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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들의 무덤' LG 트윈스가 또 한 번 감독을 교체했다. LG는 7일 김기태 수석코치를 새 감독으로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6일 박종훈 감독이 자진사퇴의 형식을 빌린 해고로 물러난지 불과 하루만에 나온 결정이다. 이로서 LG는 1990년 창단 이후 22년 사이에 10번째 감독을, MBC 청룡 시절까지 포함하면 17번째 감독과 함께 가게 됐다.
김기태 감독 발탁에 대해 구단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내부에서 검증된 인사로 팀 사정을 잘 알고', '강력한 카리스마로 선수단 장악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상위권 팀에서 초보 감독들이 일으킨 돌풍도 젊은 감독 선임에 한 몫을 했다는 평이다(김기태 감독은 1969년생으로 이종범보다 한 살 위다).
2009년 9월 2군 감독으로 LG 유니폼을 입은 김기태 신임 감독은 2년 만에 박종훈 감독의 자진 사퇴로 공석이 된 LG 사령탑에 앉게 됐다.(사진=연합뉴스)
과연 '고독한 슬러거' 김기태는 LG 감독 잔혹사를 멈출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년 이맘때도 나는 스포츠 Pub에 올해 쓴 것과 똑같은 내용의 글을 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iSad). 고백하자면 올해 쓴 글도 2년 전에 썼던 글과 내용 면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사과한다!). 연말에 쓰는 LG에 대한 글은, 등장인물 이름만 조금씩 바뀔 뿐 내용은 언제나 똑같다.
이유는 이렇다.
올해 프로야구에서 초보 감독들이 돌풍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류중일 감독의 삼성은 압도적인 전력으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고, 양승호 감독의 롯데도 8개 구단 체제 이후 처음으로 2위에 올랐다. 또 이만수 SK 감독대행도 김성근 감독 사퇴로 어수선한 팀을 비교적 잘 추슬러 3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들 초보 감독(또는 대행)은 모두 강한 전력에 꾸준히 좋은 성적을 유지해온 팀을 물려받았다. 삼성은 지난해 한국시리즈 준우승 팀이고, 막강한 투수력을 갖춘 팀이다. 또 류중일 감독은 선수 때부터 한번도 삼성을 떠난 적이 없는, 삼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다. 롯데 역시 최근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강팀이고, 홍성흔과 조성환을 중심으로 한 선수단의 단합도 잘 되는 팀이다. 양승호 감독 역시 두산에서 프런트와 코치를 두루 거치면서 구단 운영에 대한 노하우가 뛰어난 지도자로 통한다. 그리고 SK는 2000년대 이후 프로야구 최고의 강팀이다.
반면 LG는 2003년부터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팀이다. 그냥 잘라 말해 '야구를 못하는' 팀이다. 잘 생기고 인기 많은 선수는 있어도, 야구를 잘 하는 선수는 없다.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할 만한 리더십을 갖춘 선배도 딱히 없다. 다른 팀에 있을 때는 안 그러던 선수도 LG에 와서는 분위기에 휩쓸려 동화되고 만다. 기본 전력이나 선수 구성 면에서 초보 감독을 영입한 다른 팀들과 차이가 워낙 크다. 야구의 신이 와서 감독을 해도 성적이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 팀을 초보 감독이 맡아서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은, 폭탄주 10잔을 마시고 토론에서 이길 확률과 비슷하다.
게다가 '감독 이기는 선수 없다'는 야구 격언과는 반대로, LG는 지금껏 선수를 이긴 감독이 없는 팀이었다. 지난 9년 동안 감독이 숱하게 바뀌는 동안에도 LG의 고참 선수들은 건재했다. 지난해 박종훈 감독 부임 이후 선수의 항명 사태와 크고 작은 파워게임이 계속해서 벌어졌지만, 이번에도 옷을 벗은 것은 감독이었다. 선수들이 감독의 권위를 어떻게 생각할지가 뻔하다. 학교에 비유하자면 한 학기 동안 담임을 다섯 차례나 갈아치운 교실이나 마찬가지. 교사의 능력 이전에 애들한테, 특히 그 반에서 '짱'인 애들한테 문제가 있는게 아닌지 의심해봐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김기태 신임 감독의 카리스마는 옛날부터 정평이 나 있다. 구단도 거기에 기대를 거는 모양이다. 하지만 박종훈 전 감독도 카리스마 하면 알아주는 지도자였다. 인상은 부드러운 편이지만, 두산 2군 감독 시절부터 보여준 포스는 김기태 감독 못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LG에 와서 그 카리스마는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수들과 마찰만 빚었다. 구단에서 그럴 때 감독 편을 들어주었다면 일이 수월했을지도 모르지만, LG는 누가 보스인지를 분명하게 선수들에 알리는데 소홀했다. 사실 1990년대 중반 이후 LG 감독 중에 인위적인 선수단 장악을 시도해서 성공을 거둔 감독은 아무도 없었다. LG는 선수단 전체가 '핸리 라미레즈'였다. 부딪혀서 나가 떨어지는 건 감독 쪽이었다. 구단이 감독에게 전권을 주고, 선수단을 대대적으로 물갈이하지 않는 이상 감독의 카리스마는 별다른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만 가져올 따름이다.
감독의 카리스마는 팀을 이끄는 데는 매력적이지만 구단과의 긴밀한 공조없이는 그리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긴 힘들어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김기태 감독이 과연 '힘있는 감독'이 될 수 있을지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이제까지 김기태 감독의 카리스마가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은 선수협 창립총회 때였다. 그 포스를 구단이나 야구계 권력을 향해 보여준 적은 없었다. 선수협과 관련된 행동의 옳고 그르고를 떠나, 구단쪽에 매우 가까운 인사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때문에 김 감독이 감독직을 수행하는 동안에 과연 구단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기태 감독 선임 전까지 일부 팬 사이에서는 김성근 전 감독이 선임되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LG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려면 김성근 감독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주장했다. 과거 선례를 볼 때 김성근 감독이 사령탑이 되면 구단은 물론 코치진과 선수단에도 대대적인 물갈이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았다. 또 김 감독은 선수단 운영의 전권과 프런트의 간섭 배제를 조건으로 내걸 것이 확실했다. 결국 김성근 감독 선임은 LG가 그의 요구조건을 전부 수용한다는 것을 뜻했고, 이는 LG가 뼈를 깎는 진정한 쇄신을 각오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팬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LG는 고통스런 개혁 대신에 늘 하던 대로 편안한 길에 안주하는 쪽을 택했다. 김기태 감독이 결정된 이상 팀의 진짜 문제점인 구단 수뇌부도, 코치진도, 선수단에도 큰 폭의 변화 없이 '지금 이대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리빌딩 하려고 왔다가 성적 부진을 이유로 해임된 박종훈 감독만 희생양이 됐다. 결국 감독 나이만 몇 살 젊어졌을 뿐 근본적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팀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점에는 전혀 손을 댈 생각이 없음을, 감독 교체를 통해 공개적으로 선언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한 웹툰에서 의지가 약한 주인공이 금연을 시도하다 포기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사내는 금연을 결심하고 편의점에 가서 금연담배를 계산대 위에 올려놓지만, 14만원이나 되는 가격 앞에 망설인다. 결국 그는 금세 금연을 포기하고, 대신에 담배 한 보루를 구입하는 선택을 한다. LG의 이번 결정이 그와 같다. 쇄신에 따르게 마련인 노력과 고통을 (그 필요성을 알면서도) 또 다시 회피한 것이다.
만에 하나. 다른 구단들에 심각한 이상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내년에도 LG를 가을야구에서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매번 감독 얼굴만 달라질 뿐 구단과 코치진과 선수단은 그대로인 팀에서 성적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건 과욕이다. 이건 김기태 신임 감독의 문제가 아니라, 실패가 뻔히 예정된 길을 굳이 가려고 하는 LG의 문제다. 이 팀을 앞으로도 계속 응원해야 하는 LG 팬들이 안쓰럽다.
부연. 얼마전 세상을 떠난 최동원, 장효조는 선수 시절 선수협 결성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오랜 기간 야구계에서 소외를 당했다. 선수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강자인 구단과 대립한 결과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왕따'와 사람들의 손가락질. 그들은 끝내 프로팀의 감독 자리에 가까이 가보지도 못한 채 유명을 달리했다. 반면 선수협 창립 당시 구단 쪽에 섰던 이들은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젊은 선수들과 어린 야구팬들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생생한 교육이 될 것 같다. 역시 '어린이에게 꿈을, 젊은이에게 낭만을'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프로야구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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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이기자분 시원하게 까셨네 이런분이 엘지 프런트에 앉아야 하는데
정말 좋은 글이고 공감이 가네요
아 완전 명언입니다
차라리 이 기자분을 감독으로 모시는게....그럼 김기태코치 또 삭발하려나?
최고네요.
역시 맞는말만 하셨네요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다시봐도 명언이네
당분간은 선수들 눈치 안 보고 감독이 팍팍 밀어부치는 팀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관점에서.. 김기태 감독이 올바른 리더쉽을 발휘하길 바랍니다.
열심히 안 하는 선수는 다 2군 보냈으면 함.. 연봉때문에 어쩔수 없이 출전시키는 일은 없었으면 함.
동감합니다. 오랜 엘지의 문제점.. 누군가는 크게 부각시켜 고쳐야할 문제점이기에...
간지러운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기사네요~
아무래도 우리 엘지팬들은 이제 안티 엘지로 돌아서게 될듯 합니다.
내년엔 8위 예상
기자가 이런 글을 쓴 걸 보니 속이 시원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 하네요.
김성근감독님이 왔으면 다 갈아치웠을텐데.. 그만한 배짱있는 감독이 또 있으려나? 김기태감독님께 기대해보긴 하지만..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