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어이없는 질문을 여전히 종종 듣소. 그래서 박근혜의 1970-1990 행적 요약글을 학교 게시판에서 퍼왔소!
1. 1974년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일설에 의하면 수석졸업이라고 하던데. 학점이 4.0이 넘는다고 함. 근데 과연 그녀가 정말 정정당당히 학점을 땄을지 정말 의문. 특히 서강대는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엄격한 학사관리로 유명했는데(물론 그녀에게만은 이 룰이 적용안된 모양), 진짜로 그녀가 그런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으면 연구쪽으로 계속 나가서 윤송이 박사처럼 되어야 하는것 아닌감. 근데 그 이후 졸업하고 전자공학과는 전혀 담을 쌓고 지냈음. 그때 박근혜의 학부 지도교수는 그 인연으로 30대에 KIST인지 국방과학연구소에서 한자리 했음.
2. 혼사
박정희가 남로당 프락치로 몰려 죽음의 위기에 몰렸을때, 구명해준 이용문 소장의 아들인 이건개와 혼사가 있었음. 이건개는 당시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는데, 박정희와의 인연으로 최연소 서울시경국장(31세)으로 발탁되었음. 이후 검찰로 전직했고, 혼사가 오갔으나, 육영수 여사가 서거한 이후, 흐지부지되어 버렸음. 여담으로 이건개는 계속 검찰에 근무하다 지검장까지 올랐으나 김영삼 정부시절인 1993년 슬롯머신 비리 사건으로 구속되어 사법처리됨.
3. 유신시절, 서거한 퍼스트레이디 육영수 여사를 대신하여 퍼스트레이디 역할
육영수 여사("여사"자도 붙이기 싫지만, 그래도 죽은이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붙임)가 암살당한 후, 박근혜가 실질적으로 퍼스트레이디가 되어 각종 의전행사에 참여함. 이때부터 언론에 자주 노출되고 이미 신격화된 "박정희 폐하"의 후광을 업은 박근혜가 "공주전하"가 됨. 웃지못할 일은, 박근혜와 결혼하기 위해 고시나 사법시험을 공부한다는 사람들도 많았음.
이때 박근혜는 "한마음 봉사단"이라는 사조직으로 활용하는 관변단체를 조성했음. 이 단체는 최태민이라는 목사가 실질적으로 지휘하면서 찬조금을 횡령하는 등의 수법을 가지고 여러 비리를 저질렀음.
너무나 잡음이 많자, 박정희가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에게 최태민과 한마음 봉사단에 관해 조사하라고 명령을 내렸고, 김재규가 이를 조사해서 최태민을 구속하려고 했으나, 최태민의 후견인이었던 박근혜가 나서서 도리어 김재규를 역공격. 딸의 말에 솔깃해진 박정희는 청와대에서 최태민과 김재규 두명을 자기앞에 불러놓고 대질심문을 했다고 함. 김재규는 여기에 엄청난 모멸감을 느꼈고 후에 박정희를 살해하게 되는 원인이 됨.
4. 10.26 이후
1979년부터 1998년까지 거의 20년간 박근혜는 그 어떤일도 하지 않고 백수로 지냄. 육영재단, 정수장학회의 이사직을 맡고 있었으나, 이사회에 1 년에 한두번 참석한 댓가로 20년간 매달 수백-수천만원의 판공비를 재단에서 받았음. 이 돈으로 특별한 직업없으면서도 청와대를 나온 후에도 아주 잘 지냄.
( 동생과의 재산분쟁)
바로 아래 여동생 근영(후에 언니의 "근"자돌림이 싫어서 "서영"으로 이름을 바꿈)과 수조원대의 가치를 지닌 육영재단(어린이 대공원)의 소유권을 놓고 1980년대부터 계속 법적분쟁. 한때는 두 지지자간에 물리충돌까지 빚어지기도 했음. 여담이지만, 그 남동생도 여러가지 추문에 쉽싸이지만, 박근혜와는 직접적 상관이 없으므로 여기선 생략.
5. 1998년 정계입문의 계기-전라도 집권을 막아라!
박근혜를 관속에서 불러낸건 바로 이회창임. 1997년 당시 이회창은 아들병역비리 문제로 사면초가에 몰려있었고, 더욱이 이인제가 한나라당을 뛰쳐나가서 지지율을 반분하고 있었음. 그 위기 돌파방법으로 한나라당은 TK지역에서 지역감정을 불러있으킬 방법을 논의. 여기에 TK출신인 강재섭이 아이디어를 내서 박근혜를 판에 끌어들였음..
아니나 다를가 거의 게임이 끝났다고 본 10월 이후부터 박근혜가 TK지역을 돌면서 "아버지를 반대했던 사람(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어선 안된다"며 지역감정을 불러 일으켰음. 이후 이회창 지지율이 TK에서 수직으로 상승하여 거의 박빙까지 갔으나, 결국 이인제 효과로 이회창 패배.
6. 이회창에게 도전했다가 슬그머니 복당
2002년 대선이 있던 해에 이회창에게 대권과 당권의 분리를 요구하고 이회창이 대권을 맡는 대신 자신에게 당권을 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되자 "한국미래연합"(약칭 한미련..참 이름을 이따위로..) 이라는 당을 만들어 5월에 뛰쳐나갔으나, 지지율이 지지부진하자 슬그머니 10월에 복당하였음. 이때 붙은 별명이 "복당녀"
7. 재보선-지방선거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박근혜가 재보선 현장을 열성적으로 돌아다닌건 꼬꼬마들도 대체로 다 알거고...우리나라는 군주국가도 아닌데, "공주"님이 나오면 환호하는"어린 백성"들이 너무 많음. 그녀의 인기만 보면 엘리자베쓰 여왕보다도 더 자국에서 인기가 많은듯.
8. 결론
"정치인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첫댓글 제목보고 누가 저딴 개소리를 하냐하고 들어옴 ㅋㅋㅋㅋㅋㅋ 어휴 존나 무능의 아이콘
겁나 위에서 오 신박하다 ㅋㅋㅋㅋ 이러고 보다가 밑에 제목보고 개정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