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의 여자 2화.
지독하게도 그를 감싸오는 무료함,무료함,무료함.
185cm를 넘는 장신의 키에 운동으로 다져진 몸.날카로운 눈매와 곧은 콧대,강인한 턱
선 그리고 차가워 보이는 꽉 다문 얆은 입술.
차갑고 남자다운 외모에 검은 정장이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그러나 그런 그를 감싸는
것은 그저 지겨움과 무료함뿐.
오랫동안 세력을 자랑하는 J그룹의 회장이 얼마 전 물러났다.그리고 회장의 아들인 자
신이 이제 J그룹의 회장이였다.대기업의 도련님이니 어릴 때부터 부족함이 없었다.물
질적으로 모든 것이 풍족했으며 심지어 머리도 좋아 남들이 유학이다 뭐다 판칠 때 한
국에서 2년을 월반하여 22살에 명문대학을 졸업했다.
머리,외모,학력,지위.나무랄 때가 없는 그야말로 영화 속의 백마 탄 왕자.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재벌의 아들.아니 이제는 재벌회장 강윤후.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남자였다.
그러나 차가운 남자였다.
태어날 때부터 '감정'이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는 것만 같은 남자였다.
*
*
*
별조차 보이지 않는 진한 푸른빛의 어두운 밤하늘.쌀쌀한 날씨에 10시가 넘은 시간이
라 사람이 별로 없었다.윤후의 차가 매끄럽게 시내를 달리고 있었다.그리고,야자를 마
친 서영이 경쾌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끼익.
갑자기 윤후는 인도 옆에 차를 세우고 내려버렸다.순전히 잠시나마 여유를 부리고 싶
다는 마음에.휴식을 찿는 마음에.
틱-찰칵
"후우."
담배를 꺼내 피워물었다.연기가 하늘로 솟구치는 것을 감상하듯 응시하던 윤후는 인도
의 가로수에 몸을 기대었다.지나가는 사람도 없고,아주 좋았다.
탁-
그때.
여고생으로 보이는 한 소녀가,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그의 앞을 지나쳤다.
"...!"
툭.
윤후의 눈이 커지며 담배가 땅에 떨어졌다.어떻게,어떻게 저 여자는 저렇게 세상에는
온통 행복한 일만 가득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나는 도저히 지을 수 없는,
밝디 밝은 표정과 주위가 다 환해지는 것만 같은 따뜻한 분위기.
잡아야 한다.
순간 윤후에게 든 생각은 그것뿐이였다.저 여자를 잡아야 한다.잡아서 내 것으로 만들
고 싶다.저 미소를,저 얼굴을,저 환한 공기를 가지고 싶다.저 여자를 가지고 싶다.
덥석!
윤후는 제대로 앞뒤 따져볼 겨를도 없이 서영의 팔을 나꿔채었다.놀라서 큰 눈을 동그
랗게 뜬 그녀가 그를 돌아보았다.분홍색 입술이 벌어졌다.
"무슨 일....?"
그러나 서영은 다음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갑자기 윤후의 입이 그녀의 입을 막아왔
다.거칠기 짝이없는 키스였다.뒤로 밀려 가로수에 부딪친 서영이 미친 듯이 바둥거렸
으나 윤후는 간단하게 그녀의 몸을 누르고 팔을 잡은 채 혀를 놀렸다.
"읍,흐읍...!"
서영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등을 부딪친 충격도 충격인데다가 갑자기 생판 모르
는 남자에게 키스를 당하다니!거기다가 눈물이 나올 정도로 무지막지한 키스.혀가 방
어하지 못한 입안으로 파고들어 숨도 못 쉴 지경이였다.힘은 뭐 이리 센 건지 잡힌 손
목이 부러질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마침내 윤후가 서영을 놓아주었다.서영은 즉시 도망치려고 몸
을 돌렸지만 윤후는 그런 그녀를 잡아 다시 가로수로 밀어붙였다.그리고 서영의 명찰
을 보았다.
"두신고....윤서영."
나지막한 중얼거림을 마지막으로 그가 서영을 잡았던 손을 풀었다.서영은 미친 듯이
달려 도망쳐 버렸다.
*
*
*
"전에 말씀하셨던 윤서영씨 말입니다.부모가 오늘 8시경에 돌아가셨더군요."
"....그게 정말인가?"
"예."
"데려올 수 있을 것 같나?"
"조사 결과 친척들이 유산을 노리는 것 같습니다."
"잘됬군.적어도 내일 내가 집에 돌아올 때까진 데려와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달깍.비서가 나가자 윤후는 푹신한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실소를 흘렸다.
윤서영.넌 이제 내 것이 될 거야.
*
*
*
서영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분명 의식은 깨어 있었는데 눈꺼풀이 무거웠다.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으나 시야가 뿌얬다.
"아...윽!"
머리가 띵했다.흔들리는 초점을 맞추기 위해 애썼다.손으로 더듬더듬 자신이 누워있던
곳을 매만졌다.푹신한 것이 침대 같았다.
스윽-
서영은 조심조심 침대 밑으로 두 발을 내려 바닥에 딛고 일어났다.그렇지만 순간 몸이
휘청하여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움직일 수가 없어 한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점차 시야가 밝아졌다.이제 흐릿하긴 했지만 제법 형체가 보였다.서영은 부들거리는
다리를 주무르고 침대를 짚어 일어났다.
비틀-
"읏."
힘들다.힘들어.너무 힘들어.그러나 아까처럼 쓰러지진 않았다.비틀비틀대며 두 다리로
걷기 시작했다.흐릿하게 보이는 문 쪽으로.
덥석.
간신히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철컥-
"?!!"
철컥철컥철컥-탁.
밖에서 잠겨 열리지 않는 문.한동안 문고리를 흔들던 서영은 결국 그것을 놓으며 맥이
풀린 채 털썩,하고 쓰러져 버렸다.
"우....읏.흑.하아."
무력감.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납치당했다.그런데도 자신은 문조차 열 수 없다.시간도,
낮인지 밤인지도 날짜조차 알 수 없는 침대 하나만 놓인 넒은 방에서.무서운 방.싸늘
하게도,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는 훵한 방에서 혼자.
"흡,흣....흑....흑흑."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다.충격과 두려움 때문에 서영의 마음은 약해져있었다.무력감,
그야말로 손쓸 도리 없이 강한 무력감이 그녀를 덮쳐왔다.
흐느끼며 눈물만 닦아내던 서영은,갑자기 철컥 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
문이 열렸다.놀란 서영이 방으로 들어온 윤후를 응시했다.그녀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
어났다.밝아졌던 시야가 너무 급하게 일어나서 그런지 잠깐 흐려졌다.서영은 대뜸 두
손을 사용해 윤후의 흰 와이셔츠의 가슴 부분을 붙잡았다.그녀는 필사적이였다.
"여,여기가 어디죠?누가 날 데려온 거예요?왜 데려온 거죠?"
"....."
"말해요!말하란 말...아!"
윤후가 싸늘한 얼굴로 그녀의 손목을 콱 틀어쥐었다.손목이 으스러지는 것만 같은 고
통에 서영은 짦은 비명을 지르며 다리에 힘이 풀려 스르르 미끄러졌다.그러자 그가 그
녀의 몸을 한쪽 팔로 감아올렸다.서영은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최소한 운후가
보인 최초의 우호적인 행동이였으니까.
"아...초면에 실례인 건 알아요.그치만,상황이 상황이라서....꺄악?!"
윤후는 서영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팔을 감은 그대로 침대 쪽으로 데려가 던지듯
팽개쳤다.
"무,무슨...!!"
"날,기억하지 못하나?윤서영."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난 당신 처음 보는걸요."
"....이러면 기억이 날 것 같나?"
"뭐....흡!"
입술과 입술이 부딪쳤다.혀과 혀가 엉켰다.뜨겁고 강제적인 키스에 서영은 그만 굳어
버린 채 그의 혀가 능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받아주었다.
"흡....읏.이제.....아,그만.그만해요."
탁.윤후는 그의 어깨를 밀어내는 서영의 얼굴을 응시하며 잠시 물러나는 듯했지만,서
영이 피할 새도 없이 다음 순간 다시 덮쳐왔다.이번엔 훨씬 더 거칠었다.반쯤 일으켰
던 서영의 몸이 완전히 침대로 넘어가 버렸다.서영이 그의 등을 두 팔로 마구 내리쳤
지만 윤후는 그것을 무시하고 와이셔츠를 벗고 벨트의 버클을 풀렀다.그리고 서영의
블라우스를 북 찢었다.
"시,싫어....!!웁!"
윤후는 그녀를 껴안았다.상체를 벗은 채로 단단한 남자의 몸이 맞닿자 서영은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을 무시하며,손톱을 그의 벗은 어깨에 힘껏 박았다.주르륵,피가 흐르자
윤후가 서영을 놓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하아,하아.흑....!"
풀려났다는 안도감과 두려움의 둑이 터져 멈추었던 눈물이 쏟아졌다.
"흑흑,흑......흐으으으."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군."
"흐흑...그게 무슨 소리예요!!나쁜 놈.....처음 보는 여자한테 그런 짓을...."
눈물이 멈추지 않아 끅끅거리며 서영이 소리를 지르자 윤후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무슨 헛소리야.내가 널 샀으니,내 마음대로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