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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6 오전 09:43
일반 위원석 스포츠서울 체육1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제26회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받았다. 국내 유일한 발롱도르(Ballon d'or) 선정위원이다.
<이 한장의 사진은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느낌을 잘 전해준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 김기정의 스매싱 장면.사진=연합뉴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것은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남긴 말이다. 배드민턴을 보면서 이 말을 떠올린다. 가로 6.1m, 세로 13.4m인 직사각형 모양의 코트는 높이 1.55m의 네트로 양분돼 있다. 이 작은 공간에서 선수들은 마치 나비처럼 춤을 춘다. 코트를 낮게 가르기도 하다가 하늘높이 솟구치기도 한다. 이들이 벌처럼 쏘아대는 스매싱은 최고 시속 300㎞를 훌쩍 넘어선다. 빠르고 날카롭다. 이를 받아치는 상대의 순간적인 움직임은 가히 신기에 가깝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춤을 추며, 라켓으로 한 합을 제대로 겨루는 모습은 무협지 고수들의 대결처럼 황홀하다. 무릇 강호의 세계에는 절정의 비기를 갖춘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막 라켓을 손에 잡고 셔틀콕을 맞추는 재미만 해도 남다르다. 국내에서만 통칭 300만명이 이 스포츠를 직접 몸으로 즐긴다고 한다. 무엇이 이들을 빠지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궁금증 하나: 배드민턴은 손으로 하는가, 발로 하는가?
배드민턴은 라켓을 이용해 셔틀콕을 쳐서 득점을 올리는 경기다. 당연히 셔틀콕을 치는 기술이 중요하다. 하지만 '손기술'만 좋다고 해서 배드민턴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발기술'도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발기술=배드민턴 실력'이라는 인식이 상당히 널리 통용되고 있다. 한국 배드민턴이 배출한 최고 레전드 박주봉(현 일본 배드민턴 국가대표팀 감독)이 2004년에 펴낸 배드민턴 교본 '박주봉의 배드민턴'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와있다. "배드민턴은 언뜻 보기에 강하고 빠른 스윙이 가장 중요하게 보인다. 그러나 배드민턴을 조금이라도 치다보면 '손이 아닌 발로 하는 운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말이 실감날 것이다. 그만큼 코트에서 누가 더 자유자재로 잘 뛸 수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판가름난다고 볼 수 있다".
배드민턴을 치기 위해서는 우선 라켓을 잡아야 한다. 그 행위를 그립이라고 한다. 배드민턴에서는 기본적으로 웨스턴 그립과 이스턴 그립이 있다. 배드민턴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본능적으로 라켓을 잡는다면 라켓의 평평한 면이 정면을 향하도록 잡는 것이 자연스럽다. 마치 프라이팬을 잡는 느낌이다. 넒은 면이 상대쪽을 향하게 되므로 셔틀콕을 맞히기 쉽다. 이것이 웨스턴 그립이다. 반면 라켓 사용에 익숙해지면 다른 방식으로 그립을 잡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라켓면이 손목과는 직각을 이루게 잡는 식이다. 악수하는 모양(쉐이크 핸드) 또는 칼은 잡는 모양을 생각하면 쉽다. 이것이 이스턴 그립이다. 이 그립을 사용하게 되면 손목을 틀어서 포어핸드나 백핸드로 자유자재로 셔틀콕을 칠 수 있게 된다. 초보자는 웨스턴 그립으로 시작해 셔틀콕을 치는 재미를 느끼다가 능숙해질수록 이스턴 그립을 잡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웨스턴 그립을 잡으면 포핸드에서 백핸드로 전환이 느리고 손목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아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기 힘들다. 초보 때는 웨스턴 그립을 잡게 되지만 어색하더라도 라켓면을 세워 잡는 이스턴 그립으로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경기를 할 때 이스턴 그립으로 고정되는 것은 아니다. 최민호 국가대표팀 코치는 "상황에 따라 ,또 구질에 따라서 선수들은 그립을 수시로 바꿔잡게 된다"고 설명한다. 골프에서도 여러가지 그립이 있고 장단점이 있지만 결국 자기 손에, 또 자기 리듬과 루틴에 가장 맞는 그립을 찾아야 하듯이 배드민턴에서도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라켓을 길게 잡는 것과 짧게 잡는 것의 차이도 있다. 골프채나 야구 배트 등 기구를 이용해 공을 치는 모든 구기종목에 똑같이 적용되는 법칙이 있다. 길게 잡으면 거리가 많이 나가면서 파워가 높아지고, 짧게 잡으면 정확성과 방향성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배드민턴 라켓도 마찬가지다. 길게 잡으면 타점의 높이, 스윙의 속도, 수비시 커버의 범위가 넓어진다. 짧게 잡으면 반대의 현상이 벌어진다.
배드민턴은 손목이 매우 중요하다. 선수들과 동호인들 차이는 손목의 힘에서 비롯된다고 말해도 될 정도다. 손목을 강화한다면 스윙에 파워가 생기고 셔틀콕이 날아가는 스피드도 빨라진다. 박주봉도 현역 시절 틈만 나면 손목 강화 운동을 했다. 집에서도 악력기 아령 맥주병 등 손목 힘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가리지 않고 사용했다고 한다.
그립을 잡았다면 이제 스트로크를 해보자. 스트로크는 기본적으로 셔틀콕이 맞는 지점에 따라서 오버헤드(머리위) 사이드암(몸의 좌우) 언더핸드(허리아래)로 치는 것이 있다. 여기에 각각 포어핸드와 백핸드가 덧붙여진다. 결국 6개의 스트로크가 기본이라는 뜻이다. 포어핸드는 손바닥으로 치는 것에 비유되다. 백핸드는 손등으로 치는 것이다. 스트로크는 구질에 따라서 클리어, 커트, 헤어핀, 드라이브, 푸시, 스매시 등이 있다. 스매시와 푸시는 공격을 위한 스트로크다. 클리어는 수비시 많이 사용된다. 헤어핀 드라이브 커트 등은 공수를 겸하는 경우가 많다.
스매시(smash)는 배드민턴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강력한 스트로크다. 정상급 남자 선수들의 스매시는 순간속도가 시속 300㎞를 훌쩍 넘는다. 에이스(완벽한 득점을 따내는 결정타)를 위한 스트로크지만 반면 반격을 당할 여지도 있다. 스매시를 날린 뒤 다음 동작이 늦어질 수 있어 상대의 반격을 허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임팩트시 힘을 100% 사용해 체력소모가 크다. 야구에서 투수가 공을 던지는 역학구조가 스매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고난도 스매시 가운데는 이른바 점핑 스매시가 있다. 셔틀콕의 낙하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점프해 더 높은 타점에서 치기 때문에 위력이 배가된다. 배구의 스파이크를 연상할 수 있다. 배드민턴 사진 가운데 가장 역동적인 모습을 담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점핑 스매시다.
푸시(push)는 네트 부근에 높이 뜬 상대 타구를 강하고 빠르게 상대 코트로 밀어넣는(푸시) 스트로크다. 에이스가 될 확률이 굉장히 높다. 위력적인 푸시를 위해서는 힘보다 네트로 좁혀 들어가는 정확한 타이밍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드라이브(drive)는 네트를 스치듯이 넘어서 코트와 평행이 되도록 빠르게 날아가는 스트로크다. 상대방을 기습하기 위한 타구이며 상대 몸통을 겨냥하면 가장 효과적이다.
클리어(clear)는 배드민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타법이다. 높고 길게 날리는 것이 중요하다. 하이 클리어(high clear)와 드리븐 클리어(driven clear)로 나뉜다. 하이 클리어는 상대 코트의 끝까지 높고 길게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간다. 셔틀콕의 체공 시간이 길어서 자신(자기 팀)의 전열을 정비하기 좋다. 수비형 스크로크이며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서 시간을 벌기 위해서 주로 사용된다. 드리븐 클리어는 하이 클리어에 비해서 빠르게 직선으로 날아가다가 엔드라인 위에서 뚝 떨어지는 형태를 띤다. 높이보다 속도와 코스가 중요하며 공격적인 형태를 보인다. 말하자면 스매시는 코트 바닥을 향해 치는 느낌, 하이 클리어는 천장을 향해 치는 느낌을 갖는다.
드롭샷(drop shot)은 클리어나 스매시와 거의 같은 방식으로 치는 오버헤드 타구다. 준비 동작부터 타구 직전까지 거의 똑같은 동작으로 이뤄지지만 임팩트의 차이로 타구의 종류가 달라진다. 드롭샷은 임팩트 순간 짧게 끊어쳐 네트 앞에 살짝 떨어지게 된다. 때문에 상대방을 속이는 타구로 유용하다. 복식보다 단식에서 많이 사용된다.
헤어핀(hairpin)은 네트 바로 밑으로 떠어지는 셔틀콕을 다시 살짝 상대방 코트로 넘기는 스트로크다. 만일 네트를 맞고 상대방 코트로 떨어지는 기술을 구사할 수 있다면 궁극의 헤어핀이라고 할만 하다. 네트플레이를 할 때 중요하다.
커트(cut)는 라켓면으로 셔틀콕을 끊어치는(커트) 타구다. 네트를 넘기면 뚝 떨어져 쇼트서비스 라인 근처로 낙하하면 좋다.
<강력한 스매시는 배드민턴의 꽃으로 불린다. 리우올림픽에서 유연성이 스매시를 날리는 장면. 사진=연합뉴스>
위에서 설명한 여러 구질의 스트로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되면 경기의 흐름을 자기 편으로 갖고 오는데 매우 유리해 진다. 공격력이 아무리 좋아도 수비가 받침이 되지 않는다면 승리할 수가 없다 리시브에 있어서 기본은 백핸드다. 오른손잡이를 기본으로 생각할 때 백핸드로 리시브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넓기 때문이다. 심지어 몸 정면으로 오는 타구도 백핸드로 대응하는 것이 휠씬 편하고 자연스럽다.
좋은 공격이나 리시브를 위해서는 민첩한 풋워크가 중요하다. 이 대목에서 드디어 '배드민턴은 손으로 치는 것이 아니라 발로 치는 것'이라는 격언이 등장한다. 풋워크(footwork)란 코트안에서 효율적인 스트로크를 하기 위한 발동작을 의미한다. 여기서 '홈 포지션(home position)'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홈 포지션은 코트안에서 자신이 전후 좌우 대각선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본 기지를 뜻한다. 대략적으로 코트의 네 모서리를 잇는 교차점이 홈 포지션이 된다. 단식을 기본으로 생각하면 코트의 중앙부분인데 보통 사람은 앞으로 나가는 동작이 뒤로 물러서는 동작보다 자연스럽기 때문에 홈 포지션은 중앙보다 반걸음 정도 뒤에 위치하는 것이 좋다. 홈 포지션은 풋워크에 들어가기 전의 기본 위치로 셔틀콕이 코트안의 어느 방향으로 날아오더라도 최단 거리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이다. 셔틀콕이 날아오는 방향에 따라서 풋워크로 이동해 타구를 처리한 뒤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말그대로 홈이다. 셔틀콕이 떨어지는 곳으로 민첩하게 이동해 스트로크를 하고 다시 홈포지션으로 돌아오는 것이 풋워크의 관건이다. 실제 경기에서 풋워크는 보통 2~4보 안의 스텝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풋워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첩성 순발력 판단력 지구력 정확한 스텝 등이 꼽힌다.
풋워크의 요체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셔틀콕이 날아오는 지점의 예측→민첩한 발놀림으로 예측 지역으로 이동해 정확한 스트로크→스트로크 이후 빠르게 홈포지션으로 복귀. 배드민턴은 테니스에 비해서 코트안에서 움직이는 동선이 상대적으로 짧다. 그러나 이 몇발자국에서 결국 승패가 갈린다. 네트 스포츠의 요체는 상대를 얼마나 홈 포지션에서 끌어내느냐, 또는 상대가 홈 포지션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느냐에 달려있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방수현(현재 미국 거주)은 2004년 펴낸 저서 '방수현의 배드민턴 교본'에서 홈포지션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런 견해를 밝히고 있다. "배드민턴은 상대를 홈 포지션에서 밀어내기 위한, 거기에서 승부처를 찾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은 홈 포지션을 지키고 상대는 그곳에서 몰아낸다. 홈 포지션을 굳게 지키고 밀려나지 않는 경기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게임, 그것이 바로 배드민턴이다. 홈 포지션에서 밀려난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에게 공격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주게 되고 방어의 지역이 광범위하게 늘어나 리시브에만 급급하게 되면서 마땅한 공격을 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배드민턴을 잘 치기 위해서는 꾸준히 풋워크 훈련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풋워크 훈련을 통해서 불필요한 동작이 줄면서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지고, 셔틀콕을 치러갈 때와 돌아올 때의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박주봉은 위에 언급한 그의 저서에서 "영국에서 대표팀을 지도할 때 풋워크 훈련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당시 영국 선수들이 기본기 훈련보다 게임에 너무 치중했기 때문에 몸놀림이 둔하면서 상하체 밸런스가 안 맞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매일 풋워크 훈련을 시켰다. 이후 그들은 보다 유연해지면서 스피드가 향상됐다. 선수 스스로도 자신의 움직임에 놀라워할 정도였다. 풋워크 훈련은 현역 세계 최고 선수들도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고 전했다.
<상대 네트를 향해서 서비스를 넣은 순간. 사진=연합뉴스>
마지막으로 서비스에 대해서 살펴본다. 비슷한 네트 스포츠지만 테니스는 서비스가 경기의 주도권을 잡는다. 서비스 경기를 놓친다면 승부를 어렵게 가져가게 된다. 반면 배드민턴은 서비스를 하는 쪽보다 리시브를 하는 쪽이 더 유리하다. 리시브쪽이 먼저 공격 기회를 잡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는 배구와 흡사하다. 그렇다고 서비스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좋은 서비스는 길이와 높이,방향,속도 등을 다양화해서 자기가 공략하고 싶은 곳으로 셔틀콕을 보내야 한다. 일단 상대쪽의 코너를 찌르는 서비스가 좋다. 또 셔틀콕을 띄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방향이 좋아도 셔틀콕이 뜬다면 바로 상대방에게 공격을 당할 수 있다. 단식에서는 롱 서비스, 복식에서는 쇼트 서비스가 기본이다. 서비스를 잘 넣기 위해서는 반복 훈련을 통해서 자기 자신만의 '손목의 감'을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정도면 결론이 나온듯하다. 우리는 서두에 '배드민턴은 손으로 하는가, 발로 하는가'라는 우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서 성한국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이런 '현답'을 내놓는다. 성 감독은 "배드민턴에서 손이 중요하냐, 발이 중요하냐는 흥미로운 질문일 수 있지만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배드민턴은 복합적인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신체조건,체력,심리,스윙동작,경기운영 능력 등 모든 분야가 총망라된다. 공을 잘 쳐도 체력이 떨어지면(풋워크가 안되면) 쓸데가 없고, 풋워크가 좋아도 공을 못치면 소용이 없다. 상호보완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초체력과 전문체력을 언급하면서 배드민턴에 특화된 전문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초체력이란 예를 들어 100m 달리기의 속도, 제자리 점프의 높이, 운동장을 몇바퀴씩 오래 달릴 수 있는 지구력 등을 뜻한다. 전문체력은 조금 다르다. 특정 종목을 잘하기 위해서 특화된 체력을 의미한다. 성 감독은 "배드민턴을 예로 들자면 이 운동은 전후좌우는 물론 점프까지 해야 한다. 코트에서 이뤄지는 움직임과 스텝은 단순히 100m가 빠르다 또는 오래달리기에 능하다 등의 기초체력이 좋다고 잘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코트에서 잘 통할 수 있는 또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전문체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사이드 스텝이나 각을 바꿔서 움직이는 스텝 등 배드민턴을 잘 치기 위한 전문체력을 향상시킬 별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궁금증 둘:시속 300㎞가 넘는다는 셔틀콕을 어떻게 받아칠 수 있을까?
배드민턴 담당 기자를 하던 시절이었던 지난 2012년 한국 국가대표팀을 공식후원하는 '빅터'의 중국 난징 공장을 견학한 일이 있었다. 셔틀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일일이 지켜보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아래에 첨부한 동영상은 '빅터'의 중국 공장에서 셔틀콕을 만드는 과정을 편집한 화면이다. 수작업과 자동화 과정이 적당하게 섞인 제작 공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셔틀콕(shuttlecock)은 초기에는 닭털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닭(cock)털이 네트 사이를 왕복(shuttle)하는 모양에서 셔틀콕이라는 말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셔틀콕의 무게는 4.74~5.50g이다. 코르크에 꽂힌 16개의 깃털을 가져야 하고 깃털 길이는 64~70㎜ 정도인데 각 셔틀콕의 깃털 길이는 똑같아야 한다. 코트의 맨끝(백바운더리 라인)에서 언더핸드의 풀 스윙으로 쳐서 반대편 코트 끝으로부터 530~990㎜ 사이에 떨어져야 정상 제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깃털은 예전에는 육조구(陸鳥球)라고 해서 닭털을 사용했지만 요즘은 수조구(水鳥球) 즉 거위털을 주로 사용한다. 닭털은 분지(分枝) 구조가 무질서한 반면 거위털은 비교적 고르다. 따라서 셔틀콕을 칠 때 스핀이 먹는 구조가 육조구보다 수조구가 휠씬 좋다. 육조구를 치면 불규칙한 분지 구조 사이에 함유되는 공기 차이로 회전 속도를 내지 못하고 낙하 시점까지 포물선을 그리는 반면 수조구는 포물선을 그리며 비행하다가 낙하지점에서 수직으로 떨어진다. 육조구를 쓸 때에는 선수들이 강한 스트로크를 위해서 어깨 힘을 기르는데 힘썼지만 수조구가 보편화되면서 손목 힘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됐다(육조구와 수조구의 차이는 과학동아 편집부가 1999년 펴낸 '스포츠 사이언스' 참조).
국가대표 선수들이 사용하는 최상품 셔틀콕은 거위털로 만든다. 대한배드민턴협회를 공식 후원하고 있는 빅터의 한종희 대표는 "최상품 셔틀콕 한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거위 한마리에서 좌우 2개씩 4개의 깃털만을 쓸 수 있다. 결국 (16개의 깃털이 필요한)셔틀콕 한개에 거위 4마리가 필요한 셈"이라고 말했다. 거위는 좌우 깃털의 휜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쪽 깃털만 한 셔틀콕에 이용할 수 있다. 좌우 깃털의 휘어진 상태가 정반대여서 회전 방향을 일정하게 하려면 한 셔틀콕에 같은 쪽 깃털만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왼쪽 깃털을 사용한 것이나 오른쪽 깃털을 사용한 것 모두 품질에는 차이가 없다. 한 대표는 "깃털을 규정 길이에 맞춰서 정교하게 커팅하는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왼쪽 깃털 제품과 오른쪽 깃털 제품은 방향성이나 거리 등에서 전혀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셔틀콕은 가볍다. 치는데 그리 힘도 들지 않는다. 야구배트나 골프채를 휘두르는 것보다 배드민턴 라켓은 더 가볍고 쉽게 휘두를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장 빠른 속도를 내는 구기 종목은 무엇일까. 단연 배드민턴이다. 다소 의외다. 감각적으로 생각하면 아이스하키에서 강력하게 때린 퍽의 속도, 골프의 드라이버 샷 속도, 테니스의 서브 속도가 휠씬 빠를 것같다. 아니다. 배드민턴에서 셔틀콕이 날아가는 순간 속도가 제일 빠르다. 그것도 격차가 꽤나 크다. 배드민턴 셔틀콕의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2000년대만 해도 중국의 후아이펑이 2005년에 날린 스매싱 속도가 시속 332㎞를 기록한 것이 최고 기록이었다. 그런데 2015년 세계 단식의 최강자였던 리총웨이(말레이시아)가 홍콩오픈에서 시속 408㎞를 기록하더니 지난 1월 13일 매즈 필러 콜딩(덴마크)이 인도 프리미어리그에서 무려 시속 426㎞의 스매싱을 날렸다는 보도가 나왔다(기네스북에는 리총웨이의 속도가 가장 빠른 것으로 나와있다. 콜딩의 기록은 아직 기네스북에서 '공식화'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골프 드라이버 샷 최고 기록은 349.4㎞. 테니스 서브 최고 기록은 263㎞, 아이스하키 샷 최고 기록은 177.5㎞, 야구의 투구 최고 기록은 169.1㎞로 각각 나와있다. 결국 배드민턴은 다른 어떤 종목도 따라올 수 없는 극강의 스피드를 자랑한다는 사실인데 우리는 여기서 두가지 의문을 떠올리게 된다. 하나는 어떻게 이렇게 빠른 속도가 나올 수 있을까와 다른 하나는 이렇게 빠른 셔틀콕을 인간이 어떻게 쳐낼 수 있느냐이다.
골프공이나 아이스하키 퍽은 굉장히 단단하다. 이에 반해 셔틀콕은 거위털로 이뤄졌고 상당히 가볍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빠른 속도가 가능할까. 셔틀콕의 가벼움에 그 비밀이 숨겨져 있다. 과학적으로 셜명하자면 물체의 속도는 작용하는 힘에는 비례하지만 질량에는 반비례한다. 라켓이 셔틀콕을 맞힐 때의 힘은 크지만 셔틀콕 자체의 질량이 (다른 구기종목의 공에 비해서)작기 때문에 폭발적인 순간 속도를 낼 수 있다. 코르크가 라켓에 닿는 부분은 밀도가 작아 강한 탄성을 만들어낸다. 빠른 속도에도 불구하고 셔틀콕은 대신 멀리 날라가지는 않는다. 속도가 바로 줄어들기때문이다. 셔틀콕이 타격되는 순간에는 깃털 폭이 오므라들면서 매우 빠른 속도를 내지만 네트를 넘어갈 즈음에는 다시 깃털 폭이 펴지면서 속도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마치 낙하산이 펴지는 것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타구된 셔틀콕이 날아갈 때 전체에 가해지는 공기의 저항도 크다. 초기에 사용했던 닭털은 공기 통과율이 높아 바람의 저항을 많이 받는 경향이 있어서 이보다 낮은 공기 통과율을 보이는 거위털을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배드민턴 스트로크의 하나인 클리어의 경우 아무리 세게 쳐도 처음에는 빠른 속도로 강하게 날아가다가 포물선을 그리면서 천천히 떨어지게 된다. 배드민턴 전체 코트의 가로 길이는 13.4m다. 가장 긴 코트의 대각선 길이도 14.7m에 불과하다. 보통 선수들이 전력을 다해서 친 셔틀콕도 20m를 보내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250m를 훌쩍 넘어서 300m 가까이 날아가는 골프의 호쾌한 드라이버 샷을 보면서 우리는 체감적으로 셔틀콕보다 더 빠른 속도감을 느끼게 된다. 골프공에 비해서 셔틀콕은 초속과 종속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뜻이다. 셔틀콕 속도의 비밀은 임팩트를 할 때의 순간 스피드에 있는 셈이다. 이렇게 엄청난 초속에 비해서 속도가 빨리 떨어지고 셔틀콕의 무게가 너무 가볍다보니 자연스럽게 바람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실내 경기인 배드민턴에서 에어콘 바람에 셔틀콕이 영향을 받는 '연약한 면'도 있다. 실제로 2004 아테네 올림픽때 일부 선수들이 경기장내 에어콘 바람으로 경기력에 영향을 받는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때도 비슷한 해프닝이 벌어졌다. 당시 한일전에서 패한 일본 선수가 코트에 바람이 불었다고 불만을 제기하면서 일부 일본 언론에서 '(개최국인)한국의 에어콘 조작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당시 일본팀을 맡고 있던 박주봉 감독은 이런 상황에 상당히 당혹스러워 했다고 알려졌다. 가장 빠른 속도를 내면서도 에이콘 바람에도 흔들리는 '셔틀콕의 두 얼굴'이다.
<배드민턴의 연속 동장 사진이 주는 아름다움이 멋지다. 리우 올림픽에서 성지현의 플레이를 담았다. 사진=연합뉴스>
강력한 스매싱이 된 셔틀콕이 상대 코트에 떨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0.15초 정도다. 반면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배드민턴 국가대표 남자선수들이 빛과 소리에 대한 반응 속도는 평균 0.3초였다고 한다. 결국 '치는 것을 보고 움직이는 것'으로는 스매싱한 셔틀콕을 받아낼 수 없다는 뜻이다. 축구의 페널티킥도 마찬가지다. 평균적으로 키커가 찬 볼이 골문까지 가는 시간은 0.5초이고 수준급 골키퍼가 눈으로 공 방향을 읽으면서 몸을 던지는 시간은 대략 0.70초라고 한다. 수치상으로는 키커가 찬 볼이 인간의 반사신경을 넘어서 항상 골대안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실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인간이 하는 스포츠에는 '수치 이상의 변수'가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배드민턴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속도의 셔틀콕을 받아칠 수 있는 것은 '예측'과 '판단'을 하고 미리 움직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반응속도만으로는 셔틀콕을 받아낼 수 없다. 그래서 선수들은 미리 움직인다. 관건은 상대의 스트로크를 미리 읽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친 스트로크(이것은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와 이를 받아내는 상대의 리시브 자세를 통해서 어떤 구종이나 코스로 셔틀콕이 날아올지를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 이때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되는 것은 상대의 발꿈치부터 손목에 이르는 부분을 제대로 읽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매시를 날릴 때 상대가 크로스로 때리려면 손목을 최대한 꺾는 순간 라켓면이 보인다. 이를 통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마치 야구에서 타자들이 투수의 손을 보면서 구질을 짐작하는 것과 흡사하다.
이러한 예측력과 판단력은 결국 반복훈련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국가대표팀 최민호 코치는 "보통 초등학교때 배드민턴을 시작해 성인이 될 때까지 반복훈련을 하다보니 타구가 날아오는 '길'과 '각'이 눈에 익게 된다. 이를 통해서 (몸이)자동으로 반응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즉 자신이 수비를 할 때도 '각'이 있고, 상대의 셔틀콕이 날아올 때도 '각'이 있다는 것이다. 반복훈련을 통해서 몸에 익어있는 감각으로 이 '각'을 통해 날아오는 셔틀콕을 거의 자동적으로 받아내게 된다. 최 코치는 "보통 동호인들은 아무리 잘 치는 수준이라고 해도 이런 '각'을 모르기 때문에 선수들이 치는 셔틀콕을 받아낼 수 없게 된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상대 선수에 대한 철저한 영상 분석도 한 몫을 한다. 최 코치는 "주요 대회를 앞두고는 항상 비디오 영상분석을 한다. 이를 통해서 상대 선수들의 습관을 정확하게 파악한다. 이 선수는 어떤 공격코스를 선호하는지, 어떤 자세에서 대각선 공격이 나오는지 등을 면밀히 체크한다"고 말했다. 고교생 신분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강민혁(수원 매원고 3년)은 반복훈련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초등학교때는 아직 몸이 완전히 성장한 상태가 아니어서 스매싱의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다. 그래서 눈으로 (상대 공격을)본 뒤 반응해도 받아칠 수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오면 눈으로 봐서는 받아칠 수가 없다. 즉 머리로 생각을 하면 이미 늦는다. 그냥 몸이 반응해 쳐야 한다. 이런 (몸으로 반응하는)타이밍은 반복훈련을 통해서만 길러진다. 몸이 먼저 반응을 하면 대표팀 선배 형들이 때리는 것도 받아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복훈련을 통해서 뛰어난 선수들은 상대 선수들의 전체 움직임을 파악하고 미리 몸이 반응하게 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숙련도가 높은 선수일수록 자신의 시각행동이 상대방의 특정 영역(예를 들어 타점)만을 보기보다는 더 폭넓은 영역(타점이 이뤄지기까지의 과정 전체)을 통해서 다양한 정보를 파악해 대응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7년 열린 코리아오픈 여자복식 경기를 위에서 잡았다. 사진=연합뉴스>
예측력과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 한국대표팀이 애용하고 있는 비장의 무기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검은 천, 검은 셔틀콕' 훈련이다. 네트 전체를 검은 천으로 가린 뒤 상대쪽 코트에서 날아오는 다양한 구질의 검은 색 셔틀콕을 받아내는 훈련이다. 이를 통해서 셔틀콕의 궤적을 예측해 판단하고, 순간적인 민첩성과 반응속도를 높이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최민호 코치는 "대표팀이 검은 천과 검은 셔틀콕으로 훈련한 것은 꽤나 오래됐다. 2000년 경부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네트를 검은 천으로 가리면 상대쪽에서 스트로크하는 사람의 동작을 볼 수가 없다. 또 어느 방향으로, 어느 구질이 날아올지 가늠하기 힘들다. 이를 받아치는 훈련을 하다보면 실전에서 한 템포가 늦어도, 또는 역동작에 걸려도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밝혔다. 또 검은색 셔틀콕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하얀색 셔틀콕은 궤적이 잘 보인다. 반면 검은색은 상대적으로 잘 안 보인다. 이를 통해 적응력을 높이려는 것"이라며 "이 훈련에 사용하는 검은색 셔틀콕은 미리 요청해 특별 제작한다"고 전했다.
참고로 한국대표팀이 즐겨하는 또다른 비밀 훈련 가운데 '모래코트 특훈'이 있다. 대표팀이 훈련하는 태릉선수촌의 오륜관에 가보면 정상적인 코트외에 한쪽 구석에 모래코트가 마련돼 있다. 코트위에는 모래가 발목에 잠길 정도로 뿌려져 있다. 이 모래코트에서 정상적인 스트로크 훈련을 진행한다. '철사장의 배드민턴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훈련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하체 근력이 강화되고 지구력을 얻게 된다. 대표팀 훈련은 보통 한번에 2시간 30분 정도 진행되는데 모래코트 훈련은 1시간 정도만 해도 체력적으로 2시반 30분 이상의 효과를 얻게 된다고 한다.
(배드민턴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박주봉의 배드민턴', '방수현의 배드민턴 교본', '파워 배드민턴(최일현 한성귀 감수), '배드민턴 바이블(오성기 김학석 외 지음) 등을 참조했음을 밝힙니다. '위원석의 삼위일체:배드민턴 이것이 궁금하다, 하편'은 4월 10일 오전에 포스팅됩니다. 하편에서는 '궁금증 셋:한국배드민턴은 왜 복식이 단식보다 강할까?'와 '궁금증 넷:배드민턴 대 축구, 누가 최강의 생활체육인가?'를 다룰 예정입니다.)
기사제공 위원석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