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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카플레이가 적용된 인포테인먼트 화면
애플은 3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네바 모터쇼에서 주요 자동차 업체들과 협력해 자동차 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습니다. 'iOS in the car' 로 알려졌던 이 서비스의 이름은 '카 플레이(Car play)'라는 이름으로 최종 정해졌으며 올해 페라리, 혼다, 현대자동차, 메르세데스벤츠, 볼보 등이 카플레이를 지원하는 차량을 출시할 계획입니다.
또, 앞으로 BMW그룹과 쉐보레, 포드, 재규어, 기아, 랜드로버, 미쓰비시, 닛산, 오펠, 푸조시트로엥, 스바루, 스즈키, 도요타 등이 카플레이 컨소시엄에 합류했으며, 이들 업체는 향후 카플레이를 지원하는 차량을 내놓을 예정입니다.
사실 현재 자동차 업체들이 제공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경우 빠르게 바뀌는 IT부문과 비교하면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 상황입니다. 제한된 기능과 조작, 한국시장을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들여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애프터마켓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적용해서 들여오고 있습니다.
BMW와 도요타, 아우디 등이 한국 실정에 맞춰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개발해 들여왔다고는 하지만, 다른 자동차 업체들에 비해서 좀 더 신경을 썼다는 것이 외에는 사용이 불편하거나 실제 사용에는 무리가 있는 제품들이 많습니다.
가장 불편한 부분은 내비게이션 시스템입니다. 자체 개발한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는 수입 브랜드의 경우 지도의 정확성, 입력 편의성이 크게 떨어지며 국내 에프터마켓과 재휴를 하는 브랜드의 내비게이션은 출고후 매립 작업을 진행한 경우여서 차량의 인포테인먼트와 따로는 형국입니다. 이 때문에 수천만원에 달하는 수입차를 구입하고도 정작 내비게이션은 스마트폰이나 별도 거치형 내비게이션을 구입해서 사용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혼다코리아 어코드의 내비게이션 전환 버튼
국내에서 판매량이 많이 증가한 폭스바겐을 비롯해 포드, 크라이슬러, 닛산 등도 애프터 마켓 제품을 매립하고, 혼다를 비롯해 일부 업체는 별도 내비게이션 버튼을 추가로 탑재하는 기이한 방법(?)으로 사용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1억원이 넘는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나 포르쉐 등에도 거치형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는 상황이니, 제대로 멋을 부리기에는 현재 자동차 업체들의 인포테인먼트 지원 정책은 한참 뒤떨어져 있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가격적인 부담이 크게 줄었다는 점 정도로 위안을 삼을 수는 있습니다.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라는 개념이 확실하지 않았던 6-7년 전만해도 7인치 모니터에 몇 가지 안되는 조잡한 기능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넣어 놓고 적게는 200만원에서 많게는 800만원까지 추가 비용을 책정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메르세데스 벤츠의 커맨드 시스템이었습니다.
실제로 2006년지만 해도 커맨드 시스템을 기본으로 갖추지 않은 모델(C클래스, SLK 클래스 등)의 경우 약 700만원 정도의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해당 옵션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음은 물론 사용할 수 있는 기능도 몇 가지 되지 않았습니다. 가격만 비싸고 정작 쓸모는 없었던 순정 인포테인먼트의 기능적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당시 유행했던 UMPC를 구입해서 거치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애플 카플레이의 음악 선곡 화면
이렇게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다른 부문에 비해서 뒤쳐져 있는 것은 이런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팔린다는 제조사의 방만한 대응이 가장 클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이전 세대 수입차 구매자들 경우 IT부문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수입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인식도 많이 작용했고, 수입차에 탑재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고객에게 제공하는 편의 기능이 아닌 또 다른 수익 수단으로 생각하는 부분도 영향이 있습니다. 똑같은 제품이 탑재되어도 수입차에 들어가는 순간 가격이 두 배 이상 높아지는 자동차 업계 구조상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포기할 수 없는 수익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같은 부분은 굉장히 단편적인 수준에서 수익에 목을 메고 있는 국내 수입차 업체들의 현실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제대로 된 시장과 규모가 된다면 차츰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며 수입차 구매층이 IT부문을 중요한 구매요소로 보는 젊은층으로 바뀌고 있어 수입차 업체들도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로 바뀌고 있습니다.
차량과 연동되는 애플 카플레이 인터페이스
이런 가운데 애플 카플레이는 이같은 자동차 부문의 인포테인먼트 수준을 상향평준화 시키는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카플레이가 공개되기 이전 IT업계에서는 애플이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부문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서 기대했지만, 현재의 전화, 내비게이션, 음악 재생 등에 국한된 것을 확인하고 실망하는 기력이 역력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존 자동차 업체들이 제공하던 기능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번에 공개된 사진과 동영상에서의 기능은 너무 단조롭게 보여서 이전의 화려한 인터페이스보다 뒤떨어져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애플 카플레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기존 자동차 업체들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큰 차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선 브랜드와 차종에 상관없이 일관된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킈 커맨드, BMW의 아이드라이브나 아우디의 MMI 등 각 자동차 업체들은 독자 방식의 인터페이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BMW 아이드라이브의 휠 조작 방향과 아우디 MMI의 휠 조작 방량은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메뉴 선택이나 이동 등도 다르기 때문에 자동차를 여러대 접한 사람이라고 해도 쉽게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처음 타는 사람은 한번쯤 방향에 헤깔리는 아우디의 MMI
자동차의 조작은 다른 기기와 접근성 부문에서 다른 차원의 익숙함을 제공해야 합니다. 자동차는 특정 계층의 사람이 아니라 운전면허증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성인을 대상으로 하고 이들 중에는 제품의 기능을 익히는데 여러번의 학습과 반복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에 고정된 상태에서 조작 하는 것이 아니라 운전이라는 일을 하면서 조작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 복잡성가 오류 가능성이 크고 언제나 사고의 위험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동차 업체들이 인포테인먼트 부문에 보수적으로 나서는 것도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오류로 인해 리콜이나 사고 등의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면에서 카플레이는 최대한 직관적인 기능만 의도적인 절제를 통해 담아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를 통일 했습니다. 1년 뒤 자동차를 구입할 때 세단이냐 SUV냐 못지 않게 '카 플레이'가 탑재됐느냐?가 중요한 구매 요소로 작용할 것입니다.
둘째는 '자동차의 양방향화'입니다. 그동안 자동차는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PC처럼 고정된 정보, 죽은 정보만으로 운행되는 형태였습니다. 차량 내 트립컴퓨터가 연비와 주행속도, 시간 등을 기록해주지만 리셋을 하면 모두 삭제되고, 운전자는 해당 정보를 가지고 운행에 참고만 할 수 있지 해당 정보를 더 이상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카플레이를 사용하면 자동차 내부 정보를 인터넷과 연결해 좀 더 유기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우선 모두들 바라는 통신형 내비게이션 기능으로 도로 상황, 사고 유무를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물리적인 최단 경로가 아니라 가장 빠른 경로를 제시받을 수 있습니다. SK텔레콤 T맵을 사용해보신 분이라면 공감하실 수 있는 부분입니다. 향후 차량 상태와 주행 기록도 좀 더 세분화해서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미 BMW는 자체 앱을 통해 주행거리과 연료 소모량 등을 체크해서 최적의 주행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뉴스와 라디오도 앱을 통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카플레이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앱으로 제공하던 차량 상태 확인, 누적 주행 정보, 지역정보 등을 활용할 수 있게 합니다. 자동차가 하나의 새로운 플랫폼이 되어 인터넷을 통해 양방향으로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주행기록을 저장, 공유 할 수 있는 BMW의 M Power 앱
자동차 업체들이 애플 카플레이에 대거 합류한 것은 인포테인먼트 부문에서 우려되는 보안성과 호환성 부문에서 구글 안드로이드에 비해 앞서있기 때문입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보수적인 성격이 강한 자동차 산업에서 여러개의 제품과 버전으로 나눠져 있는 안드로이드 보다는 애플 쪽의 장점이 컸을 것입니다.
주목해야할 부분은 카플레이 진영에 세계최고 자동차 판매 업체인 폭스바겐 그룹을 비롯해 피아트, 르노 등 유럽업체들이 제외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유럽 업체들은 이전부터 OSEK이라는 OS를 자동차에 탑재하고 있으며, 폭스바겐은 OSEK의 대표업체로 꼽히고 있습니다.
자동차 업체들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부문의 개선을 느끼고 있지만,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주도권을 주게 되면 향후에도 종속성을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도 있어 카플레이에 대응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내놓을 것으로 보입니다. OSEK는 자동차 분야의 다양한 특허를 확보하고 있는 보쉬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자동차 기술을 바탕으로 한 보쉬와 IT를 바탕으로 한 애플간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카플레이가 자동차 업계 인포테인먼트 부문에서 주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하는 이유는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 시대를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기차 시장의 대중화 여부와 시점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견이 있지만 전기차 시대에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단순한 여가, 길안내 기능을 벗어나 자동차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현재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에 구현하려는 기술은 지능형 주차장 관리 시스템, 주유소와 쇼핑, 오락 등 지역정보. 자동차 유지보수 관리, 관광정보, 재난 정보 등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기능들은 이전에도 자동차 업체들이 구현하려고 하는 기능들이었지만 전기차에서는 기계적인 조작이 아닌 전기적인 조작을 통해 훨씬 간편하고 낮은 비용으로 구현이 가능합니다.
테슬라 모델S에 탑재된 인포테인먼트용 17인치 LCD
테슬라 모델S가 17인치 초대형 LCD를 통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탑재한 것만 봐도 전기차 부문에서 인포테인먼트 부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자동차 인포테인먼트의 미래로 꼽히는 테슬라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놀랍게도 리눅스를 기반으로 한 자체 OS입니다. 테슬라도 전기차에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구축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앞으로 애플이 카플레이를 전기차까지 끌고 간다면 테슬라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제공하는 현재 애플의 입장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고, 애플은 다른 자동차 업체들을 협력업체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구글의 입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하는 아이폰 5S, 5C, 5
물론 카플레이의 핵심은 아이폰이기 때문에 구글처럼 소프트웨어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제공한다는 애플의 기존 철학과는 다른 방식을 택했습니다. 많은 자동차 업체들이 애플 카플레이 진영에 합류하기는 했지만, 이들이 카플레이만을 고집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스마트폰 사용자 중 아이폰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애플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카플레이 이외에 자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나 앞서 설명했던 OSEK 그리고 블랙베리의 자회사인 QNX 등을 채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블랙베리 자회사 QNX가 만드는 QNK OS 로고
일례로 포드는 카플레이 진영에 있으면서도 차세대 인포테인먼트로 QNX를 택했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포드는 기존까지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해 음성인식기능을 넣은 싱크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활용했지만,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부문에서는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포드 엘런 멀렐리 CEO가 스티브 발머의 뒤를 이을 강력한 차기 MS CEO로 꼽혔던 일도 있었고, 포드가 부활하는데 싱크가 큰 역할을 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발표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카플레이를 비롯해 인포테인먼트 부문의 협력은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는 업체들의 거대한 '적과의 동침'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각 업체들은 협력을 하면서도 서로에게 종속되지 않으려면 언제나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있을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나 구글 안드로이드, 애플 iOS처럼 과점한 OS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동차들이 연결되지 않은 현재 이전까지의 일이고, 앞으로 각 자동차들이 연결될 세상에서는 이 시장을 두고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앞두고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 다가올 전기차 시대와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장에서 애플이 카플레이로 주요한 포석을 잡은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반대로 안타까운 것은 모바일 시장에 이어 자동차 부문에서도 일찍 이 시장에 뛰어들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름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