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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1928년 동안 우랄의 경제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쿠즈네츠크 탄전에서 우랄의 제철소까지 철도가 드디어 본격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했고 이는 18세기 구식 기술에서 최첨단 석탄 고로로의 대전환에 대한 우랄 제철업자들의 50년 넘는 열망을 실현시켜주는 신호탄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이 시기 우랄에서 생산되는 철강의 반 정도가 석탄 고로에서 나왔습니다. 1913년의 7.7%와 비교하면 엄청난 것이었죠. 또한 향후 있을 계획에서 스베르들롭스크 기계공장(우랄마쉬)과 마그니토고르스크의 제철소를 약속 받았다는 것도 우랄 관료들을 설레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확실해진 것은 사실 많이 없었습니다. 새로이 만들어진 제철소들은 아직 성장을 향한 확고한 기반을 쌓기에는 뭔가 부족했죠. 우크라이나 경제의 성장은 매우 위협적이었습니다. 전쟁 전 우크라이나에 지어졌던 제철소들은 훨씬 생산성이 높고 현대적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원료지향성이 강한 철강공업의 발전에 유리한 석탄 산지가 매우 가깝게 위치하고 있었죠. 또한 철도망의 밀도도 더 조밀했고, 엔지니어들과 기술직의 전문가들을 공급받는 것도 유리한 입장이었습니다. 우랄이 소련 전역의 제철 생산고의 반을 올리던 시절이 언제냐는 듯이 남부, 즉 우크라이나와 남러시아 + 북캅카스의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은 27-28년에 75%를 찍고 우랄을 납짝하게 눌러주면서 다시 왕좌를 회복합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관료들은 그들의 독점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1928년까지 중앙 투자를 향한 지역 간 경쟁에서 명백한 승자도 패자도 나오고 있지 않았습니다. 항상 그렇듯 공업화 투자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였습니다. 역시 항상 그렇듯 이유는 중앙 정부가 돈이 없어서였죠. 몇몇 사업은 진척이 좀 있었습니다만은, 중앙의 허가가 나지 않은 걸 지역에서 무리하게 진행시킨 것들이 대다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분위기가 슬슬 바뀌려고 하고 있었죠. 농업과 공업을 평등하게 잡으려는 정책들이 슬슬 농업에서 돈을 뽑아 공업에 뿌리려는 초고속 공업화로 전환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류는 지역 간 경쟁을 더욱 격화시킵니다.
고스플란에서 처음 발표했던 1927년-28년의 통제 숫자를 소브나르콤에서 30% 상향 조정하는 것은 큰 상징이었습니다. 지역들은 이에 발 맞춰 자신들의 계획을 다시 미친듯이 올리기 시작합니다. 1927년 11월, 우크라이나 계획 관료들은 2개의 제철소를 포함한 5개의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제출하빈다. 북서부 주도 제철소와 기계공장을 짓는 것을 승인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우랄이 빠질 수 없죠. 과거의 자리에 새롭고 현대적인 제철소를 위하여 "막대하고 철저한 재건설"을 요청합니다. 그리하여 28년 3월, 고스플란이 접수한 투자 요구액은 무려 20억 루블(...)이 됩니다. 참고로 저번 편을 보시면 알겠지만 2년 전만 하더라도 7억 루블 하냐 9억 루블 하냐 싸우다가 8억 루블로 타협보자 뭐 이러던 애들입니다. 베센하 기관지에서는 "자신들이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의 두 배 정도 되는 통제 숫자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래선 곤란하다. 우리들의 잠재력과 현실감각이 지역의 양심에 정착 되어야만 한다.", "즉각적으로 자신들을 양지로 끌어올리려고 하는 심리"라며 비판합니다. 사실 스탈린 동지께서 공포야말로 인간 심리의 근간임을 간파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심리는 공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었죠. 자신들이 경쟁자들에 의해 완전히 배제될 것이라는 공포가 전 지역에 만연했습니다. 당장 우크라이나 당관료들은 중앙에 우크라이나가 아닌 어떤 곳에 하는 투자도 비경제적인 낭비가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기도 하죠.
구 고스플란 건물.
이러한 분위기에 더하여 이들의 지역 간 경쟁을 부추긴 것은 중앙에서 슬슬 장기 경제 계획을 돌릴 것이라는 암시였죠. 고엘로 계획 이래로 장기 계획이라는 건 계속 있어왔으나, 이번은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이 당시 관료들 사이의 중론이었습니다. 27년 가을, 고스플란과 베센하에서 드디어 그 유명한, "제1차 5개년 계획"이 떡밥으로 던져집니다. 우랄 관료들에게 이는 우크라이나의 더러운 패권주의적 작당에 맞서 우랄 산업의 경쟁력을 지킬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여겨졌습니다. "상공업 신문"이라는 소련 신문의 편집자는 "우리는 개개의 경제 지역들의 다가올 10년의 운명을 결정할, 연방의 새로운 산업적 지형을 창조를 기다리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합니다. 님은 무엇입니까? 바로 5개년 계획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랄에서 짜낸 계획은 굉장히 야심 찼습니다. 20억 루블의 투자를 바탕으로 1941년까지 철 생산량을 6배로 올리겠다는 것이 골자였죠. 잠깐 윗 문단을 기억해주세요. 당시 굉장히 과장되게 제출된 전국의 1년 산업투자 계획이 20억 루블입니다(...) 당시 우랄의 산업 자본의 총 가치는 2억 2천 100만 루블 밖에 안 되었고, 연간 투자는 6천 500만 루블이던 시절에 저런 계획을 만들어내는 비범함. 역시 대륙적 스케일이 돋보입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던지 우랄의 당 관료들은 1941년까지 타겟으로 하는 15년 계획이 아닌 5개년 계획으로 조금 더 타이트하게 계획을 바꿉니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보니 저 계획이 아주 보수적으로 보이는 괴물 같은 계획이 나와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짓을 우랄만 한 게 아니라 전국이 다 하고 있었습니다. 1927년 12월, 지역 대표들 트로츠키가 박살난 15차 당대회에서 야심차게 그들의 산업 개발 계획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고스플란 의장 크리지자놉스키와 소브나르콤 의장 릐코프는 모두 5개년 계획에 대해서 각 지역들이 서로 불필요한 분쟁을 하고 있다고 언급합니다. 그들은 모든 지역이 5개년 계획에서 각자 중요한 위치를 맡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지역 대표들을 진정시키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베센하 의장 쿠이븨셰프의 생각은 달랐죠.
"우랄에 대해 지속되고 있는 논란이 있습니다. 저에게 하나만큼은 이제 확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1차 5개년 계획의 건설에 있어서, 그리고 지역 간 산업 영역과 전체 경제에 있어서 재정 분배는, 동쪽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점 말입니다. 우랄과 시베리아는 제1차 5개년 계획이 우리 산업 발전을 진작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모든 기반을 갖추고 있는 곳들입니다. 특히 우랄이 그렇습니다. (중략) 우랄에는 무궁무진한 연료, 광물, 철광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전략적 방위를 고려할 때 매우 안전한 영역이기도 하죠. (중략) 동방 전반에 걸쳐 산업화를 하는 것은 지리적인 면에서 가장 논리적인 기반을 갖춘 주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랄의 후진적이고, 농노해방 전의 경제 구조를 재건하는 것은 우리 5개년 계획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동방으로 거대한 전환을 착수해야만 합니다."
앞 줄 중앙이 발례리 쿠이븨셰프. 1927년 7월, 15차 당대회의 스베르들롭스크 시 당 위원회 대표들과 함께 한 컷. 그의 왼쪽에 주 공산당 제1서기인(주지사 정도 되는 위치. 바이노프가 이 위치였죠) 쉬베르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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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들은 우랄 대표들은... 그냥 가버렷~ 회의장 바닥이 축축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다른 지역에서 "그런 건 지역주의요!"라는 어마어마한 반박과 비판이 벌떼 같이 쏟아졌습니다. 물론, 쿠이븨셰프는 확고한 해답을 제시한 건 아니었습니다. 이 때 제1차 5개년 계획에서 각 지역들의 재원을 정하는 문제와 자원 분배에 있어서 기준이 정해졌는데, 기본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생산성을 보여주는 곳이 1차적인 투자 대상이 되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중앙은 일단 투자를 받으려면 산업의 구조조정과 원가 절감을 달성하고 오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가성비를 따졌던 것이죠. 쿠이븨셰프의 말과는 별개로 우랄에서는 매우 불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애초에 우랄은 설비 자체가 대개 노답이라, 구조조정을 하면 산업을 그냥 포기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중앙에서 요구한 "합리화"는 수행 불가능한 과제였고, 애초에 한다고 쳐도 단기간에는 절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발전과 낙후를 극복하려고 투자를 달라고 하는 것이었는데 투자를 받으려면 저발전과 낙후를 극복하고 오라는 말이나 다름 없었죠. 우크라이나는 여기서 요시 그란도 시즌을 외치는데 얘네는 그냥 있는 거 잘 굴리면 중앙에서 요구하는 "합리화"를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승자의 여유랄까...
1928년은 이러한 효율에 대한 강조가 더욱 쎄지는 시기였습니다. 특히 소련 경제가 완연한 회복세를 넘어 뚜렷한 성장세를 보여주자, "철강 기근"이라는 상황이 명백해졌습니다. 점증하는 철강 수요를 현재의 공급량으로는 맞출 수가 없었던 거죠. 향후 공업화의 대도약을 준비해야하는 상황에서 이는 좋지 못한 일이었고, 생산량을 당장 늘려야만 했습니다. 철이 괜히 산업의 쌀이 아니죠...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또다른 행위주체의 반발에 직면하게 되는데 바로 농민이었습니다. 곡물을 수급하는 것이 또다시 문제로 불거지면서 농업 인민위원회 관료들은 중공업에 진행되는 과잉투자를 격렬하게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공업과 농업이 같이 발을 맞춰 가야만 하고, 성장률을 완만하고 안정적으로 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계속 주장합니다. 그러나 베센하와 지역 인사들은 그냥
Fuck♂You↘
로 대응합니다. 트로츠키와 피튀기는 논쟁이 정리된 지 1년만에 이제 중앙은 다시 격렬한 논쟁의 포화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스탈린의 응답은 심플했습니다. 이 일과 별개이긴 하지만 스탈린 동지께서 일찍이 15차 당대회에서 교시하신 바가 있습니다. "우리의 적들이 스스로 무장을 해제한다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직접 해버리면 됩니다." 농민들이 곡물을 도시에 공급한다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냥 직접 가져오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계속하여 문제의 핵으로 떠오르는 농업과 공업의 균형을 붕괴시키는 어마어마한 산업 투자액에 대한 것도 다시 논쟁에 들어가게 됩니다.
중앙이 이렇게 되는 와중에 동쪽으로의 전환이라는 쿠이븨셰프가 해준 약속은 우랄 관료들이 기대했던 방향과는 다르게 뭔가 흐릿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고스플란과 베센하는 각각 5개년 계획을 짜는 것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계획 담당자들이 볼 때 우랄에서 아무리 해도 효율적 생산이 나올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랄 계획 위원회 최고 관료인 V. A. 가셀블라트에 따르면 중앙 계획가들은 우랄에서 제출한 프로젝트들에 항상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특히 S. A. 흐레니코프와 베센하의 제철산업부(GUMP) 담당자들이 마그니토고르스크 프로젝트에 보내는 적대감은 그를 굉장히 실망시켰습니다. 고스플란도 "우랄은 원시적인 과거 생산기법에 너무 깊게 뿌리 박혀 있다." "우랄 산업 성장의 아찔한 성장의 날은 아마 안 올 것"이라는 말을 하며 회의감을 대놓고 드러냅니다. 특히 소브나르콤의 릐코프와 고스플란의 가르쨘의 의견은 너무 명백했습니다. "우랄? 니들한텐 투자 못 해. 돈은 우크라이나한테 간다."
우랄 제철산업체의 세다셰프는 GUMP에 있는 상대 관료가 이렇게 말하는 걸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그 젠장할 것들은 이미 세월을 먹을만큼 먹었다고. 대체 왜 내가 모두다 합쳐서 남부 제철소 하나보다도 철을 생산 못 하는 그런 것들을 신경 써야 하는 거지?" 특히 우크라이나 측에서 우랄에 보내는 적대감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관료들은 중앙에 아주 매혹적인 수치들을 제공해주면서 중앙을 만족시키고 있었죠. 우크라이나는 이러한 우위에 만족하며 대형 사업 제안서들을 보냅니다. 5개년 계획에서 10억 루블의 투자와 28-29년의 1억 9천 500만 루블 지원 요청이 그거였죠. 반면에 쪼그라들은 우랄의 관료들은 5개년 계획에 3억 2천 700만 루블만을 요청할 뿐이었습니다. 물론 소브나르콤은 둘 다 씹어버립니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는 계속 계획을 제안합니다. 투자를 달란 말이야! 크리보이 로크에 두번째 거대 제철소를 짓자고 제안하고, 29년 초에는 3번째 제철소를 짓겠다는 제안까지 제출합니다. 우크라이나의 5개년 계획 투자 요구는 27억 루블로 오르고 1929년 2월에는 47억 루블로 오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얘들 몇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국에 7억 뿌리냐 9억 뿌리냐하다가 8억으로 쇼부치자 하던 놈들입니다(...) 우랄은 이런 걸 즐겁게 제안하는 호사를 누리지는 못합니다. 우랄마쉬에 대한 돈줄은 줄고, 제철소 계획도 계속 빠꾸를 먹습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중앙의 선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건 역시 석탄 산업에 대한 투자일 것입니다. 우크라이나는 28-29년에 17개의 새로운 광산을 파라는 자본금을 받습니다만 우랄은 2개만 받았고 시베리아는 하나 밖에 못 받습니다. 석탄 공급망을 확실히 하지 못한다면, 우랄의 계획은 개박살 날 것이 틀림 없었습니다. 1929년 3월 고스플란 상무회의 15차 회의에서 우랄 관료들 심장에 못을 박는 말이 나오는데 "동쪽으로의 전환? 3차 5개년 계획에 가서야 제대로 얘기가 될 듯 하네요."라는 말이었습니다.
우랄은 중앙에 계획을 팔아먹을 때 그들이 채택하던 전략을 재고해보기 시작합니다. 우랄이 기존에 밀던 전략은 하나였죠. "우랄엔 광물자원이 많다. 우크라이나가 지정학적 취약성을 지니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동쪽에 공장을 까는 게 낫다. 방위를 위해서." 우랄 내부에서 슬슬 이런 패배주의적 홍보에 대한 자성(?)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진실로 높은 생산성과 투자에 있어서 가성비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야한다는 것이었죠. 우랄 주 당 제1서기 쉬베르닉은 1928년 3월, 주 공산당 회의에서 이"만약 우리가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확실히 파멸할 겁니다." 야로슬라블의 바이노프에서 까메오로 출연(?)하기도 했고 당시 주 집행위원회(Oblispolkom)의 의장을 맡게 된 카바코프는 우랄 산업에서 효율화를 위한 모든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하는 조사를 착수합니다. 그리고 카바코프는 우랄의 현재 계획들이 너무 보수적이라고 비판합니다. 우랄의 산업은, 연방의 어떤 지역보다 더 빠르고, 더 싸고, 그리고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그래야만 했습니다.
우랄 철강기업체 관리자인 오시빈체프는 현재의 계획들이 "굉장히 조심스럽고, 비용을 과장하는 기술적 계산들에 기반해있다"며 비판하고, 소수 프로젝트에 투자를 집중시키면 더 멋진 결과들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카바코프도 오시빈체프도 모두 하나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바로 우랄 제철산업의 최고 걸림돌 말이죠. 석탄이었습니다. 쿠즈네츠크 탄전으로부터 석탄을 수송해오는 건 공급에서의 불안정성과 높은 비용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철강업자들은 이를 잘 알고 있어서 종종 공론화시키기도 했죠.
우크리이나: 이게 석탄도 없는 게 까불어!
우랄: 아냐! 우리도 석탄 동네에 있어! 곧 발견될 거라고!
우크라이나: 뭐어? 바보야~! 우랄이 아니라 시베리아 쿠즈네츠크겠지! 너흰 석탄 없어! 그것도 모르냐?!
우랄은 일단 계획을 짜기 시작합니다. 네. 일단 짭니다. 석탄? 뭐 있겠지 ㅎㅎ 지역에 석탄이 많을 거라고 가정하고 한 번 아름다운 계획을 짜보자꾸나~ 점점 망상이 떡칠된 계획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알파옙스크 탄전이 지역적 중요성보다 전연방적 중요성을 띠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것은 남부에서 1880년대와 1890년대에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소련의 철강 생산에 있어서 혁명을 초래할 것입니다. (중략) 그런 조건 속에서, 우랄 철강 산업은 중앙 러시아와 북서 주의 시장을 취할 수 있고, 단기간에 소련 전역에서 가장 두드러진 생산자로 부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2인자로 밀쳐지는 것이죠."
- 우랄 경제의 5개년 계획에 있어서 당면한 문제들(Ocherednye voprosy piatiletnego plana khoziaitsva Urala)
1928년 가을, 우랄의 계획 위원회는 계획을 다시 짜느라 열심이었습니다. 제철소 계획도 다시 짜고, 우랄마쉬 계획도 다시 짰고, 화학, 임업, 그리고 철도건설에 걸쳐서 전 계획이 재검토되었습니다. 우랄이 투자를 받아야만 하는 이유를 보여주어야만 했죠. 중앙에 높은 생산성을 보여주겠다, 적은 투자를 해도 높은 효율을 뽑아낼테니 걍 우리 동네에 몰빵해라 라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적잖은 반발을 초래했습니다. 공장의 실무자들과 기술직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현실과 안 맞는 계획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에도 계획이 가져다줄 로망에 부풀어 있는 사람들도 있었죠. 쇠퇴하고 영원히 낙후할 것 같은 지역 경제의 비상에 설레지 않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못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중앙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제정신 아닌 것 같은 중공업 확대에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내는 일련의 그룹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작년까지 스탈린의 동료들이었던, 15차 당대회에서 트로츠키를 같이 무덤에 파묻어버리고 해맑게 웃던 릐코프, 톰스키, 부하린의 우익반대파였죠.
첫댓글 지역 간 경쟁으로 생산성이 급격히 향상되는 걸 보니, 마치 공산주의 경제체제가 전혀 아닌 것 같은 인상이......
향상 ㄴㄴ "향상된 것처럼 보이는 것"
@첝 물론 과도한 경쟁으로 카푸치노 수준의 거품이 가득하긴 했지만, 그래도 시베리아에서 석탄도 끌어오고 우크라이나 잡아보겠다고 아둥바둥 하는 걸 보면 긍정적인 측면은 분명 있지 않나여?
그건 그렇고 우크라이나가 모스크바한테 징징대는 것과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꼬라지(...)를 비교하면 참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군요. 동부 우크라이나에서는 소련 치하에서 잘나가던 이 시절의 기억이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있는 걸까요?
@인생의별빛 곧 그 아둥바둥이 어떤 파국을 초래했는지 보여드리죠 후후...
동부우크라이나는 사실 지역경제 차원에서는 서부우크라이나보다는 그 동쪽의 남러시아와 더 많이 얽혀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물론 하리코프(하르키우)와 같은 곳이 꽤 잘나갔던 것도 사실이고요. 우크라이나에서 키예프 다음으로 지하철이 건설된 곳이 하리코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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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청까지는 아직 많이들 남았습니다~
조만간 조리돌림 당하실듯....
더더욱 병맛 돋는 일들이 많으니.. 아직 숙청 타이밍이 아니오!
@첝 저기 한 5~6년정도 남은 기간 아니었슴메??
@루드비히 베크 숙청이 37년이니 아직 대충 10년은 남은 셈이지요
@첝 아항 28년이었구낭..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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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소브나르콤 의장이 우익반대파 릐코프였습니다. 물론 나중에 그의 운명은 ^^
@첝 이거 뭐 스포이긴 한데 대부분 예상되는 스포고 ㅋㅋㅋㅋㅋ
그리고 그 우익반대파 3명은 이후 (이하생략)
탕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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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
와 고스플란 건물... 뻔뻔스러울정도로 공산주의적 양식인게 아주 모에하네요 항가항가~
군더더기 없는 쏘련양식
아직까지는 스탈린동지의 역할이 없군요. 주인공 등장까지의 사설이 깁니다!
사실 책 자체가 스탈린 동지께서 흑막의 주재자로서 슬쩍슬쩍 나오는 정도지 스탈린의 역할 자체를 많이 조명해주지는 않더군요. 앞으로도 바이노프가 한 짓들이 더 넓은 맥락에서 어떤 것이었나 정도 생각하고 보시믄 될 듯
그리고 중간중간에 트로츠키를 족친다던지 하는 무시할 수 없는 활약을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난 이 시리즈 제목 볼 때 마다 자꾸 "거대한 부랄산맥"으로 읽혀서... 영 불편하오..
ㅂㄹ을 탁치고 갑니다
산맥에 석탄이 부족한것은 사실아닌가?
우랄은 산맥이라 부르기 민망한 평원지대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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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죠
반대파등장!
그리고 숙청
지정학적 취약성을 위해서라도 우랄에 공장을 지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알다가도 모르는 게 세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