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 NCC까지...위기의 한국석유화학, 조선에 배워야 / 8/11(월) / 중앙일보 일본어판
격세지감.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석유화학업체 여천NCC에 어울리는 수식어다. 여천NCC는 1999년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가진 나프타분해설비(NCC)를 통합해 만든 회사다. 석유화학의 핵심 원료인 에틸렌 생산능력은 LG화학과 롯데케미칼에 이어 한국 3위다. 2001~2021년 연간 평균 순이익은 2400억원으로 2016년 사업보고서를 낸 334개사 중 직원 평균 연봉은 1억 1990만원 1위였다.
'신의 직장'으로 불렸지만 2022년부터는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3년간 누적 적자만 8200억원에 이른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낸 에틸렌 생산에 집중하면서 다른 석유화학 기업처럼 중국발 공급 과잉의 직격탄을 맞았다. 결국 8일 제3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21일까지 차입금 3100억원을 갚지 못하면 부도 위기다. 한화는 신속하게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DL은 경영진단부터 해야 한다며 워크아웃 신청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위기에 빠진 한국 석유화학업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석유화학업계의 불황은 악화일로다. LG화학은 지난해 3월 여수 대산공장의 스티렌모노머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했다. 롯데케미칼도 같은 해 12월 여수산단 2공장 생산라인 일부에서 가동을 멈췄다. 롯데케미칼은 HD현대오일뱅크와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NCC 설비 통합 운영을 검토 중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 김지훈 대표파트너는 현재 석유화학업계의 다운턴(하락세)은 과거와 양상이 달라 버티다가 살아남기 힘들다. 현재의 불황이 계속된다면 3년 후에는 50%만이 지속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석유화학업계에 대한 대책은 지지부진하다. 인공지능(AI) 등 우선도가 높은 국정과제에 숨어 있다. 윤석열(윤석열) 정부 시절인 지난해 12월 발표한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으로 설비 폐쇄, 사업 매각, 설비 운영 효율화, 신사업 인수합병 등에 금융·세제를 지원한다는 큰 틀은 굳었지만 세부 대책은 아직이다.
반도체 철강 조선과 마찬가지로 석유화학 역시 국가 기간사업이다. 불황과 호황의 사이클을 거치며 최근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최대 무기로 내세울 만큼 주목받은 조선업의 위기 극복에서 배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러 면에서 석유화학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석유화학은 2020년 코로나19가 유행한 이후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위기를 맞았다. 조선업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경기 침체와 중국발 저가 수주 공세에 시달렸다.
김형수 인하공업전문대 조선기계공학과 교수는 2010년대 STX와 대우조선해양이 법정관리에 빠져 중국 기업을 이길 방법이 없다거나 조선업을 버텨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장기 불황을 견디고 호황을 맞은 조선업처럼 석유화학도 포기하지 말고 살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업은 불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업 스스로 고부가가치, 친환경 선박 위주로 사업구조를 바꿨다. 정부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매각, 부실 조선업체 구조조정, 친환경·고부가가치 선박 개발 등을 지원했다.
석유화학업계도 구조조정과 설비 통합으로 범용 제품 경쟁력을 높이고 고부가가치 사업을 확대하는 생존 대책에 공감한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양보다 질'이라는 방향성은 굳었지만 설비투자 비용이 큰 데다 개별 기업이 독자적으로 인수합병을 추진하기 어려운 구조. 정부가 명확한 구조조정 방향을 제시해 실질적인 인수합병 지원책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