에 따라 고려의 국력과 발전된 문화가 떨쳐졌으며 우리 나라는 《코레아》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고려에서는 《고려자기》, 《고려비단》, 《고려먹》 등으로 불리우는 천하의 명물들이 생산되고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출판업을 크게 발전시키였다.
이처럼 고려의 건국으로 하여 우리 나라 력사에 첫 통일국가를 출현시킨 사변이 기록되게 되였으며 그와 더불어 우리 민족은 자기의 존엄과 슬기를 더욱 높이 떨치며 자랑스러운 발전의 년대기를 수놓을수 있었다.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강좌장 교수 박사 김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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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접부채의 원조는 역시 일본이라는 한국 기래기들.
http://www.yc24.kr/news/articleView.html?idxno=25907
북한에서는 민족의 정통성을
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로 보고있네요~ ㅎ
남한에서는 고조선- 신라- 고려로 보고 있구요
결론은 고려에서는 일치하는군요
고려이전의 역사는 남북이 함께 연구하여 밝혀가기를 바랍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가 생각나네요 ㅎ
@김덕신 그 발해사도 밝혀야 하지 싶습니다~
부채라는 것이 더위에 필요한것인데 그럼 옛날에도 더운 날이 많아다 그렇게 볼수 있는데 기후성을 보네요
고려의 부채 주고받기는 음력5월에 주고 받았으니...고려 남쪽 즉, 지금의 남한 쪽 풍습이었지 싶습니다
백퍼 소설을 역사적 사실인 것
처람 올리까이
그리고 역사가 맞습니다
성씨 리는 원래 음이 리엿으니
이가 아니라 리 라고 해야하나
역사라는 말은 애초에 전혀 다른
음인 신조어로 역이라고 만들엇으니
구지 력사라 할 필요와 근거가 전혀
업습니다
우리가 몰라 맹인이 문고리 잡는
식의 학문?을 할 수밖에 없음으로
이렇게 얼토당토 않은 글들을 쓰고
퍼오니 참으로 가시미 다 아픔니다
언어뿐 아니라 역사도 완전 소설을
진짜인양 가르키니 그게 사실인 것이
되고 잇는 사람들...
발해사가 밝혀져야합니다
우리의 소중한 발해사
이걸 중국놈들이 지워버린것같은데
일본놈도..
우리의 중대한 발해사가
거의 송두리째 파괴가 되어버럈읍니다
그리고
신라삼국통일은 말도 안되는소리이고요.
당나라가 신라...
발해는 동로마...
이덕일박사 강의를 제대로 들어보면 지금 교육계 감사원 강단사학계는 기존 있던 고구려백제신라가야 조차도 왜놈들의 속국이었다고 왜곡중입니다. 이게 나라냐?라고 물어야 하는 겁니다. 정치인도 정신빠진 자들이 많고 행정부공무원들도 매국노들이 수두룩하고. 그러나 매국노들과 부패기득권들의 뜻대로는 안될것입니다.
# 언론개혁 2020!
# 일제불매!
# 토착왜구 박멸!
# 힘내라!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