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을 봉헌한 후 느헤미야는 왕과 약속한 대로 총독의 의무를 마치고 다시 돌아갑니다. 성벽 재건이 그가 이곳에 온 궁극적인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약 12년 동안 지냈습니다. 이 후에 다시 느헤미야는 왕에게 잠시 예루살렘에 다녀올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 옵니다. 그때 느헤미야는 백성들이 다시 타락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히 제사장 엘리아십이 산발랏의 친구인 암몬 사람 도비야에게 하나님의 성전 방 중에서 하나를 내어 주어 살게 했습니다. 암몬 사람은 이전에 이스라엘의 길을 막고 방해하여 영원히 이스라엘으로 받아 줄 수 없는 족속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곳은 본래 성전을 섬기는 자들을 위해서 나누어 줄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 등을 두는 곳이었습니다. 자연히 성전에서 섬기는 자들을 위한 음식은 보관되지 않았고 레위 사람들에게 줄 몫도 주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레위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서 각기 자기의 밭으로 돌아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가슴 아파하며 성전의 방을 정결하게 하고 백성의 지도자들을 책망하고 다시 레위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충직한 자들을 창고지기로 세워 제사장들이 자신들의 몫을 받을 수 있도록 나누어 주는 일을 맡깁니다(1-14). 다시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배를 개혁합니다. 백성들은 느헤미야가 없을 때 다시 언약을 어기고 예배에 불성실했던 것입니다.
또 느헤미야는 안식일을 범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나르며 여러 짐을 가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 음식물을 팝니다. 또 당시 가장 무역을 활동하게 했던 두로 사람이 와서 안식일에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와서 상품을 팝니다. 이에 느헤미야는 유다의 모든 귀족들을 꾸짖습니다. 조상들이 예배와 안식일을 범하여 하나님께 징벌을 받았는데 똑같이 그런다고 합니다. 또 느헤미야는 안식일에 성문을 닫아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고 주변의 상인들을 쫓아내는 조치를 취합니다(15-22).
뿐만 아니라 느헤미야는 사람들이 이방인들과 통혼하여 낳은 그 자녀가 유다 말을 못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혈통적인 정체성을 잃었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 아이가 유다 말을 못한다는 것은 가정에서 완전히 이방적인 생각과 말과 문화로 키웠다는 것이고, 그것은 모두 이방신을 섬기는 문제와 연결이 됩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가르치지도 않았고, 가르칠 생각도 안했다는 말입니다. 부모가 모두 완전히 이방화 되어 살았다는 말입니다. 이에 느헤미야는 통혼을 금하는 조치를 내립니다. 위대한 솔로몬도 결국 이방 결혼으로 몰락하게 되었다고 상기시켜 줍니다. 마지막으로 느헤미야는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가 이방인의 사위가 된 것을 알고 그를 쫓아냅니다(23-31).
느헤미야의 개혁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상당히 용기가 있고 단호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14절, 22절, 31절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개혁을 단행할 때마다 하나님께 자신을 기억해다 달라고 호소하며 나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는 느헤미야가 개혁을 단행할 때마다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두려움 속에서 했는지 보여 줍니다. 자신의 힘과 권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자신의 개혁의 일을 맡기고 담담히 나아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기억되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회복과 개혁의 가장 기본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님께 기억되고 싶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쫓아가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지켜 나가며 예배를 회복하고 누가 보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이 기억해 주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삶의 태도는 예배의 태도에서 출발합니다. 안식일에 불필요한 경제활동을 그치고 예배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삶의 방식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 경제 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 기억되는 삶을 살겠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우리의 삶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억되길 간절히 바라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 날마다 믿음의 표현을 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감사합니다.
아멘!!