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a et labora(1)
지난여름은 무척 더웠다. 물론 절기상 여름은 더운 것이 당연하고 겨울인 지금은 추워져 지난여름의 지긋지긋한 무더위는 이미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망각은 그만큼 우리의 삶을 지탱시켜주고 편안하게 해주는 강장제이다. 만약 우리 뇌의 기억장치가 마치 컴퓨터처럼 모든 input(경험)을 다 보관하는 장치로 되어있다면 아마 2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진화해 세상을 바꾼(좋게 바꾼 것인지 나쁘게 바꾼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피엔스들은 이미 스트레스성 정신 질환이나 뇌 질환으로 멸종되었을 것이다.
지난여름이 특히 더웠던 것은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기록적으로 오래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내 기억으로는 내가 유럽(오스트리아, 체코)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2016년 7월 9일부터 동해 삼척 대명 쏠비치 리조트를 간 8월 25일까지 계속 더웠다. 7월 9일 오전에 입국하여 인천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집 근처에서 내렸는데 숨이 턱 막히도록 뜨거움이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 경남 창녕에서는 39.2도를 기록한 날도 있었고 최고기온이 항상 35도를 넘었고 열대야가 계속되었다. 내가 삼척 쏠비치 리조트를 간 8월 25일까지 더웠다가 그날 밤에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그 다음날 온도가 10도정도 떨어지면서 바로 초가을 날씨가 되었다.
정말 알 수 없는 기후변화였지만 그 사이 냉방장치 가동으로 가정전력량이 급증하며 46년 전에 만들어져 지금은 비현실적인 전기료 누진제 때문에 각 가정은 전기료 폭탄을 맞았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누진제는 한 해 10조라는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 한전을 상대로 국민적인 원성을 불러 일으켰고 작년 말에 조금 현실화되었지만 한동안 무더위 못지않게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내가 지난여름의 더위를 왜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 하냐면 지금 이글을 쓰는 시점이 겨울 이라는 점이다. 영하 10도의 한파가 와서 추위에 몸을 움츠리는 때인지라 결코 지난여름 무더위의 경험을 생생하게 재현하여 체감할 수 없기에 이 글에 대한 공감의 파장이 덜 할 수 있다는 노파심 때문이다. 지난여름 무더위가 결코 현재의 내 실체와 맞닿지 않는다. 무더위는 이미 망각된 과거이고 지금 추위는 현실이다. 하여간 그래도 지난여름은 무척 더웠다.
그 무더운 여름에 마침 방학인지라 학교에 나가는 횟수가 줄어들고 자연 집에서 ‘방콕’하는 날이 길어지면서 피서하는 방법으로 하나의 ‘꾀’가 생겨났다. 그 ‘꾀’란 다름 아닌 아점을 마치면 책 하나 들고 동네 커피숍에 출근하는 것이다. 특별한 약속이 없을 때는 꼭 동네 커피숍 이곳저곳을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슬리퍼 차림으로 출근했다. 가끔 와이프와 점심 외식을 하거나 또 다른 피서 방법으로 영화를 보고 나서 같이 커피숍에 간 적도 있지만 거의 매일 혼자 출근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커피왕국이고 정말로 멋진 커피숍이 많이 있다. 프랜차이즈부터 독립군까지 정말 많다. 뿐만 아니라 커피숍의 인테리어나 메뉴등도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 세계 톱클래스 급 커피숍에서 하루 종일 커피나 빙수를 먹으면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향긋한 커피 냄새와 달콤한 케이크 향기와 함께 책을 읽었다.
그렇게 책을 읽다가 온 몸이 너무 차가와 추워지면 무더운 밖에 나가 그늘에서 담배를 피거나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땀이 나면 다시 커피숍에 들어가 땀을 시키면서 책을 읽었다. 동네 커피숍이고, 나처럼 피서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내가 이미 단골이 되었기 때문인지 주인이나 종업원들이 과히 따가운 눈총을 주지는 않았다.
거의 이틀에 한 권 정도 책을 읽었고 저녁때가 되면 커피숍에서 나와 동네 까치산에 올라가 정자 마루에 앉아 독서를 했다. 어느 때는 너무 늦어 주변이 어둑어둑 해질 때까지 산에 있었는데 여름철 어두움이 막 찾아오기 직전의 숲은 고요하고 적막하고 평온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정말 최고의 희열을 맛보았다. 너무 행복했다. 고난(무더위)이 오히려 나에게 이런 행복감을 선사할 줄은 정말 몰랐다. 적당히 읽고 적당히 걷는 아주 단순한 행위에서 얻는 기쁨이 그렇게 클 줄 몰랐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밤이 되어도 아직 계속되는 열기 속에서 자꾸 그곳(커피숍이나 숲)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실로 근래에 느껴보지 못한 설렘과 희열, 행복을 느꼈다. 그래서 지난여름 이후 그 행복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단순화하기로 했다. ‘읽고 걸어라.’ 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오라 에트 라보라 ora et labora.’는 ‘기도하고 일하라.’라는 성베네딕도 수도회의 모토이다. ora는 라틴어 orare(기도하다)의 명령형이고 labora는 라틴어 laborare(일하다)의 명령형이다. 성 베네딕도 수도회는 5세기경 성 베네딕도가 세운 수도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성 베네딕도(486년-547년, 베네딕투스, 한자로는 분도 芬道)는 ‘수도규칙’, ‘성무일도’, ‘영적독서’등 수도원이나 수녀원의 필수적인 생활 지침을 기초한 성인으로 그 후 500여 년간 소위 ‘수도회의 시대’의 초석을 연 장본인이다. 그래서 도처에 많은 수도원이나 수녀원이 베네딕도 이름을 쓰고 있다. 성 베네딕도가 일생을 순명으로 사는 수(도)사들에게 요구한 것은 아주 소박하다. 즉 ‘기도하고 일하라.’로 아주 단순하고 평이한 것으로 하루 다섯 번 기도하고 나머지 시간은 육체노동을 하면 된다.
내가 6년 전에 성베네딕도회(정식 명칭은 성베네딕도회 오틸리아 연합회이다) 서울분원의 1박2일 피정을 가기 전에 든 생각은 ‘이렇게 종신서원을 한 수사님들의 생활은 너무 따분한 것이 아닐까?’ ‘아무리 은수생활을 하겠다고 서약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일생을 단순한 두 가지 일(기도, 노동)만 하고 사실 수 있을까?’ 란 의구심이었다. 한 마디로 삶이 지루하지 않을까란 생각이었다. 물론 1박2일 피정을 마치고 그런 생각은 바로 수정되었지만 말이다.(2010.12.8. 동창회 카페 글 ‘남성피정을 마치고’ 참조)
내가 만난 수사님들이나 수사신부님들 모두 기쁨에 넘쳐 있었고 항상 행복해 보였다. 물론 얄팍한 내 기분으로는 그분들이 혹시 그런 ‘척’하는 것이 아닐까 란 의심도 가져봤지만 결코 만 하루라는 짧은 시간으로도 그 감정을 그 느낌을 가슴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나 역시 모든 것이 세신 되는 기쁨을 느꼈으니까. 그래서 지난여름을 더없이 기쁘게 보낸 나는 ‘기도하고 일하라.’란 베네딕도 성인의 모토를 살짝 바꿔서 ‘읽고 걸어라.’란 단순한 생활신조를 실천하기로 하였다.
일체의 복잡한 생활 방식을 버리고 오직 독서하고 걷는 것으로 내 생활패턴을 단순화함으로써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물론 일도 해야 하고 사람들도 만나야 하고 여러 가지 할 일이 많겠지만 앞으로 남은 생은 이런 복잡한 모든 것을 서서히 지워버리고 읽고 걷는 것으로 지극히 단순하고 평이하게 살기로 했다. 그래서 추운 오늘도 걷고 또 읽고 있다. 물론 이것도 사치가 아닐까 혹은 너무 이기적이지는 않을까 혹은 스트레스가 되지는 않을까? 라고 끊임없이 반문(성찰)해 본다. 그러나 60평생 이렇게 행복했던 날들이 또 있었을까? 란 생각만 해도 모든 잡념이나 갈등이 스르륵 사라진다. 더 큰 행복이 과거에 아마 있었겠지만 이미 망각된 과거다. 일반적으로 행복했던 기억보다 조금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더 오래가니까.
하지만 지난여름의 행복을 오래 간직하고 싶고 지나간 많은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이상의 행복은 없을 것 같아 그냥 그렇게 살기로 했다. 물론 읽고 걷기가 내 삶의 최종 목표나 이유는 아닐지라도 거기서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
아주 천천히 ‘읽고 걸어라.’
첫댓글 기도하고 일하라, 읽고 걸어라, 생활 패턴의 단순화, 그로인한 소소한 행복감..매우 동감!
ㅋㅋ누죽걸산(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도 여기에 포함되겠지? 2편 기대~
읽고 걷기기만 해도 행복한데 이렇게 쓰기까지 하니 얼마나 좋을까. 걷는데는 나도 일가견이 있는데...잘 읽었다. 나도 2편 기대할게.
저도 2편 기대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3편쯤 우리 친구들의 사례를 쓸라고 하고 있다. 모두들 열심히 걷자....
멋지구만. 파리에 가면 카페에서 글을 쓴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면서? 그리고 나는 기도하고 일하라 -- 이것보다, 읽고 걸어라 -- 이것이 훨씬 좋아.
가끔 감사기도도 하거라...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